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101화 (101/301)

# 101

엑스트라죽이기-2

"예에이!"

"독각룡 다운!"

"레이드 성공! 우레 공격대 만세!"

공대장의 외침에 공대원들이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무려 6티어 몬스터 레이드를 무사히 성공했다. 독각룡의 부산물은 부산물 시장가격이 높다. 미수복 필드인 북한 근처에서만 발견되기에 시세가 높게 책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독각룡 레이드를 성공시켰다.

그것은 곧 이 독각룡이 우글거리는 필드가 노다지가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몇몇이 레이드 된 독각룡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지 사체에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서 차가운 외침이 들렸다.

"누가 독각룡한테 함부로 다가가라고 했어! 제대로 경계 안 해! 이 멍청한 것들아!"

그 외침에 공대원들이 깜짝 놀라 서둘러 사주경계를 시작한다.

지금 고함을 지르고 있는 이는 몇 달 전만 해도 공대장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머저리 같은 놈들, 아무리 유망주들이 많다지만 이런 병신 같은 짓을..."

이번에 클랜에서 이곳에 투입한 공격대는 전투력은 뛰어나지만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신인들로 구성했다. 무적성이 워낙 급하게 클랜을 모집한 이유도 있었지만 클랜마스터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는 공격대 구성이었다.

"부, 부공대장님."

"닥쳐! 주둥이 찢어버리기 전에..."

그는 유망주들을 제어해야 할 베테랑공대원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지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공대장에게 다가갔다.

"공대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배정된 구역을 벗어난 건 둘째 치고 남이 레이드하던 게 분명한 몬스터를 스틸하다니요."

그가 외치자 주변에 있던 공대원들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감돈다.

그들도 부공대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6티어 몬스터 레이드를 성공리에 마치고 한껏 기분을 내려는데 찬물을 끼얹는 부공대장의 언사에 심기가 상한 젊디젊은 공대장의 입에서는 사과보다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분명 독각룡의 움직임은 저희 쪽에 위협적인 경로였습니다. 레이드 수칙에 맞춰 어그로가 튄 몬스터에 대한 합당한 반격 아닙니까! 그리고 부공대장은 당신이 뭔데 공격대의 군기를 흩뜨립니까!"

"뭐요?"

공대장의 억지에 가까운 항변에 부공대장은 일순 입이 막혔다. 분명 레이드 수칙에는 그런 조항이 있다. 공격대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의 경우는 레이드에 대한 난입이 가능하다는 수칙 말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자신들이 무적성에서 배정한 경계를 함부로 넘어섰다는데 있었다.

게다가 공대장의 말과는 다르게 독각룡의 이동동선이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 경우는 천연덕스럽게 사격을 지시한 공대장으로 인해 벌어진 돌발레이드였다.

'이걸 어쩐다.'

분명 저 독각룡은 무적성의 공격대가 사냥하던 중이었을 텐데 경계를 넘어 들어와 이런 짓까지 벌였으니 실수를 해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후 무적성에서 이 일을 문제 삼으면 깨지는 것은 이 철없는 놈을  보좌할 책임의 있는 자신이 되리라.

'클랜마스터의  지지만 아니면... 후우'

이 젊은 공대장은 클랜마스터가 작년에 영입하여 양아들로 삼은 디바우저였다. 워낙 거대클랜들에서 미친 듯이 수집하는 디바우저이기에 클랜마스터는 그를 통 크게 양아들로 삼아버렸다. 향후 클랜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탕발림과 함께 말이다. 그렇기에 클랜에 매인 그는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일단 좀 더 안전지대로 이동해야 합니다. 스틸 당했다고 판단한 상대 공격대가 그대로 공격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는 알지 않습니까."

그는 공대장에게 달래듯이 말하며 지금 그들의 상대가 누군지 인지시켰다. 아무리 천둥벌거숭이 같은 디바우저라도 무적성은 두려우리라.

"흥! 무적성 따위..."

그러나 각성하자마자 클랜 내에서 떠받듦만 받으며 콧대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그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하긴 그처럼 탑 100위권에 간신히 랭크하는 중규모의 클랜에 소속된 그가 언제 무적성의 정예와 만나 봤겠는가.

쉭 팍!

부공대장이 다시금 입을 떼려던 그 때 공대장의 발 앞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습격이다!"

공대장이 깜짝 놀라며 습격이라 외치자 사주경계를 하고 있던 공대원들도 얼결에 주변을 향해 각종 화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별안간 벌어진 사태에 부공대장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해간다.

드르르르르륵....펑펑펑!!

대몬스터용 무기들이기 때문에 주변의 거목들이 박살이 나고 바위가 터져 나갔다.

"모두 멈춰! 그만! 그만!"

부공대장이 소리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모두 한 탄창을 비운 상태...

"이 미친 것들..."

그가 보기에 날아온 화살은 분명 단순위협용이었다. 그런데 이 미친 공대장의 헛짓거리에 사방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맞기라도 하듯 한 그림자가 탄연을 헤치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걸어온 남자는 겨울에 어울리는 하얀색의 위장포를 걸친 이였다. 얼굴을 감싼 후드 사이로 두 눈만 드러낸 그가 공격대 앞에 멈춰 섰다. 몇 개의 겁 없는 총구가 남자에게 겨누어졌지만 부공대장의 눈에서 쏟아지는 레이저에 슬그머니 내리고 만다.

"무슨 짓입니까?"

걸어온 그가 위장포를 들어 큼지막한 총알구멍을 보이며 말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부공대장이 앞서 나가며 고개를 숙였다. 상대의 목소리가 어려 보여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 일단 실수를 범한 건 자신들이다. 그의 변명 아닌 변명에 실소를 흘린 그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죽어라 갈겨놓고 실수라... 그건 그렇다 치고 저건 어째 된 건지 해명을 좀 들어야 갰는데요?"

남자의 손가락 끝에 있는 독각룡의 사체를 본 부공대장 이를 질끈 물었다.

나타난 이는 분명 무적성의 인물이다. 입고 있는 장비들에 무적성의 마크가 떡하니 붙어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 뒤에서 고작 화살 한발에 부화뇌동하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바람에 공대원들을 사격하게 만든 쪽팔림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는 저 개망나니 공대장놈의 논리대로만 따지다간 재수 없으면 클랜 자체의 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일단 말을 돌리자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저것도 일단은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독각룡을 홀로 레이드 중이셨습니까?"

굳이 위협범위 밖에 있는 독각룡에게 사격을 가해 이쪽으로 어그로를 끌어온 것은 쏙 빼고 말하며 화제를 돌리는 부공대장이었다. 스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항상 법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기에 이 부분은 잘 우기면 무마 가능하다. 부공대장은 정중히 말하는 와중에도  그는 짧은 시간에 제황의 장비들을 훑었다.

'분명 저건 무적성에서 생산하는 최상급의 세트아이템이다. 손에 든 활도 보통 물건이 아니고...무적성에는 괴물만 우글거린다더니, 대체 몇 성 헌터야. 붙으면 손해다.'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상대는 진짜배기였다.

헌터는 나이로 강함을 따지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오며 돌연변이 같은 괴물들을 많이 만나본 그는 상대에게서 위험한 향기를 느꼈다.

"그런데요?"

자신의 물음에 긍정하는 저 사람이 지금 대답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지 알고 있다면 저 남자는 둘 중하나다. 평범한 머저리거나 아니면 이 공격대 전원 따위는 성에도 차지 않는 강자...

"하하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이번 일은..."

그는 최대한 신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가장 매끄럽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던 그 때 그의 뒤에 서 있던 공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초를 쳐버렸다.

"6티어 괴수를 혼자 솔로레이드 한다고... 어디서 헛소리야!"

"하..."

사고가 터졌다.

성큼성큼 걸어 나온 젊은 공대장은 사내의 어깨를 툭 밀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부공대장이 공대장을 말리며 외쳤다.

"부공대장도 그렇습니다. 공대장인 내게는 매일 잔소리만 하면서 저놈한테는 왜 굽실거리는 겁니까."

부공대장은 이 말 같지도 않은 투정에 머리꼭지가 도는 것을 느꼈다. 물론 공대장도 사정은 있었다. 사실 그가 가장 인정받고 싶은 인물은 클랜마스터가 아닌 지금 함께 움직이고 있는 부공대장이었다.

그는 클랜에 들어오기 전까지 공격대를 관장하던 공대장이었으니까.

그가 부공대장으로 내려간 것도 실력이 쳐져서 내려간 게 아니었다. 단지 헌터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뉴페이스인 디바우저를 공대장으로 키우라는 클랜마스터의 뜻에 따라 내려간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매일 입에 걸레를 문 듯 자신을 사정없이 몰아치며 가르치는 부공대장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가 이 눈앞의 사내 앞에서는 허리를 굽실거릴 뿐이다. 그것이 배알이 꼴린 것이다.

"쳤냐?"

그때 그의 뒤에서 겨울산바람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 말에 이 젊은 공대장이 인상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며 반문했다. 아무리 상대가 무적성의 인물이라고 해도 자신은 한 공대를 이끄는 공대장이었다.

"말이 짧군."

그가 눈짓을 하자 그의 직속부하인 헌터 몇몇이 슬그머니 남자의 후위로 이동했다. 어찌되었건 지금 상황은 일대 다수다. 쪽수에서 자신들이 월등한 것...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는 제황이 독각룡을 솔로레이드 하는 중이었다는 건 이미 지워진지 오래다. 자신들도 공격대 전체가 달라붙어 두들겨 패서 잡은 걸 솔로레이드라니... 말도 안 된다. 그들의 상상력은 딱 그 수준이었다. 분명 뭔가 착오가 있거나 혹은 독각룡을 빼앗으려는 수작이다 정도까지만이 그들의 한계였다.

"이게 무슨 의미지?"

"여전히 무례하군. 뭐 몰랐으니 죄는 아니지. 난 우뢰매클랜의 제 1공대장 장요섭이다."

오만하게 턱을 세운 채 허리춤의 소드벨트에 걸린 화려한 장검을 슬쩍 들어 보여줬다.

클랜마스터가 거액을 들여 마련해 준 최상급 아이템이다. 지금까지 그의 경험상 이정도 보여주면 상대가 알아서 예의를 갖췄다.

스쿼드 따위를 운용하는 매니지먼트나 소규모공격대가 전부인 컴퍼니 따위가 아닌 클랜이다. 게다가 제1 공격대라는 건 클랜의 간판이라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니 일반인이나 평범한 헌터들은 알아서 기어준다.

문제는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막장헌터드라마에나 나오는 애가 있긴 있구나.

-그러게, 앞으로 막장드라마 본다고 놀리지 않을게. 상당히 현실적이네.

궁기의 말에 제황이 평소 궁기의 막장드라마 시청에 대해 놀린 것을 정중히 사과했다. 허황된 판타지 같은 설정 일색일 것 같은 드라마가 의외로 현실반영에 충실하다.

최근 궁기는 막장헌터드라마에 빠져 가는 중이었다. 막장헌터 드라마가 어떤 것이냐 하면 대략 대융합 초기의 헌터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드라마의 통칭이었다. 한국 드라마의 특성답게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도 사랑은 꽃피고 현란한 족보 따지기와 뿌리찾기가 주를 이루는 말 그대로 끔찍한 혼종의 드라마 말이다.

막장 일일드라마답게 허접한 CG로 떡칠이 되어 있지만 요 근래 CG에 빠져들고 있는 궁기에게는 그것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는 우레공격대인지 수레공격대인지의 공대장은 그런 드라마에 감초처럼 출현하는 1회짜리 엑스트라와 판에 박힌 듯 흡사했다.

-걔들 결말이 어떻게 되더라?

-똥물이 올라오도록 쳐 맞던가, 똥물을 싸도록 쳐 맞던가

일단 공통점은 쳐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분 같아서는 그 드라마의 엑스트라마냥 올라오던 싸던 일단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황은 서서히 마나를 끌어올리며 주변을 훑었다.

가장 강한 이들은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둘이었다. 두 노소... 얼굴에 세월의 풍상이 가득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어린 당혹감을 발견한 제황이 그에게 애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어가 불가능하니 퍽 딱해 보였다.

그렇지만 제황에게는 그 늙은 사내의 사정을 봐줄 이유가 없다.

이제 저들 중 하나만 자신에게 공격을 가해도 자신이 이 공격대를 구속할 명분이 생긴다. 물론 여기서 구속이라는 건 단지 잡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계획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대해서 아는 이는 없어야 하니까.

-감히 내 마나석을 탐낸 죗값도 치러야겠지.

-아직 네 꺼 아냐.

마치 집안 살림 책임지는 마누라마냥 제황의 것은 자신의 것처럼 말하는 궁기에게 한마디  일침을 던진  제황이 그 공대장에게 도발의 한 마디를 던지려 할 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캐터필터음이 제황의 입을 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산지 지형에 특화된 50톤 규모의 거대한 수거트럭이 고개를 넘어오고 있었다.

-타이밍 안 맞네.

-그러게.

공대장이 이렇게 개념이 질풍노도하게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주 굿타이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제황이 이들을 제압하려는 때다.

“된통 걸렸군.”

부공대장이 쓰게 웃었다. 수거트럭 옆면에는 업체를 나타내는 엠블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옆에는 무적성을 나타내는 엠블럼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던 그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미, 미친! 최악이다!”

그걸 육성으로 뱉어버리고도 깨닫지 못하는 부공대장이었다.

수거트럭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본 제황의 눈도 놀람이 가득해졌다.

-저 작은 노괴물이 왜 저기 있는 거지?

남자의 대한 궁기의 감상은 간단했다. 작은 노괴물... 큰 노괴물은 권제다.

수거트럭 위에 앉아 있던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가볍게 뛰어 제황의 곁에 내려섰다.

그리 크지 않은 몸집, 길가다가 열에 하나는 발견할 듯한 평범한 인상, 그렇지만 횡하니 비어있는 오른팔과 허리춤에 대충 끼워져 있는 외날검...

무적성의 무상 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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