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22화 (122/301)

# 122

앵벌이들-1

치이이익

“창호야! 빨리 빨리해. 이제 고작 7마리야. 오늘 안에 20마리 못 채우면 꼼짝 없이 일주일 있어야 돼.”

“알았으니까 보채지 마라. 영채야.”

쓰러져 있는 헬버그의 사체 하나에 마킹을 끝낸 창호라는 남자는 뒤편에 서서 주변을 감상하듯 둘러보고 있는 두 남자에게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레이드 경력만 2년과 4년이라던 둘은 아직까지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레이드에서 겉돌고 있다.

“어이, 전영씨 효배씨! 같이 좀 합시다!”

“아. 예.”

그의 말에 떨어져야 미적미적 움직이는 둘이다.

앞으로 며칠을 더 함께할지 알 수 없는 이들이기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삼킨 그는 한참 지도를 보고 있는 리더에게 다가갔다. 탱커용 파워드 슈트를 입은 리더는 클랜 소속은 아니었지만 3성 헌터로써 꽤 많은 레이드 경험을 가진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얼마나 진행했습니까?”

“10프로요.”

단답형으로 대답한 탱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몬스터가 너무 적어요. 빌어먹을 작년 자료랑 맞는 게 하나도 없네.”

“그 정도입니까?”

“네. 작년에는 큰 무리 하나 만나면 거의 10마리에서 20마리까지 나타났다고 되어 있는데 5시간 동안 우리가 만난 게 딱 7마리입니다.”

풋슝

그 말과 함께 리더가 뱀브레스에 붙은 단말기 버튼을 쿡쿡 누르자 파워드슈트의 등 쪽에서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막대 하나가 튀어 나왔다.

“파워팩 10개를 준비했는데 이제 한 개 교체군요.”

“도와드리죠.”

“감사합니다.”

빠져나온 1번 파워팩을 빼내 새로운 패워팩을 끼워 넣으며 남자가 말했다.

“하필 이딴 곳에서 의무레이드를 진행해야 한다니...”

떼거리로 몰려드는 몬스터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마치 누가 몰이라도 한 것 같아요.”

“예?”

“저거요.”

탱커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옮기자 수풀 사이로 수십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게 보인다.

“발자국 깊이로 보건데 꽤 빠르게 달렸습니다. 함께 밟혀 있는 풀잎들 상태를 보면 아침 즈음이에요. 숫자는 대략 스무 마리 가량...”

오랜 경험을 가진 그는 이곳을 지나간 헬버그의 흔적을 두고 여러 가지 사실들을 도출해 냈다.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돈 되는 몬스터도 아니고 고작 헬버그를 상대하는데 누가 몬스터 몰이를 한단 말인가.

헬버그는 몰이가 힘든 몬스터였다. 왜냐하면 한번 몰이할 때 한두 마리만 몰이가 되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군집을 이루는 몬스터이기에 적게는 수십 재수 없으면 수백이 몰이될 수 있었다. 참고로 속도가 느린 몬스터도 아니기에 아차하면 잡혀 버린다.

“설마 아니겠지.”

돈에 환장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는 되도 않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우고는 다시금 앞으로의 레이드 일정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대로 가면 일주일이 고달파 질 것이다.

드드드득

물론 지금 헬버그를 몰이하고 있는 제황은 돈에 환장하지도 혹은 미치지도 않았다.

단지 몰이가 쉬워서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목숨을 건 몰이일지 모르지만 제황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피이이이잉...

한 대의 화살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약 30도 가량의 발사각으로 출발한 그 화살은 끊임없이 솟구치다가 잠시간 하늘의 향기를 만끽하고는 이윽고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 그 화살은 이내 자신이 목표로 한 그것을 발견하고는 신나게 몸을 쑤셔 박았다.

푸우욱

“캬아아악!”

더듬이 끝을 통해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으로 땅속을 움직이는 먹이를 향해 땅을 파헤치던 헬버그는 배 쪽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고통에 괴성을 지르며 반 쯤 처박고 있던 땅속에서 튀어 나왔다.

“그르르르...”

“그르륵...그르륵...”

땅속에  몸을 파묻은 채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던 다른 헬버그들이 동료의 비명소리에 일제히 몸을 일으켜 비명을 지른 헬버그에게 모여든다.

“그르륵...그륵...캬아아악!”

검은 광택의 막대기를 배에 꽂은 헬버그가 연신 더듬이를 움직이며 분노의 감정을 전하고 동료들은 고개를 들어 공격을 가한 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수색해도 화살의 주인을 찾을 수 없다. 주변 헬버그들이 동료들이 전파하는 신호를 듣고 하나 둘 모여들어 이윽고 삼십여 마리가량이 되었을 때다.

슉... 푹!

조금 전 배를 두들겨 맞은 헬버그의 머리 부분 약 1센티 가량정도 되는 갑각의 틈새로 다시금 한 대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이번 공격은 이전 공격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그 안쪽에는 헬버그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인 약 5센티 크기의 뇌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캬아아!”

화살에 뇌가 곤죽이 된 헬버그가 미친 듯이 발악하다가 이내 축 늘어져 죽어버렸다.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헬버그라고 해도 뇌가 파괴되면 어쩔 수 없다.

“그르르...”

동료가 죽자 주위에 몰려 있던 헬버그들은 동료의 몸에서 흘러나온 체액을 느끼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헬버그의 무서운 점인데 헬버그는 동족성향이 무척 뛰어난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동족에 대한 공격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두두두두두두

헬버그들은 일제히 동료를 죽인 그것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숫자만도 수십... 중간에 다른 무리들과 합세하면 금세 거대한 파도가 될 것이다.

“준비!”

“...”

“준비! 정신 차려.”

“예!!”

제황이 짜증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자 멍하니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던 홍빈이 서둘러 제황이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다지 높지 않은 야트막한 절벽 위에 위장포를 뒤집어 쓴 채 죽은 듯 누워 있은 지 벌써 4시간이 흘렀다.

‘힘들다.’

누워 있는 게 힘든 게 아니었다. 홍빈은 정말 오랜만에 마나가 달린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예전 공격대의 메인 서포터를 맡았을 때도 마나가 달린 적은 별로 없었다. 스페셜 등급의 마나보조스킬이 있어서 마나량 하나 만큼은 정말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한명의 헌터와 페어를 이룬 뒤는 계속해서 마나량 조절에 실패하고 있었다.

“버프!”

“예!”

기계적으로 손을 들고 버프를 퍼붓는다. 그리고 잠시 후 버프를 받은 제황이라는 헌터는 보이지도 않는 곳을 향해 마구잡이로 화살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아니 마구잡이는 아니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단 한 발의 화살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키아아악!”

“키이익!”

이윽고 수십 마리의 헬버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을 향해 광분하며 달려드는데 하나같이 화살 한 대씩은 장식품처럼 배 부분에 꽂고 있었다. 헬버그들이 기어온 경로에는 화살에 맞아 죽은 헬버그의 시체들이 마치 검은 선처럼 이어져 있었고 그들이 남긴 분노의 체액이 그곳을 지나는 다른 헬버그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캬아아!”

퍼어엉! 펑펑! 퍼어엉!

그리고 그렇게 절벽 밑까지 도착한 장한 헬버그들에게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쏘아대는 것만으로도 후폭풍이 터지는 붉은 빛줄기들이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저게 ... 강기...”

홍빈은 강기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다. 서양권에서는 오러라 불리는 저것은 헌터 중에서도 선택받은 소수의 헌터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스킬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각성한 헌터가 다시 한 번 각성해야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저 강기였다.

그런 이와 팀을 맺은 것이다.

휘이이이...

“마나양 체크”

“440이요.”

“그럼 30분만 좀 쉬자.”

“예. 형”

제황의 지시에 홍빈은 털썩 주저앉아 마나엔진을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제황이 말한 30분만 쉬자는 건 몸을 쉬자는 게 아니다. 마나엔진 돌려서 마나 회복율 높이라는 소리다. 마나엔진을 돌리며 절벽 밑을 힐끔 바라본 홍빈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저게 몇 마리야.’

숫자를 세는 것은 애당초 포기했다.

절벽 밑으로는 흙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헬버그의 산이 쌓여 있었는데 이대로 몇 시간만 더 보내면 절벽 위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 이 근방에 있는 거의 모든 헬버그는 다 끌어 모은 것 같다.

의무레이드 할당량? 이미 이곳에 도착하면서 다 채웠다.

그것들은 아마 사체수거업체에서 일찌감치 수거해 갔을 것이다. 지금 잡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할당량 외 수익이었다. 눈짐작으로만 봐도 거의 400에서 500마리 가량 되어 보인다.

마법으로 불태우거나 얼린 것이 아닌 순수하게 투사형 무기로 급소만을 꿰뚫었기에 마리당 1,000만원은 족히 나간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같은 3티어의 몬스터 중 몸값이 비싼 아르가스테론 같은 경우에는 마리당 3000만원에서 4000만 원가량이지만 헬버그는 껍데기와 마나석 빼고는 쓸 곳이 없다. 그렇지만 두당 1000만원으로만 쳐도 500마리 정도라고 보면 무려 50억이다.

‘20프로를 정도라도 주면 좋겠는데...무리겠지.’

무리한 욕심이라는 건 알지만 홍빈은 돈이 간절했다. 20프로면 10억이다. 세금을 떼면 대략 8억 5천 가량이 홍빈의 수중에 들어오는 것인데 그 돈이면 집안 빚의 대부분을 한 번에 갚을 수 있는 거액이었다. 또 엄마의 병원비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이틀만 더 사냥하면...아 형. 죄송합니다.”

홍빈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으로 뱉고서는 제황에게 황급히 사과했다.

지금 이렇게 자신을 데리고 사냥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의무레이드가 아니면 굳이 헬버그 따위를 잡으러 올까? 아니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노는 사람일 것이다. 노는 물 자체가 틀리다. 그렇지만 욕심도 앞섰다.

‘놓치기 싫다.’

오늘 하루의 사냥만으로 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레벨업은 그 동안 개미오줌으로 채우던 것을 큼직한 양동이로 쏟아 붓듯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홍빈이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가만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용혈신공을 운용하고 있는 제황에게 궁기가 말을 걸었다.

-다른 헌터들이 나타났는데?

-우리쪽 경계를 넘었어?

-아직 넘지는 않았어.

-거리랑 숫자는?

-남동쪽 4킬로미터... 네가 한 번 쓸었던 곳이라 헬버그는 없는데 얘들 움직이는 걸 보면 침범해 들어올 것 같네.

-흠

궁기의 말에 제황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예상했던 일들 중 하나다. 최대한 사냥터를 넓게 잡기는 했지만 다른 헌터들의 사냥터와 경계를 마주한 상태다. 게다가 은근슬쩍 화살로 끌어오기도 했으니 아마 제황의 주변 사냥터는 몬스터가 부족할 것이다.

“뭐 많이 잡았으니까.”

제황은 이 즈음에서 레이드를 접기로 마음먹었다. 목표는 이미 아득하게 초과달성한 상태다. 점심 때 즈음에 중간집계를 해서 중대장에게 알렸기에 현재 외부에서 끌고 올 수 있는 모든 수거트럭들을 수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철수하자.”

제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홍빈이 불안한 표정으로 제황을 올려다본다. 혹여 자신의 말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혀..형, 죄송해요. 제가...”

“응?”

홍빈의 사과에 제황이 홍빈을 힐끔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죄송해?”

“예? 아, 제가 주제넘게 형이랑 더 오래 레이드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응? 그럼 안할거냐?”

홍빈의 말에 오히려 제황이 반문했다. 그러자 홍빈이 벙찐 표정으로 제황을 올려다봤다.

“마나석은 모두 내가 가지고 수익은 반반 어때? 기한은 열흘... 레이드 장소는 내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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