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앵벌이들-3
초저녁 즈음이 되어 기지에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쉬고 있으니 중대장이 찾아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지긋한 나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제황에게 깍듯한 중대장이다.
“아닙니다. 그보다 저와 홍빈이의 의무레이드는 이제 끝난 겁니까?”
“예. 본래는 의무적으로 이틀 가량은 대기해야 하지만 중대장 직권으로 바로 퇴소하셔도 무방하게 조치해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헌터님 덕분에 삼각지의 수복이 더 빨라질 테니 오히려 제가 인사드리고 싶은 심정이지요.”
잘 모르는 사람은 제황 하나로 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끼쳤냐고 하겠지만 중대장이 제황에게 지정해 준 사냥터는 이전부터 무던히 골머리를 썩이던 레이드스팟이었다. 삼각지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치는 산지로 인해 자연적으로 헬버그들의 서식처 벨트가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헬버그들은 다른 몬스터들의 방해 없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곳이었다.
그런 골치 아픈 곳에 배치시켰는데 오늘 발바닥 땀나도록 수고하고 있는 사체수거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씨를 말렸다고 했다.
헬버그가 무서운 건 그 번식력 때문인데 제황과 같은 실력자가 한번 크게 소탕을 해주면 헬버그의 세력이 약해져서 다른 몬스터들의 유입을 불러온다.
근처에 있는 엘어스의 몬스터들의 서식처를 공백지로 이동시키기만 하면 몬스터들 간의 상잔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엘어스의 몬스터와 다크어스의 몬스터를 꾸준히 충돌시켜 서식처를 야금야금 파고드는 게 현재까지 사용된 인간의 전략이었고 지금도 꾸준히 이용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이곳도 그게 가능해 졌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만 하십시오.”
게다가 제황 정도 되는 실력자와 친분을 쌓는다는 건 중대장에게도 이득이다. 그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마침 하나 부탁드릴게 있기는 한데...”
“어떤 일이신지...”
“중대장님께서 아시는 분들 중 오늘 갔던 곳처럼 골칫거리인 곳을 관리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제황의 물음에 중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한민국 군대는 인맥과 연줄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의 사정은 눈감고도 훤히 보이는 중대장이었다. 지금은 과거 북한처럼 엉덩이 무거운 적대국과 총을 맞대던 남북단절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 때는 군인에게는 실적이나 전투라는 것과 멀고먼 이야기였다.
사고만 일으키지 않고 윗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부하들만 잘 다독이면 진급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무력대치의 대상이 몬스터로 바뀌면서 군대는 180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군대 내에서의 출세 수단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몬스터들을 소탕하여 자신이 맡은 구역을 안전하게 지키느냐가 제1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적성의 헌터는 자신의 인맥에 있어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말이다.
“혹시...”
“예. 맞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크게 바라는 것 없습니다. 레이드 대상 몬스터는 3티어에서 4티어... 군에서 지원해 주실 건 사체수거트럭과 철저한 보안뿐입니다.”
제황의 말에 중대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보안은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문제다. 그러다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가급적이면 금전적으로도 이득이시면 좋겠지요?”
“그럼 더 좋겠죠.”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중대장이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있으면 대대적인 몬스터 토벌령이 군에 하달될 겁니다. 그것 조금 일찍 준비하는 셈 쳐도 될 것 같군요. 책정된 군예산이 꽤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
그 후 열흘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제황과 홍빈은 함께 커다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중이다. 지난 열흘간 홍빈은 참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조금은 구부정했던 어깨가 활짝 펴져 있다. 또한 그의 낡디 낡았던 의족은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한 장치가 들어간 고풍스러운 모양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황이 무적성 내에 있는 헌터제활의학부에 문의하여 새롭게 맞춘 의족으로 최신 기술들이 접목된 고급 의족이었다.
“이것도 좀 드려 보세요.”
“너나 먹어.”
아니 그것은 작은 변화일 뿐이다. 홍빈의 얼굴 표정은 열흘 전의 그가 맞을가 싶을 정도로 밝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번에 이사 한다고?”
“예. 경기도 시외 권에 집 한 채 마련했어요. 어머니 병원 나오시면 바로 모시려고요.”
“어머니 혼자서 적적하시지 않으시겠냐?”
“하하. 아뇨. 어머니 고향 동네라서 일부러 그리로 선택했어요.”
고작 열흘이었다. 그러나 홍빈에게 그 열흘 동안 벌어진 일들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것만 벌어졌다.
첫날 홍빈은 그동안 그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사채 빚을 일시에 청산해 버릴 수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할 때는 매일 간격으로 독촉 전화를 하던 그들이었다. 빚을 일시불로 갚아버리자 고객님이 대박 나실 줄 알았다며 온갖 사탕발림을 떨다가 은근히 대출상품을 권하는 투자은행 과장의 책상을 박살내 버리고 당당히 나왔다.
둘째 날은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지금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좋은 대형 병원의 1인실로 옮겼다.
무적성과 제휴 중인 그 병원은 이전 병원에서는 도통 알 수 없다던 어머니의 병을 단 1시간 진료만으로 찾아냈고 기다림 없이 곧장 수술 날짜를 잡았다.
세 번째 날...네 번째 날... 제황과의 레이드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결과는 정말 엄청났다. 열흘 동안 무려 3개 레벨을 올렸다. 이전이었다면 반년은 걸렸을 시간을 무려 10일로 단축시켜 버린 것이다.
벌어들인 수익은 더 엄청났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열흘 동안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마나를 쥐어짠 것 밖에 없다. 위험? 그런 건 없었다. 단 둘이서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때려잡는데 지금까지 둘이 몸에 손을 댄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지금 그의 통장에 든 돈만 수십 억이다. 그리고 앞으로 곱절은 더 들어올 예정
단 열흘뿐이었지만, 홍빈의 마음속에 제황은 단순한 은인이 아닌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아니 신 그 자체다.
제황의 레이드는 기존의 모든 레이드 상식들을 깨부순다.
제황이 레이드 하는 순서를 보면 일단 초장거리 저격을 날린다. 이때는 몬스터를 죽이기보다는 몰이를 중점적으로 한다. 몰이도 그냥 하는 게 아닌 몰이 경로 상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이미 다 파악하고 합류 숫자를 예측하여 몬스터를 말그대로 인도해 온다.
만약 제황이 나쁜 마음을 품고 어떤 스쿼드를 향해 악질적인 몰이를 한다면 그 스쿼드는 전멸 혹은 실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몬스터가 대략 1킬로미터 반경 안에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본격적인 사냥에 들어간다. 이때도 마구잡이로 쏘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것들 위주로 사격을 가하는데 5티어 몬스터도 제황의 화살 한 방이면 맥을 못 춘다.
그렇게 300여 미터 안에 들어오면 이때부터는 그냥 무한난사다. 거의 화살의 비가 쏟아지며 몬스터들을 휩쓸 듯이 도륙하는데 간혹 섞이는 5티어 몬스터들도 버티지 못하는 폭딜이다.
마지막으로 6일째 되는 날이 백미였는데 무려 7티어 몬스터 군락지를 소탕해 달라는 군의 요청이 있었다. 홍빈은 처음에는 그 요청을 한 사람이 미친 줄 알았다.
머리에 별 두 개를 단 건장한 체구의 군인이 직접 찾아와 제황에게 읍소하는 걸 보고는 입을 다물었지만 어떻게 단 두 명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둘 중 하나는 공격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서포터 스쿼드에 무려 7티어 몬스터의 소탕을 의뢰한단 말인가.
그런데 제황은 그 의뢰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무적성에서 한 건장한 아니 거대한 남자가 도착했다. 보급이라면서 트럭 짐칸에 화살을 한가득 실고 온 그는 제황이 형에게 새로 업그레이드 한 스톰레이지라는 활을 넘겨 주었다.
그런데 이 인간도 괴물이다.
왜냐고? 그 남자가 오다가 주웠다며 트럭에 실고 온 건 5티어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건 그 둘의 대화가 더 가관이었다.
“넌 왜 왔냐?”
“7티어 레이드 한다기에 보급도 해주고 지원도 하러 왔지.”
“지원 필요 없으니까 꺼져. 너랑 나눠 먹을 것 없다.”
“야. 이 오지까지 친구를 돕기 위해 찾아온...”
“그럼 분배는 없다? 콜?”
“야야. 또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냐.”
“싫으면 그냥 가고... 너 그 어린애랑 요즘 콩 볶는다며?.”
“야야. 나도 버스 좀 타보자.”
무려 7티어 몬스터를 무슨 경험치 덩어리 취급하는 둘이다. 투닥투닥하면서도 그 거대한 덩치의 동철 이라는 형은 무장버스에 눌러 앉았고 그렇게 결성한 3인스쿼드는 무려 3일 만에 7티어 몬스터 30마리를 정리해 버렸다.
제황형의 친구라는 동철형 또한 무시무시했는데 그는 전장 10미터에 무게는 20여 톤에 달하는 7티어의 붉은장갑곰을 상대로 깔끔한 탱킹을 해냈다. 레이드가 끝난 후
시장 바닥에서 콩나물 한쪽 가지고 싸우는 아줌마들 마냥 붉은장갑곰 한 마리만 달라고 징징거리던 동철형은 기어코 한 마리를 트럭에 실은 채 도망가버렸다.
그리고 오늘 제황과 이렇게 무장버스에 앉아 마지막 식사를 하는 중이다.
툭
식사를 마친 제황이 한 장의 명함을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게 뭐에요?”
홍빈은 제황이 건낸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명함에 써진 이름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무상 최진하]
“잘 보관해. 나도 한 장 밖에 없으니까.”
“예...예?!”
벙벙해 하는 홍빈에게 제황이 말했다.
“전화하라는 소리가 아니야. 말은 해뒀으니까. 서울에 있는 무적성 본사로 찾아가서 그 명함 내밀어. 무적성은 아무나 받지 않아. 모르긴 몰라도 시험은 꽤 어려울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가고...”
“이걸 왜 저에게...”
“무적성 싫으냐?”
제황의 말에 홍빈이 고개를 붕붕 돌렸다. 무적성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곳이다.
“가... 감사합니다.”
홍빈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나 그는 숙인 머리를 들지 못했다. 홍빈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식탁 위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시작이 동정이든 혹 홍빈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든 상관없다.
불구가 되고 클랜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졌을 때 그전까지 그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홍빈을 외면했다. 아니 외면만 한 것이 아닌 조롱하고 욕을 했다.
-새끼, 잘난 체 하고 다니더니 꼴좋다. 벌 받은 거야. 새끼야.
-어쩌냐? 끈 떨어진 연이네? 크큭
디바우저로써 클랜에 떠받들려 살다가 바닥으로 추락한 그를 동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헌터의 가장 밑바닥을 기며 홍빈은 이전까지의 삶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은인이 나타나 그를 구원해줬다.
“고마워요. 형. 저 같은 걸... 흑”
홍빈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자 생수로 목을 축이던 제황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홍빈에게 말했다.
“바보냐. 넌 기회만 되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났을 놈이야. 난 단지 네가 조금 더 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해준 것뿐이다. 질질 짜지 말고 쉬어라. 내일도 바쁠 테니까.”
“예.”
홍빈을 홀로 두고 밖으로 나선 제황은 산책하듯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서서 궁기를 향해 말을 걸었다.
-궁기
-왜?
-내가 낯설지 않냐?
-바보냐? 자위질 잘해놓고 왜 신파야. 뭐 잘못 먹었어?
까칠한 대답이 들려온다.
-됐다. 쯧
몇 마디 더 했다가는 놀림모드로 들어갈 것 같아 제황은 입을 다물었다.
홍빈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했던 제황은 홍빈이 다시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과거에 자신에게도 자신과 같은 이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오라질년
-뭬야!
버럭 하고 성질내는 궁기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감히 고대의 제왕 소호씨의 자손이며 서방을 수호하던 나 궁기를 뭐라!
-3티어 마나석 훔쳐 먹는 초콜렛 중독 고양이
차마 중간에 ‘돼지’ 라는 말은 넣지 않는 제황이다. 그래도 여자라고 돼지라는 말에는 무척 민감하다.
-크어어어어...캬아아악
-크크큭
궁기가 발광하는 것을 들으며 제황은 기분 좋게 능력치 창을 열었다.
-신위 (유니크 등급)
지정된 신위:천제황
효과
능력 활성화 모든 능력치 10프로 상승
사상력
1단계:1000명-적용 중
2단계:10000명-적용 중
3단계:100,000명-미적용
(마나석이 부족하여 다음 단계를 개방할 수 없습니다.)
개방조건: 4티어마 나석: 500개 –426개 부족
“정말 대단해.”
신위라는 스킬은 정말 엄청난 스킬이었다. 2단계를 해방하는 순간 2프로의 능력치 활성화가 10프로까지 치솟았다.
단순레벨로 치면 거의 한 랭크를 초월하는 능력의 상승에 제황은 급격히 강해진 몸에 적응하느라 그동안 고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