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13화 (113/301)

# 113

거미줄 위의 암살대-1

제황은 무한고에서 장비들을 꺼내 몸에 걸쳤다.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황에게는 밀령대의 령주인 나길환에게 받은 단말기가 하나 있었다.

이건 무적성 내의 정보를 관할하는 중추의 전략정보실에서 핫라인으로 정보를 내려 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아까 전 그 단말기를 통해 재미있는 정보가 접수되었다.

남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놈들에 대한 정보다.

-좀 쉬는 건 어때?

-끝나고... 쉬어도 늦지 않아.

어차피 교토에서는 무리하지도 않았다. 제황의 대답에 궁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튼 무련천가 종자들은... 이러니 천주백가 놈들이 치를 떨고 바다 건너로 도망쳤지.

-아, 그러고보니 교토에서는 뭐 찾은 게 있어?

제황이 궁기에게 물었다. 교토에 들어가기 전 당부해 놓은 것이 있었다.

-빨리도 물어본다. 찾긴 찾았는데, 좀 이상해.

-뭐가?

-난 그 교토지부에 주술이 걸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깨끗했어. 그런데 주술은 전혀 다른 곳에 걸려 있더군.

-어디?

-교토 전체

-전체? 그게 무슨 말이야?

-뭔가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형식인데 그게 좋은 에너지는 아니라는 거지. 오래 노출되면 인간들의 몸에도 안 좋고... 그런데 내가 이상하다고 본 건 주술이 너무 오래 되었다는 거야.

-오래 돼?

-그래. 최소 500년이야. 대체 500년 동안 에너지를 끌어 모아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만약 그 짓을 일본 전역에 했다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에너지일 거야.

-500년이라...

제황은 딱히 감이 잡히지 않는 500이라는 숫자에 고개를 저었다.

-주술을 쓴 놈을 잡는 게 정답이라는 거군.

-그렇지.

-그럼 잘됐네. 지금 만나러 갈 테니까.

무적성에서도 몸을 추스르며 쉬라고 했지만 제황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단말기를 통해 확인한 정보들을 종합하면 일본에 다녀온 사이 평안남도에 있는 대현클랜에는 상당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스컴 상으로는 친 무적성을 분류 될 정도로 적극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무적성에 이를 갈고 있다고 했다.

이유야 뻔하다. 독각룡 레이드에서 이성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한 건 둘째 치고 보호하려 했던 천황클랜과의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성재가 딴 꿍꿍이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무적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천황클랜과 대현클랜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는 이유는 제황과 동철이 일으킨 테러와는 전혀 무관했다.

바로 독각룡 레이드에 들어가기 전 무적성의 밀령대가 한 짓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이성재가 공격하는 척만 하고 놓아준 천황클랜의 암살대를 이성재의 뒤를 쫓아 위치를 파악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대현클랜을 길잡이로 사용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본토의 천황클랜마저 공격당했으니 천황클랜에서는 대현클랜을 좋게 보려야 좋게 볼 수가 없는 지경에 다 달았다.

무적성 입장에서는 이제 손발을 자른 대현클랜을 원정에 이리저리 끌고 다닐 것이기에 제황에게 기다리라 했다. 물론 그 명령을 어길 생각은 없다. 이제 이성재의 목은 언제든 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장비를 챙기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지금 밀령대가 천황클랜의 암살대를 쫓는다는 말이지.

대현클랜은 지금 건드릴 수 없지만 암살대라는 놈들은 무관하다.

나길환은 제황에게 특권 하나를 부여 했는데 그것은 밀령대 내의 특급밀령들이나 받을 수 있는 ‘단독작전권’ 이었다. 이 단독작전권을 지닌 이는 독자적으로 작전을 실행하거나 기존의 작전에 관여할 수 있다.

-그 주술 쓴 놈은 꼭 잡아.

밀령대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은 암살대가 도주 중이라고 한다.

제황은 그들을 절대 다른 이들에게 넘겨 줄 생각이 없었다. 수지의 죽음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놈들이다. 놈들을 쫓기 위해서는 기동성이 중요한데 아무래도 동철에게 그것을 바라기는 무리기에 이렇게 혼자 움직이려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다.

문 밖으로 나오니 동철이 여전히 오구라 아이라는 여자 앞에 쩔쩔매고 있다.

“나 나갔다 온다.”

한심하다는 듯 동철을 한 번 힐끔 바라본 제황이 한숨을 내쉬며 현관으로 향하자 동철이 제황을 돌아보며 외친다.

“어디 가는데!”

“놀러.”

“같...같이가!”

“꺼져. 병신아.”

눈빛은 자신 또한 데리고 가 달라는 듯 보이지만 제황은 그것을 깨끗하게 무시했다.

“야! 얌마!”

동철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문을 나선 제황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사사사삭...

수십의 그림자가 달빛조차 어둠 속에 묻힌 숲 속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정지.”

그림자들 중 하나가 말하자 마치 모두가 한 몸이라도 되는 듯 일제히 걸음을 멈춰 섰다.

“이 산만 넘으면 동해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다로 나가기만하면 한국의 저 지긋지긋한 대공방어망에서 자유롭습니다.”

“모두 긴장을 멈추지 말라 전하세요. 어쩌면 이곳이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암살대의 대장인 사사키가 말했다. 암살대는 평양에서부터 남쪽으로 끊임없이 달렸다.

밀령대의 추적이 너무 집요하여 일본이 있는 동해 쪽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추격에 혼선을 주기 위해 남쪽을 택한 것이다. 대도시인 개성 직전에서 방향을 선회하여 휴전선을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부하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가급적 철저하게 피했는데 그 이유는 무적성의 밀령대가 가진 대한민국 내의 첩보망 때문이었다. 무적성의 무서운 점은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진 것도 모자라 경찰과 군 정보라인까지 공유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현재 그가 이끄는 암살대는 47명으로 이 정도 인원이 한 번에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택한 길이 휴전선이었다. 북한이 멸망한 후로 휴전선을 지키던 전방부대들이 철수한 후 사후관리가 없었기에 비밀스럽게 움직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다행이라고 할 건 본국과 통신은 끝냈다는 것이다. 추적을 대비해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탈출할 길은 열어 두었다.

“대진항 까지만 가면 본국에서 보낸 배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모두 출발!”

“예!”

그의 명령에 부대장이 손짓을 하자 수십 개의 그림자가 자신들이 서 있던 곳에 있던 작은 흔적까지 깨끗이 지운 뒤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땅을 밟지 않는 초신속의 이동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수개의 눈을 말이다.

***

“저 새끼들은 똥도 안 싸나.”

화면을 바라보던 남자가 대단하다는 듯 감탄을 터뜨리며 컵에 담긴 얼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싸면서 가겠죠.”

“더러운 놈들... 찢어질 것을 대비한 인근 군부대 쪽에 드론 지원은?”

“총 100대 대기 중입니다.”

심드렁한 목소리가 뒤따른다.

“좋아.”

“팀장님! 미군 측 첩보위성인 아레스11호가 6분 후면 한국 상공을 지난다고 연락 왔습니다.”

“좋아. 위치 정보 공유하고... 다음 순서가 어떻게 되지?”

“아레스 다음이 레이더스, 체프먼이고 그 다음은 러시아 쪽의 야말입니다.”

“좋아. 앞으로 3시간은 절대 놓치지 않겠군.”

밀령대의 전략정보팀의 팀장이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안락의자에 뉘였다.

저들이 움직이는 꼴을 보면 우습기 그지없다. 자기들 딴에는 추적을 벗긴다고 열심히 뛰고는 있는데 위성이라는 최첨단 기기가 있는데 발바닥 땀나게 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사람 많은 개성 쪽으로 들어갔으면 더 골치 아팠으리라.

시대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누가 힘들게 뒤를 쫓는단 말인가.

“포위망은?”

“배치는 거의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전투발생시 저희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역시 그렇지?”

팀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덮치고 싶지만 문제는 적들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6성과 5성의 헌터들로 이루어진 약 50여명 가량의 잘 훈련된 암살자들이라는 정보팀의 보고가 있었다. 평소의 무적성이라면 그들에 걸 맞는 강력한 추격대를 구성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평안남도 수복 문제로 대부분의 고위헌터들이 북쪽에 투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급 밀령이 투입된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밀령 중에는 특급으로 분류된 밀령들이 있었다. 숫자마저도 베일에 싸인 그들이 투입된다면 이쪽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려면 령주의 허가를 득 해야 한다.

“령주님께 보고 드릴까요?”

령주는 밀령을 총괄하는 나길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군. 피해를 줄이려면 어쩔 수 없지.”

입맛을 다신 그가 특급밀령의 투입을 요청하려 수화기를 잡았다.  그 때...

“응?”

갑자기 그가 보고 있던 화면 한쪽에 새알림이 떴다. 마우스를 움직여 새알림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그려진다.

“무슨 일입니까?”

옆에 앉아 있던 부하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팀장이 컵에 든 얼음을 한가득 입에 집어넣은 뒤 입을 연다.

“솔로원이 단독작전 요청과 함께 일본 놈들에 대한 위치정보 공유를 요청했다.”

“예?!”

솔로원이라는 말에 부하의 눈이 커졌다. 솔로원이라는 콜네임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제 밀령대 내에서는 꽤 유명인사다. 그가 행한 작전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파악된 그의 능력은 특급 중에서도 특급이다.

“솔로원이 일본놈들을 잡으러 단독으로 들어간다는군.”

“단독이요? 솔로원은 오전에 막 작전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오전 중에 솔로원이 투입된 작전은 무려 해외작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돌아온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재투입을 요청한 것이다.

“내가 어찌 아냐. 스펙이 괴물들이잖아. 아무튼, 어떻게 할까.”

그가 장고에 들어갔다. 단독작전권이라는 건 임무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었다. 물론 마음대로 개입할 수는 없다. 전략정보실에서 개입을 허용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상대는 특특 급의 목표입니다. 아무리 솔로원이라지만 괜찮겠습니까?”

부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 능력이 특급이라지만 상대해야 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다.

“이건 내가 판단하기 힘들군. 일단 령주님께 보고를 올려야 겠어.”

고개를 저은 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

“푸드득...”

해가 빠르게 지는 초봄의 산은 춥다. 물론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런 추위 정도에 흔들릴 이들이 아니지만 잠에서 깬 날짐승들의 움직임은 날선 그들의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수십 개의 그림자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천황잠형술진을 설치하세요.”

천황잠형술진은 암살대가 보유한 주술 중 시전자들의 모습을 주변과 동화시키는 주술진이었다.

“옛!”

사사키의 말에 부대장이 손을 들자 날짐승의 움직임에 자리에 멈춰서 있던 그림자들이 각자 정해진 자리로 움직여 품에서 하나의 막대기를 꺼내 바닥에 꽂은 뒤 그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앉은 이들의 몸이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막대기들만 남는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감이 좋지 않습니다.”

부대장의 물음에 답한 사사키가 근처의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날짐승이 있다는 건 좋은 징조다. 아직 이곳을 지난 이들이 없다는 뜻이니까. 그렇지만 그의 직감이 계속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적막이 내려앉은 태백산맥 줄기를 세세히 훑던 그가 입을 열었다.

“천황잠형술진을 시행 중인 대원들에게 전달하세요. 적과 조우 시 전투 없이 은신 상태로 돌파합니다.”

“알겠습니다.”

부대장을 돌려보낸 사사키가 품에서 한 장의 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낸 뒤 종이에 글씨를 쓰고 그것을 곱게 접어 입에 물자 그의 눈에서 푸른빛의 청광이 번쩍인다.

[야광원시안]

시전자의 시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이 야광원시안을 사용하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시야가 닿는 내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몬스터는 없는데...”

그의 원시안에는 야행성으로 보이는 동물들의 움직임만 보일 뿐 위협적인 건 걸리지 않았다. 이대로 산을 넘기만 하면 끝나는 일. 그런데 그의 갈고 닦은 본능은 그에게 끊임없이 위험신호를 날리고 있었다.

“기우겠지.”

고개를 흔든 사사키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행여 자신이 놓친 몬스터가 나타나봐야 잘해야 3티어일 것이다. 오랜 도주로 민감해진 신경을 달래며 사사키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이제 이곳에서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뒤 산을 넘으면 끝이다. 그 때 그의 귓가로 날카로운 한가닥 소성이 포착되었다.

쉬이이익...퍽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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