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09화 (109/301)

# 109

계략-2

“그래서 제가 지금 팀장님한테 가져온 것 아닙니까.”

“으음”

부하의 말에 팀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독각룡... 이게 대체 몇 마리야.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 곳에 뭉쳐 있을 수 있어?”

“저도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번을 다시 확인한 겁니다. 이 작은 계곡에 독각룡만 60여 마리입니다.”

부하의 자리에 가서 앉은 그가 빠른 손놀림으로 데이터 로그를 재조작하기 시작했다. 시간대 별로 체크한 것을 하나하나 지우고 화면에 다시 띄운다. 부하가 1시간여 걸린 것이 그의 손 안에 10분 만에 재정립 되었다.

“이거 참...”

“맞죠?”

팀장이 재확인을 했는데도 그대로 나오자 그는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금보다 더 귀한 몬스터 60마리가 뭉쳐 있는 게 발견되었으니 오죽 기쁘겠는가. 그때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이 모여 있을 것 같나?”

팀장의 말에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혹시 짝짓기를...”

“짝짓기? 하...”

탁...

“하, 이런 놈이 서울대몬스터생태학과 수석이라니... 잘 들어 임마. 독각룡은 철저히 혼자 생활하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이렇게 뭉쳐 있다면 대략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추측할 수 있다.”

“예.”

“첫째는 이곳에 독각룡들이 환장할 만한 먹이가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건 기각이지. 그렇다면 독각룡들끼리 신나게 싸우고 있을 테고 말이야. 두 번째는 근처에 엄청난 적이 있다는 건데 탐지 결과 그런 건 보이지 않아.”

“그럼 세번째는?”

“독각룡들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면서도 모여들게 하는 구심점이 있다는 뜻이지.”

“구심점이라면...”

“어쩌면 독각룡이라는 몬스터들의 우두머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우두머리라니...대단하군요.”

“흥...단지 대단?”

한숨을 내쉰 그는 더 이상 이 바보 같은 부하에게 설명하는 것을 그만뒀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계곡 부분만 기밀 등급으로 처리해.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돼.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부하를 돌려보낸 그는 서류를 한 번 더 훑으며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문제는 말이다. 그 정도가 뭉쳤다면 우리 클랜의 힘으로는 위험하다는 거다.”

****

레이더 센터 팀장의 보고는 대현클랜 수뇌부들을 모두 새벽에 기상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평안남도에 있는 대현클랜 뿐만이 아닌 서울에 있는 모든 수뇌부들까지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브리핑!”

“예. 금일 새벽 3시 제 7공격대의 탐지기에 대규모의 독각룡 무리가 계곡에 뭉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팀장의 예상으로는 독각룡의 우두머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나눠드린 자료에 탐지내용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비서의 말에 모든 이들이 각자의 태블릿으로 넘어온 자료들을 검토하기 바쁘다.

자료를 훑은 이성재가 입을 떼었다.

“확실한가?”

“날이 밝아야 어느 정도 윤곽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그 위치가 계곡이니만큼 드론으로는 한계가 있고 직접 확인만이 답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단독생활을 하는 독각룡이니만큼 그 정도 숫자가 뭉쳐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좋아. 그럼 우두머리면 8티어나 9티어 몬스터가 섞인 것으로 가정할 때 레이드 가능성은?”

이성재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신중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8티어 몬스터만 상정해도 현재 클랜 단독의 레이드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클랜마스터에게 레이드 불가를 이야기하려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6티어 60여 마리와 8티어 한 마리라면 클랜의 모든 역량을 모았을 경우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서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9티어 몬스터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레이드전략팀장의 말이다.

그러나 이성재는 그 말에 화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전력이면 가능하지?”

“6티어 몬스터들은 일반적인 공격대로도 커버 가능하지만 9티어 몬스터는 4성이나 5성으로 이루어진 헌터들은 오히려 불필요 합니다. 최소 6성 헌터 50명 이상이 뭉쳐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9티어 몬스터의 탱킹이 가능한 초강자가 탱커를 맡아 줘야 합니다.”

“허...6성... 50명, 헌터사무국에 문의해야 하는 숫자 아닙니까.”

“그보다 9티어를 탱킹할 사람이 있나?”

그의 말에 전략팀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연다.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권제님 정도는 되셔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냉정히 따지면 8티어 몬스터도 저희 클랜의 역량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이성재가 고위 마나석을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레이드에 권제 정도 되는 인물을 끼워 넣는다? 그렇게 되면 레이드의 주체는 대현클랜이 아닌 무적성이 되어 버린다.

“자격이 되는 이들 중 외부에서 용병으로 참가 가능한 공격대는 없는 겁니까? 그리고 우리 나라에 7성 헌터가 권제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원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지만 눈치만 보다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권제 외의 7성 헌터 둘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외견상 완전 은퇴 상황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자들이 용병으로 참가한다? 엄청난 금액을 요구할 것이다. 아니 그 정도 실력자라면 애초에 돈으로 회유가 불가능하다.

“결론은 무적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군.”

이성재가 입을 떼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권제님을 찾아봬야겠군.”

이성재는 지금 이 순간 마음속에 하나의 큰 결심을 했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다.

다시 한 번 모험이 필요할 때다.

다음날 이성재는 독각룡이 우글거리는 계곡에 대한 정밀탐사를 지시한 뒤 무적성의 전진기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권제와 약 한 시간가량의 독대를 마친 뒤 수심이 깊은 표정으로 전진기지를 나섰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권제와 이성재 둘의 독대였기에 이비서가 이성재의 곁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수락하셨다. 권제님과 권제님이 이끄는 공격대가 레이드에 참가해 주신다는군.”

그의 말에 이비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또 몬스터 사체는 전부 무적성에서 가지는 대신 몬스터들의 마나석은 전부 넘겨주시기로 했다.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다면 그것까지...”

“그런데 왜 이렇게 얼굴이...”

“조건이 있었다.”

“어떤 조건을 내밀었기에...”

“앞으로 1년간 대현클랜이 무적성의 뜻에 따라 대한민국국토수복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과  천황클랜과 확실히 손을 뗀다는 증거로 저번 사건에 연루된 천황클랜 암살대를 우리 손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예? 무적성이 그걸 어떻게...”

“이미 다 알고 있더군.”

“이럴 수가...”

처음 조건이야 얼마든지 수락 가능하다. 클랜이야 원래 몬스터를 레이드 함으로써 조직을 유지한다. 레이드가 진행되는 곳이 해외가 되었던 북한이 되었던 상관없다. 문제는 천황클랜의 암살대를 처리하라는 것은 천황클랜과 손을 완전히 끊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천황클랜은 삼천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삼천교는 저희와도...”

“정확히 이야기 해. 우리가 아닌 대현그룹이다. 난 헌터나 몇 지원해 줬을 뿐이지 엄연한 제 3자다.”

이성재는 지금 대현그룹과 자신을 구분 짓고 있었다.

“권제님이 그러시더군. 곧 삼천교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주체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될 거라고...”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지는 이비서였다.

“정말 미국이 움직이는 겁니까? 그들로서는 딱히 얻는 게 없습니다.”

저스틴포인트의 수복? 오크들에 대한 복수? 삼천교라는 사교무리의 척살? 미안하게도 미국은 그런 정의로운 감정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의 미국은 철저히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있다. 아니 곧 생길 거라는 게 권제님의 말씀이다.”

“생긴다니요?”

“천황클랜”

“예?”

“무적성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모두 천황클랜에 떠넘길 거라고 하더군. 증거야 차고 넘치지. 그 빌어먹을 작은할아버지가 흘린 것들이 오죽하겠냐. 천황클랜은 일본의 헌터전력의 2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 천황클랜을 국제재판소로 끌어다 앉힐 것이고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을 거라고 한다. 천황클랜이 가지고 있던 엘어스의 지분을 미국과 한국이 찢어가진다.”

“일본은 강합니다.”

“그래. 강하지. 그런데 그 사이에 낀 대현클랜은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본의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그 말에 이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것이다. 천황클랜과 삼천교는 애초에 너무 큰 것을 건드렸어. 아니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한 거지.”

“그럼...”

“그래. 오늘 밤 당장 시작한다.”

“그렇지만 마스터,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다는 확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급하게...”

이비서의 말에 이성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무적성에서 먼저 확인해 줬다. 최하 8티어 몬스터라고 하더군.”

“무적성을 맹목적으로 믿는 건 위험합니다.”

“알아. 그보다 놈들은 아직 그곳에 있겠지?”

암살대의 은신처를 제공한 것이 대현클랜이었다.

“예.”

“좋아. 지금부터 이렇게 처리한다.”

***

“...라는 거지.”

“거기까지 예측한 거야?”

“그래.”

앞서 걷는 제황의 시큰둥한 대답에 동철이 허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기는 하지만 가끔 제황이 머리 쓰는 걸 보면 이게 자신과 같은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대현클랜의 팔다리를 잘라낸다고?”

“어. 원래 계획이었어. 처음부터 증거를 내밀면 의심 많은 이성재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이성재가 가장 목말라하는 마나석으로 흔든 다음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는 거였지.”

“거긴 그런 몬스터가 없잖아.”

제황이 억지로 만든 상황이라는 아는 동철이었다.

“반신반의한다고 해도 이미 이야기는 끝난 거야. 그리고 독각룡 60마리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권제님과 무적성이 레이드에 들어갈 거야.”

“아...”

“마나석의 유무도 상관없지. 무적성이 몬스터의 존재를 확인해 줬으니 이성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황클랜의 암살대를 이성재가 공격할 테니까. 이성재의 배신을 천황클랜이 아는 순간 이성재는 잠시나마 완전히 고립된다. 그것도 무적성의 권역 안에서... ”

그리고 이성재가 완전히 고립되는 순간 제황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바로 대현클랜의 배신에 분노한 천황클랜의 암살자로 분해서 말이다. 무적성의 보호도 없을 것이다. 우두머리를 잃은 대현클랜은 무적성이 흡수한다.

“그런데 만약 이성재가 거짓으로 암살대를 공격한다면?”

동철이 예리한 부분을 파고 들어왔다. 그러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 온 거야. 이성재를 믿을 수 없으니까.”

***

결론만 말하자면 이성재는 천황클랜의 암살대를 공격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은신처를 제공해 줬으니 가장 효과적인 공격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은신처의 위치는 평양 외곽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거짓 몬스터 출현 경보를 뿌린 후 대현클랜이 직접 운용하는 암살팀으로 안전가옥을 둘러싸고 각종 화기로 벌집을 만들어 버렸다.

물론 전부 처치하지는 못했다. 암살대의 규모가 커서 두 개의 안전가옥으로 나눴는데 한쪽은 전멸시켰지만 한쪽은 절반 이상이 탈출한 것이다.

결과야 어쨌건 이성재는 할 만큼 했다.

그리고 무적성에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알린 이성재의 뜻에 화답하듯 무적성은 다음날 독각룡이 우글거리는 계곡에 대한 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성재는 지금 그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레이드에 직접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그곳에 끼는 건 무리였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불안해. 불안해.”

클랜마스터용으로 개조된 무장버스 안에 앉은 이성재는 연신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려 권제가 레이드에 들어가는데 그 수혜자가 될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을 수 없어 독각룡 필드까지 따라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레이드는 아직 인가?”

“예. 너무 좁은 곳에 독각룡이 몰려 있으니 충분한 탐사 후에 레이드가 진행될 거라고 합니다.”

“후우...”

이성재는 한숨을 내쉬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검푸른 바탕에 수십 개의 노란 점이 찍혀 있다.

“걸리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이비서가 물었다. 그러자 이성재는 변화없는 모니터를 쿡쿡 누르다가 말했다.

“왜 없는 거지?”

아무리 탐지를 펼쳐도 우두머리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는다.

“내가 놓친 게 있어.”

이성재는 몇 시간 전 만난 권제를 떠올렸다.

큰 용단을 내린 자신을 칭찬하는 와중에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챈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게 무적성의 계략이라면?”

이성재의 말에 이비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펴졌다.

“마스터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천황클랜과는 이미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이성재라고 무적성의 뜻을 얌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암살단의 리더인 사사키 대장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했다. 무적성이 너희를 눈치 채고 우리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우리는 공격할 수밖에 없으니 적당한 피해를 보여줘야 한다. 또한 앞으로 천황클랜과의 거래는 최대한 숨겨야 한다.

그러자 사사키 대장이 그에 대한 대안을 내놨다. 비전의 술법을 통해 도망친 뒤 잔챙이 몇을 놓아둘 테니 대대적으로 공격하라고 말이다.

“암살대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긴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흥, 우리를 믿을 수 없다는 거군.”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알아.”

한 마디로 이성재는 양다리를 걸쳤다. 무적성을 기만한 뒤 고위 몬스터의 마나석만 얻은 뒤 발을 빼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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