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너희 귀찮다-2
“저...저기 이름이 어떻게...”
제황에게 말을 건 미녀는 조금 더 떨리는 음색으로 제황에게 물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불편한 제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냥 걸어가 버렸다.
“어...어엇”
제황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련만 그녀는 제황의 뒤를 졸레졸레 쫓아갔다. 무적성 소속이라는 남자다.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 따위가 아닌 그냥 12차선 고속도로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너무 멋있어. 나쁜 남자!’
얼굴을 가리고는 있지만 드러난 것만 따져도 모델 뺨치게 생겼다. 거기에 걸치고 있는 것도 평.범.한 헌터들은 이름도 알 수 없는 명품에 무려 무적성이다. 간판이 좋으니 모두 멋지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제황을 따라가던 여자는 건물의 코너를 도는 순간 그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어 보유한 탐색스킬까지 사용했지만 사라져버린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인기 좋은데?
-귀찮아.
[호랑이사냥]을 켠 제황을 잡아낼 수 있는 헌터는 없다. 헌터들의 감지스킬은 물론 열화상카메라 같은 문명의 이기마저 무시해 버리는 제황의 은신스킬 이기에 제황은 그대로 훌쩍 뛰어 올라 2층의 지붕 위로 올라가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제황은 궁기안에 포착되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며 몸을 뉘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제황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궁기안은 그들중 제황에게 시기심이나 거부감을 지닌 이들을 포착하여 일일이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선들이 십여 개가 넘어가자 그걸 처리해야 하는 머릿속에는 피로감마저 느껴졌었다. 몬스터였다면 그냥 머리에 화살 하나씩 박아버리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물론 궁기가 궁기안에 간섭할 수도 있었지만 궁기안은 궁기와 하나임과 동시에 구분되는 스킬이었다. 한마디로 궁기안의 능력을 배가시켜 줄 수는 있지만 기능을 차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굳이 아웃사이더 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되면 시야가 어지럽게 변하니 자연적으로 이목이 없는 곳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공기는 맑네.
-응. 공기만 참 맑네.
이루미의 조언에 따라 참가해 보기는 했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 빼고는 그다지 도움 될 것 같지는 않다.
“의무레이드에 참가하신 헌터분들은 12:00분부터 13시 00분까지 점심 식사 후 13:00까지 센터에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쿼드 조직과 레이드 기간 머물 숙소 배정이 있을 예정이오니 빠짐없이...”
그 때 기지 가운데 있는 군용마크로 도색된 큼지막한 건물 위에 붙은 확성기가 울려 퍼졌다.
그 알림에 기지 곳곳에 몰려 있던 헌터들이 끼리끼리모여 식당이라고 푯말이 붙은 곳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간다.
그다지 밥 생각이 없는 제황이 턱을 괸 채 경치 구경만 할 뿐이다. 아니 괜히 저 무리에 휩쓸리다가는 먹던 밥도 체할 것 같다. 그 때 그가 누워있는 지붕 밑에서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네. 지금 소집에 와서요. 네네. 다음 달 말까지 이자 꼭 낼게요. 예. 예. 죄송합니다.”
“...”
-왜?
-좀 조용히 해봐. 듣게...
제황은 그 목소리에 주인에게 흥미를 보였는데 헌터치고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건 둘째치고 그가 빚 독촉 전화로 보이는 통화를 한 후 전화를 한 사람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응, 엄마. 잘 왔어. 몸은 어때? 아프지는 않아? 밥은 먹었지? 나 헌터야. 병원비는 생각하지 말고...낫는 것만 생각해. 응. 알았어.”
전화를 엿들어보면 부모가 병원에 있는 것 같다. 헌터가 돈에 쪼들린다는 건 생각해 본 적 없기에 제황은 지붕에서 얼굴을 내밀어 밑을 내려다봤다.
-어리네.
-응. 그리고 다리가 의족이군.
목소리로 추측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소년이다. 잘해야 17살? 아니 키로 보면 15살 정도 되 보인다. 그런데 오른쪽 무릎 아래로 금속 의족이 달려있다. 통화를 끝낸 소년이 한숨을 내쉰 뒤 절뚝거리며 식당으로 걸어갔다.
“흠...”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제황이 바라보고 있을 때 궁기가 물었다.
-관심가?
-응.
-왜?
-그냥, 예전에 내가 생각나서...
상황이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의족임에도 당당하게 걷고 있는 소년에게서 과거 화상에 일그러진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려 노력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러나 제황은 소년의 걸음속에 주눅 들지 않으려는 발버둥 또한 봤다.
***
“스쿼드는 본부에서 임의대로 구성해 드립니다. 만약 구성된 스쿼드에 불만이 있으신 헌터분께서는 현장에서 곧장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A조!”
“C조!”
단상에 있던 자신을 중대장이라고 소개한 빛바랜 군복의 늙은 남자의 말에 사람들은 화면에 떠 있는 이름들을 보며 각자의 스쿼드를 찾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제황과 한 팀이 된 이들은 그와 한 팀이 된 것이 좋은지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왔다.
남자 하나에 여자 셋이었는데 모두 복색이 비슷하다.
“반갑습니다. 서전클랜의 윤정수라고 합니다.”
탱커 전용 파워드 슈트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먼저 제황에게 악수를 청했다.
“천제황입니다.”
“서전클랜의 나미라예요.”
“서전클랜의 김선 이에요.”
“서전 클랜의 김유나 라고 해요.”
제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같은 클랜 소속이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몸값 비싼 헌터들을 반강제적으로 동원하는 것이기에 가급적 헌터들의 편의를 위해 미리 신청을 하면 같은 클랜으로 스쿼드를 구성해 준다.
탱커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는데 모두 실용성 보다는 코디에 신경을 쓴 차림새다.
분명 가슴 파츠가 두 개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데 일부러 위쪽을 제거해서 풍만한 가슴골을 노출하고 있다. 그 뿐인가. 갑옷 안에 받쳐 입는 슈트는 멋으로 입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저들이 입고있는 슈트는 보호하는 곳보다 노출된 곳이 더 많아 보였다.
-얘들은 싸움질 하러 와서 무슨 떡칠을...
게다가 굳이 궁기가 투덜거리지 않아도 제황도 실감하고 있다. 아니 궁기는 모르겠지만 제황은 짙은 향수냄새 덩어리들이 옆에 달라붙을수록 인상이 찌푸려졌다. 향수를 얼마나 퍼부었는지 셋이 뭉쳐오니 민감한 후각을 가진 제황은 마음 같아서는 돌아가면서 한 대씩 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애써 참고 있을 때 한 스쿼드의 남자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저기 우리 스쿼드에 배정된 서포터는 받지 않겠습니다!”
상당히 불만스러운 목소리다.
“음. 가급적이면 그냥 함께 하시면 안 될까요?!”
단상위의 중년인이 달래듯이 말했지만 그 남자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소리쳤다.
“이봐요! 다리병신인 서포터를 어떻게 데리고 다녀요!”
그 말에 제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까 지붕 밑에서 봤던 그 키 작은 소년이 어깨를 움츠린 채 스쿼드에서 떠밀려 있었다.
“중대장의 권한으로 그분 몫으로 할당된 몬스터 숫자를 반으로 줄여드리겠습니다.”
스쿼드 구성은 가급적 바뀌어서는 안 된다. 구성이 흐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위치 배정을 해야 한다. 또 4인 구성으로 움직이는 건 상관없지만 서포터가 혼자 남으면 쓸 곳이 없다. 다른 5스쿼드에 부탁해도 들어줄 확률은 없으리라. 한명이 더 포함된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는 건데 그다지 돈도 되지 않는 몬스터로 쓸데없이 힘을 쓰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때 제황의 곁에 은근히 밀착한 나미라가 말했다.
“아, 저래서 클랜소속 헌터랑 찌끄레기들은 좀 구분해서 의무레이드 소집을 해야 하는데... 그렇죠?”
마치 제황에게 동의를 얻고 싶어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갸웃 하며 반문했다.
“찌끄레기?”
“네. 우리는 여기 오는 일정 맞추느라 이주일 전부터 레이드 스케줄까지 조종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저런 능력 없는 무소속 헌터들이 끼면 완전 짐만 되잖아요. 꼴에 헌터라도 또 자존심들은 얼마나 센지... 헌터면 모두 같은 헌터인 줄 아나.”
“흠.”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제황이 다른 이들을 돌아봤다.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어느 정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 건가.”
“당연하죠.”
제황의 혼잣말에 그녀는 마치 제황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저 이분과 함께하실 스쿼드 계신가요?”
중대장이라는 이가 물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굳이 절름발이 서포터를 데려가지는 않겠다는 뜻...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중대장은 한쪽으로 떠밀린 그 의족의 서포터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다. 목숨 값으로 사는 헌터들에게 불구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론 힐러라는 이능이 있기에 쉽게 죽지는 않지만 치료의 때를 놓치게 되면 헌터도 불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불구가 된 헌터는 보통 은퇴를 한다. 클랜 소속일 경우 그 능력에 따라 내근직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은퇴만이 답이다. 물론 불구가 되었다고 해서 그 스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일반인보다는 잘 버는 편이다.
그때 제황이 조용히 손을 들었고 중대장은 난감하다는 듯 제황을 향해 말했다.
“예. 말씀하세요.”
그가 지목하자 제황이 말했다.
“스쿼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스쿼드 변경을 요청합니다.”
제황의 말에 제황과 한 스쿼드가 된 이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감정이 어렸다.
“저, 저기 어째서...”
탱커가 다가와 말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지만 상대는 무적성의 일원이었다.
뭔가 실수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기본이 안 되었군요.”
그 말과 함께 제황이 세 여자를 쭉 둘러보자 그 또한 그녀들을 힐끔 보더니 이내 얼굴을 팍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작작 좀 하지. 후우”
무적성에서 온 헌터와 스쿼드를 짜게 되었다는 것을 미리 말한 게 실수였다. 화장을 고친다 장비를 바꾼다 난리를 치더니 자신이 봐도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게다가 셋이 뭉치니 향수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지경이다.
“죄송합니다. 무적성 분과 손발을 맞춘다고 하니 얘들이 들떠서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군요. 제가 따끔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인연이 되셨는데 함께 레이드 하시죠.”
그는 한발 물러서며 제황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러나 제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예?”
그가 반문했다. 그러자 제황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헌터 기본이념 1조가 뭡니까.”
“그... 인간을 구하자...입니다.”
세계헌터사무국에서 제정한 이 헌터기본이념은 몬스터들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헌터들이 가슴에 품고 죽었던 그 말이었다.
‘인간을 구하자.’
과거 단 50여명의 민간인을 살리기 위해 무려 1,000여명의 헌터들이 몬스터 웨이브에 생목숨을 던진 일이 있었다. 생존자는 고작 10명뿐이었지만, 그때 당시 아무도 그들의 희생이 덧없다 말하지 않았다. 또한 생존자들도 그 민간인들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다.
“지금 당신들이 저 어린 헌터를 차별하는 게 그 인간을 구하자라는 말에 어울린다고 보십니까?”
제황이 주위를 쓸어보며 말하자 모두가 하나 둘 고개를 숙였다.
장내가 숙연해지는 상황이다.
인간을 구하자라는 말은 단순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자는 말이 아니다.
헌터도 인간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구하자라는 뜻이다.
한번 쯤은 가슴 떨며 읽었던 그 이야기 속 헌터들과 자신들이 모습이 교차되며 부끄러워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꼭 이런 분위기에 초를 치는 인간이 있다.
“이봐요! 당신만 그렇게 깨끗해?! 그럼 우리가 희생하는 건 당연하다는 거야?!”
“마! 맞아! 그리고 이건 그런 고리타분한 헌터 기본이념 따위의 문제가 아니야! 능력이 부족한 헌터랑 한 스쿼드가 되기 싫어서 그런 건데 그게 문제야?!”
고개를 돌려보니 서전 클랜이라고 소개하던 두 여자다. 둘은 제황에게 지적당한 것이 분한지 씩씩거리며 제황을 쏘아보고 있었다.
“능력 부족?”
그녀들은 제황의 말이 짧아졌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요! 능력부족!”
제황의 반문에 그녀가 맞받아친다.
“하...”
한숨을 내쉰 제황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일으키며 그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럼 너는 대체 어느 정도 능력이 있기에 감히 나와 어울린다 말하는가.”
우우우우우웅...
드드득...
“히...히이익!”
“꺄악!”
제황의 몸으로부터 피어오른 기세가 장내를 휘돌기 시작하자 헌터들은 일제히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살기 따위는 일으킬 필요도 없다. 단지 기세 하나만으로도 모두를 침묵시키는 제황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의 중심이 된 두 여자는 그 즉시 자리에 주저앉더니 몸을 감싼 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조금 만 더 몰아치면 그 자리에서 실금이라도 할 태세다.
"저...저기 더 이상..."
눈치빠른 중대장이 제황을 말렸다.
"후..."
지금 제황의 기세는 딱 장내에 있는 헌터들이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군무원들은 이 알수 없는 사태에 몸을 긴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덜덜 떨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제황이 입을 열었다.
“귀찮게 하지 마라.”
그 말과 함께 제황은 뚜벅뚜벅 걸어가 아까 다른 스쿼드에서 밀려나온 소년의 앞에 섰다. 제황과의 키차이가 워낙 심해 마치 아이와 어른처럼 느껴진다.
소년 또한 제황의 기세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망토사이로 제황이 손을 내밀었다.
“같이 할래?”
“예. 예?”
소년은 자신처럼 스쿼드에서 쫓겨난 것이 아닌 온전히 구성된 스쿼드를 거부한 채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제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엄청난 사람이 왜 자신에게...
“안할 거냐?”
제황이 조금 짜증 섞인 톤으로 되묻자 소년이 엉겁결에 제황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황이 중대장을 바라봤다.
“둘도 괜찮습니까?”
제황의 물음에 중대장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이드가 가능하기만 하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둘로 가능...”
말을 잇던 중대장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장내에 있는 다른 헌터들의 눈을 바라보니 굳이 물을 필요 없는 쓸데없는 말인 것 같다.
“가자.”
“예. 예.”
제황이 소년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