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다시 저스틴포인트로...-1
단순레벨로 치면 거의 한 랭크를 초월하는 능력의 상승에 제황은 급격히 강해진 몸에 적응하느라 그동안 고생했었다.
현재까지 나타난 건 3단계 까지다. 4단계나 5단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3단계는 최소한 10프로보다는 높을 테니 차후 얼마나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 가닥 의문점만은 해소되지 않았다.
“대단하기는 한데...그럴수록 불안하군.”
-흐흥, 뭐가?
좀 띠꺼운 듯한 궁기의 물음에 제황이 대답했다.
-글쎄, 강해지는 거야 좋지만 저 사상력이란 거 대체 뭐야?
강해짐의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강해진다? 헌터의 삶에 일종의 환상을 지닌 일반인들이라면 로또 맞았다고 좋아하며 힘에 취할 수도 있지만 제황은 아니었다. 힘의 정체도 모른 채 무작정 강해졌다고 좋아하고 나태해지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게 없다.
각성이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밝혀진 힘이다. 마치 사람들이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쓸 줄은 아는 것처럼 각성의 힘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아니 이제 강제각성을 통해 디바우저의 각성도 조금씩 밝혀지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사상력이라는 건 전혀 알려지지 않은 힘이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에너지 그리고 숭배 혹은 공포가 발생하면 강해지지.
-숭배? 공포?
-그래. 그 숭배와 공포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일정 양이 차면 네 신위로 포함되는 거야. 기... 마나...도력? 모두 엇비슷한 힘이야. 그렇지만 사상력은 그보다 상위의 에너지지. 무려 신들의 힘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정량의 그 에너지가 쌓이면 네 이름으로 된 에너지를 네가 찾아가는 것뿐이니까.
-조금씩이던 빠르게 든 일정량을 채우면 사상력이 내 스킬에 등록된다?
-맞아. 그렇지만 나도 세부적인 건 잘 몰라. 나 또한 상고시대 신의 흔적을 쫓아 짜깁기 한 거니까. 내가 모르는 게 더 있을지도 모르지.
궁기의 말에 제황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론은 위험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다 좋아. 그럼 이건 어때? 네 말대로라면 나에 대해 저 두 개 중 하나의 감정을 가진 이가 1만 명이 넘는다는 소린데 넌 이상하지도 않아?
제황이 생각하기에 자신에 대해 무려 일만이 넘는 이가 단순히 알고 있는 게 아닌 공포 혹은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특히나 저 신위라는 스킬이 본격적인 힘을 드러낸 건 교토지부 습격 후부터였다. 천 명 정도는 이해한다. 당시 그곳에 있던 일반인도 있었고 또한 천황클랜의 헌터들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일만 명이 넘는다는 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모르지 어디서 네 초상화라도 걸고 절이라도 하고 있을지... 쿄쿄쿗.
-헛소리는 좀 제발...
궁기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은 심각한데 그녀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한 번 시간 내서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리라 마음 먹으며 제황은 생각을 접었다.
그러나 제황은 몰랐다. 그녀의 저 말이 꼭 허황된 헛소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물론 초상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창명아. 밥 먹어!”
“나 안 먹어!”
“이따 기어 나와서 어지르지 말고 지금 먹어!”
“아 쫌!”
엄마의 잔소리에 창명은 뻑하고 소리를 지른 후 귀에 이어폰을 꼈다.
고막을 찢는 메탈음악 소리에 불끈거리던 짜증이 조금씩 사라진다.
“후, 오늘은 뭐 새로운 게 올라왔나 볼까.”
컴퓨터 책상에 앉은 창명은 엄지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켠 후 익숙한 손놀림으로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클릭했다. 곧이어 자신과 같은 동지들이 서식하는 P2P사이트가 켜지고 밤 사이에 새롭게 올라온 영상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이건 별로...이것도 별로...”
한참 동안 의미 없이 클릭질을 하던 창명이 한숨을 내쉬며 등을 의자에 기댔다.
“아 쌔끈한 게 없네.”
창명이가 취미는 바로 헌터들의 레이드 영상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인간 헌터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된 취미였다. 그들이 거대한 몬스터들을 레이드하는 영상을 유툽에서 보며 얼마나 가슴 떨렸던가.
그렇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전세계 모든 이들이 보는 유툽에 올라오는 자료들은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제한사항이 많아 창명이 원하는 피와 살이 튀는 자료는 올라와도 금방 삭제되는 게 일상이었다.
간혹 스트리머들이 이시대 최고의 영상 어쩌고 하며 실시간 중계를 하지만 중증폐인인 창명이 보기에는 동네 뒷산 소풍마냥 보였다.
"어그로질만 오지구요. 씨박...어쩔 수 없지."
창명은 P2P 사이트 상단 오른쪽에 금색으로 되어 있는 버튼을 클릭했다.
[콜렉터653님 입장하셨습니다.]
곧 익숙한 버프음과 함께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좋아."
빙그레 미소지은 창명이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 골드버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1000회 이상의 이용횟수가 되야 함은 물론이고 일정 횟수 이상 자료를 공유한 내역과 마지막으로 운영진의 심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창명은 곧 가장 상위에 있는 베스트오브베스트 ‘필살’이라는 영상을 켰다.
무려 100코인이 차감되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시작한다. 필살”
수십 번 돌려본 영상이지만 볼 때마다 가슴 떨리는 영상이다.
모자이크도 내레이션도 화면 편집도 없는 촬영영상이다. 아마추어가 찍었냐고? 아니다. 단지 이 영상에는 그런 게 필요 없다.
“촬영시작”
한 늙은 남자의 메마른 목소리를 시작으로 영상이 시작된다.
촬영장소는 지구가 아닌 엘어스... 철제 난간에 위태롭게 서있는 남자가 있다.
남자는 카메라를 등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긴 망토를 휘날리며 전면을 바라보는 그와 눈앞에 펼쳐진 넓은 평원을 가득 매운 수만의 오크들이 물결처럼 몰려오는 게 보인다. 정말 엄청난 숫자의 오크다. 만약 그가 저 현장에 있다면 오줌을 지리거나 그 자리에서 혼절하거나 둘 중 하나리이라.
퉁퉁퉁퉁퉁!!!
곧이어 남자는 오크를 향해 끊임없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다. 대략 이 정도까지 영상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쇼하냐’
수만의 오크들이 달려오는데 고작 활 한 자루로 뭘 어쩌겠다고 저러는지... 새로 나온 자살 영상 아니냐? 혹자들은 페이크 영상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영상이 5분 정도 지나면 슬슬 손에 땀을 쥐기 시작한다. 그 남자의 활질이 점점 절정에 달할수록 그의 활에서 쏟아지는 화살들은 영상을 보는 모든 이들의 고정관념을 박살내기 시작한다.
콰콰콰쾅!
아니 그가 쏘아대는 게 진짜 화살인지는 모른다. 붉은 기운에 휩싸인 그 화살들은 단 한발로 수 마리의 오크를 한 번에 꿰뚫고 있었다. 그런 화살이 수십 발이 쏟아져 나가니 그가 한 번 휩쓸 때마다 오크들의 파도에는 구멍이 생겨났다.
그렇다. 그는 무려 단신으로 오크들의 파도를 막아내고 있었다.
“후아...”
30분의 긴 영상이 끝나고 창명은 익숙한 손길로 물티슈를 뽑아 손에 차오른 땀을 닦아냈다.
“이걸 본 다음부터는 다른 영상들은 재미가 없네.”
다좋은데 이 영상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영상은 한 번 보고 나면 다른 모든 동영상이 시들하게 느껴진다.
일명 현자타임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상에 딸린 댓글에 눈이 간다.
골드버튼을 사용할 수 있는 이용자가 십만이 안됨에도 약 400만 클릭수를 자랑하는 이 영상에는 이미 수 십 만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창명은 그 중 가장 최신에 달린 댓글만을 필터링해 읽기 시작했다.
-헌터도 핵 있냐? 개잘핵! 오진다. ㄷㄷㄷ 이거 레알?
ㄴ와 ㄷㄷ 소문만 듣고 왔는데 진짜 지렸닫!
ㄴ필살님은 위대하시다.
-이 영상을 아직 보지 못한 이들이여. 환영한다. 당신은 활의 궁극에 달한 헌터를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 영상을 본이들이여. 애도한다. 당신은 이제 ‘필살’ 의 노예가 되었다.
ㄴ넌 이미 필살님을 경배하고 있다.
ㄴ빌어먹을... 이 경고를 우습게 넘긴 난 지금 새 팬티를 꺼내고 있다.
ㄴ지린다. 하... 궁극의 경지... 에..ㅇㄹ민러ㅣ;ㅇ나러;
ㄴ부끄럽다. 난 지금 기저귀차고 보고 있다.
-필살님께 경배하라! 우매한 종자들아! 역할놀이나 해대는 병신 헌터들아. ㅋㅋㅋ으아
ㄴ오오...필살님! 필살만이 진정한 헌터다!
ㄴ하...또 필살교 새끼들이...
“미친 놈들...”
-이 헌터 누군지 아는 사람 없습니까?
ㄴ저도 궁금합니다.
ㄴ다른 분들 댓글 보면 아시겠지만 찾는 건 포기입니다.
ㄴ촬영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건 알겠는데... 혹 저 헌터도 한국인?
ㄴ국뽕 젭알... 저 사람 중국 헌터임
ㄴ윗님 병신 인증? 저지가 어딘지는 아냐? ㅋㅋㅋㅋㅋㅋ 중국이래. 병신..
ㄴ필살님이 짱깨라니! 무엄하다!
자신도 영상을 보며 ‘필살’ 이라 불리는 저 헌터를 동경하기는 하지만 그를 신처럼 숭배하는 일부 극성 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명 필살교 라고 하며 그를 따르는 이들은 말끝마다 ‘필살’을 외친다. 맹목적 추종과 국뽕이 혼합된 이 필살교도들은 정말 이상한 곳에 나타나 분탕을 치고 사라진다. 뭐 그에게는 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자아, 이제 화끈한 거 한 번 봤으니 다시 검색을 시작해 볼까?”
뇌를 화끈하게 달궈준 ‘필살’ 의 영상을 시작으로 그는 다시금 동영상 검색 삼매경이 빠져 들어갔다. 그의 어머니가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
“헉...헉... 오백...”
구슬픈 땀이 이마에 맺혔다가 코를 타고 땅으로 줄줄 흘러 내렸다.
“흐으읍”
더운 김이 솟아나오는 입을 꾹 다문 남자가 다시금 팔을 굽혔다가 편다.
“오백...하나”
“지겨운 새끼, 활 쏘는 놈이 왜 매일 그런 하드한 트레이닝을 해대냐.”
한참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남자의 곁에 서 있던 덩치가 그 자신의 몸에 맞게 제작된 거대한 커브스보우의 시위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드드드득! 텅!
그의 커브스보우의 시위에서 날아간 화살은 약 200여 미터를 날아 과녁 정중앙에 박혔다. 실내 훈련장이기에 충격음이 크게 울린다.
“그럼 넌 탱커 주제에 무슨 활 질이냐. 방패나 연습하지.”
“에? 야. 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양궁부였거든?”
커브스보우에 새로운 화살을 걸던 거한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러더니 넉 대의 화살을 손에 쥔 채 속사를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과녁을 확인한 그가 득이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니냐? 제황아! 나 아직 안 죽었다”
확실히 제황보다 느리기는 하지만 대단한 정확도의 속사다.
그렇지만 그걸 보는 제황의 표정은 한심 그 자체였다.
“어깨 더 붙여. 턱 너무 당겼다. 다리 더 붙여. 실전에서 그렇게 서서 쏘면 병신 소리 듣는다. 고자냐? 왜 엉덩이를 빼고 있어. 테이크백 동작 지금보다 절반 이상 줄이지 못하면 그냥 활 놔라.”
제황의 구구절절한 독설이 이어지자 동철은 한숨을 내쉬며 커브스보우를 내려놨다. 얄밉기는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다른 헌터들이 본다면 입을 떡하니 벌리겠지만 실력은 안 되도 보는 눈은 어느 정도 있다고 자부하는 동철이 보기에 자신의 활실력은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활 한번 당길 동안에 다른 걸 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게 자신의 판단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몸을 일으킨 제황은 입고 있던 200킬로그램짜리 무게조끼를 입은 그대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쾅! 쾅! 쾅! 쾅!
"훅...훅...훅훅..!"
천천히 걷던 제황이 조금씩 속도를 붙이더니 이내 시속 40킬로를 넘기 시작하자 특수 제작된 러닝머신이 죽겠다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뭔가 꼬투리 잡을 게 없을까 생각하던 동철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졸라 시끄...”
그러나 그 말도 이내 쑥 들어간다. 러닝머신을 달리는 제황의 발소리가 사라졌기 때문...
보면 볼 수록 제황의 모든 스킬들은 신기한 것 뿐이다. 아니 귀신 같거나...
“그런 실력을 가졌으면 서 왜 이렇게 미친 듯이 훈련 하냐.”
동철의 물음에 제황이 동철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안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니냐?”
무려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림에도 목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괴물 같은 놈”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것들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거의 5백킬로그램 가량 된다.
저런 걸 걸치고서도 소리 없이 달리며 말을 할 재주가 동철에게는 없었다.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동철이 중얼거렸다. 힘은 그가 우위였지만 딱 힘과 내구력만을 제외하고는 제황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저렇게 미친 듯이 운동하고 싶지도 않다.
“난 간다.”
“잘 가라.”
돌아서는 동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제황은 러닝머신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아아아앙!
위에서 달리는 사람이 먼저 쓰러지나 기계가 먼저 박살나나 싸우는 것 같다.
치이이이...
러닝머신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고 그제야 슬슬 정지 버튼을 누르는 제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