# 128
가주계승-1
띠리리...
“어떤 미친 새끼가 이 오밤중에... 어? 웬일이야.”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벌컥 연 거한이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의아한 눈초리로 쌍욕을 내지르려던 입을 다물었다.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거한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 좀 어디 다녀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동철은 한밤중에 나타나 뜬금없이 어딘가를 다녀온다는 친구의 말에 제황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폈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단지 장비를 풀세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어디 솔로 레이드라도 다녀오려는 행색이다.
“들어와.”
“아니, 바로 갈 거야.”
“아니 갑자기 어딜 간다는 거야.”
“말하기는 좀 힘들어.”
제황의 대답에 동철은 지금 그의 친구가 전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애초에 제황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
“오래 걸리냐?”
“짧으면 두어 달 길면 반년에서 일년 확실히는 모른다.”
“돌아오긴 하냐?”
“잘 모르겠다.”
무성의한 듯싶지만 저 대답은 사실이리라. 동철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11시다. 다른 이라면 주사 정도로 치부했을 말이지만 이 미친 친구는 술도 안 마신다.
“일단 내일 이야기 하면 안 되냐? 늦었잖아.”
절레절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역시나 친구의 대답은 예상한 그대로다.
이놈은 마음먹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놈이다. 아마 계획은 상당히 오래 전에 세웠을 것이다. 자신은 단지 그것을 지금 안 것뿐이다.
“뭐 타고 가냐?”
“비행기”
비행기라는 말에 동철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최소한 비행기가 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는 말이다.
“해외로 혼자 놀러 가냐?”
“초고고도수송기 타고 놀러가는 사람도 있냐?”
위험하지 않다는 말 취소다. 이 친구는 분명 미친 짓을 계획 중이다.
초고고도수송기라는 것은 1만 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움직이는 레이드전용기체로서 주로 특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 분포지역에 헌터들을 투입 할 때 쓰이는 비행기였다.
“어디 가는데”
“압록강 쪽...아마 백두산이 되겠지.”
“쓰으...미친 새끼”
백두산이라는 말에 동철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오밤중에 나타난 친구가 갑자기 아직 눈도 녹지 않은 북쪽의 몬스터 지옥으로 간다니 골치가 지끈지끈하다. 중국과의 경계인 암록강의 백두산 지역은 북한이 멸망한 이후 단 한 번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중 하나였다.
이제 사람들은 그 지역에 백두산이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상변이현상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외계종의 거대한 나무들과 엘어스의 7티어 몬스터들을 먹이로 삼는 다크어스몬스터들의 천국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대체 거긴 왜 가는데?”
“찾을 게 있어서...”
“후우”
친구가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말릴 수는 없다. 들을 친구였으면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도 않을 것이다.
“같이 가 줄까?”
“됐어. 네 여자친구한테나 잘해라. 너 나 따라오면 쟤한테 죽겠다.”
“히익...”
거실쪽 벽 뒤에서 숨넘어가는 소녀의 소리가 들린다. 뒤를 슬쩍 바라보고는 입맛을 다신 동철이 말했다.
“킁, 정말 같이 안가도 되냐?”
“사지에 짐덩어리 하나 더 가져갈 생각 없다.”
이 바른말만 할 줄 아는 친구의 꽉 찬 돌직구가 동철에게 작렬한다. 이놈은 도통 변화구를 모른다.
“새끼, 말을 해도...”
얼굴에 잠시 분노와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해괴한 표정을 짓던 동철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녀와라.”
“그래.”
“몸조심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제황이 사라진 후 문을 닫고 들어온 동철은 냉장고로 가 맥주 한 캔을 꺼내든 뒤 쇼파에 앉았다.
치익...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 동철이 빈 맥주캔을 우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나쁜 새끼, 말을 해도 꼭...”
야속한 친구 놈이 기약도 없이 행선지도 말하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 말하기로는 짧으면 두세 달이라고 했지만 아마 최소 일 년 이상은 걸리리라. 마음으로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따라가고 싶었지만 자신이 짐 덩어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그것을 애써 참아냈다.
그렇다. 자신은 짐덩어리다. 아무리 그가 제황보다 몸이 단단하고 힘이 세다고 해도 실제 전투력을 따지자면 자신 정도 되는 헌터 두 셋이 붙어도 제황을 이기지는 못한다.
분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이제 그는 당당한 헌터로써 주위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가장 자랑하고 싶은 그리고 도와주고 싶은 친구는 그보다 더 먼 곳에서 걸어 가고 있다.
그래서 분했다.
꾸우욱...
동철의 주먹 안에 우겨져 있던 맥주캔이 휴지조각처럼 압착되어 버렸다.
“네 놈이 돌아왔을 때는 절대 네게 짐이 되지 않겠다.”
동철은 다짐했다. 제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제황의 발목을 붙잡는 놈은 되고 싶지 않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단지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게 못내 두렵기 때문에 아니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싫을 정도로 악몽이기에 애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해야 해.”
동철의 두 눈에 굳은 결의가 어렸다.
***
삼주일 후 드디어 마음의 준비를 끝낸 동철은 권제를 찾아갔다.
결심을 굳히는데 무려 삼주가 걸렸다.
담대하고 무서울 것 없는 동철도 권제만큼은 두려웠다.
권제가 그의 몸에 아로새긴 공포는 그를 권제가 기거하는 무적궁으로 오줌도 싸지 않게 만들었지만 그를 확실히 강해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인물은 지금 이 곳에서 단 한명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동철의 접견을 수락한 권제가 동철의 말을 모두 들은 후 매우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동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얼마나 강해지고 싶은데?”
그 눈빛이 마치 먹이를 바라보는 산왕과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만 수련 받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이 눈앞에 앉아있는 괴물의 흥미를 끌 수 없다. 고작? 이라며 콧방귀를 뀐 뒤 내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얼굴을 보기 힘들어 질 수도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동철이 입을 열었다.
“제황이를 ... 뛰어넘고 싶습니다.”
“호오...”
동철의 그 대답에 권제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진 권제였다. 자신의 사랑 가득한 훈육이 모자랐던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과거 자신의 제자들도 이 놈 정도의 근성은 없었다. 울고불고 무적성에서 도망쳐 해외로 나른 놈도 부지기수다.
혹 매 맞는 것에 취미를 붙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새로운 스킬을 각성했거나... 아무튼 그 괴물을 이기겠다니 참으로 대견하다.
“제황이를? 네가?”
권제가 가소롭다는 듯 동철에게 말했다.
‘먹혔어.’
권제의 비아냥에 순간 이마에 힘줄이 오를 뻔 했지만 동철은 자신의 모험이 성공했다는 걸 직감했다. 효과는 있다. 아니 반응을 보니 확실해도 너무 확실한 것 같다. 마음속에 작은 후회가 일었지만 이내 그것을 잠재웠다. 그래.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만이 이 눈앞의 괴물에게 수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생각하며 동철이 입을 열었다.
“예!”
“힘들 텐데?”
권제가 말했다. 자신의 그 수련을 빙자한 지옥을 단순히 힘들다고 표현하는 권제의 옥수수를 모조리 털어 고인돌을 세워버리고 싶지만 동철은 자신의 그런 재롱을 본 권제가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더욱 심하게 굴려버릴 걸 알기에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각오 했습니다!”
“오... 각오 좋지. 각오라... 내게 이런 식으로 와서 말하는 놈이 되려면 그 정도 각오는 있었겠지. 좀 바쁘기는 하지만 취미생활 정도로 치지. 좋아! 네가 제황이를 뛰어넘을 때까지 한 번 힘써 보마.”
“가...감사합니다.”
가슴속으로는 제발 적당히를 소리쳐 부르짖지만 동철은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미련을 끊어냈다. 이제 시작이다. 그가 예상하기로 제황이 돌아오기까지는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다. 그 안에 최대한 강해지는 것이다.
“일단 일이 있으니 내일부터 시작하자. 좋지?”
“감사합니다!”
권제의 말에 무심결에 크게 대답한 동철은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코를 지나 턱으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일까지 주변 정리 확실히 하고 와라. 난 시작하면 끝을 본다.”
그 말이 마치 죽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 하라는 듯 들리지만 동철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삼주 간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심정으로 대차게 놀았다. 자청해서 들어가는 지옥이지만 후회는 없다.
“알겠습니다.”
무적궁을 나서는 동철은 대문이 닫히는 순간 다리가 풀려옴을 느꼈다.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끝내 무릎으로 땅을 짚은 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가 어서 제 기능을 찾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건가.”
동철은 지금 시간을 거스르는 스킬이 있으면 자신이 권제에게 미친 소리를 하기 1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동철에게는 그런 스킬이 없다.
까마득한 절벽에서 자기 자신을 밀어버린 형국이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포기하자. 포기하면 편하다. 후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동철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정도로 흔들린다면 그 지옥과 같은 곳에서 자신을 구해내 준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자격도 없다. 언젠가 제황의 든든한 방패가 되기 위해서는 지옥에서라도 살아남으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키던 그 때였다.
“여기서 뭐하냐?”
“응?”
뭔가 꽤 익숙한 이의 목소리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여기서 들리면 안 된다.
고개를 조금씩 들어보니 매우 친숙한 배틀부츠가 보인다. 그렇다 매우 친숙하다. 그 부츠의 주인을 확인하고자 시선을 든 동철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어?”
그 얼굴은 바로 삼주 전 한밤중에 자신을 찾아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한 채 사라진 친구니까.
“너...너 왜! 여기에!”
“복귀 신고”
친구의 성의 없는 짤막한 대답, 그러나 동철은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었다. 아니 무려 지입으로 두 달 길게는 몇 년 정도 떠난다고 이야기하던 친구가 꼴랑 삼주도 안되 여기에 있는가 말이다.
“백두산 간다며”
“다녀왔지.”
“짧아도 두 달이라며”
“후, 그래. 삼 주 정도인가... 삼주라. 일단 시간상으로는 얼마 안 걸렸군.”
뭔가 회한이 많아 보이는 제황의 대답이 있었지만 동철은 지금 그런 걸 따질 경황이 없었다. 지금 그는 다이너마이트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돌아 나온 상태다.
"야! 야이 미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