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거미줄 위의 암살대-2
이질적인 감각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의 주술이 박살나는 순간이기도 했고 또한 직감의 외치던 위험이 현실화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서둘러 입안의 종이를 뱉어내며 밑으로 뛰어내렸다.
“적습이다! 엄폐!”
암살대는 천황잠형술진을 깬 채 신속히 은폐물을 찾아 움직였다. 술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조금 전 비명의 주인은 술진 내에 있음에도 죽임을 당했다. 머리 위에 꽂힌 한 발의 화살이 술진이 파훼되었음을 증명한다.
“화살이라...”
쓰러진 암살대원을 바라본 사사키의 눈이 가늘어졌다.
온통 흑색의 몸체에 검은 깃털이 달린 화살 한 대...
화살이라면 이제 이가 갈리는 그였다.
“대장!”
그 때 부대장이 지시를 요청했다. 암살대 전력의 한축인 술법이 깨졌으니 새로운 대응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사키는 아직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겨있다.
‘난감하군.’
지금의 공격은 자신들을 손바닥에 놓고 보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 아니 그걸 떠나서 퍼스트샷에 머리를 날린다는 건 거의 미친 수준의 활솜씨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술법을 깨고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만한 인물이 공격을 가했다는 뜻
‘그인가.’
부하들에게 들었던 그의 실력이 떠올랐다.
부상자를 달고 있는 상태에서 추적에 나선 암살대 세 개 조가 그의 화살에 고혼이 되었다고 한다. 부하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공격력 하나만 따지면 7성에 근접한 원거리 딜러다.
추격자로는 최악... 그러나 죽여야 한다.
“6호 7호 8호! 시선을 끌어라! 41호! 기억을 쫓아라! 위치를 잡으면 전원이 달려들어 단숨에 제압한다!”
“옛!”
생각을 굳힌 사사키 대장이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다. 세 명의 부하들을 일부러 노출시킴으로 화살 공격을 집중시키고 기억을 읽는 스킬을 지닌 부하에게 화살이 날아온 곳을 찾도록 지시한 것이다.
사사삭! 사삭!
암살대 중 가장 빠른 셋이 흩어지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41호라고 불리는 여성이 동료의 머리에 꽂힌 화살에 손을 댄 채 스킬을 사용했다.
[기억추적]
그녀의 손에 푸른빛이 어리며 눈자위가 하얗게 변했다.
“방향...정북 ... 바람... 위치... 위치...”
계속해서 위치라고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방향 정북! 거리! 4킬로미터! 적은 하나! 초장거리 저격입니다!”
“칙쇼!”
쉬익 팍!
다시 한 명의 대원이 머리에 화살 한 대를 맞고 쓰러졌다. 이번 화살은 정수리에 꽂혀 있다. 엄폐물이 전혀 무쓸모한 입사각도다. 초장거리 저격이라는 말에 사사키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정북으로!”
그러나 지금은 움직일 때다.
숨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사사키의 외침에 암살대 전원이 빠르게 정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적은 하나입니다! 전속으로 주살합니다!”
“옛!”
그들에게 놀람은 있어도 동요는 없다. 각자 무기를 뽑아든 그들의 몸이 고요함을 몸에 덮고 산속을 날듯이 뛰기 시작했다.
[광역지배]
사사키의 술법이 암살대를 감싸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빛에 푸른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천황클랜 최정예 암살대의 대장인 사사키는 클래스 구분상으로 보면 버퍼였다. 그리고 아군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보조클래스인 버퍼임에도 그가 암살대의 대장을 하는 것은 그의 버프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걸 의미한다.
[용맹한 진격! 사슴의 발걸음! 숨통을 끊는 자의 눈!]
하나하나 버프가 들어갈 때마다 암살대원 하나하나의 에너지가 고양되기 시작한다. 용맹한 진격은 정신고양을 사슴의 발걸음은 이동속도를 숨통을 끊는 자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대낮과 같이 보게 만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낸 그가 그것에 피를 묻혀 글씨를 휘갈긴 종이를 입에 물자 그의 얼굴에 그려져 있던 문양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철인 강림!]
퍼펑!
그 때 화살 한 대가 날아와 암살대원 하나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그러나 이번 화살을 이전처럼 꽂히는 것이 아닌 그대로 튕겨나가 버렸다. 마지막에 발동시킨 주술의 힘이다.
“당신은 실수했습니다.”
사사키의 입가에 살벌한 비웃음이 걸렸다.
아마 보통의 헌터들 이라면 무려 4킬로미터 밖에서 저격하는 궁사의 존재에 혼란에 빠져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만 자신들은 그들과 본질적으로 틀렸다.
비록 세 명의 대원들을 잃었지만 위치를 파악했다. 게다가 적의 숫자는 단 하나다. 4킬로미터라면 아무리 산길이라도 전력으로 달렸을 시 2분 내에 도착한다. 7성의 헌터?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자신들은 그 7성의 헌터를 죽이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아 온 살인기계들이다.
“찢어발겨 드리겠습니다.”
그 후로 두어 발의 화살이 더 날아왔지만 그것들은 암살대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의 술법이 보호하는 한 이들은 피부는 모두 강철과 같다. 암살대원들의 얼굴에 득이 만만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위협도 되지 않는 화살 따위 피할 필요도 없다.
4킬로미터의 거리는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적이 있을 곳이라고 판단한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릴 것이라는 한심한 생각은 없었기에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왔지만 놓친 것이다.
“흩어져서 찾...!”
빠르게 지시를 내리던 사사키는 끝내 그 말을 완성하지 못했다.
사라졌다고 판단한 적의 공격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쉭! 펑!
“컥!”
대원 하나가 공중을 붕 날더니 나무에 처박히듯 꽂혔다.
공격스킬이 담겨 있었는지 적중당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이번에는 보호버프인 [철인강림]도 막지 못했다.
“확인하세요!”
조금 신경질 적인 사사키의 외침에 다시금 기억을 읽는 대원이 나섰다.
화살에 남은 기억의 잔재를 읽은 그녀가 말했다.
“서...남... 거리 3킬로미터 적은 하나입니다.”
“낭패군. 이런 속도라니”
무려 3킬로미터를 이동했다는 것은 자신들 못지않게 빠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의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의 직감이 적과의 전투가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알리고 있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쉬이익! 퍼어억!
그 때 다시금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노려진 대원은 허깨비와 같은 움직임으로 그 화살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자의 화살도 강력하지만 이들 또한 만만치 않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5성과 6성이라고 인정받는 정예 중에 정예.
“우리를 가지고 노는군요. 감히 우리 전원을 상대로...”
인내심의 끈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적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도발하고 있다.
“좋습니다.”
그리고 사사키는 그 도발에 응해주기로 했다.
“전력을 다해 적을 주살한 후 이탈합니다!”
“옛!”
“암살령!!”
그의 버프스킬에 전원의 몸에서 아스라한 한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모두의 신형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사사키 대장이 가진 최고의 버프 스킬이다. 대량의 마나를 소모하는 결전스킬
이전까지는 최대한 마나를 아끼며 행동했다. 무적성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아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으나, 이제 적을 죽이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삼은 그들이었다.
핑! 파팍! 파파팍!
암살대 전원이 은신을 펼친 상태에서 최대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자 숲속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의 악령이 휩쓸고 지나가는 듯 희끗희끗한 잔영만이 허공에 남았다.
암살령은 소속된 모든 이들의 은신스킬을 최고조로 활성화시키는 스킬이다.
“각자 추적스킬을 발동한다!”
“옛!”
화살 공격은 없었다. 아니 당연한 것이다. 한밤의 산속에서 최고의 은신을 펼치면 적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한다. 하물며 탈인간의 속도로 산을 질주하는 그들을 잡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세도 마찬가지라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빠릅니다! 추적 불가!”
“흔적이 지워졌습니다!”
으드득...
사사키의 입에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암살대가 지닌 추적스킬들이 하나하나 불발되었다. 약 10여분 정도를 쫓았건만 적은 계속해서 도주 중이다.
그리고 그를 미치게 만드는 건 무려 10여분을 추적했음에도 적의 꽁무니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장! 시간이...”
“빌어먹을...알고 있습니다.”
부대장의 말에 사사키가 욕설을 뱉으며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자신들은 엄연히 적지인 곳에서 술래잡기 따위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흥”
그러나 사사키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를 도출해 냈다.
적은 시간을 끌려고 한다. 이유는?
“포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거나 아직 약하다는 뜻!”
암살대의 남은 인원은 이제 대략 40여명...
‘어쩔 수 없나’
그의 지시가 빠르게 이어졌다.
“열씩 두 개조로 나누고 각자 서남쪽을 향해 적을 쫓습니다. 나를 포함한 스물은 전투지역을 이탈하여 본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두 개 조는 각기 부대장들이 맡아 움직이고 적을 추살하는 즉시 이탈합니다.”
그의 지시에 대원들의 눈에 처음으로 놀람의 빛이 스쳤다. 아마 찢어진 20명은 운 좋게 적을 죽인다고 해도 무적성의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버린다는 뜻이다.
“옛!”
그러나 곧 그들의 눈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죽음을 각오한 충성심? 의연한 각오?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비장함에 사사키는 숙연해졌다.
이들은 미끼다. 적들의 눈을 흐트러뜨릴 미끼 말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니면 무적성의 포위망과 저 보이지 않는 추적자를 떼어낼 수 없다.
“속행!”
“옛!”
비장한 눈빛의 암살대가 좌우로 찢어졌다. 하나는 적을 쫓아 하나는 탈출을 위해....
그리고 그것을... 궁기안을 통해 멀리서 관찰하던 이가 있었다.
-둘로 찢어졌네.
-대가리가 판단력이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어떻게 할래?
반으로 찢어진 암살대가 제황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온다. 이제는 숨을 생각도 없는지 드러낸 채 달려오고 있다. 줄기줄기 뿜어지는 살기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계획대로 잡아먹어야지. 그건 그렇고 술법들은 볼만큼 봤어?
제황이 물었다. 사실 제황이 이렇게 시간을 끈 이유는 하나다. 교토에서는 흔적을 찾지 못했으니 술법의 당사자들인 암살대가 어떤 술법을 사용하는지 확인하려는 것
-응. 몇 가지 눈에 익은 흐름이 보이기는 하네. 분명 저놈들 중에는 천주백가와 연이 닿는 놈이 있어.
-좋아.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다가오고 있는 인영들을 눈에 담았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볼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황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정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호랑이사냥]
최고등급의 은신스킬인 호랑이사냥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같은 등급의 탐색스킬밖에 없다.
물론 탐색스킬을 지니고 있다 해도 다가 아니다. 제황을 탐색해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거리를 좁혀야 하고 그 거리라는 것은 제황의 사거리 안이라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제황의 호랑이사냥을 탐색해 내기 위해서는 제황의 사거리 안으로 얌전히 걸어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다. 안으로 들어온 적은 궁기와 제황 둘의 눈을 피할 수 없다.
"후우..."
제황은 호랑이 사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평소 다른 이들에게 노출된 작전을 펼칠 때는 최대한 공격 위주의 스킬만 보였다. 호랑이사냥은 딱 한가지 경우에만 사용한다.
지금처럼 호랑이사냥을 사용한다는 것은...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아.”
바로 적을 모조리 말살시키겠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