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10화 (110/301)

# 110

천황클랜 쿄토지부 습격 -1

“장례는 어떻게 했냐.”

“일단 무적성에 보관할 거다.”

“걔네 부모님한테 안 전해줘?”

“내 마음이야.”

수지가 원하는 바는 모른다. 어쩌면 부모님의 품에서 영면에 들고 싶어할 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제황은 그들 또한 수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욕심이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바란 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수지는 잘 갔냐?”

“응.”

수지가 숨을 거둘 때를 떠올리며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에 수지가 지은 것은 미소였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마음에 묻기로 생각했다.

“후, 나쁜 계집애... 젠장”

수지에 대한 욕은 아닐 것이다. 뭔가 회한이 남는 듯한 동철의 말에 고개를 까딱거리던 제황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레이드가 시작되었겠군.”

“그래?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 하나.”

“그렇지.”

동철에게 대답한 제황은 무한고에서 아이템들을 하나하나 꺼내 몸에 걸쳤다. 이전에 썼던 암살자 전용 세트인 [그림자지옥]이 아닌 이번에 무적성에서 가져온 건 데미지 극대화 옵션이 붙은 세트 아이템 들이다.

[세트 아이템 ‘천둥도마뱀 세트’이 완성되었습니다.]

[세트효과]

[ 마나를 이용한 공격 효과가 30프로 증가합니다.]

[원거리 공격의 극대화 효과 20프로 상승합니다.]

오늘은 공격력 세트로 가져왔다.

옆을 돌아보니 동철도 검은색 일색의 중갑옷으로 이미 완전 무장을 했다. 가뜩이나 거대한 덩치에 두꺼운 갑주를 껴입으니 예전 엘어스에서 처음 대면했던 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쿵...쿵

동철이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바닥이 비명을 질렀다. 상체를 휘휘 돌리며 관절가동범위를 확인한 동철이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좋네.”

“6성의 방어구 제작장인이 만들었으니까.”

무적성에서는 동철을 위해 최상급의 아이템 세트를 준비했다. 아이템의 이름은 [괴력난신 세트]로써 동철 전용으로 제작된 무구다. 세트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힘과 정신보호에 집중된 스킬을 지닌 이것은 미스릴 합금으로 제작되어 제황이 입고 있는 것보다 수배 더 비싼 무구였다.

검은 빛이 은은하게 흐르는 리커브 보우를 꺼낸 제황이 시위를 걸었다.

[장현우-천둥]- 슈페리어 등급

활세기:350파운드

최대사거리:3000미터

유효사거리:1500미터

제질:미스릴 합금

특수능력

증폭(B급)

증폭(B급)

제황은 동강난 스톰레이지 대신 다른 활을 받아왔다. 재질이 금속이기에 그냥 이으면 될 것 같지만 아이템화 된 무기는 제작자의 동급의 수준이 아니면 고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활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스톰레이지는 그 제작자인 에드 마르카넨에게 보내진 상태다. 활이 너무 약해서 부서져 버렸다는 말로 살짝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긁은 뒤 얼마가 더 들어도 좋으니 최고의 활로 개조해 달라고 했으니 마르카넨이라면 그 좋아하는 술도 끊고 더 괴물 같은 활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 이제 우리도 시작해 볼까?”

“그래.”

테라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찬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온다.

자욱하게 낀 물안개 속 저 멀리 멀리 높다란 일본의 고성이 보이고 그걸 바라보는 동철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대동아천하천황클랜 교토지부]

제황과 동철은 지금 일본 교토의 비와호를 끼고 우뚝 서 있는 천황클랜의 교토지부가 바라다 보이는 모텔에 와 있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바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생기라고는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일본의 하층민 들이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발붙이고 살 수 밖에 없는 이들, 다른 나라가 몬스터로 인해서 골치를 썩고 있다면 일본은 그것에 하나의 문제를 더 가지고 있었다.

지진, 화산, 그리고 방사능 오염... 아주 오랜 과거 후쿠시마에 있었던 원자력발전소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에 크나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기형아의 출산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의료비의 상승, 끝나지 않는 불경기로 영아 출산율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하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이들은 외국으로 도망쳐 나갔다.

일본의 정치는 나아질 줄 모르고 사회에는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과거의 향수에 완전히 미쳐버린 극단적인 극우 세력이 완전히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초강대국 일본은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화끈하게 몸만 풀면 된다 이거지?”

투구를 눌러쓴 동철이 어깨끈을 조이며 말했다.

“대신 적당한 때 되면 뒤로 빠지는 거다. 빠지는 시기는 내가 말해 줄게. 헤드셋 감도 체크”

“감도 체크 이상 없음.”

“자동 번역기 켜는 거 잊지 말고... 말 못 알아들어서 엉뚱한 놈한테 시비 걸지 마라.”

“알았다. 임마.”

고개를 끄덕인 동철은 옷걸이에 걸어놓은 커다란 코트를 집어 들었다. 갑옷 위에 뒤집어 쓰니 마치 거대한 철동상이 서 있는 느낌이다.

“간다.”

“그래.”

동철이 밖으로 나서자 제황은 다시 한 번 무장을 점검했다. 모든 곳을 꼼꼼히 점검하던 제황이 이내 행동을 멈추고는 궁기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도 삐져 있냐?

-삐진 게 아니라니까!

-네 말대로 성산으로 가는 건 미루기로 했잖아.

[신벌의대행자]의 힘을 가지기 위한 단초를 제황은 알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궁기가 알고 있으니 찾자고 하면 불가능한게 아니었다. 그러나 궁기는 제황을 말렸다. 지금의 제황은 백이면 백 그 힘에 먹혀 버릴 것이다. 제황은 궁기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네가 계속해서 인간을 죽이는 거야. 네가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네 안에 피가...

-그만...

궁기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제황은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뜻은 잘 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뜻을 침범당하는 것은 허락지 않는 제황이었다.

-걱정 되서 하는 말이야. 네가 오늘 얼마나 많은 생명을 거둘지 아니까.

***

호텔을 나선 동철은 교토지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빠르게 걷던 이들은 동철이 사람의 행렬에 끼어들자 마치 못볼 것을 봤다는 듯 모두 멀찌감치 물러나 걷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헌터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마치 전국시대의 사무라이들과 같이 행동하는 그들은 각 클랜들의 세력권 안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대한민국이 헌터들이 헌터윤리를 강제로 주입시키고 그 힘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규제했다면 일본은 그 가진 이능들의 강함을 마치 계급처럼 인정해 줌으로써 그들의 일탈을 방조했다.

툭...

“죄...죄송합니다.”

동철의 다리에 와서 부딪힌 한 아이가 동철이 내려다보자 겁에 질린 눈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도망쳤다.

“엉망이군.”

이런 일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길을 걷던 동철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대형리무진이 문을 연 채 길가에 서 있는데 한 소녀가 차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철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주위에 걷는 이들이 그녀를 모른 체 한다는 것이다. 마치 연관되는 걸 두려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얌전히 타!”

“살려주세요!”

소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행여 그녀에게 닿을까 두려운지 그녀를 피해 길을 가고 있다.

“료스케! 빨리 빨리 태워라! 바쁘다!”

“알겠습니다! 이년이 몸에 상처 안내려고 했는데”

짝!

남자는 반항하는 소녀의 뺨을 매섭게 후려쳤다. 그러자 소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 주저앉았고 남자는 그녀를 들어 마치 휴지조각처럼 차문으로 구겨 넣었다. 그러더니 주위를 사납게 쏘아보고는 운전석 문을 연다. 마치 소녀를 납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이다.

“씨발...”

동철의 걸음이 멈췄다.

가급적이면 모른 채 그곳을 지나가려던 동철은 소녀가 뺨을 맞는 순간 이마에 힘줄이 오르는 걸 느꼈다. 여기서 참으면 사내새끼도 아니라고 생각한 동철이 헤드셋을 눌렀다.

-제황아.

-왜

-내가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 작전시간 10분만 미루자.

동철의 말에 제황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많이 급하냐?

-좀 급하네.

이유를 좀 곡해한 듯 보이지만 상관없다. 화장실을 가던 저놈들을 두들기던 막힌 걸 풀어버리는 건 같으니까.

-알았어. 어차피 작전은 너랑 나랑 둘 뿐이니까. 한 20분만 미루지 뭐.

-흐흐, 알았다.

친구의 양해를 얻어낸 동철이 주먹을 풀었다. 10분이면 충분한데 20분이면 아주 시간이 흘러넘친다.

***

“바보 같은 년이 시간 끌게 하고 있어.”

욕지거리를 하며 운전석에 올라탄 료스케는 뒷좌석에 실신한 듯 누워있는 소녀를 힐끔 바라봤다. 대장이 며칠 전부터 찍었던 소녀다. 자신들을 교묘하게 피해 다녔기에 매번 허탕을 쳤지만 오늘 끝내 붙잡았다. 작고 귀여운 얼굴과는 다르게 풍만한 몸을 가진 소녀의 몸을 보니 저절로 뒷좌석으로 손이 간다.

“료스케, 손대는 순간 넌 그 손 잘라야 한다.”

“예예. 죄송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형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료스케가 재빨리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자신 같은 말단은 아마 대장이 충분히 맛을 본 뒤에야 차례가 오리라는 생각에 료스케는 입맛만 다시며 전면을 바라봤다. 클랜지부에서 이제나 저제나 이년을 기다릴 대장을 생각하니 손대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 때... 출발하려는 차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우뚝 멈췄다.

“야! 너 뭐야! 저리 안 비켜?!”

료스케는 창문을 열고 차를 가로막은 남자에게 외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밀고 지나가고 싶지만 이 리무진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가는 이 리무진의 주인이 자신을 리무진 대용으로 매일 사용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성난 료스케는 운전석에 비치되어있는 검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려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차피 그냥 썰어버리면 끝이다. 감히 이곳을 지배하는 천황클랜의 차를 막아서다니... 아침부터 피를 보게 생겼다고  혀를 차던 료스케는 이내 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남자가 한쪽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는데 그 주먹이 마치 거대한 망치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야 임마!”

료스케는 황급히 남자의 행동을 멈추려 했지만 남자가 조금 더 빨랐다. 그리고 료스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주먹이 리무진의 보닛에 작렬했다.

쾅! 꽈직!

내려찍는 순간 본넷이 움푹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종잇장처럼 찢어져 들어가고 차의 두 앞바퀴가 그대로 터져버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어어...”

료스케는 이 황당한 광경에 아무 말 못하고 멍하니 사내를 바라봤다. 단 한방에 리무진을 내려앉아 버린 것도 무섭지만 남자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쾅!!!

남자의 양손이 구겨진 차 보닛으로 움푹 들어가더니 용쓰는 소리와 함께 차에서 쇠비틀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안 돼!”

뒤늦게 정신 차린 료스케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지만 칼은 남자의 몸에 부딪히며 힘없이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남자는 보닛에 더욱 깊게 양손을 쑤셔 넣더니 이내 좌우로 벌리기 시작했다.

꽈직! 꽈꽈꽈꽉!

차가 반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광경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자가 눈을 사납게 일그러뜨리더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공간에서 긴 대검 한 자루를 꺼내 들고는 남자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 쳤다.

챙!

그러나 그 대검 또한 힘없이 부러져 버렸다.

“너...넌 누구냐!”

무기가 상대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그대로 박살나 버리자 남자는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그러자 그 사내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네 차에 타고 있는 애 오빠.”

“뭐? 이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내의 말도 안 되는 대꾸에 남자는 대화를 포기했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척 봐도 상당한 능력자. 자신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이기에 지원을 부르려던 그는 갑자기 두 눈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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