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8화 (98/301)

# 98

국토수복계획-1

그날 밤 권제와 제황은 슈퍼헬리시온이라는 초대형 헬기를 탄 채 무적성을 날아올랐다. 한밤임에도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남한을 지나니 어느새 사위는 어둠만이 깔리고 로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만 가득하다. 평양까지 수복이 끝나기는 했지만 북한으로 넘어가는 길은 간간히 보이는 작은 읍내나 마을을 불빛만이 눈에 들어왔다.

새롭게 변모한 평양의 불빛이 한 동안 눈을 현란하게 했지만 그 또한 산등성이에 가려 어둠에 휩싸인다.

그렇게 이동하길 한 시간 후 그들은 과거 덕천시라 불리던 곳에 도착했다.

이제 그곳은 도시가 아닌 숲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고작 60여년이 지났음에도 상당히 고층건물이었던 것 같은 콘크리트탑은 넝쿨과 이끼에 덮여 있었고 거대한 고목이 마치 건물과 키를 자랑하듯 우뚝 서 있었다.

이전의 도로였던 곳은 갈라져 하천을 이루었고 수북이 쌓인 낙엽들 속으로는 도로의 흔적만이 조금 비추고 있었다.

“득실득실 하지?”

“예.”

제황은 지금 궁기안에 비치는 것들을 바라봤다. 수십? 아니다 수백개의 하얀 선들이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었다. 폐허 속에 몸을 숨긴 것들은 전부 제황의 궁기안에 탐지된 상태였다.

“요즘 흔한 아이들이 몬스터 레이드를 그 뭐냐 가상현실과 혼동하는 놈들이 있더구나. 하긴 그럴 만하지 저런 것들은 만나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헬기들의 요란한 로터음은 근방의 모든 몬스터들을 끌어모았다. 궁기안으로 보이는 하얀 선들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었다. 꾸역꾸역 나무 밑으로 땅 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몬스터들이 모여들어 이제 하얀 선으로는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몬스터의 시체를 베게 삼아 잠들었고 몬스터의 피가 섞인 주먹밥을 씹으며 싸웠다. 노인네의 넋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에 오면 그 때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구나. 우리는 저 놈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한 수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것들이었지.”

두두두두

슈퍼헬리시온이 공중 호버링을 시작했다.

권제가 탄 주위로 5개의 슈퍼헬리시온이 함께 자리해 있다. 공중몬스터를 방어하기 위해서인지 기관포와 로켓포가 장착된 이 헬리시온들 안에는 권제의 개인호위대인 무영과 평안남도 수복을 위한 전진기지 설치를 위한 선발대가 타고 있었다.

-메인 전진기지 부지 확보 작전 시작... 포메이션으로 이동하라.

-이동!

여섯 대의 슈퍼헬리시온에 호버링을 통해 고도를 올리며 각자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덕천시를 장악하고 있는 몬스터는 다크어스의 마물들이다. 저놈들은 엘어스의 몬스터들은 귀여워 보일 정도로 지독한 놈들이 대부분이지."

"이곳이군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후퇴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수천의 동료들이 이곳에서 잠들었다. 그곳에 다시 왔구나. 제황아."

"예."

"앞으로 본격적인 수복작전이 시작되기까지 5일... 난 그 사이에 네 레벨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한다. 그래서 너와 나 그리고 무영 외에는 아무도 데려오지 않은 것이다. 어때... 할 수 있겠느냐?”

권제가 겁을 주듯 말하자 제황이 피식 웃으며 손에 스톰레이지를 꺼내 들었다.

“저 정도로 제 극한을 보시겠다니 욕심이 과하시네요.”

제황의 대답에 권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거 내가 괜히 물었구나.”

제황의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권제였다.

이전에도 제황은 강했지만 한 차원을 뛰어넘은 듯한 지금의 제황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정말 궁금해졌다. 자만하는 듯싶지만 제황 정도의 강자가 되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지금 헌터사무국에 등록된 제황의 헌터등급은 2성 하이브리드 라이센스였다. 물론 그 라이센스도 제황의 나이대에서는 범상치 않으나 이번 일이 끝나고 세상이 제황에 대해 아는 순간 제황은 초강자들의 대열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야 할까?

그는 제황을 좀 더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제황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한 번 보여주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그럼 일단 시계를 확보해야겠지. 시작해라.”

“옛!”

권제의 말을 받은 이루미가 귀에 낀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시계 확보 작전 준비! 지룡 투하 시작!

-투하

무전을 통해 지시를 받은 조종사가 계기판을 조작하자 슈퍼헬리시온의 날개 밑에 달린 네모난 상자의 뚜껑이 열렸다. 폭 1미터 길이 3미터 가량의 그 상자로부터 길이 30센티 가량 되는 날렵한 유선형의 폭탄들이 들어있었고 조종서가 버튼을 누르자 차곡차곡 밑으로 자유낙하 하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

여섯 대의 슈퍼헬리시온이 마치 공중 에어쇼를 하듯 방사선으로 퍼지며 폭탄으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 폭탄은 나무와 폐허의 잔해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꾸에엑!”

“꾸이이익!”

숨죽이고 누워 하늘위의 슈퍼헬리시온을 노리던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폭탄 세례에 비명을 지르며 콩볶듯 튀어 올랐다. 덕천시를 점령하고 있는 4티어 몬스터 중 가장 번식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헬비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 2미터로 4티어 치고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장갑차도 물어뜯어 해체시켜 버리는 강력한 턱과 집게를 가진 청록빛 보호색을 지닌 이 몬스터의 무서운 점은 그 무시무시한 번식력에 있었다.

낙엽과 거목이 쓰러져 불꽃이 치솟고 사방을 환하게 비추자 득실거리는 헬비틀 무리가 드러났다. 비명을 지르고는 있지만 헬비틀은 폭탄 따위에 타격을 받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헬기를 향해 붉은 눈을 빛낸다.

-징그러워. 저것들은 뭐야?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이야. 만약 지금 지구에 열린 게이트들이 다크어스의 게이트들 뿐이었다면 아마 인류는 진작 멸망했겠지.

아카데미에서 귀에 인이 박히도록 배운 질곡의 역사가 이곳에 있었다.

인류가 그나마 전세를 재정비하고 몬스터들을 어느정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엘어스의 몬스터들과 다크어스의 몬스터들 또한 서로 원수 보듯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차원의 몬스터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들이 있었지만 타차원의 몬스터들과 만나면 언제 싸웠느냐는 듯 합심하여 서로를 공격했다.

평균 전투력을 따지면 엘어스의 몬스터들은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을 따르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사이에 끼어 양 사이를 적당히 조율하며 반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의 힘이 미치지 못한 이런 오지에는 아무래도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이 더 강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특히 이 좁은 북한 안에는 그런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기로 유명했다.

“현장은 오랜만이구만!”

권제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양 손에는 거무튀튀한 색의 커다란 너클이 끼워져 있었다. 주먹 위에 돋아난 돌기가 흉악하게 빛나는 이것은 권제의 독문무기였다.

‘혈영’ 이라는 이 너클을 끼고 싸우는 권제는 그 모습이 너무 흉악하여 몬스터조차 겁에 질려 도망치기로 유명했다.

“제황아. 버스 제대로 탈 준비 되었느냐.”

“예. 할아버지. 무적성의 병기창에 있는 화살 전부 쓸어 왔습니다.”

“준비는 제대로 됐군. 어디 한 번 네가 지치나 내가 지치나 해보자꾸나.”

“예.”

“그럼 시작하자.”

권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제황이 먼저 헬기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권제가 몸을 풀더니 헬기문 앞에 섰다.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제황의 손 위로 붉은 형체가 나타나더니 제황은 그걸 붙잡고 서서히 활강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끝을 알 수 없는 놈이구나. 녀석아. 네가 뭘 얼마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상관없다. 다만 내가 죽은 후에는 다크어스 게이트의 선봉은 네가 되어야 한다.”

독백하며 쓸쓸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보던 권제 또한 헬기문에서 뛰어 내렸다. 거의 수직 활강하듯 떨어져 내리던 권제가 공중에서 몸을 돌려 자세를 잡더니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올려 혈영을 겹쳤다.

“어디 오랜만에 힘 좀 써볼까. 흐으읍!”

혈영을 중심으로 하얀 강기가 줄기줄기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맺혀진 강기가 하나의 둥근 구를 생성하는 순간 권제의 입에서 기합이 터졌다.

“하아압!”

[무적진천권세] [無敵振天拳勢]

쿠우우...

권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패도적인 강기는 둥근 구의 형상이 되어 땅에 내리꽂혔다. 그 넓이는 무려 반경 100미터... 그 세력권 안에 휩쓸린 헬비틀은 모조리 ‘푹찍’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지탱하는 여섯 개의 다리가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날아내리는 제황을 향해 촉각을 세우던 헬버그들이 모조리 권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그로의 수준이다르다.

차르르르륵...

수백수천마리의 헬비틀이 비어버린 자리를 채우려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놈아! 얼른 주워 먹어라!”

“예!”

인간이 일으켰다고는 보기 힘든 자연재해에 잠시 몸이 경직되었던 제황은 권제가 박살내 놓은 곳을 향해 연신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힘조절을 했는지 죽은 헬비틀은 거의 없었다. 전부 위에서 순간적으로 내리꽂히는 엄청난 압력에 모든 다리가 부러져 있을 뿐이다.

전투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와 몬스터의 마지막 숨을 누가 끊었느냐에 따라 경험치를 부여하는 세이브의 시스템을 정확히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숙련된 버스 운전자의 솜씨

말 그대로 먹기 좋게 차려진 식탁!

할아버지가 손수 차려주신 식탁을 마다하는 건 손자의 예의가 아니었다.

츠츠츳...

스톰레이지의 시위와 시위를 당기는 제황의 손에 붉은 마나가 덧씌워졌다. 마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가능해진 방법으로 이런 식의 수법으로 보호하면 훨씬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다.

-저 늙은이가 작정한 것 같은데 나도 힘 좀 써야겠군.

[화신체]

제황의 몸에 붉은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 형상이 붉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듯 보인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모든 능력치가 +1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량이 +500 증가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하여 마나회복율이 10프로 증가합니다.]

궁기 또한 이번 9티어 마나석의 흡수를 통해 이전처럼 소모성으로 도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세기를 조절하여 부작용 없이 화신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권제와 궁기의 지원에 힘입은 제황은 전력을 다해 헬비틀의 머리에 화살을 꽂아넣기 시작했다.

***

[무적성 제1차 국토수복 프로젝트 D-3]

제황이 권제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신나게 레벨을 올리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 대한민국은 무적성에서 모든 방송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광고로 인해 말 그대로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광고가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 했다.

무려 북한 평안남도의 절반을 수복하겠다는 대한민국 국토수복에 한 획을 그을 프로젝트의 시작이 고작 3일 남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이것을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나 혹은 다른 광고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정오에 발표된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국토수복 프로젝트에 대해 찬사하는 성명 발표와 함께 국토수복과 관련된 무적성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헌터사무국장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번개불에 콩 볶듯이 그날 저녁 대한민국정부의 국토부장관 장일섭이 이번 무적성의 국토수복 프로젝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 차근차근 준비해 왔으나 최근 저스틴포인트 사태로 인해 국민 정서를 고려해 좀 더 빠르게 그 내용을 밝히게 된 거라고 이번 일에 대한 전말을 밝혔다.

그렇게 무적성과 헌터사무국, 정부가 의견일치를 이룬 그날 저녁 전경련의 전격적인 국토수복 프로젝트 특별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저...대통령은 이번 국토수복계획에 대하여 무적성과 긴밀한 협조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이 계획에 큰 우려를...

이형우 대통령의 대국민발표도 있었다.

이형우 대통령은 마치 이번 계획에 대해 자신도 한 발 걸치고 있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대국민발표를 했지만 말미에는 성급한 계획 추진을 우려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무슨 소리를 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남북의 화합 같은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밀어내면 땅이 생긴다. 그것은 곧 부를 창출하고 슬슬 다시금 과거처럼 과밀화 되는 대한민국에 단비와 같은 일이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 놀람은 이내 환희와 지지로 변했다.

재미있는 것은 클랜들의 반응이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놀랐다. 아니 일반인들보다 더욱 놀랐다.

그것은 일반인들은 모르더라도 자신들은 알았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 또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감쪽같이 자신들은 몰랐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번 무적성의 행동에서 전혀 엉뚱한 예상을 내놓았다.

“이건 솎아내기야.”

“그렇습니다. 무적성이 드디어 이를 드러낸 겁니다. 이번 무적성의 행사에 참가 여부에 따라 선가르기가 시작될 겁니다.”

“참여해야 겠지?”

“당연합니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저는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최근까지 무적성은 삼천교의 빌런들 토벌에 대하여 각 클랜들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었지만 저희는 미온적으로 대처했습니다. 그 반대여파입니다. 권제님께서 드디어 노하셨습니다.”

“킁, 만약 이번 일에 따르지 않으면 앞으로 무적성의 행사는 발도 못붙고 앞으로 무적성의 보호도 기대하기 힘들 거야."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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