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16화 (116/301)

# 116

천주의 마물-2

쉬이이잇... 콰쾅!

맹렬한 폭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정작 화살에 맞은 괴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크르륵, 이 따위 것으로...”

사사키는 손에 잡힌 화살을 그대로 부러뜨려 버렸다.

핏물이 슬쩍 흐르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금세 사라져 버린다. 극한의 재생력

“이것이구나. 으하하하!”

온몸의 뼈들이 마치 근육마냥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다. 우람하다 못해 터질 듯한 근육들은 어떤가.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이두근과 광배근,  거대한 어깨갑옷처럼 두툼하게 감싼 견갑근까지... 길게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흉흉한 붉은 빛이 흐르는 신장 4미터의 사사키는 장소를 터뜨렸다.

넘치는 힘에서 느껴지는 고양감... 사사키는 거추장스럽게 붙어있는 갑옷 쪼가리를 뜯어버렸다. 이제는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모양이 되었지만 상관없다.

“와라!!!”

사사키는 포효했다.

이제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포위망? 권제? 추격자? 모조리 박살내 버릴 것이다.

***

-변신도 하네.

-안 부끄럽나.

사사키의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뭔가를 발견한 궁기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아니 뭐 그냥 저런 몽둥이도...

-...

-농담이야. 호호호! 네것은...

제황은 지금 사사키가 있는 곳으로부터 약 2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과거 등산객들의 쉼터로 사용되었었는지 용케도 부서지지 않은 나무 벤치만이 지키고 있다.

-장난은 그만 해. 그건 그렇고 저게 뭔지 알아?

-흠흠. 응. 적혈마인이라고 불렸지. 천주백가에서 병사 대용으로 써먹던 건데... 용케 여기서 보네.

-병사?

-그래. 병사. 천주백가 놈들은 물리적인 무력이 부족했거든. 그걸 보충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데리고 다니던 놈들이야. 약하지는 않지. 제물로 사용된 피의 양에 따라 유지시간이 결정되는데 그 시간동안 만큼은 거의 무적이었으니까.  화살과는 상성이 안 좋아. 관통을 시켜도 금방 수복하니까.

궁기의 친절한 설명에 제황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이건 예전 동철과 벌인 전투의 재탕과 같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공격수단과 그다지 상성이 좋지 못한 것, 안좋은 소식이다. 게다가 예상외의 것이 출연했으니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얼마나 강해? 유지 시간은 얼마나 되지?

-공격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 얼마나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느냐가 문제인데 물리공격만 할 줄 아니까 잘해야 5티어에서 6티어 가량? 그렇지만 방어력은 7티어 몬스터를 훌쩍 뛰어넘고 속도도 상당히 빨라. 유지시간은 강한 헌터 20명가량을 잡아먹었으니 한 3시간 정도 되겠네.

-그렇군.

궁기로부터 사사키 아니 적혈마인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을 들은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니 의외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특히나 물리적인 공격 능력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조금 전 변신(?) 중인 것 같아 고춧가루나 뿌리자는 마음에 날린 [비상하는 폭발화살]을 가볍게 잡는 것을 보면 방어력은 인정할 만 하지만 전투라는 것은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적혈마인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전투가 펼쳐질 지형이 그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깊고 깊은 산속이었고 그 상대는 험하기로 유명한 궁기산을 앞마당처럼 놀러 다니던 제황이라는 점이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적혈마인은 도망칠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마치 공격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 입가에 비릿한 미소마저 띄고 말이다.

무언의 도발을 날리고 있다.

-그러네.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야. 호호

감히 숲에서 제황에게 도발을 하고 있다는 것에 궁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곳은 숲이다.

전투에 있어서 지형의 중요성을 말하는 건 입만 아프다.

아마 동철에게 숲에서 제황이랑 전력으로 싸우겠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그냥 권제랑 붙고 말겠다고 할 것이다.

-뭐 고맙지 뭐

제황은 그런 자신의 장점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또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잡는데 시간 좀 걸리겠군. 쯧”

혀를 찬 제황은 바위에서 내려선 뒤 몸을 가볍게 풀었다.

장기전이 될 테니 사전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갑옷의 이음새들을  잘 조정한 뒤 부츠에 달린 벨크로들도 다시금 붙였다.

-좀 도와줄까?

궁기가 물어왔다.

-아니, 간만에 사냥인데 이참에 감각 좀 깨워 봐야 겠어.

가볍게 심호흡을 한 제황은 오른손에 들린 천둥의 시위를 가볍게 한 번 튕겼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수립된 플랜을 다시 한 번 점검한 제황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아주 오래전 과거 궁기산의 터줏대감과 노릇을 하던 거대한 멧돼지가 떠오른다. 놈은 빠르고 강했다. 장갑차와 같은 몸과 수많은 사냥꾼들과 싸워온 노련함, 그리고 야생동물에 어울리지 않는 뛰어난 머리로 잡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아버지와 제황은 놈을 사냥하는데 무려 반나절이나 소모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놈을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재미있지?”

“네!”

어린 제황은 그날 너무나 즐거웠다.

***

우지지직...

“크아악! 파리 같은 조센징!”

원색적인 욕설을 내뱉으며 적혈마인은 그의 몸보다 더욱 거대한 바위를 마구 두들겼다.

콰콰쾅!!!

폭격이라도 맞은 듯 바위가 터져 나간다. 그렇지만 적혈마인의 적은 바위가 아니다. 엄연히 살아 숨 쉬는 인간, 그것도 매우 약삭빠르고 교활한 쥐새끼다.

쉭...팡!

“큭!”

마치 약 올리듯 뒤통수에 작렬한 화살 공격에 적혈마인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들을 방금 전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마구잡이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포탄처럼 날아간 돌멩이들로 인해 숲 속 나무들이 때 아닌 수난을 당한다.

아니 지금 이 근방의 나무들은 모두 쪼개지거나 부러져 있었고 곳곳이 폭격 맞은 마냥 움푹움푹 파여 있었다.

“죽일 놈”

적혈마인은 지금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었다. 이 바보 같은 술래잡기를 시작한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금세 적을 붙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적을 육안으로 확인했고 근거리까지 따라 붙었으니까. 놈은 자신이 이렇게 빠를지는 생각도 못했는지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곳이 빌어먹을 숲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잡아서 찢어 죽이고  놈의 피를 마셨으리라. 거목과 바위 사이를 다람쥐처럼 도망치는데 놈은 교묘하게도 그의 몸이 운신하기 힘든 곳으로만 골라 움직였다.

물론 그 따위 것은 상관없었다. 그의 몸에 부딪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으니까.

피해도 줬다. 그의 주먹으로 두들겨 패지는 못했지만 주먹이 일으킨 풍압만으로 적은 날아가 땅에 처박혔었다.

‘그때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확실히 잡았다고 생각했기에 여유를 부린 게 실수였다.

파파파파파팍!!!!

“크아아악!”

등에서 느껴지는 찌르는 듯한 고통에 그는 비명을 질렀다.

가장 미치고 환장하는 건 잠시라도 몸을 멈추면 곧장 화살 세례가 쏟아진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성가셔 미치겠다.

가뜩이나 끌어 오르는 본능의 외침에 정신을 붙잡고 있기 힘든데 마치 장난치듯 공격해대니 외부의 적과 내부의 본능과 싸우느라 가만히 있어도 정신력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시야가 자꾸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에서 사사키는 이전부터 느끼던 불안함을 서서히 구체화 되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무려 한 시간을 드잡이 질을 했다. 갖은 수를 다 써봤다. 도망치는 척하며 함정도 파보고 바위나 나무 등을 던져 놈의 화살에 대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곳을 이탈하려 했을 때는 그가 상대하고 있는 놈이 단순한 쥐새끼가 아닌 맹독을 품은 독사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뒤에서 날아온 화살 공격에 머리통에 통째로 날아갈 뻔 했으니까.

“으아아아아!”

퍼퍼퍼펑!

포탄처럼 날아온 돌멩이가 제황이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를 절반으로 쪼개 버렸다. 미리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한 번씩 던져댈 때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수밖에 없다. 호랑이사냥을 켠 채 미리 봐둔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교묘하게 몸이 가려지는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공중을 향해 두 대의 화살을 날린 제황은 새롭게 갱신된 지형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명중!

“크아아앙!”

공중으로 날린 화살이 적에게 적중하자 분노의 포효가 들려온다. 마구잡이로 날리는 것 같지만 이미 이전부터 적의 한걸음한걸음 모두가 제황의 손 안에 있다.

“나서라! 쥐새끼! 정정당당히 겨루자!”

분노의 찬 목소리가 숲속을 울렸다.

-쟤 바보 아냐?

-그러게.

궁기의 말에 맞장구친 제황이다.

어느 사냥꾼이 사냥감이랑 정정당당히 싸운단 말인가. 덫을 놓던 힘을 빼놓고 목줄을 날리건 사냥감을 잡기만 하면 그만이다. 제황은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냥을 할 뿐이다. 전투는 전장에서 찾아야지 사냥터에서 찾는 건 바보 아닌가.

-쯧쯔, 정정당당히 싸우자면서 또 도망치네.

궁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보고 있어.

놈은 제황은 보지 못하지만 제황은 어디서든 놈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전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커다란 거목 위에 앉은 궁기가 궁기안으로 이 근방을 생중계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방?

-한방!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는 사냥감은 사냥꾼에게 이제 낚싯줄을 끝까지 당기라는 뜻과 같다.

무한고에서 비천격을 꺼낸 제황이 흑색의 애기살 한 대를 비천격의 홈 위에 올렸다.

[화신체!]

동시에 궁기의 서포트가 들어왔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궁기의 순수하디 순수한 마나가 용혈신공과 호응하여 거대한 마나의 파동을 일으켰다. 제황은 요동치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을 응축하여 양 손에 모았다.

뿌드드득

만월이 되도록 잡아당긴 천둥에 끌어모아진 마나를 한계까지 쑤셔 박는 제황이다.

슬슬 마무리 할 때도 되었다.

[무음시]

비천격에 내제된 소리 없는 암살자가 몸을 일으킨다.

[비상하며 춤추는 강기의 화살!]

후우욱! 퍼어엉!

적의 숨통을 끊는 무시무시한 벼락을 손에 쥐어준 채 적을 향해 은밀하게 쏘아 보낸다.

쉬이이잇!

소닉붐을 뒤로 한 채 창공으로 날아오른 강기의 품은 애기살이 곧이어 적을 포착하고 수직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애기살은 등을 보인 채 도망치는 거대한 등판을 향해 꿈틀거리며 날아갔다. 엄청난 각력으로 땅을 박차며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도망치고는 있지만 그것이 아무리 빨라 봤자 음속을 돌파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제황의 애기살은 소리보다 빠르다.

퍼어어엉!

“크아아악!”

등판 정중앙에 강기의 화살을 그대로 허락한 적혈마인은 마치 쏘아낸 포탄마냥 앞으로 날아가 그의 앞을 가로막던 수십 그루의 나무를 박살내며 연신 떼굴떼굴 굴렀다.

“끄어어...”

땅을 구르던 적혈마인은 타오르는 불꽃 위의 오징어마냥 꿈틀거리다가 이내 두 팔로 땅을 기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이성은 날아가고 살고자 하는 본능이 그를 기게 만들었다.

“크어어...다리가...”

하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그는 볼 수 없지만 그의 등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여져 있었고 박살나버린 척추 사이에서는 연신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끊어진 근육에서 솟아오른 지렁이 같은 섬유다발들이 유실된 조직들을 재생하며 회복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적혈마인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배...배가...”

패시브 스킬이든 엑티브 스킬이든 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었일까.

일단 마나가 있다. 마나가 없으면 위의 스킬이라는 것들은 절대 발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체회복이나 재생 같은 스킬들은 조금 다른 것들도 요구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실된 것을 복구할 만한 양의 영양분이 필요했다.

“크으윽!”

적혈마인은 하마터면 자신의 팔을 그대로 물어뜯을 뻔 했다. 그만큼 허기라는 괴물은 무시무시했다. 그나마 팔을 물어뜯지 않은 것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마지막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사사키다.

“먹...먹어야 해.”

적혈마인은 손에 잡히는 데로 입속에 마구 쑤셔 넣기 시작했다. 흙이던 낙엽이던 나무쪼가리건 상관없다. 이 미칠 것 같은 허기를 달래지 않으면 전투고 뭐고 마지막 붙잡은 이성의 끈마저 날아갈 것이다.

“크으으...”

목을 메우는 까끌까끌한 느낌에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위장이 그나마 채워지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온다.

“이건 아니야. 크으으”

그는 다시금 두 손으로 땅을 기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어째서, 왜, 이런 미친 자충수를 뒀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는지 말이다. 천주를 소환한 것은 일생일대의 크나큰 실수였다. 차라리 부하들을 조금씩 미끼로 던졌다면 그 하나는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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