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쓸어버리자-2
제황의 물음에 중대장이 잠시 입을 다물고 제황을 바라봤다.
제황의 말하는 의도를 생각하는 듯 싶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까?”
“예.”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제황의 대답에 그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곧 입을 열었다.
“저는 헌터들의 안전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각서 쓰죠.”
“거참...”
제황의 대답에 그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쳤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제황이 몬스터를 많이 레이드 해줄수록 좋았다. 그건 그의 실적과 마찬가지니까. 인사고과에 좋게 들어가는 부분이니 더 많은 몬스터를 레이드 해주면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스쿼드 아니 두 명이서 레이드를 뛴다는데 한 명은 다리도 불편하다. 아무리 제황의 무적성에 들어갈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온갖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레이드에서는 자만심은 곧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가 망설이는 듯 보이자 제황은 낮게 한숨을 내쉰 뒤 손에 벼락을 꺼내 들었다.
쉭...팡!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긴 제황이 가볍게 화살 한 대를 발사했다.
무슨 짓인가 싶어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제황이 쏘아올린 화살을 바라보던 홍빈의 눈이 커졌다.
“어어엇!”
홍빈의 외침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는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믿지 못할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허 하고 벌려버렸다.
끼이이이이이이아아아아아아악!
쿠우우웅!
기다란 비명과 함께 거대한 충격음을 끝으로 기지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온몸으로 대지와 키스를 한 거대한 날개의 몬스터 하나가 날개를 바르르 떨며 기절해 있다.
4티어 몬스터 중 하나인 삼목수리다. 날개 길이만 8미터의 이 몬스터는 공중에 은신하듯 가만히 체공해 있다가 지상에 먹잇감이 나타나면 번개같이 내리꽂아 사냥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솔직히 이 근방이 헌터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저 삼목수리 때문이었다.
저 삼목수리 덕분에 공중이동수단은 이용하기 힘들었고 덕분에 이 장연군에 들어서려면 육상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삼목수리를 한 방에?”
그는 이 믿지 못할 기사에 입을 떡 벌리며 제황과 삼목수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대공방어를 위해 설치한 머신건으로나 쫓아버릴 수 있는 4티어 몬스터를 화살 한 방에 처리해 버린 것이다. 대단한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늘을 향해 화살을 하나 쏘아 올렸을 뿐인데 4티어 몬스터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자세히 보니 화살 한 대가 삼목수리의 턱에서부터 정수리 부분까지 깔끔하게 꿰여져 있었다. 단 한발로 몬스터의 방어막을 관통하여 숨통을 끊어버렸다.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욕먹는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 깨지도 않았냐고...
“안심이 되십니까?”
“예? 예!”
제황의 물음에 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산망에 등록된 제황의 개인정보는 이미 수 번 읽은 그였다.
등록된 정보는 얼마 없었다. 아마 잘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헌터가 하라는 레이드는 안하고 몬스터가 무서워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정보란 중앙에 떡 하니 쓰인 단 한마디 ‘소속:무적성- 모든 정보는 무적성에서 관리합니다.’ 이라는 말이 모든 오해를 종식시킨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했다.
가지고 있던 한 가닥 의심도 씻은 듯 사라졌다.
“사,삼목수리는 원칙대로 3티어 3마리로 쳐서 계산하겠습니다. 그리고 원하시는 정보를 취합하여 저녁때까지 확실히 드리겠습니다. 사냥터도 당연히 바꿔야 겠죠?”
이 정도 능력의 헌터를 그런 좁은 곳에 풀어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력 낭비다.
중대장은 제황을 5성급 이상의 헌터로 대우하기로 마음 먹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척!
그가 종전보다 더욱 절도 있는 표정으로 경례를 붙이고는 말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네.”
중대장이 돌아가고 제황의 뒤편에서 홍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음? 왜?”
홍빈이 제황의 뒤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홍빈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하게 느껴진다.
***
다음날 아침 제황은 아침 일찍 홍빈을 데리고 기지를 나섰다. 다른 이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을 시간이지만 제황은 걸음을 서둘렀다.
“괜찮나?”
“예! 걸을만합니다!”
홍빈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조금 절뚝이기는 하지만 제황의 걸음을 열심히 뒤따르고 있다.
철컥...철컥... 헉헉...
의족에서 연신 쇳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한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그러나 제황의 빠른 보폭에 맞추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굳이 홍빈을 배려해 속도를 늦추거나 하지는 않았고 홍빈 또한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는 고마워하는 중이다.
제황의 저 행동은 홍빈을 배려해야 할 대상이 아닌 오롯한 한명의 헌터로 대우해주는 것이다.
한 시간여를 걷자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에 북한이었음에도 곳곳에 몇몇 건물들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바닥 곳곳에는 이전에 도로였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거기서 좀 더 진행을 하니 이윽고 거대한 초지가 펼쳐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지 너머로 거대한 만(灣)이 드러났다. 과거 거대한 간척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 돌보는 이가 없기에 자연늪지대와 무성한 갈대밭으로 돌아갔지만 이전에는 끝도 없는 논이 펼쳐져 있던 곳이었다.
“후우...후우...”
제황이 걸음을 멈추자 홍빈 또한 제황의 뒤에 서서 숨을 골랐다.
홍빈의 상태를 슬쩍 확인한 제황이 무한고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음. 여기가 맞나?”
제황은 어제 밤 중대장이 보내온 몬스터 분포지도를 뒤적거리며 머리를 긁었다. 전자기기를 통해 지도를 보는 것에 익숙한 제황에게 독도법을 알아야 하는 흑백으로 된 종이지도는 낯설기도 했고 현재 위치를 알기도 매우 힘들었다. 그렇지만 현재 이곳의 인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다.
지속적인 레이드가 없으니 몬스터 분포를 사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곳들도 많아 전자 지도로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용연만... 음 이쪽으로 가면 되겠군.”
방향을 정한 제황이 몸을 일으킬 때였다.
츠르르르
제황과 홍빈 주변으로부터 딱딱한 뭔가가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가 일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음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홍빈의 얼굴에도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마치 소리에 포위된 느낌이다.
“레이드스팟에 가기 전에 한 번 정리하는 게 낫겠군.”
주위를 휘 하고 둘러본 제황이 손에 활을 꺼내 들었다.
“빈아. 버프”
“네? 네!”
제황의 말이 떨어지자 홍빈은 반사적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잠시 후 그의 두 손에서 푸른빛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구체를 이루었다.
[근력이 10프로 상승되었습니다.]
[민첩이 10프로 상승되었습니다.]
[체력이 10프로 향상되었습니다.]
[공격력이 30프로 상승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여러 개의 버프가 중첩되기 시작하자 제황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꽤 쓸 만하다. 솔직히 같은 헌터가 주는 버프는 거의 경험해 보지 않은 제황이었다.
-궁기?
-왜?
-너도 부탁할게.
-음. 알았어. 그런데 괜찮겠어? 몸에 부담이 갈 텐데?
-넌, 약하게 해줘.
-그래.
잠시 후 제황의 시야로 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신체]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모든 능력치가 +1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량이 +100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회복율이 10프로 증가합니다.]
“흐으읍!”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주체하기 힘든 힘이다. 굳이 용혈신공을 일으키지 않아도 사방으로 뻗치는 힘은 당장에라도 쥐고 있는 고삐를 놓으라 외치는 것 같았다.
“혀...형!”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홍빈이 불안한 듯 제황에게 말했다. 소리의 정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의 둥글과 광택이 나는 몸길이 2.5미터 가량의 거대곤충이다. 몸을 일으키면 거의 홍빈과 비슷한 키의 곤충형 몬스터였는데 머리로 추정되는 곳에 네 개의 홑눈이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고 그 밑으로 난 튼튼한 턱에는 3쌍의 집게가 달려 있었다.
십여 마리의 헬버그가 마치 포위하듯 둘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느려 보이지만 공격 순간에는 시속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넘는 속도로 달려든다.
그러나 홍빈과는 다르게 제황의 눈은 평온하다. 마치 산보라도 나온 듯 아니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기질적인 눈으로 사방에서 조여 오는 헬버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드드드득
시위를 당긴 제황의 어깨를 타고 붉은 오러가 흐르기 시작했다.
퉁! 퉁! 퉁퉁퉁!!! 퉁!!!
그리고 잠시 후 제황이 제황의 손에서부터 파괴의 힘이 담긴 화살이 사방을 향해 미친 듯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쫘자자자자작!!!
“끼에에엑! 끼이익!”
붉은 에너지를 품은 화살이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잠시 후 장내에 남은 것은 머리만이 터져나간 십여 마리의 헬버그 사체 뿐이다.
“워...어어.”
레이드에 있어서 충분한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홍빈은 지금 제황이 만들어낸 이 엄청난 폭격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고만 있었다. 이런 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헬버그가 이렇게 쉽게 레이드 가능한 몬스터던가? 혹시 헬버그의 탈을 쓴 다른 1성 몬스터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헬버그의 갑각은 그 강도가 워낙 좋아서 거의 모든 중저가 방어구의 기본 재료로 들어간다. 워낙 흔한 몬스터이고 수십 개의 안전한 레이드 방법이 나와서 과거보다는 위험성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에는 이 헬버그의 방어력은 공포와 마찬가지였다.
“괜찮은데?”
활을 내려놓은 제황이 주변을 쓸어보며 말했다.
홍빈은 제황의 저 말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지 아니면 사냥터에 대한 평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무적성의 헌터가 참가한다는 말은 듣기 싫어도 여기저기서 말이 오갔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보니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다.
“뭐해?”
“아. 네. 형”
“표식 남기고 출발하자.”
“예. K죠?”
“그래.”
제황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홍빈이 아공간에서 특수마커를 꺼내 헬버그들에 사체에 K자를 긋기 시작했다.
“총 10마리... 좋아.”
무전기를 통해 위치와 숫자를 관제실에 넘긴 제황 다시금 종이로 된 지도를 꺼내들었다.
“저쪽이군.”
제황이 손가락질한 곳은 산등성이를 깎아낸 모양의 절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자.”
“예. 끄응”
제황의 말에 몸을 일으키던 홍빈이 의족으로 된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비싼 돈 들여 맞춘 의족이기는 하지만 헌터일의 특성상 몸을 심하게 굴려야 하기 때문에 곧잘 망가지고는 했다.
잘린 부분과 닿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에 이를 악물 때 제황의 손이 그곳을 덮어왔다.
[긴급재생]
슈르르...
제황의 붉은 마나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자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어어...”
고통이 사라지자 홍빈은 눈을 크게 떴다.
“회복스킬 처음 보냐. 가자.”
제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 했지만 홍빈은 지금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하이브리드?”
“그래.”
더 놀랄 것도 없다. 이 정도 공격력을 지닌 이가 무려 치료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다.
“안가?”
“예!”
툭 던진 제황이 앞장서서 터벅터벅 걸어가자 곧 홍빈이 절뚝거리며 그를 뒤따랐다.
오늘 어쩌면 평생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을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