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엑스트라죽이기-1
"캬아악!"
미간에 깊디깊은 크레이터가 파이며 독각룡은 비명과 함께 몸을 뉘였다.
아무 미동 없다. 싸늘한 바람이 독각룡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시체를 세차게 때려 댈 뿐이다. 그러길 5분여가 지났을까. 갑자기 독각룡의 뿔로부터 검은 기체가 푸스스하고 뿜어져 나오더니 온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 기체는 마치 안개마냥 숲을 뒤덮었고 그 안개에 닿은 식물과 곤충들은 모두 검게 타들어가며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지독한 극독... 닿는 모든 것이 독기에 타버린다.
이것이 독각룡의 진정 무서운 점이고 독각룡이 6티어의 몬스터로 랭크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레이드에 성공한 것으로 착각해 방비 없이 접근했다가는 그대로 독에 노출되어 떼몰살 당한다. 단지 닿는 것만으로 타버리는 독기다.
몬스터는 그 위험도를 통해 티어를 결정한다. 헬버그 같은 경우는 단일 개체는 그리 위험하지 않다. 잘해야 2티어? 그러나 헬버그는 기본 단위가 수백이니 그만큼 위험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각룡이 6티어에 달하는 이유는 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독과 뛰어난 지능 그리고 상당히 교활하다는 것에 있었다.
“크르륵...”
피를 줄줄 흘리던 독각룡이 몸을 일으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자신이 불리하다 판단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어때?
-이번에는 도망친다. 얌전히 잘도 도망가네.
-잘됐네.
제황이 조준하고 있던 스톰레이지를 내렸다. 하얀색으로 된 위장포를 두른 채 눈 위에 쪼그려 있는 제황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하늘 위로 푸드득하고 훼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매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제황의 몸속으로 허깨비처럼 스며들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거야?
-글쎄, 좀 계산해보자.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제황이 메모장을 켜서 뭔가를 적어나간다.
한참 계산을 하고 있는데 궁기의 푸념이 들려온다.
-지겨워. 벌써 삼일 째야.
-이유는 알잖아.
-알아. 안다고 그렇지만 빌어먹을 그 덫이라는 건 지루하단 말이지.
-참아. 마나석은 전부 네 차지잖아.
몬스터레이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나석은 요즘 한참 대식가가 되어 가고 있는 궁기에게 양보했다.
-호호호 그러면 또 할 말이 없네.
찔리는 게 있는지 궁기가 서툰 웃음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리에 멈춰 바위에 엉덩이를 붙인 제황이 스마트폰의 지도를 전자펜으로 슥슥 긋기 시작했다.
"벌써 3일째인가."
권제표 폭렙버스에서 내린지 3일째다.
슬슬 타 클랜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권제의 버스는 아쉽게 끝났다. 물론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전진기지가 설치될 곳에 있던 헬버그들이 모조리 소탕되어 버스가 그다지 소용없게 되어 버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성과는 컸다. 권제의 버스를 통해 무려 3레벨을 더 올렸고 그렇게 얻은 0.75의 능력치는 모두 정신력에 투자했다.
정신력은 단순히 마나의 양이나 재생률만을 보조하는 것이 아닌 마나를 이용한 공격력 보정 효과까지 있었기에 강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거의 정신력 위주로 올린다는 권제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버스가 끝난 이후 제황은 이전에 생각했던 계획을 권제에게 건의했고 권제는 제황의 뜻을 받아들였다. 자칫 제황이 위험할 수도 있는 계획이지만 권제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다.
-지금까지 대략 50마리 정도 쑤셔 박았으니까.
지금까지 서식지에서 밀어낸 독각룡은 50마리, 그것들을 모두 한곳에 몰아넣었다.
물론 상당한 계산과 경험이 필요했지만 야생동물의 습성에 능숙한 제황에게는 몬스터 몰이 정도는 우습다. 게다가 지형 자체도 꽤나 제황의 마음에 꼭 들어맞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몰아넣을 수 있었다.
평소라면 서로 서식처를 두고 싸우겠지만 모두 머리에 활빵을 진하게 얻어맞고 모인 놈들이기에 이 일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서 일시 휴전할 것이다. 머리가 떨어지는 놈들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독각룡의 생태를 연구한 보고서를 보면 강한 적을 맞이하게 될 시 그들은 뭉쳐서 합공도 할 줄 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 다섯 마리만 더 하자.
-아, 지겨워.
궁기가 투덜거렸지만 제황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덫은 튼튼할수록 좋은 법, 약 30분여를 상공에서 정찰하던 궁기의 눈에 또 다른 독각룡이 잡혔다. 이전의 것보다 커다란 덩치의 그것은 춥지도 않은지 작은 실개천의 얼음을 깨고 한창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찾았다.
-봤어.
궁기안을 공유하기에 궁기가 보는 것은 제황 또한 공유할 수 있었다. 편리한 건 이것이 스킬을 이용한 초장거리 저격을 할 시 무시무시한 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레이드에 난입할 수 있는 주변 몬스터와 바람계산,반격동선...사격 사각지대등을 확인한 제황이 곧이어 공격을 시작했다.
우드드득...
스톰레이지에 비천격을 걸고 중형몬스터 전용의 합금애기살을 올린 채 한계치까지 잡아당긴 제황이 까마득히 먼 곳에 보이는 작은 붉은원을 향해 화살을 비스듬하게 치켜 올리고는 시위를 놨다. 거리는 약 3킬로미터, 제황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떠있는 궁기의 눈은 벗어날 수 없다.
[비상하는 강기의 화살]
풋슝!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주위의 눈이 비산하듯 펼쳐지고 붉은강기의 빛살이 목표물을 향해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붉은 궤적의 잔상을 남기며 이윽고 목표물에 도착한 그것이 목표물과 격돌했다.
쿠우우우웅
"꾸에에엑!"
충격음과 비명음이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가운데 궁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수 강기로 이루어진 강기의 화살은 몬스터의 마나방어력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기에 고위 몬스터일수록 효과가 좋다.
-덤비는데?
-그래?
사람이 십인십색이듯 몬스터 또한 각자의 개성이 존재한다. 어떤 놈은 공격당하면 일단 물러서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전투의지가 충만한 놈들은 무작정 돌진하기도 하고 또 교활한 놈은 좀 전에 쫓아냈던 놈처럼 죽은 채를 했다가 적을 기습하기도 한다.
이번 놈은 전투의지가 충만한 놈 같다. 공격당하는 순간 무작정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진해 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거대한 동체의 독각룡이 돌진하자 숲이 시끄러워지는 게 제황에게도 보인다.
그러나 제황은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무한고에서 다른 애기살을 꺼내들었다. 오면 오는 대로 잡으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잡았고 100프로의 사냥확률을 자랑하니 굳이 바꿀 생각은 없다.
파아앙!
스톰레이지에서 붉은 빛의 산란이 쉴 새 없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용감히 돌진하던 독각룡에게는 재앙이 시작되었다.
파칵!
커허헝!
푸캉!
크라락!
앞다리의 두터운 갑주가 터져나가고 붉은 피가 줄기줄기 흘러내린다.
45도의 입사각으로 날아 꽂히는 붉은 빛줄기는 독각룡이 어떻게 회피하든 100프로의 명중률을 보이며 독각룡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다리를 공략해 속도를 늦춘다. 자신의 기동력에 심대한 타격을 입으면 머리가 좀 있는 몬스터는 그때부터 갈등하기 시작한다.
잘못걸렸다. 엿됐구나. 도망칠까? 하고 말이다.
도망과 돌진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사이 제황의 화살은 몬스터의 머리만 집요하게 노리기 시작하고 대략 이 수순이 되면 몬스터에게 더 이상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다가 죽거나 돌진하다 죽거나 그냥 지랄발광을 하거나 셋 중 하나다.
파캉!
14번째 강기의 화살을 날린 제황은 잠시 숨을 돌리며 저려오는 손을 풀었다. 이제 거리는 500미터 안쪽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비천격은 무의미하다.
장거리저격을 멈추고 일반화살을 스톰레이지에 걸며 근접전을 준비할 때 궁기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놈팽이들이 내 마나석에 침 바른다!
아직 레이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궁기다.
-스틸이군.
시야를 공유하는 제황의 눈에 독각룡을 향해 총구에 불을 뿜고 있는 한 무리의 공격대가 잡힌다. 숫자는 대략 30명의 중규모 공격대다. 다섯 정도로 보이는 탱커가 전위를 맡고 중위에는 각종 대형화기로 무장한 이들이 사격을 가하고 있으며 후위에는 힐러로보이는 셋이 열심히 마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분명 이쪽으로 사냥터 배정된 공격대는 없을 텐데.
스톰레이지를 거둔 제황은 공격대를 관찰했다. 여러 공격대가 한 지역에 투입될 때는 공격대의 능력에 따라 사냥터를 고루 배정해 준다. 그래야 행여 사냥감이 뒤섞여 서로의 몬스터를 공격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인데 이곳은 제황이 덫을 놓고 있기에 무적성으로 배정된 구역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침범해 들어왔다는 것은 무적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대거나 혹은 평소에 사냥터 배정 따위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공대장이 운영하는 공격대이리라.
클랜마크를 확인하니 두 번째 경우같다. 한숨을 내쉰 제황이 귀에 낀 헤드셋에 버튼을 누를 때 궁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나도 공격해! 아프다!
-뭐?
아마 좀 접근한 모양인데 생명체 비슷한 게 나타나니 무작정 총질을 한 모양이다.
-뒤로 물러나. 해결할 테니...
제황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굳었다. 지나가는 새에게 총질 좀 했다고 뭐가 대수겠냐만은 궁기가 공격당했다고 하니 기분이 팍 상했다.
물론 저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건 아니다. 희귀하기는 하지만 테이밍이라는 스킬이 존재하기에 몬스터를 테이밍해서 정찰에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의 소유물에 공격하는 건 상당한 비매너니까.
조금 전까지는 그냥 조용히 보내주자 마음먹었던 제황이 저들에 대한 적대감이 한 단계 올라가 있다.
제황은 헤드셋의 주파수를 움직여 그에게 배정된 몬스터사체수거팀에게 무전을 넣었다.
-솔로원입니다.
솔로원은 제황에게 배정된 콜네임이다.
-예! 솔로원, 팀장 장백기입니다. 레이드 마치셨습니까? 지금 출동할까요?
오늘도 독각룡 사체 수거를 위해 몇 번이나 이용했기에 장백기 팀장은 제황에게 아주 사근사근하게 대답하였다. 무적성 산하 몬스터사체수거업체인 그들은 평소에는 무적성 휘하 공격대가 움직일 때만 동행하는 이쪽 업계 굴지의 사체수거업체였다.
처음에는 팀 하나를 솔로로 움직일 헌터에게 배정해 달라기에 혹 권제가 나들이라도 나왔나 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경력 높고 자체 전투능력도 뛰어난 이들로 구성해 현장에 투입했다. 그런데 웬 생뚱맞은 초짜가 자신들을 맞이해서 자신들이 슬슬 무적성에게 외면당하는 것인가 의심도 했었다.
그러나 3일간 제황이 홀로 쓸어 담아대는 6티어 독각룡이 30마리가 넘어서자 그는 솔로원이라는 콜네임의 사내가 무적성에서 비밀리에 기르는 엄청난 강자임을 깨닫고 그 때부터 제황에게 최대한 깍듯이 대하는 중이다.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제황은 그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함께 좀 움직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뭐 쉬운 일이죠. 어차피 저희도 무적성의 이름으로 날파리들을 처리하니까요.
제황의 말에 장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솔로원이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공격대와의 쓸데없는 충돌을 막는 것이다. 저런 개념 없는 짓을 하는 놈들이니 이쪽이 솔로라는 것을 알면 뒤로 무슨 짓을 저지를 지 알 수 없기에 이쪽도 규모를 보여 물러서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적성의 일원이라면 기존의 레이드한 몬스터 사체까지 싹 빼앗아서 쫓아내겠지만 솔로원은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을 원한 것이다.
-그럼 위치 찍어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예. 여기 위치가...
장백기 팀장에게 위치를 전송한 제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저들에게 소유권을 주장할 차례다.
물론 반항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응징이다. 스틸이라는 것은 헌터의 이권에 정면으로 침해하는 짓으로 아주 민감한 사항이다. 명분만 충분하다면 사정없이 다져버려도 누가 뭐라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팀장 장백기의 생각과는 다르게 제황은 평화롭게 일을 해결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