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천황클랜 쿄토지부 습격 -3
-들켰다.
그 말과 함께 궁기의 통해 창문을 빠져나와 지붕으로 튀어 오르는 헌터들이 보인다.
-안쪽의 상황은?
-안도망치네?
-그거 다행이네.
헌터들을 믿는 건지 객기인지는 모르지만 제황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서포트해줘.
제황의 손에는 천둥이 들려 있다.
투퉁! 퉁! 퉁! 통! 파캉!
무한고에서 튀어나오는 화살은 제황에게 엄청난 속사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던 헌터들의 머리 부분에 긴 막대기가 하나씩 솟아나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탱커 둘 출현! 원거리 딜러 다섯 나온다! 3,2,1
궁기가 빠르게 목표를 지정해 줌과 동시에 제황은 위험도에 따라 화살을 날렸다.
스톰레이지를 사용할 때처럼 미친 듯한 가속 효과는 없지만 파괴력이 그것을 대신했다.
“춤추는 폭발화살!”
파캉!
브레이커를 요격하려는 딜러들 사이로 폭발화살을 날리는 제황을 향해서도 견제가 시작되었다. 약 1킬로미터의 거리지만,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헌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상대 딜러들도 활을 사용하는 헌터라는 것이다.
슈슈슈슉
화살을 날린 제황이 공중을 날자 제황의 서 있던 곳으로 수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날아온 곳을 향해 몸을 돌리니 두 명의 딜러가 제황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다.
-궁기! 지원!
-알았어!
공중에서 내리꽂힌 궁기가 순간적으로 둘을 붙잡아 공중으로 던져 버린 후 다시금 날아올랐다. 던져진 이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브레이커를 요격하려던 딜러들이 궁기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지만 궁기는 그것을 공중기동으로 피해버린다.
그리고 브레이커는 부지런히 날아 클랜지부 상공에 도착했다. 땅에 내려선 제황이 패드의 버튼을 누르자 하얀 분말이 푸스스하고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람이 없던 지하와는 다르게 분말을 넓게 퍼지더니 이내 건물 상부를 뒤덮기 시작했다.
충분히 분말이 퍼진 것을 확인한 제황이 버튼을 다시 한 번 누르자 브레이커로부터 반짝이는 빛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사방을 뒤덮어 버렸다.
츠즈즈즈...파파팟...퍼퍼펑
소음은 없었지만 드러난 결과는 생지옥과 마찬가지였다. 브레이커는 대량학살자다. 분말이 퍼진 곳은 그대로 거대한 몬스터가 한입 베어 먹은 듯 삭제되어 있었다.
초고열이 휩쓸고 지나갔기에 후속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용암과 뜨거운 쇳물이 되어 버린 것들이 녹은 치즈처럼 흘러내려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안력을 돋우니 내부는 엉망이 되었다.
지붕이 날아간 가운데 숯덩어리가 된 이들과 화상을 입은 이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구조하기 위한 이들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러나 서 있는 이들도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순간적으로 수 만도의 고열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것에 노출되었으니 헌터가 아닌 이들은 그 자리에서 통구이가 되고 헌터들 또한 3도 화상을 입었다.
수뇌부에 충분한 타격을 입혔지만 어차피 이쯤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최대의 피해를 최대의 악몽을 적에게 안겨줄 생각이다. 자비 따위는 애초에 제황의 계획에 들어 있지 않다.
브레이커의 파괴력으로 훤히 드러난 곳으로 제황의 공격이 엄청난 속도로 꽂히기 시작했다.
보통의 화살이 아니다. 비천격으로 속도가 향상된 애기살에 폭발 속성을 담아 날렸다.
“헉...헉헉.. 커억.”
교토지부 지부장인 류지는 폐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류지!”
힐러이자 그의 친구인 켄타가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켄타 또한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한쪽 팔이 갓 새로 올라온 듯 울긋불긋 한 걸 보면 팔 하나를 통째로 재생 시킨 모양이다.
“우와아아!”
켄타는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지르며 류지의 멱살을 두 손으로 잡고 끌어 당겼다. 붉은 쇳물이 류지가 누워 있던 곳에 주르륵 흘러내린다.
“조금만 참아!”
“빌어먹을 그러니까 내가 대피 시키라고 했잖아. 아악!”
류지는 이미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경비대장을 시체를 노려보며 외쳤다. 뭔가 낌새가 안 좋았지만 일본 제일의 클랜이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을 보이는 것도 우습기에 너무 느긋하게 대피한 게 실수였다. 켄타의 힐이 쏟아지자 가슴이 편안해 졌다.
“고맙다. 어서 다른 사람도 봐줘.”
“알았다. 조금만 참...컥...”
류지를 향해 한층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던 켄타의 눈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그러더니 두 손을 돌려 등에 있는 뭔가를 붙잡으려 끙끙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털썩 엎어졌다.
“안 돼!”
쓰러진 켄타의 등에는 긴 막대기가 부르르 떨리고 있다.
“힐러! 힐러!”
류지가 실성한 듯 힐러를 외쳤다. 켄타는 그와 초보헌터 때부터 함께했던 근 10년을 함께 활동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이렇게 덧없이 보낼 수 없는 이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켄타를 덮은 채 그의 방어스킬인 강체를 활성화시키고는 아공간에서 지혈제를 꺼냈다.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 때 마침 문이 박살나며 한 건장한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금일 비번이었던 제 3공대장이다.
“화살 공격이다!”
류지가 외치자 3공대장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부상자들을 옮겨라!”
“예!”
그를 따라 올라온 제3공대원들이 회의장에 들어섰고 공대장은 가장 전면으로 나서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오호라.
이십 여명 가량이 화살 밥이 되었을 때 상당한 강자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 제황의 화살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턱수염이 희끗희끗한 장년의 사내였는데 긴 창 한 자루로 용케 화살들을 쳐내고 있다.
“막아?”
입술을 실룩인 제황이 무한고에서 새로운 화살을 꺼내 들었다.
화살촉에서 깃까지 온통 검은색 일색의 이 화살은 특별한 이들을 위해 준비한 맞춤 애기살이었다.
드드득...
한계까지 잡아당긴 시위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춤추는 강기의 화살!]
쿠우우웅!
묵직한 발사음과 소닉붐을 뒤로 하고 한 줄기 빛이 섬전같이 날아갔다. 그러자 창을 든 남자는 감히 그 애기살을 경시하지 못하는지 온 힘을 끌어 모아 창끝에 오러를 생성시킨다. 줄기줄기 흘러넘치는 창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마치 둥근 원과 같이 만든다. 강기로 이루어진 방어막이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제황의 공격 목표는 애초에 그가 아니었다.
콰콰쾅!
붉은 강기 덩어리는 그를 지나쳐 한참을 더 날아가더니 거의 수직으로 꺾이며 뒤쪽에 쓰러져 있던 두 남자의 등을 습격했다. 관통하다 못해 분쇄해 버리는 그 위력에 주변에 있던 이들까지 폭풍에 날아가 버린다.
“으아아아!”
사내는 살기충천한 고함을 지르지만 제황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위험순위로 볼 때 사내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이를 공격하기 보다는 그의 뒤쪽에 무방비한 이들을 착실히 죽이는 게 이득이다. 그리고 지금의 공격으로 창을 든 남자의 몸에 큰 허점이 생겼다.
[폭발하는 강기의 화살!]
콰가가가가각! 퍼퍼펑!
순수 위력으로 가장 강력한 두 가지를 섞어 날리자 창을 든 남자가 양분되어 공중으로 회전한다. 힘이 남은 강기의 화살이 내부의 가장 큰 기둥을 박살내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최상층이 주저앉자 수십 명의 헌터들이 뛰어 오르는 게 보인다.
“자아, 가자.”
제황은 활을 거뒀다. 더 공격할 수도 있지만 멈췄다. 애초에 저들을 전멸시키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필요한 만큼의 반응만 끌어내면 된다.
-동철아. 가자.
-어? 벌써?
뭔가 싱겁다는 듯한 동철이지만 이내 수긍하고 퇴각을 시작했다. 물론 얌전한 퇴각은 아니다.
“으아아아!”
동철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뻗어 나오던 검푸른 기운이 이내 그의 양 주먹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츠츳...츠츠츳...
극한까지 응축되던 그 기운이 이내 한 점이 되는 순간 동철의 주먹이 벼락같이 뻗어나갔다.
[무적세]
콰가가가각!!!
동철의 주먹에서 뻗어 나간 둥근 원통형 에너지가 전방을 찢어발기며 튀어 나갔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탱커들이 들고 있던 방패에 힘을 집중시키며 방어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퍼퍼퍼펑
“우아아악! 아악! 괴물!”
최전방에 서 있던 탱커 둘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고 뒤를 받치던 이들도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그러나 그들의 재난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상대는 덩치만 큰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빠르다. 어느새 근거리에 붙어선 동철의의 두 팔이 미친 듯이 앞뒤로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벅!
[무적난무!]
수 톤에 이르는 파괴력을 머금은 동철의 두 주먹이 벽에 처박힌 탱커들의 방패 위로 무자비하게 내리 꽂혔다.
쿠쿠쿠쿠쿠쿵!
단숨에 수십 대를 후려갈긴 후 남은 건 박살나버린 벽과 붉은 피떡들 뿐이다.
“후욱...후욱...”
동철은 급격히 올라오는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몸을 날렸다. 물론 아공간에서 연막탄 세 개를 까서 던지는 건 잊지 않았다. 최루 성분까지 있기에 추적은 불가할 것이다.
“하하하”
크게 한 번 웃은 동철이 몸을 날렸다. 속이 후련하다. 수년 간 쌓인 게 한번에 풀리는 기분....오늘은 일본이 많이 시끄러울 것이다.
***
천황클랜 교토지부에서 발생한 무차별 테러는 헌터 관련 사건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국제 뉴스에서 상당한 비중을 두고 다뤄졌다. 일본 제 1의 천황클랜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방법이 소수의 최상위 빌런들이 대담하게도 대낮에 습격을 했다는 것과 그로 인해 교토 내의 교토시장과 교토경제인연합의 의장, 그리고 교토지부의 지부장과 부지부장이 한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기 때문이다.
빌런에 대한 제보는 많았다. 범인은 단 두 남자... 최소 6티어 급이라고 추측되는 빌런들이 교토지부를 쑥대밭을 만들었다는 것에 일본 내에서는 자국의 헌터전력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아무리 6티어 급이라지만 일본 제일의 클랜 지부 하나가 개박살이 났으니 부끄럽다는 것이다.
천황클랜에서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대한 도전이라 당일 기자회견으로 천명함과 동시에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그 당사자들은 이미 한국 내에 들어와 얌전히 이 사건을 티브이로 시청하고 있었다.
물론 둘 중 하나는 그다지 편한 마음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갈 때는 둘이었는데 올 때는 숫자가 무려 다섯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저희 가족은 더 이상 일본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책임져 주세요.”
“아, 저기 ... 그게...내가 왜...”
“폐를 끼치는 줄 압니다. 억지라는 것도 압니다.”
헌터 수십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떡방아를 찧던 동철은 자신의 앞에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아 가슴에 보자기를 끌어안은 채 허리를 숙이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연신 말만 더듬고 있다.
“난 모르겠다.”
제황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일찌감치 자기 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내용은 이렇다. 교토지부를 박살낸 둘은 무적성 지원팀이 준비한 차량을 타고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헬기로 옮겨 탄 뒤 한국으로 빠져나가려 했었다. 그런데 그런 동철을 가로막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동철이 구해줬던 오구라 아이와 그녀의 두 동생들이었다.
둘이 습격을 끝마치고 퇴각한 것이 채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 단 시간 만에 온가족을 끌고 온 오구라 아이의 실행력도 대단하다. 뭐 사실을 까보면 그녀의 가족이 두 여동생뿐이었고 항시 신속한 대피를 위해 짐을 싸두는 게 생활화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녀는 살려달라며 다짜고짜 동철에게 달라붙었다.
제황이라면 단번에 떼어버렸겠지만 동철은 제황처럼 매정하지 못하다. 웃기는 건 제황도 그걸 별로 말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상황은 지금 보는 그대로다. 안 데려가면 자신과 자신의 동생들은 무조건 죽는다는 말에 동철이 엉겁결에 그녀들의 짐을 받아들었고 함께 한국까지 와버린 것이다.
“얌마.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해.”
“네가 데리고 살던가.”
“야! 무슨 그런 무책임한 말을...!”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오구라 아이는 한국말도 잘했다. 기회만 되면 현해탄을 건너려 했던 그녀다.
“저기...일단...”
말만한 처녀가 사정을 하니 덩치만 커다란 만년 연애고자 동철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노력한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그녀의 두 동생은 방안에 숨어 고개만 쏙 내민 채 언니가 저 곰탱이를 어떻게 요리하는 가를 호시탐탐 지켜볼 뿐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걸 보면 언니를 응원하는 것 같다.
-계집애가 아주 당차? 호호호
-차라리 잘 됐지.
제황은 지금 상황이 딱히 나쁘지 않았다.
말은 안했지만 동철은 몇 년간 된 누적된 전투피로로 신체와 정신의 밸런스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강제 각성 후 군각성자로 생활하다가 곧장 대현클랜에 납치를 당해 온갖 고문을 당하며 실험체로 살았다. 그 이후는 어떤가. 인성을 상실한 괴물이 되어 삼천교에 의해 살인기계로 지내온 동철이다. 제정신을 차린 듯 보이지만, 몇 년간을 그렇게 지냈으니 겉은 몸이 괜찮더라도 정신은 사실 넝마와 마찬가지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가족인데 이 덩치만 커다란 친구인 동철은 고아출신이다. 고아원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드러내놓고 찾아 갈 수도 없는 애매한 처지... 그런 상황에 저런 군식구가 생겨서 전투 외의 경험을 하는 건 길게 봤을 때 동철의 정신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
다행이라는 건 동철이 저런 사람들에게 까지 매정하게 굴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은 혼자 움직여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