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너희 귀찮다-1
“대책은?”
“일단은 일본의 손을 들어준 단체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무적성과 세계헌터사무국은 그리 친하지 않다. 물론 헌터사무국 내에서도 여러 가지 계파가 갈려 있기에 친하다 친하지 않다 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지금 현 사무국 의장은 한국에 대해 그리 좋지 입장을 가진 이였다.
“대현클랜에 대해서는 저희 쪽의 처분에 맡긴다 했지만 더 이상 천황클랜에 대한 테러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비공식 채널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권제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감히 대한민국에 들어와 공작을 획책한 천황클랜 놈들을 당장 현해탄을 건너가 박살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세계헌터사무국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가진 권한은 아주 많다. 그리고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것에 권제 또한 찬성했었다. 당시에는 8티어 이상의 몬스터는 재앙과 마찬가지였고 그런 몬스터의 출현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계헌터사무국과 같은 범세계적인 기구가 필요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 초법적인 권한도 부여해 줘야 했다.
이미 출범 초기부터 예견한 이 상황에 발목을 잡힌 격이지만 권제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인류가 몬스터의 위협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엑스포가 언제까지지?”
“다음달 초순경 까지입니다.”
“그럼 그 때까지는 대현과 대통령 놈한테 집중하면 되는 거겠군.”
“예. 그렇습니다.”
“좋아. 그대로 진행하도록 그렇지만 천황클랜에 대한 동향도 빠짐없이 주시하게.”
“알겠습니다.”
“너에 대한 내 믿음을 더 실망시키지 않도록...”
“존명!”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이용기가 밖으로 나서자 권제가 말했다.
“루미야.”
“찾으셨습니까!”
빠르게 내실 안으로 들어선 이루미가 무릎을 조아리며 말했다.
“요즘 녀석은 뭘 하고 지내느냐?”
권제가 말하는 그녀석이 누군지는 뻔하기에 이루미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했다.
“어제 의무레이드소집건으로 외부로 나가셨습니다.”
이루미의 보고에 권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의무레이드소집?”
“예. 소집장소가 황해남도 장연군이라 어제 일찍 출발하셨습니다.”
“아니아니”
권제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궁금해 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의무레이드소집은 3성 헌터까지만 소집대상 아닌가?”
의무레이드소집이라는 것은 1성 헌터에서부터 3성 헌터까지 2년에 한 번씩 소집되어 국가에서 지정한 곳에서 국가에서 할당한 몬스터 숫자를 의무적으로 레이드하는 하는 것을 말한다. 헌터들은 아무래도 돈이 되는 몬스터가 많이 출현하는 곳에 많이 몰리기 마련이기에 2년에 한 번씩은 레이드가 소홀한 곳을 지정하여 의무레이드를 소집한다.
권제의 물음에 이루미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제황이 워낙 엄청난 능력을 보이기에 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게 있다.
“제황님은 2성헌터십니다.”
정확히 따지면 2성하이브리드 헌터지만 2성은 2성이다.
이루미의 대답에 권제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제황이 2성 헌터인 것은 안다. 자신이 만들어 준 것이니까. 다른 2성헌터 라이센스와 다른 점은 ‘국가강제동원령’ 만이 삭제된 라이센스라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4성 라이센스를 주기로 했었지만 이건 제황이 먼저 사양했었다.
각성한지 1년도 안 되서 4성 라이센스를 가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고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싫은 제황의 의견에 맞춰 ‘강제동원령’ 만 삭제한 라이센스를 만들었었다.
“허허, 그럼 그 소집령에 갔다고?”
“예.”
“원... 이건 애들 운동회에 국가대표가 참석한 꼴이군. 그런데 굳이 녀석이 갈 필요가 있나?”
의무조항이기는 하지만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 참석하지 못하는 헌터들이 많기에 다음 추가소집에 응하거나 혹은 돈이 많으면 벌금으로 대체하는 헌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작 해야 3성이다. 제황?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권제가 아는 한 살상력 하나만 두고 비교하자면 권제보다 뛰어난 것이 제황이었다. 육체계열인 권제는 몸으로 직접 뛰어다녀야 하지만 제황은 어느 지역이던 박아 넣는 순간 반경 5킬로미터는 초토화 된다고 보면 된다.
“제가 추천 드렸습니다.”
“네가?”
권제의 반문에 이루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제황님은 헌터가 된 기간에 비례하여 평.범.한 헌터들과의 레이드 경험이 전무하십니다. 최근 매우 비중 있는 작전만을 수행하셨기에 조금 정도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실 것 같아 추천했습니다.”
군복무 기간 동안 정찰대로 활동하며 레이드를 하기는 했지만 그건 엄연히 따지면 일반적인 레이드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걸 제외하고 보면 제황은 평범한 헌터 생활과는 100만광년 정도 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평생에 걸쳐 잡을 몬스터를 하루 만에 때려잡기도 했고 또 그만큼의 인간들도 상대했다.
“흠”
이루미의 말에 권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제황 정도 되는 헌터가 왜 그런 꼬꼬마 모임에 끼었는가에 대해 의문점이 있었는데 이루미의 대답을 들으니 그 또한 제황에게 꼭 필요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수긍한 것이다.
“하긴 녀석도 평범한 헌터의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 둘 필요가 있겠지.
제황은 현재 무적성 내에서 [직전제자] 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무적성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지위다. 지금껏 없던 지위인 것
본디 권제는 직전제자 따위를 두지 않았다. 물론 과거에는 제자가 많았다. 지닌바 재능과 가치관을 엄격히 심사하여 받아들여진 그들은 무적성의 초석이 되었다. 나이를 먹고 그들이 사부의 위에 오름에 따라 태사부가 된 이후로는 제자를 거의 두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황은 단순한 제자가 아닌 직전제자다. 권제가 가진 모든 것을 잇게 한다는 뜻, 무한 능력주의 권제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래. 수행원은?“
그런 제황 정도의 입지라면 최소한 무영 4명가량은 거느리고 다닐 위치다.
현재 제황의 개인 정보는 1급보안이 걸려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도 무려 무적성의 절대자 권제의 제자였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은 수행인이 항시 따라 붙는다.
“그게...”
그러나 권제의 물음에 이루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러느냐.”
“그게 수행원을 붙여드렸지만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허, 불편한 게 많을 터인데...”
권제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자 이루미 또한 속으로 낮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없습니다. 그 전투바보는...’
***
“수근 수근”
“저 사람 좀 봐.”
“저게 뭐야? 대체 어느 클랜이야. 저 사람...”
사방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한곳을 바라보며 연신 서로 밀담을 주고받던 그들은 주목의 대상이 된 사람이 조금이라도 뭔가 할라 치면 뭔 대단한 일이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저들끼리 수근 거린다.
-바보
-시끄러.
그리고 주목의 대상이 된 제황은 궁기의 조롱 섞인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너 너무 튀잖아. 호호호
-내가 알았냐.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이목을 진하게 끌어버린 제황은 어제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소집되는 헌터들에게 송달된 안내문의 한 문구 때문이었다.
[레이드 기본 장비가 제공되오나 개인이 소유한 개인장비를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국가에서 지급되는 기본 장비는 공용으로 돌려쓰는 중고장비들이기에 질도 나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사용해서 냄새가 고약하다고 적혀 있었다. 개인 장비 사용 중 파손 시 국가에서 수리비의 30프로를 보조해주니 가급적이면 개인장비를 사용하는 게 좋다는 댓글에 평소 사용하던 장비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뿐이다.
문제는 제황이 사용하는 장비는 절대 ‘개인’ 이 이런 곳에 가지고 나올 수 없는 장비들 뿐 이라는 것이다. 금전감각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제황은 사용하는 모든 장비들은 무적성에서 지원받은 최고급 장비들뿐이다.
“무슨 장비들이 저렇게 멋있어.”
“예술품이야. 예술품”
그것도 일반적인 장비들이 아닌 명장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제작한 세트 아이템들이다. 무적성 내에서의 제황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 장비들을 바라보는 평.범.한 헌터들에게는 마치 신세계의 그것과 같았다.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 저거 대체 무슨 장비야!”
이미지 검색을 통해 제황이 입은 세트아이템을 검색해보던 한 헌터가 좌절하며 외쳤다.
당연히 나올 수가 없다. 제황이 입은 것은 모두 무적성 내에 장인들이 만든 수제주문제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검색할 수 있는 것은 잘해야 양산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아이템들 뿐이니 검색이 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장비 안쪽에 새겨진 장인들의 낙인이라도 보인다면 얼추 감은 잡겠지만 제황이 그걸 드러내며 자랑을 할 사람은 아니니 사람들의 궁금증은 높아져만 갔다.
“아티펙트는 아닌데...”
최고 3성 헌터까지 소집되는 이런 곳에 아티펙트를 가지고 오는 금수저가 있을 턱이 없지만 아주 간혹 골 때리는 인간들도 있기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제황의 입은 장비들은 현대적인 느낌으로 제작된 최상급의 아이템들이었다. 그것도 심미적인 부분까지 고려된 그 세트아이템들은 척 봐도 ‘나 엄청나게 비싸요’ 라고 시위하고 있었다.
-호호호...좀 가려줄까?
-그런 방법 있으면 좀 일찍 써주지?
-쓸데없이 마나만 많이 사용하는 술법이라 그렇지.
그 말과 함께 제황의 눈으로부터 한줄기 마나가 뿜어져 나와 제황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망토가 어깨에서부터 돋아나 온몸을 감싸버렸다.
“오오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역효과를 불러왔다.
입고 있는 장비도 범상치 않은데 마치 허공중에 생성되는 듯한 멋들어진 망토는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
-너 일부러 그랬지?
-호호호
장비를 가린다고 한 게 오히려 사람들을 더 주목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입혀지는 아이템은 아예 본적도 없는 그들이기에 제황은 지금 완전히 딴 세상의 외계인과 마찬가지였다.
“저...저기 어느 클랜이세요?”
20대 초반의 쌔끈한 미녀 하나가 제황의 곁으로 다가와 은근히 묻는다.
보통 클랜 소속 헌터들은 장비 곳곳에 클랜의 마크를 세기기 마련이다. 장비 꾸미기를 좋아하는 헌터는 어깨나 가슴 부위에 레이드한 몬스터의 킬마크를 붙여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후드로 얼굴을 가린 이 남자의 몸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또 멋지다.
“무적성”
제황은 귀찮아서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그 대답의 여파는 대단했다.
“무...무적성!”
“와! 무적성 소속이래!”
“역시!”
무적성이라는 말에 제황의 주위에 있던 헌터들이 경탄을 터뜨리며 제황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목했다.
이전에는 훔쳐보듯 했다면 이제는 노골적으로 제황을 바라본다.
제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지만 같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라이센스에 있는 별의 숫자가 그것을 말해주지만 사람을 계급으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는 헌터들은 같은 별 사이에서도 구분을 두고 차별 했다. 그것은 바로 어느 클랜 소속이냐에 따라서이다.
대략 랭킹 1위에서 10위 권이 1등급이고 11위에서 30위 까지가 2등급, 그리고 30위부터 100위까지가 3등급이다.
그리고 같은 별을 가진 헌터들이라도 이 등급에 따라 서로 무리를 짓는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를 수 없는 상위 등급이 있다.
무적성- 등급 없음
무적성은 등급을 붙이지 못한다. 감히 무적성 소속에게 등급 따위를 붙이는 간 큰 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