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9화 (99/301)

# 99

국토수복계획-2

그런 이유로 국내 많은 클랜들이 무적성의 국토수복계획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다.

그렇기에 최단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공격대를 보낼까에 대한 문제만 남을 뿐...

그리고 이 문제는 대현클랜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대현클랜은 다른 클랜보다 좀 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오시는데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후우, 겨울 다 지나 옷을 옅게 입었더니 춥구나.”

“하하, 환절기니까요.”

대현클랜의 최상층 다이아몬드관은 대현의 클랜마스터와 그 측근 그리고 클랜마스터가 허락하는 이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는 이곳은 철저한 보안시스템으로 둘러싸여 있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때 좋았다.

지금 그곳에는 두 명의 남자가 쇼파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이는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에 하얀 서리가 내린 노인이었고 그 반대편에 앉은 사내는 훤칠한 키의 매끈한 얼굴, 날카로운 눈을 가진 젊은이였다.

"성재야. 이번 국토수복계획에 대현클랜은 어쩔 참이냐."

사계절 쾌적한 곳에 들어와 놓고 춥다고 엄살을 피우던 대머리반백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성재라 불린 청년이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쩌겠습니까. 강한 놈이 이끄는데 약한 놈을 따라야지요."

"허허, 네가 고생이 많구나. 우리 그룹의 장남이 경제인이 아닌 헌터가 되어 그런 무식한 논리에 따라야 한다니..."

마치 청년을 위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청년을 조롱하는 말이었다. 이성재... 대현그룹 직계 장남... 어릴 적부터 남다른 싹수를 보이며 대현그룹의 회장에게 남다른 총애를 받아 장차 대현그룹의 강력한 후계자로 나설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런 이성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할아버지에게 자신은 헌터의 길을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당시 그룹가는 난리 났었다. 이성재가 어디 한 군데 모자람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대현그룹의 회장인 이충인을 쏙 빼닮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능함을 보였었으니까.

고작 고등학생에게 무슨 유능함을 따지냐 하겠지만 그는 다른 흔한 금수저들과는 차원이 틀린 길을 걸었다. 전국수석은 기본에 만능 스포츠맨으로 이미 일반인을 뛰어넘는 엄친아의 모습을 보였고 굳이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이 따를 정도로 그는 풍부한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그 정통성으로 가장 강력한 후계자가 될 터인데 굳이 험한 길을 간다니 난리가 날 수 밖에...

그러나 이충인 회장은 그런 손자의 뜻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손자를 장하다는 듯 물심양면의 지원을 시작했고 이성재는 성인식을 치룰 무렵에는 국내 굴지의 대현클랜 클랜마스터가 되었다.

다른 유서 깊은 클랜들 사이에서 그 입지를 튼튼히 다졌기에 대현그룹의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능력이 없다면 절대 이루지 못할 업적이었다.

그러나 회장가의 혈족들은 그런 이성재를 비웃었다. 물론 아무리 대융합이 몰고 온 몬스터로 일어난 신산업이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었다지만 대현클랜의 클랜마스터라는 자리와 대현그룹의 회장 자리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헌터들의 집단인 헌터들을 마치 용병 정도로 취급하는 뼛속까지 권력가인 그들에게 이성재는 이미 경쟁 라인에서 물러난 듯 비췄다.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콩고물을 주워 먹는 어깨들의 머리가 되어봤자 뱀머리는 용의 머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게 주된 생각이었다.

그때 이성제의 입이 열렸다.

"모두 그룹을 위한 일입니다. 평안남도가 수복되면 완충지대가 평안남도로 이동 할 테니 저희 그룹에서 평양에 소유한 토지들은 모두 금싸라기가 될 것 아닙니까."

새로운 땅을 개척한다고 해도 곧바로 개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몬스터를 몰아내면 가장 먼저 우선시 되는 것이 몬스터 방어선을 재편성 하는 것이니 주민거주구역과의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평안남도가 수복되면 평양에 땅을 가진 이들은 대박이 터진다. 대현 클랜도 그 중 하나고 말이다.

"흥, 그래봤자 회장님께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으실 거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땅으로 먹고 살던 때는 지났다고..."

북한 쪽 땅의 소유권 대부분은 대현클랜에 있었기에 이성재의 힘이 커지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노인은 그것을 애써 폄하했다. 그러나 성재는 그다지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지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 대현클랜에서 보유한 미스릴들은 이번에 유럽 쪽으로 판로를 모색해보려 합니다. 슬슬 저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죠.”

“뭐? 그 미스릴은... 으음...어째서 네가 그걸 결정하느냐.”

성재의 말에 노인의 얼굴이 살짝 붉게 변하더니 목소리를 높아졌다.

지금 미스릴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마나전도율이 높은 미스릴은 고가의 헌터장비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금속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미스릴 광산이 막힌 지금 아무래도 미스릴 가격이 폭등하는 건 당연하다.

“제 것 아닙니까. 응당한 거래의 조건으로 받은 겁니다.”

거래의 조건이라는 말에 노인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본디라면 그가 힘을 쓰는 삼천교 쪽을 통해 몰래 빼돌리려 했던 미스릴이지만 그의 조카손자가 조금 더 빨랐다.

그래도 그냥 입 다물 수는 없는지 말을 덧붙였다.

“녀석아. 지금 그룹 내에서도 미스릴의 물량이 없어 쩔쩔매는 판국에 그걸 어째서 유럽에 판다는 말이냐.”

“뭐 쥐꼬리만한 클랜이라도 입들이 워낙 많아 가만히 가지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할아버지께서 언제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판로의 다각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하지만 이건 그에 대한 경고와도 같다. 대현그룹이 소모하는 몬스터 부산물들의 40프로를 대현클랜이 생산한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는 걸 후회한  노인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시세에 20프로 더 쳐줄 테니 내게 넘기도록 하거라. 힘들게 얻은 그룹의 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회장님도 노여워 하실 거다.”

그 자신의 힘으로는 이 맹랑한 조카손자를 누를 수 없다는 걸 아는 노인은 할아버지를 들먹이며 말했지만 성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섣불리 아니 오히려 노인을 도발했다.

“그보다 이번 일을 어떻게 보고할 지를 더 모색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후우...”

성제가 말하는 바가 뭔지 아는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냉수를 들이켰다.

대현클랜비밀연구소... 사실 그 시작은 매우 평범했다. 모든 돈가진 이들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바로 무병장수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다면 좀 더 오래사는 것이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영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연구소의 첫 출발은 그것이었다.

좀 더 오래 자신의 것을 손에 움켜쥐고 있으려는 돈 많은 노인의 욕심, 그것이 연구가 계속 될수록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 몸집을 키워나가며 조심스럽게 불법 쪽으로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대현클랜 지하비밀연구소였다. 회복계열이나 재생 능력을 지닌 몬스터와 인간을 연구하여 그 메커니즘을 일반인에게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 정확히 말하면 헌터에 대한 연구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헌터들을 모집했으나 굳이 그런 위험한 임상알바에 지원할 헌터들은 없었고 그런 이유로 실험체를 불법적으로 알아보던 중 그가 삼천교라는 빌런 단체와 손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연구소에 대한 지분을 강화시켜 나갔던 게 이 노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든든한 자산이었던 연구소가 무너지고 기밀을 외부로 흘러나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비록 그 위치가 대현클랜의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관리는 오롯이 자신에게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 뱀같은 조카손자에게서 연구소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었다. 그렇기에 그의 형님 그러니까 대현그룹의 회장이 이것에 대해 추궁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연구소에 침입한 범인은 밝혀졌느냐.”

회장의 명령으로 연구소에 대한 조사권한은 대현클랜으로 넘어갔다. 부회장은 그 당사자이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 표현한 회장이었다.

“그놈에 폐쇄프로토콜 덕분에 진입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 다음 달이나 안으로 들어가서 흔적이나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느물느물하게 대답하는 조카손자를 보며 그는 일이 텄다고 느꼈다. 그가 아는 이성재라면 범인을 알더라도 그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쓰려 할 것이다.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흥, 모르지.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하지 않는 걸지도... 아무튼 알겠다. 식사는 밖에서 해야 겠구나.”

“배웅하지는 않겠습니다.”

노인이 흥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재의 얼굴은 순간 서리가 낀 듯 차갑게 변했다.

“이비서”

“예. 마스터!”

이성재의 자그마한 중얼거림에 그의 곁으로 푸른양복의 사내가 허깨비처럼 나타났다.

깔끔한 푸른 수트의 이비서라는 남자가 금테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숙인다.

“시킨 일은 어떻게 되었지?”

“추적조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름 천제황, 마스터께서 예측하신대로 한수지양과 과거 사귀었던 그가 맞았습니다. 무적성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과거 헌터라이센스 시험장에서 우연히 권제의 운 좋게 눈의 띈 것으로 파악했으며 현재 권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음, 그때 들은 바로는 불구가 되었다고 했었는데?”

“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두 나았습니다. 그가 지닌 스킬의 영향으로 추정됩니다.”

“이거야 원... 헌터들이라는 건 참 쉬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는 전부 헌터로 치부하면 끝이니... 불구가 멀쩡해 질 정도의 스킬이면 역시 디바우저인가?”

“정보팀은 그렇게 예상 중입니다.”

이성재가 낭패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디바우저의 혈통을 얻기 위해 한수지를 꼬셨는데 그녀가 사귀었던 전 남자가 장애를 극복하고 디바우저가 되어 나타났다. 여느 막장 드라마에서나 쓰일 소재지만 문제는 이것은 지금 그에게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아깝군. 아까워.”

드러난 능력만 보면 인재중에 인재다. 인재수집벽이 있는 그에게는 적아를 떠나서 군침도는 인물이었다.

무적성에서 감추려 했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당시 저스틴포인트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보인 제황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리고 제황에 대해 알아내려 많은 곳에서 움직였었다.

물론 대부분 무적성에 의해 물러났지만 이전부터 한수지가 관심을 보이던 인물이기에 좀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뿌려 놓은 감시에 생각지도 않은 대어가 걸려들었다.

“연구소에 침입한 놈들은 역시 그들인가?”

“예. 무적성이 확실합니다. 외부 카메라들을 모두 확인한 결과 습격한 무리들이 무적성의 밀령들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회장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이번 일에 대해 거의 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흠, 역시...인가. 하긴 그들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럼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 제황이라는 친구와 밀령이 침투했다는 거군.”

“예.”

“좋아. 이제 뭔가 확실히 구도가 나오는군.”

“그럼 역시 이번 평안남도 건은 포기하시는 겁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를보면 무적성은 대현클랜에 대해 완전히 적대적으로 돌아선 게 분명하다. 특히 이번 평안남도 공략은 ‘그 일’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비록 그가 '그 일' 의 한축일 뿐이지만 자신도 혐의가 있으니 무적성을 칼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는 굳이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가야지.”

“그렇지만 상대는 무적성입니다.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비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적성... 권제의 힘 아래 모여든 대한민국의 가장 거대한 헌터단체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무적성은 단순한 무력이 아닌 대한민국의 상징이었다.

“그래. 그 호랑이가 부르잖아. 어떻게 하겠어 가야지. 대신 우리는 그 호랑이를 죽일 독을 품고 간다. 함부로 입에 물었다가는 호랑이도 즉사시킬 독을 말이야.”

“예?”

의문을 표하는 이비서를 향해 씩 하고 웃어준 이성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너무 깊게 알려 들지 마라. 아무튼 넌 가서 천황클랜의 클랜마스터와 자리를 좀 마련해. 평소 권제에 대해 적의를 가진 놈들이니까 한 자리 끼워줘야겠지.”

“알겠습니다.”

이비서가 나가자 이성재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그러고선 서랍 깊숙한 곳에서 동그란 통을 꺼내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손톱 반만한 검은 알약이었는데 그것을 손안에 굴리던 이성재가 독백하듯 말했다.

“흥미로운 만남이 되겠어. 약혼녀의 전남친과의 삼자대면이라...큭큭”

그 말과 함께 알약을 입 안에 털어 넣은 그가 눈을 감았다.

***

“으드득...두둑”

거대한 뭔가가 숲 한가운데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을 주둥이를 쳐 박은 채 내장을 씹던 그것이 긴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잠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던 그것은 이내 목표를 바꿔 뒷다리를 주둥이로 헤집기 시작했다. 입 주변에 난 커다란 뿔이 뒷다리를 절개해 나가면 입안에 난 수십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고기를 탐닉한다.

마치 코모도 도마뱀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지만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 주변에 난 여덞개의 다리와 머리에 난 수십 개의 뿔이 그것과는 다른 생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독각룡이라 불리우는 이 6티어의 몬스터는 몸에서 뿜어내는 지독한 독으로 유명했다.

“크르륵...”

순간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챈 독각룡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게 찢어진 두 눈에 자신의 육감을 자극하는 위험을 찾으려 쉴새 없이 움직인다.

"끼익?"

그리고 그 머리가 하늘을 향하는 순간 파충류의 미간 사이에 유성처럼 날아온 붉은 빛줄기가 날아와 박혔다.

쾅! 드드드득!

"꾸아아악!"

날아온 그 빛줄기가 6티어의 몬스터 독각룡의 미간에 깊디 깊은 크레이터를 남기며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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