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11화 (111/301)

# 111

천황클랜 쿄토지부 습격 -2 (수정)

“커억!”

아니 두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남자가 그의 머리를 붙잡아 버린 것이다. 워낙 손이 커서 거의 머리를 그냥 감싸 버렸다. 그는 머리가 마치 압착기에 찌그러지는 기분과 함께 정신이 핑 하고 날아가 버렸다.

“뭐 별것도 아닌 것들이...”

후웅

“퍼어억!”

늘어저버린 쓰레기를 부러진 검을 든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놈과 함께 벽에 처박아버린 동철이 뒷좌석을 힘으로 뜯어 버렸다.

“어? 정신 차렸네?”

안을 들여다보니 소녀는 이미  정신을 차렸는지 차 안에 오들오들 떨며 동철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

“꺅! 괴물!”

“아...”

소녀의 말에 동철은 자신이 투구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제작자의 취향 인지는 모르지만 투구는 도깨비를 형상화한 모양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길게 찢어진 입에는 긴 송곳니가 삐죽삐죽 솟아 있으니 아까 꼬마가 도망친 것도 이해가 갔다.

“괴물은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가 구해준 것뿐이니 갈길 가쇼.”

“네? 아!”

동철의 번역기를 통해 들리는 어눌한 일본말에 눈앞에 있는 이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소녀는 이내 자신의 상황을 깨달았는지 서둘러 차에서 내리더니 동철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가...감사합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눈이 저절로 소녀의 가슴으로 향한다. 헐렁한 옷을 걸쳤다고 생각했는데 볼륨이 어마어마 했던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미소녀다. 투구 안 얼굴이 빨갛게 변한 동철이 손사래를 칠 때였다.

“감히! 천황클랜을 공격하다니! 너 이놈 거기 가만히 있어!”

어디선가 나타난 두 남자가 동철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그러더니 뒤춤에서 무전기 비슷한 것을 꺼내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모두 도망쳐! 헌터들이 몰려올 거야.”

사람들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한다. 단숨에 길에는 소녀와 동철만이 남았고 남자들은 연신 동철을 손가락질 하며 무전을 하고 있다.

“어서 피하세요. 천황클랜에서 사람들이 올 거예요!”

소녀가 동철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자신을 납치하려던 둘을 가볍게 때려 눕혔으니 이 사람도 헌터 같기는 하지만  지금 몰려올 이들은 이 교토를 지배하는 절대자들이었다.

초법적인 힘을 휘두르는 새로운 지배계층

그녀는 이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감만 넘치는 어수룩한 이가 다치는 건 싫었다. 그러나 남자는 별로 급하지 않은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소녀에게 느긋하게 되물었다.

“쟤들이 천황클랜?”

남자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소녀가 그의 손을 붙잡고 골목으로 이끌려 했다.

“그래요. 천황클랜한테 걸리면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어요. 어서 빨리!”

소녀가 낑낑거리며 끌고 가려고 해도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머리 부분을 쿡 누르더니 말했다.

-제황아.

-왜?

-지금 시작한다.

-음? 화장실은?

-나오다가 들어갔다. 다 끝내고 싸련다.

-그래. 뭐... 알았다. 길어질 수도 있는데 알아서 처리해라.

-그래.

제황과의 무전을 끝낸 동철이 몸에 걸치고 있던 코트를 획 잡아 뜯었다.

어차피 전투가 시작되면 넝마가 될 것이다.

부우우욱...

거추장스럽게 걸치고 있던 것이 찢어져 나가자 안에 입고 있던 거무튀튀한 중장갑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어어...”

동철이 흑색의 갑주를 드러내자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중압감에 소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본 동철이 다시금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저기... 이름이...”

“아이..요. 오구라... 아이”

동철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대답해 버린 그녀였다.

“오구라 아이양. 이제 여긴 위험하니까 멀리 도망쳐 있어요. 집으로 가던가.”

“예. 예?”

“아무튼 그렇다고요.”

백치미를 보이는 미소녀의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는 동철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갈 때였다.

“저기다!”

때마침 천황클랜 교토지부 쪽 도로로부터 십여 명의 남녀가 날아오는 게 보인다. 차를 뛰어넘고 건물 벽을 달린다. 나 헌터요 할 정도로 온 몸에는 살벌한 무장을 갖춘 그들은 동철을 발견하고는 손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거참, 도망치라니까.”

자기 때문에 다리가 풀려 도망치지 못하는 것도 모르는지 혀를 찬 동철이 아공간에서 거대한 너클 두 개를 꺼내 들었다. 가지런히 난 5센티 가량의 긴 돌기가 흉흉하게 빛난다.

“이러면 안 좋은 거 보여줘야 하는데”

너클을 양손에 낀 동철이 목을 한번 꺾은 다음 양 주먹을 자연스레 앞으로 내밀었다.

양 손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너클의 감촉에 동철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걸리다가 이내 악몽하나는 떠올리고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허리 제대로 안 피냐! 평생 기어 다니게 해줄까? 허리! 허리! 똑바로!]

마치 귀에 환청처럼 들려오는 권제의 외침에 동철은 저도 모르게 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열흘 내내 두들겨 맞은 시간이 안 맞은 시간보다 많을 정도로 얻어터지며 얻은 스킬이었다. 동작 하나하나를 취할 때마다 환청이 들려와 진득한 스트레스가 머릿속에 스며드는 느낌이다. 잠시 상상만 했는데도 일 년치의 스트레스를 몰아서 받은 것 같다.

“시끄러워. 영감탱이...”

차마 그의 앞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들이 독백처럼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면 지금 달려오고 있는 이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좋은 샌드백들 아닌가. 대현클랜과 삼천교와 붙어먹던 놈들이니 이유까지 안성맞춤이다.

척추를 타고 알싸한 즐거움이 밀려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오늘 본격적으로 스트레스 풀어보자.”

동철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천황클랜의 헌터들은 이미 동철의 지척에 다 달았다. 그들은 동철을 생포할 생각 자체가 없는지 각자 지닌 무기들을 동철을 향해 베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동철은 그다지 급하지 않다는 듯 느긋하고 장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적세”

후우웅

마치 정권 지르기처럼 앞으로 가볍게 밀어 올린 동철의 주먹에서 검은 오러가 뭉클하고 올라오는 순간 그것은 동철의 주먹에서 뻗어 나와 전방을 향해 폭발적으로 뻗어 나갔다.

“우와왁!”

“피해!”

퍼퍼퍼펑!

동철의 주먹에 직격당한 네 명의 헌터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더니 의식이 끊어져 버렸다. 움푹 들어간 가슴 방어구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대부분이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꺅!”

긴 송곳과 같은 검을 찔러가던 여자헌터는 거대한 주먹 그림자가 그녀에게 쇄도해 오자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로막았다. 마주치는 순간 피떡이 될 거라는 본능에서 올라온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그 행동은 적절했다. 비명을 지른 덕분에 동철이 정신을 차리고 그나마  손바닥에 두들겼으니까.

쩌억...

떡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바닥에 눌러 붙어 버렸다.

“거참, 여자는 안치려고 했는데”

이전의 동철은 여자는 웬만하면 손을 안대는 주의였다. 문제는 몸에 익어버린 이놈에 무적권이 문제다.  무적권은 모든 동작을 초월적인 반사신경으로 구현하도록 만들어진 스킬로써 간결하고 효율적이며 힘을 중시함과 동시에 난전 상황에 특화된 몬스터 레이드 전용 전투법이었다. 주먹이 손바닥으로 변하고 손바닥이 송곳으로 변해 적을 후벼 파 버린다.

“메이카를! 저놈이! 죽여버려!”

“으아아아!”

여자의 동료로 보이는 남자헌터 셋이 눈에 불을 켜고 동철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달려드는가 싶지만 셋의 합격은 빈틈이 없었다. 각기 든 장검에 푸른빛을 머금은 그들은 동철의 전신을 난도질할 듯 덮쳐 왔다.

그러나...

“새끼들 처음부터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었으면서...”

티티팅!

세 개의 검격은 동철의 중갑에 긁은 자국 세 개만 남기며 지나갔다. 예술적인 곡면회피기가 터지고 중심을 잃은 셋의 몸에 동철의 두 주먹이 공평하게 두들기며 지나갔다.

[무적세]

쩌저적! 퍼퍼퍽! 퍽퍽!

“워어억!”

콰콰쾅!

날아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튕겨나간 셋이 앞에 정차해 있던 버스 뒤꽁무니에 가지런히 박혀 버렸다. 둘을 그대로 허리가 돌아갔고 하나는 양 팔이 기형적으로 꺾여 버렸다.

“아, 이제야 좀 풀리네.”

기분 좋다는 듯 몸을 가볍게 돌린 동철은 아직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구라 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 원래 여자 안 때려요.”

“...”

방금 여자를 두들겨 팬 것 때문에 혹 그녀가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닐까 조바심 낸 동철이 해명을 했지만 그녀는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멍하니 동철을 바라볼 뿐이었다.

“쩝...”

입맛을 다신 동철은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작전을 펼쳐야겠다. 지금까지는 사실 몸풀기에 불과했다.

쿵... 쿵...쿵쿵... 쿵쿵쿵!

서서히 걷던 동철이 조금씩 속도를 높이다가 이내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각!

후와아아앙!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보도블럭이 박살나 튀어 오르고 동철의 뒤로 따라오는 매서운 폭풍이 그것을 사방으로 날려 보낸다. 헌터 하나가 일으키고 있는 재난에 일찌감치 여기저기 숨은 일반인들을 그것을 숨죽이고 지켜보며 동철이 목적지로 향한 곳을 바라봤다.

저들은... 지금 저 괴물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전부 와라!!!”

동철의 외침이 안개를 찢고 사방에 울려퍼졌다.

***

콰아아아앙!

“위이이이잉”

마치 지진이 난 듯 천지를 진동시키는 폭음 소리와 함께 요란한 사이렌음이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천황클랜 교토지부 앞을 지나던 차량들을 어느 틈에 사라지고 자욱한 먼지와 폭발음,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만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드르르르륵!

“피햇! 괴물!”

“지원! 지원!”

교토지부 정문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는 시간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몸집을 서서히 불려가며 주위의 헌터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폭발음과 비명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잘하고 있군.”

빌딩 첨탑 끄트머리에 쭈그리고 앉은 제황은 지상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간결했다. 동철이 시선을 모으는 사이 제황이 천황클랜 교토지부를 공격한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그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건 바로 풀세트로 도배한 동철이었다. 그깟 아이템이 헌터의 실력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헌터를 전혀 모르는 말이다. 특히 동철과 같이 몸으로 부딪히는 이들은 방어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전에 제황과 동철이 무적성에서 붙었을 때 동철이 지금과 같은 방어구를 걸쳤다면 둘의 싸움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시작해야지.”

제황은 무한고에서 지름 1미터 가량의 타원형의 물체를 꺼내 내려놨다.

네 개의 발이 달려 마치 검은 등껍질을 지닌 바퀴벌레처럼 생긴 이 물건은 이전 대현클랜 비밀연구소에서 훔쳐 온 브레이커라는 물건이었다. 당시 두 대를 훔쳤는데 두 대 중 한 대는 무적성에 연구용으로 넘기고 한 대만 가져온 상태다.

제황은 위에 부착된 패드를 떼내 손에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사용법은 익혀 놓은 상태다.

-재미있어 보인다.

-아서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황이 사람 많이 죽이는 걸 걱정하던 그녀는 이내 그런 건 뒷전으로 까먹은 듯 대량학살 무기를 탐내고 있다.

궁기는 호기심이 강했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편이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제황이 만지고 있는 브레이커라는 병기는 그녀의 관심을 끌어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물건에는 젬병이었다. 그래서 제황 또한 그녀에게 이걸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탐지 좀 해줘.

-알았어.

허공중에 나타난  붉은 매 한 마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교토지부 주변을 흐르는 방어막이었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이능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적이 염탐할 것을 대비해 이목을 흐리거나 가려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저들 또한 수 많은헌터를 거느린 클랜답게 방비가 충실했고  그것들은 제황의 궁기안의 탐지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도 궁기를 막을 수는 없다.

-마흔 명이 앉아 있어. 다섯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간다.

-좋아.

제황이 굳이 교토지부를 목표물로 삼은 것은 별 것 없었다. 바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정기총회가 있는 곳이 이곳이었기에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이 정기총회에 참가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클랜지부장을 포함해서 각 공격대의 공대장을 비롯하여 도시의 유지들과 친 천황클랜의 입장에 서 있는 기업인들까지 다양하다.

패드를 조작하자 검은 동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목표를 지정한 후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끝이다.

위이이

미세한 소음을 내며 날아오른 브레이커가 공중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도장이 튀기에 상당히 높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경로를 설정했다. 그때 궁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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