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07화 (107/301)

# 107

한수지의죽음-2(수정)

“나 안아 줄래?”

“그래. 그래.”

제황이 한수지를 안아들었다.

“하아, 좋아. 이렇게 좋았구나. 네 품이...”

한수지의 목소리 안도감이 돌았다.

타탁...

그 때 궁기가 제황의 곁에 내려앉았다.

“살려야 해!”

“기다려봐.”

궁기가 한수지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다른 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으며 회복시키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부에서부터 괴사되고 있어. 마나도 가닥가닥 끊어져 있고...너 계속 싸우고 있었구나.”

궁기의 말에 제황이 떨리는 눈으로 한수지를 내려다봤다.

“나 계속 저항했는데 역부족이었어. 미안해.”

그녀는 최음제와 주술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강력했고 그나마 아주 찰나의 순간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춥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제황이 한수지를 안으며 외쳤다. 그러나 한수지는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제 힘들 것 같아. 그보다 참 좋네. 네 본모습을 볼 수 있다니...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한수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제황의 볼을 감쌌다.

“조금만 참아!”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느껴진다. 조금만 더 참으면...

제황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이런 네 모습 나만 알고 가길 바랐는데...”

안타깝다는 말하던 듯 한수지가 고개를 돌려 궁기를 바라봤다.

“얘 좀 잘... 부탁해요. 언니”

“안 죽으니까. 이별은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

궁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지금 한수지가 살아있는 것은 모두 궁기의 힘이었다. 그녀가 힘을 발휘해 최대한 그녀의 내부 붕괴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때 흔들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리고 사랑했...”

마지막 말을 내뱉던 한수지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안 돼.”

제황이 작게 중얼거렸다.

“안 돼!!!”

눈물 섞인 한 남자의 외침이 안타깝게 메아리 쳤다.

***

제황은 전진기지 내에 있는 응급센터로 옮겨졌다.

무리한 마나운용으로 온 몸에 크고 작은 내상이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제황의 몸에 상처를 입힌 비도에는 꽤 지독한 독이 발려져 있었다. 다행히 제황의 저항능력이 뛰어나 독에 중독이 지연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제황 또한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으리라.

“멍청한 새끼”

제황에게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동철이었다.

“...”

그러나 제황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병상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대현클랜 놈들은?”

“발뺌 중이다. 그 이성재라는 개새끼 진짜 대단한 놈이다. 약혼녀가 실종 되었다면서 찾으러 다닌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데... 무적성이 약혼녀를 납치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동철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놈을 너무 얕봤어.”

제황은 깊게 후회했다. 너무 성급히 홀로 움직인 것이다.

능력을 과신했다.

상대가 무슨 수를 써오던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모든 능력을 끌어낸다면 대현클랜도 몰살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드러난 결과는 한수지의 죽음뿐이다. 물론 일본인으로 보이는 정체불명 헌터들의 방해가 있었다지만 그런 돌발적인 경우도 충분히 감안했어야 했다.

“나를 습격한 놈들은?”

“어느 소속인지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더라. 헌터사무국에 문의했는데 모두 미등록헌터들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시체 말고도 놈들이 사용하던 물건들도 많았을 텐데?”

그러나 동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철 또한 더 깊고 자세한 사정을 알 길은 없었다. 그 때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암살 하러 오는 놈들이 그런 빌미를 잡힐 것 같으냐.”

제황의 병상으로 한 노인이 다가섰다.

“천황 클랜입니까?”

“그래. 일본 제일의 규모를 가진 클랜이지. 우리나라가 여러 클랜들이 서로 경쟁하며 큰 반면 일본은 하나의 클랜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천황가의 보물창고에서 쏟아져 나온 아티펙트를 기반으로 큰 놈들이지. 대한민국에 무적성이 있다면 일본에는 천황 클랜이 있다.”

그 말과 함께 최진하가 품에서 하나의 작은 단검을 꺼내들었다. 무기 본연의 용도가 아닌 주술용인지 검신에 날이 없고 기이한 문양이 가득한 그 단검이었다.

“도망치던 놈들 중 몇 놈을 붙잡으니 그 자리에서 터져 버리더군. 간신히 그것 하나 건졌다.”

무적성은 촘촘한 포위망으로 제황을 공격하던 이들 중 꽤 많은 이들을 붙잡았다.

그러나 소득은 거의 없었다. 잡히는 순간 망설임 없이 자폭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때 지금까지 말없이 얌전히 있던 궁기가 말했다.

-저거 잠시 봐도 될까?

최진하가 꺼낸 그것에 궁기가 관심을 보이자 제황이 최진하에게 말했다.

“제가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음, 단순한 아티펙트기는 하지만 한 번 보거라.”

“예.”

제황이 그 단검을 받아들었다.

-모로이 이츠키의 의식용단검- 노멀 등급  아티펙트

계승자:없음

특수능력

생명력 갈취

은신 감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이 느껴지는 단검이다.

-이럴 수가.

-왜?

뜬금없는 궁기의 말에 제황이 궁기에게 되물었다.

-일단 모두 내보네.

-알았어.

전에 없이 심각한 궁기의 말에 제황이 단검을 최진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러자 최진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대현클랜 놈들은 그곳으로 사냥터를 배정했다.”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최진하가 병실을 나섰고 제황은 동철에게도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좀 쉬련다.”

“쳇, 알았다.”

제황의 말에 동철이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혀를 차더니 최진하의 뒤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

방안에 혼자 남자 궁기에게 말했다.

-이제 말해봐.

-일단 이거 하나 말해둘게. 지금까지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건 네 조상들과의 맹약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저쪽이 먼저 네게 위해를 가한 이상 맹약은 자동으로 깨졌어.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갸웃했다. 궁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게 무슨 말이야.

-끝까지 들어봐. 아무튼 맹약이 깨졌기에 이제 넌 두 가지 선택의 길에 놓였어.

-응.

제황이 긍정하자 잠시 뜸을 들이던 궁기가 말했다.

-첫째 지금처럼 그냥 모른 채 살아가는 것, 참고로 이걸 선택해도 앞으로의 행보에는 아무 지장이 없어. 두 번째는 네 뿌리를 모두 알고 네 수많은 조상들이 짊어졌던 운명을 모두 가지는 거야.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지만 이제 너도 당사자가 되었으니 알아야 겠지.

-운명?

-그래. 경고하는데 신중히 선택해. 네 피에 얽힌 숙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그녀의 말에 제황은 생각에 잠겼다. 숙명이라고 했다. 무련가가 지닌 운명이라니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도 전혀 들은 바 없던 말이다.

아니 언젠가 들은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아이야. 마지막으로 네게 부탁할 게 있으니 후일 네 운명의 별이 너를 우리 무련가의 고향으로 이끌거든 무련가의 마지막 자취에서 우리의 시조를 찾거라. 그 분께서 네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실 것이다.”

마치 꿈결과도 같은 기억 속의 한마디지만 제황은 그것을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비록 꿈 속이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했던 마지막 기억이었으니까.

-말해줘.

제황의 대답에 궁기가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무련가의 진짜 이름은 [신벌의 대행자] 무련천가다. 무련천가는...

궁기는 제황에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하기 시작했다.

맹약이 깨졌기에 이제 그녀가 입을 다물 이유는 없었다. 이야기는 꽤 길었다.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듣는 제황은 때로는 놀람으로 또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해졌다. 고대의 성산을 수호하던 삼신가에 일어난 비극과 무련천가와 천주백가와의 오랜 투쟁의 시간... 맹약으로 인해 무련천가와 오랜 시간 싸웠던 궁기의 이야기... 가문의 마지막 힘을 다해 그녀를 봉인했던 가문의 어르신들...

-그런데 아까 그 단검에서 천주백가의 흔적을 찾았다. 저들이 사용했던 모든 주술... 너무 오래 되서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단검을 보는 순간 떠올랐다. 이 모든 건 천주백가의 주술이 뿌리에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주술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지?

-그들은 모든 주술의 맥을 잇던 가문이었다. 흑룡의 힘을 탐내 삼신가를 분열시킨 주술에 미친 가문이다. 그들의 주술은 일정한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워낙 방대한 주술을 가진 놈들이었으니까. 내가 사용하는 주술의 뿌리도 일부는 그들의 것과 비슷하다. 나를 막아선 놈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내 주술이나 힘이 먹히지 않았어.

-그걸 그놈들이 사용했다고?

-그래. 앞으로 네가 계속 놈들과 싸우게 된다면 놈들의 주술과 싸우게 되겠지. 그래서 말하는 거다. 어쩌면 이건 수천 수백 년을 이어온 가문 간의 싸움이 될 수 있으니까.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제황이 머리를 흔들었다.

일본 제 1의 천황클랜에 천주백가의 힘이 있다. 무련천가의 숙명의 원수임과 동시에 이제는 양립할 수 없는 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황이 지금 머리가 복잡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왜지?

-뭐가?

-왜 난 아무것도 몰랐냐는 거야.

그 말에 궁기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벌의대행자] 무련천가의 힘은 가볍지 않으니까.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신은 세상 모든 것에 공평하다. 신에게 인간의 오욕칠정과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그런 신의 분노를 대행하는 가문이 어떨 것 같아? 무련천가가 가진 힘은 세 가문 중 가장 죽음에 가까운 가문이었어. 세상 누구에게도 공평한 죽음을 내리는 가문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피의 취한 살인마인가?

-아니, 그 따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네가 무련천가를 계승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네 피에 얽힌 운명의 힘이 네게 무련천가의 힘을 가져다 줄 거다. 그리고 그게 완성되면 넌 천제황이되 천제황이 아닌 [신벌의대행자]가 될 거야.

궁기는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제황이 나이를 먹는다면 아마 그와 비슷하게 성장하리라. 무련천가의 17대 가주 천강... 수천 년 무련천가의 인물들 중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그의 대한 기억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강함으로 따져도 그의 적수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삼신가가 최강의 힘을 구가했을 무렵에는 제국의 황제조차도 삼신가 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간혹 그 힘을 탐내 성산을 침범하는 이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단죄의 의미로 그 흔적조차도 말살 시켰다. 그리고 그 첨병은 언제나 무련천가였다.

[신벌의대행자]로서 숙명처럼 지녀야할 무심[無心] 그의 화살은 남녀노소 아이 할 것 없이 가리지 않았다. 성산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그의 화살 아래 고혼이 되었다.

이미 제황에게도 그 모습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무련천가의 업을 모두 받는 순간 제황 또한 그와 같이 변하리라.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말 그대로 신벌의 대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무기... 그것이 무련천가였다.

-널 가로막은 놈들은 강했나?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제황이 물었다. 그가 알기로 9티어 마나석을 받아들인 궁기는 무척이나 강했다. 그런 그녀가 고작 십여 명에게 가로막혀 자신을 구하러 오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꽤 강한 놈들이었어. 뭔가 행동을 구속하는 주술도 쓰고 있었고,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무적성의 그 노괴물들 말이야.

-그런가.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제나 최진하 정도 인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훈련된 이들이라면 이해가 갔다.

단체의 힘은 강하다. 아무리 제황이 날고뛰어도 모든 것을 초월하는 강함을 가지지 못하는 이상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련천가의 힘이라면...

-너 무련천가가 어딘지 알고 있지?

-결심한 거야?

-응.

-알아. 그런데 그 놈... 그냥 둘 생각이야?

궁기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절대 그냥 둘 수는 없다.

진하게 한 방 먹은 격이니 갚아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이미 덫은 준비가 끝나 있어.

제황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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