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23화 (123/301)

# 123

앵벌이들-2

제황의 말에 홍빈은 잠시 멍하니 제황을 올려다봤다.

바라마지 않던 일이지만 지금 들은 게 진짜인가 하는 망상마저 들었던 것이다.

마나석을 제외하고 반반이라는 건 정말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잠시 망설이던 홍빈이 이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제황, 그렇지만 홍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나석을 제외하고서라도 사체의 절반을 받을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레이드에 기여하는 만큼만 받겠습니다.”

홍빈의 대답에 제황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내려다봤다. 마치 내 호의를 무시하냐는 듯 하다. 그러나 홍빈은 의외로 의연했다.

“그럼 넌 네 가치는 얼마라고 생각하느냐.”

제황이 나직이 되물었다. 그러자 곰곰이 생각하던 홍빈은 제황의 시선이 조금 힘겨운 듯 입을 열었다.

“마음은 20프로를 외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저는 10프로도 간신히 라고 생각합니다. 후우”

제황이 두려운 건지 아니면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는지 얼굴에는 불안함과 아쉬운 감정이 묻어 있었다.

-대단하네.

-그러게 정말 대단해.

무뚝뚝하게 서 있지만 홍빈의 그런 모습에 제황은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사실 제황의 제안은 홍빈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동정으로 비췄을 수도 있으리라.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제황 자신의 과거모습이 반추되었기고 했고 그로 인해 동정심을 가진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할 말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 놀란 것은 제황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욕심을 한 번 접고, 자신을 냉정히 판단하고 제황의 시선을 이겨내며 그 와중에 자존심까지 지켰다. 나이에 비하면 놀랄 정도로 조숙한 홍빈이다.

-쓸 만한데?

궁기의 말이다.

-능력도 괜찮고...

레이드는 일부러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보통 레이드라는 건 적절히 마나와 체력을 조절하며 진행하는 것인데 제황은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헬버그를 몰아왔다. 오랜 시간 진행되는   레이드에서의 대처, 마나가 달리는 상황에서의 대처, 레이드 외의 시간을 활용하는 능력 등등 말이다.

결론은 합격이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수준급에 달하는 서포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제황이 고작 홍빈을 시험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의무레이드에서 나오는 3티어 마나석 따위 이전이라면 그다지 미련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마나석이 필요해졌다.

제황은 능력치 창을 열어 스킬 부분을 활성화 시키고 하나의 스킬을 바라봤다. 이놈이 지금 마나석을 잡아먹는 주범이다.

-신위 (유니크 등급)

지정된 신위:천제황

효과

능력 활성화 ? 모든 능력치 2프로 상승

사상력

1단계:1000명-적용 중

2단계:???

(마나석이 부족하여 다음 단계를 개방할 수 없습니다.)

개방조건: 3티어마나석: 500개 –498개 부족

궁기도 이미 언질한 부분이지만 신위라는 스킬은 당장에 큰 효용이 있는 스킬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제황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효과가 커지는 성장형 스킬이었다.

수치가 잘 오르지 않아 신경 끄고 있었는데 두 자릿수에서 머물던 사상력이 교토지부를 습격한 후로 순식간에 훅 올라 금세 1000명을 찍었고 그와 함께 모든 능력치가 무려 2프로나 올랐다.

단순한 2프로라고 하지만 그 수치에 따라 퍼센티지로 올라가니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스킬이라는 걸 확인했다.

문제는 1000명 이후로 더 이상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킬에 새로운 문구가 생겼다.

(마나석이 부족하여 다음 단계를 개방할 수 없습니다.)

스킬은 지금 제황에게 마나석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숫자를 말이다.

-사기당한 느낌이야.

-에이, 나도 몰랐다니까. 호호호

무려 9티어 마나석을 투자해서 개방한 스킬인데 이렇게 마나석 잡아먹는 하마였다면 한 번 정도 제고해 봤을 것이다. 게다가...

-야.

-왜?

-내가 분명히 10개 넘게 넣은 것 같은데 왜 2개만 잡혀 있지?

아침에 잡은 헬버그의 마나석을 채취해서 무한고에 십여 개 정도 넣었다. 그런데 카운트에 잡힌 건 2개뿐이다. 중간에 도둑이 있다.

-호호호... 모 몰라.

-먹었냐?

애초에 범인은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범인은 지금 천연덕스럽게 제황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아잉, 때릴 꼬얌?

어느 막장드라마에서 주워 배운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면서 말이다.

꾸우욱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련천가의 흔적을 쫓으려면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궁기의 말이 있어서 이런 노가다를 하는 중인데 돕지는 못할망정 마나석을 까먹고 있다. 하긴 어쩌겠는가. 따지고 보면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가게 안에 생선들에 손대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불성실한 고양이다. 먹성도 더럽게 좋다.

-신나게 놀 때를 대비해 마나를 비축해야지. 난 왜 이렇게 부지런할까!

참으로 궁색한 변명의 궁기였다.

-9티어 마나석을 얻어서 자체 회복되는 것 아니었어?

-모자라. 모자라. 그러니 더 열심히 마나석을 주워오라고... 일하거라! 호호호

“후...”

무한고에 든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궁기에  대해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는 제황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다.

아마 평범한 헌터였으면 궁기를 얻었어도 마땅히 쓸 곳이 없었으리라. 들어가는 밥값이 워낙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궁기와 말다툼하려니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것 같아 제황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수 백개의 3티어 마나석이 생길 테니까.

“50프로 조건으로 열흘 간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른다. 어때? 하기 싫어?”

“하...하겠습니다!”

제황이 하기 싫으면 그만 두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자 홍빈이 다급히 외쳤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귀여워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제황이다.

“철수 준비하자.”

“예.”

제황은 홍빈에게 지시를 내린 뒤 절벽을 내려왔다. 밑에 쌓인 헬버그 사체들은 상관없지만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헬버그들을 마킹이라도 해둬야 했다.

그렇게 한참 마킹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앞쪽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궁기안에 잡혔다.

여자 하나와 남자 넷으로 구성된 스쿼드였는데 제황을 발견한 그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스쿼드장으로 보이는 탱커가 홀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제황을 아는지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다.

“여기 있는 헬버그들 저희 쪽 사냥터에서 몰이해간 것들 맞습니까?”

“맞습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시인했다. 워낙 커다란 사냥터를 두고 몰이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섞이기는 했다. 그러자 탱커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자신들이 하루 종일 고생한 이유를 알았으니 당연한 것이리라.

“아니 이렇게 마구잡이로 몰이해 가면 어떻게 합니까. 엄연히 구역이 나눠져 있는데!”

그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 중 틀린 것은 없었다. 구역이 나뉘었으면 가급적 넘지 않는 게 예의다. 그래서 제황 또한 저들과 마주치면 저들이 손해 본 정도는 나눠줄 용의도 있었다. 실제 사냥한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 양이니까.

“제가 침범한 게 있으니 만족하실 만큼 나눠드리죠.”

제황이 선선히 이야기하자 탱커의 화색이 살짝 펴졌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제황의 힘을 겪어본바 있었다. 상대는 강짜를 부리면 닥치고 깨갱하며 물러나야 할 강자였다.

“그럼 여기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헬버그는 저희 쪽에서...”

“잠깐...”

그러나 탱커가 다시금 절충안을 말하려 할 때 제황이 그의 말을 일방적으로 끊는다.

“저거 뭡니까?”

탱커 뒤쪽에 있는 이들 중 하나를 발견한 제황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렇게 넘기기에는 저들의 행실 또한 만만치 않다.

“남이 레이드 끝낸 것에 그렇게 마킹하면서 왔습니까?”

제황이 턱짓을 하며 말하자 탱커의 얼굴에 살짝 당혹감이 어렸다.

“그 무슨...”

부인하고는 있지만 그들 구역 쪽 가까이에 있는 몇 마리를 마킹했다.

이 헌터가 지금 떠보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이기에 살짝 찔린다.

사냥터 침범 문제는 워낙 논란이 많고 판단기준이 많아서 딱히 법으로 지정된 것이 아닌 스쿼드나 헌터 간에 적당히 조율하고 타협하는 문제지만 남이 레이드 해 놓은 것에 마킹한 것은 법적인 문제로 발전할 소지가 있었다.

제황의 말에 뒤를 돌아본 탱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헬버그 사체 등에 천연덕스럽게 마킹을 하는 이를 발견한 것...

한마디 하려는데 마킹을 끝낸 그가 먼저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에 사냥터에서 몰이 해 놓고서 X나 뻔뻔하네.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닌가?”

“거기 뒤에 있는 건 내 화살로 잡은 것 같은데?”

“아까 우리가 레이드 한 것들 중 도망친 거야. 그렇지?”

그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옆에선 이에게 동의를 구하자 그와 친구인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맞아. 우리가 흘린 거야.”

둘이 건들거리며 이야기하자  제황의 목소리가 조금 더 싸늘해진다.

“장난쳐?”

저 둘은 아무래도 이 탱커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저...저기”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탱커의 머릿속에 적색등이 들어왔다.

상대의 손에는 어느새 활이 들려 있다. 효배라는 놈이 시비조로 나가니 말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무력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시비 좀 걸었다고 무슨 활 까지 꺼낼까 하겠지만 원래 헌터라는 게 그렇다. 어엿한 법이 존재하지만 생명을 걸고 일하며 피 묻은 칼밥을 먹는 직업이다 보니까 무력충돌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게다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은폐하기도 쉽기에 상대에게 절대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헌터들이 갖춘 기본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아주아주아주 큰 문제는 그의 경험 상 지금 자신들의 스쿼드는 이 남자를 막을 수 없다. 대체 저 두 놈이 무슨 깡으로 이렇게 덤비는지 뇌를 한 번 해부해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전에 이 남자를 말려야 했다.

“저 진정하시죠.”

탱커가 둘 사이를 막아서며 제황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뒤쪽에 있는 또라이보다는 눈앞에 있는 제황이 좀 더 말귀를 알아들을 것 같다.

제황에게 시비를 거는 건 레이드 내내 겉돌던 효배라는 이름의 2성 딜러였다.

스쿼드에 대한 기본정보를 파악하는 와중에 알게 된 건 효배가 꽤 알려진 클랜의 간부 동생이라는 사실과 리더의 말도 귓전으로 듣고 딜도 설렁설렁 넣어서 레이드 끝나면 어떤 핑계를 대서든 쫓아내려 했던 놈이다.

‘아차!’

생각해보니 이 둘은 어제 늦게 도착해서 제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놈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지들이 호랑이의 코털을 잡아당기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그러나 이미 둘이 먼저 제황을 덮쳐오고 있었다.

그들 또한 꼬박 반나절 동안 허탕을 쳐서 기분이 상해 있었기에 애초에 제황과 말로 넘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시비를 걸었는데 저 소심한 탱커는 자꾸 상대의 눈치를 살피니 기분이 상해 먼저 손을 쓴 것이다.

‘강해봐야 얼마나 강해!’

의무레이드 소집 대상은 3성 헌터까지다. 설마 상대가 3성 헌터라도 자신과 친구 둘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원거리 딜러, 자신들은 근거리딜러다. 한 마디로 근접에서 붙으면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퍼퍽! 우드득! 우직! 뿌드드득! 펑!

달려든 속도 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 땅에 처박힌 둘의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 있었는데 너무나 순식간이라서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제황의 동작을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단숨에 두 다리와 팔 하나가 병신이 돼 버린 효배는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온 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효배였다.

그가 언제 이런 고통을 당해본 적이 있던가. 2성 헌터 라이센스를 따기까지 클랜에서 형이 떠먹여주는 레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며 막타 주워 먹은 경험한 풍부한 그였다.

“병신새끼”

그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온 탱커는 그의 머리를 걷어차 그 자리에서 기절시켜 버렸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방법이지만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에서 비명이나 지르고 있는 헌터가 애초에 잘못인 것이다. 한숨을 내쉰 탱커가 제황을 돌아보았다. 조금 전 무슨 짓을 했냐는 듯 평온하게 서 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무섭다.

“더 할 겁니까?”

마치 마저 덤빌 거면 빨리 덤비라는 어투에 제황에게 탱커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만 용서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강자의 아량을 부탁하는 어조다.

뒤쪽에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나머지 둘도 제황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모습에 맥이 빠진 제황은 서서히 끌어올리던 기운을 풀어버리고는 그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잡힌 것들 모두 가져가시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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