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7화 (97/301)

# 97

음모의대한민국-2

“무상!”

“예!”

“자네 생각은 어떤가.”

권제의 물음에 최진하가 입을 열었다.

“일본 천황클랜을 치면 어떻겠습니까.”

“어째서지?”

“저들 중 한 축이면서 해외입니다. 적당한 핑계 한 두 개만 조작해서 사건을 키운다면 적어도 두 달 안에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소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의 세력도 위축되지 않겠습니까?”

무적성의 선봉다운 말이다. 물론 그의 말이 단지 호기만은 아닌 것은 그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말에 나길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놈들의 경계심만 높여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형우 대통령은 현재 일본의 극우 내각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니 만약 일본이 요구하면 그대로 무적성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나길환의 말에 권제의 주먹에서 핏줄이 돋아났다. 사실 그도 이형우 대통령이 처음부터 마땅치 않았다. 그렇지만 무적성과 같은 무력을 기초로한 단체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자신이 혈연으로 후계자를 세우지 않는 이유와 상충되기에 가급적 중립을 유지했었다.

그런 그의 결정이 처음으로 후회스러운 권제였다.

“결론은 금력과 시간 싸움입니다.”

조용기의 말에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무적성이 언제 이렇듯 끌려 다닌 적이 있던가.

생김새와는 다르게 불같은 성격을 지닌 최진하는 지금이라도 당장 청와대로 쳐들어갈 기세다.

그 때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제황이 손을 들었다.

“할아버지.”

“그래. 제황아.”

“들어보니 떨어지는 주가를 받치기만 하면 일단 한숨 돌리는 겁니까?”

“그렇지.”

주가를 방어하기만 하면 풋옵션은 발동하지 않고 저들의 음모는 분쇄할 수 있다.

저들이 챙겨갈 천문학적인 돈은 수십만의 대한민국 개미들의 목숨줄 이다. 만약 분쇄하지 못한다면 풋옵션 행사 다음 날 아마 한강대교를 찾는 인간군상들로 득실거리리라.

물론 지금 하는 짓이 의도적인 주가 조작이지만 저스틴포인트를 먼저 공격한 건 저들이었다.

“제가 고등학교 경제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대융합 이후 주가가 급속히 올랐던 때에 있다고 배웠습니다.”

제황이 고등학교를 들먹이자 귀를 솔깃하던 모두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주가가 급속하게 올랐다는 말에 다시금 제황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급격히 올라?”

“예. 몬스터에 의해 함락 당했던 곳을 수복하여 다시금 땅을 분배했을 때 대규모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라고...”

“그렇지!”

제황의 말을 끊고 최진하가 무릎을 탁 쳤다.

모두 잠시 주식이라는 것에 집중하여 그 방법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런 땅이 있을 리가...”

"만들면 됩니다."

"만들어?“

조용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황의 말대로 한다면 지금 가장 가까운 땅은 역시 북한 쪽이었다. 북한에는 아직도 대융합 당시에 소환된 몬스터들이 건재했다. 게다가 북한쪽에 새롭게 생기는 엘어스 게이트와 다크어스 게이트, 그리고 중국 쪽에서 내려온 오크들로 인해 한 동안 본격적인 토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엘어스의 게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크어스의 강력한 몬스터들이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 많아 무적성도 공략이 꺼려지는 곳이 북한이었다.

그러나 권제는 제황의 그 의견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황이의 말이 맞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그 말과 함께 권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모두가 일어선다.

“문상! 주가를 떠받칠만한 개발호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북한 쪽에 얼마만한 땅이 필요할 것 같은가.”

권제의 물음에 조용기가 잠시 계산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현재 수복된 곳이 평양까지입니다. 개발 호재를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중국 쪽 방향이어야 겠고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평안남도의 적어도 50퍼센트 정도는 수복해야 개발호재를 이끌어낼 겁니다. 최소한이라도 대략 서울 면적의 두 배 가량입니다.”

단순 계산상으로 1400제곱킬로미터... 작지 않은 크기다.

조용기의 말에 권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빨라야 하겠군.”

“그렇습니다. 저희 무적성에서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것저것 고려하면 최소한 한두 달 안에 수복을 완료해야 합니다.”

"그렇지. 국토수복을 통한 건설경기부양이 하루아침에 뚝딱 가능한 건 아니니까. 관계부처 조율이나 사전 준비 작업도 필요하겠지. 보자... 과거에 얼마나 걸렸지?"

"준비기간만 1년이었습니다."

조용기가 대답했다. 사실 과거의 1년도 짧은 편이었다.

그 때야 국가가 안정되지 않아 조금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했음에도 1년이 걸렸다.

"그래. 그런데 이번에는 좀 급히 해야겠다."

"네?"

권제의 말에 조용기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이마에 한줄기 땀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권제님 아무리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도 이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관계부처 협의나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협조가 없으면 힘듭니다."

"대한민국을 좀 먹는 쥐새끼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무너뜨리려 한다! 이건 전쟁이야! 헌터사무국은 수석원로의 자격으로 내가 맡겠다. 저 빌어먹을 공무원 놈들은 입에 돈을 쳐넣든 자식새끼 명줄을 잡고 협박하던 당장 협조를 끌어 내!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다."

권제의 말에 조용기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단 5일의 말미를 주십시오. 적들에게 너무 급히 움직인다는 낌새를 줘서는 안됩니다. 기필코! 5일 안에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허한다!”

“존명!”

권제의 말에 조용기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대답했다.

"집사!"

"예! 어르신!"

"대한민국 모든 클랜에 알려라. 무적성은 국토수복전쟁에 들어간다. 이번 전쟁의 선봉은 무적성이 될 것이고 아울러 각 클랜은 자신들이 수복한 땅에 대한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다. 내 말을 알겠나?"

"맡겨 주십쇼. 어르신"

"무상!"

"예!"

"무적령을 발동한다!"

권제가 품에서 금패 하나를 꺼내 들자  무상 최진하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가슴 앞에 모으며 외쳤다.

"무적령의 뜻을 받듭니다."

"지금 이시간부로 무적성의 모든 전력은 준전쟁태세에 돌입한다. 우리 무적성은 삼일 안에 전력을 추슬러 수복전쟁에 대비한다."

권제의 명이 떨어지자 내실 내에 있던 모든 이가 빠르게 빠져 나갔다. 권제의 명에 따르자면 오늘부터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때 집사 나길환이 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자신의 이권이 걸린 이상 온갖 방법으로 저희를 방해하려 할 겁니다. 모든 힘을 평안남도에 쏟아 부어 저희 무적성이 약해질 때 ...”

나길환의 말에 권제가 눈살을 찌푸리고 장고에 빠졌다.

그가 알고 있는 이형우 대통령은 돈에 아주 민감했다. 풋옵션이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치졸한 짓이라도 서슴치 않고 할 위인인 것이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권제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비릿하게 말했다.

“놈들에게 우리 무적성의 고마움을 좀 느끼게 해주면 되겠지.”

그 말과 함께 권제가 자신의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더니 이내 이름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는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뚜루루룩

상당히 오랜 시간 통화연결음이 있은 후 마침내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는 목소리가 매우 불쾌해 보인다.

-왜 전화했냐. 노괴야.

걸걸한 음성의 남자다.

무려 권제를 노괴라 불렀지만 권제는 그 말에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북쪽 사투리는 안 쓰냐. 하긴 우리 애들 손아귀에서 숨 쉬려면 한국말부터 제대로 배웠겠지.

권제의 느물거리는 대답에 상대측으로부터 고성과 쌍욕이 터져 나왔다.

-뭐이 어드래? 이 간나새끼! 내 언젠가 그 터진 아가리를 혁명적으로 찢어 주갔어!

-뭐 혁명적으로 찢든 주체적으로 찢던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제안이 있다.

권제의 말에 갑자기 상대가 침묵에 빠졌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다시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 처먹고 치매왔니? 너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

-오늘부터 우리 무적성은 대한민국정부 방어에서 한 발 물러난다. 특히 네가 좋아하는 그 청와대 주인에게서 말이다.

-뭐 그런 뚱딴지 같은... 그 말을 지금 내래 믿으라 하는 거네? 또 무슨 꿍꿍이내.

-허허, 꿍꿍이는 무슨... 그냥 요즘 그 놈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야.

-웃기지 말라! 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나?

상대는 권제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하긴 당연할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빌런단체 중 두 번째 크기를 자랑하는 붉은전사단의 수장인 노홍식이었으니 말이다.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삼천교는 아무래도 그 뿌리를 엘어스에 두고 있어 무적성과 부딪힐 일이 적었지만 붉은전사단은 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어 무적성과 악연이 깊었다.

특히 붉은전사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건 과거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의 각성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처음 남한에 내려왔을 때는 어떻게든 한 동포임을 강조하며 북한을 몬스터로부터 구해 달라 사정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이용한 후 쥐꼬리 같은 보상금만 준 뒤 쫓아버렸다.

그런 대한민국정부의 행태에 분개한 북한의 각성자들이 모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빌런이 되었고 그 중심이 되는 게 지금 권제와 투닥거리고 있는 노홍식이었다.

-... 게 되었다.

권제는 이번 풋옵션 사태에 대해 노홍식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상대도 머리가 없지 않은 이상 권제의 이런 말 한마디로 움직일 병신들은 아니었다.

조근조근 설명하니 노홍식의 진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고조 그 청와대 쥐새끼랑 쪽바리들이랑 똥구멍을 맞추고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려고 한다는 말이디? 하하하

-그래. 임마.

-흐흐... 아무튼 자본주의에 찌든 돼지는 어쩔 수 없는 기야. 그래서? 네가 건드리기 힘드니 대신 건드리라? 미쳤네? 이놈에 대한민국 싹 디져버리면 내가 무적성에 축하 선물이나 거하게 보내 주지. 어칸?

노홍식은 권제를 조롱하듯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유감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도움을 약속하고 북한 각성자들을 전위에 세워 희생시키고는 그 세력이 약해지니 적선하듯 몇 푼의 보상금과 대한민국 국민 자격 하나 던져 줬을 뿐이다.

그 때 권제의 한 마디에 그의 조롱이 뚝 멈췄다.

-평안남도

-뭐? 그게 무슨 말이네?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무적성의 모든 전력은 오늘부터 평안남도 수복에 들어간다. 두 달! 두 달만 이형우 대통령과 그 수족 놈들의 혼을 빼준다면 평안남도 수복 후 불하되는 땅의 50퍼센트를 실향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넘기겠다.

권제의 말에 그는 한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조금 떨리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참말이네?

-그래.

-흠... 잠시 기다리라. 나도 아새끼들이랑 이야기 좀 해야 하니.

-기다리지.

뚝...

전화가 끊기고 권제는 눈앞에 식은 찻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공짜!

-안 돼. 그럼 나도 파산이다.

-이런 애미나이... 50프로!

-흠...50프로... 좋아.

권제가 수락하자 노홍식 또한 뭔가 많은 말이 오가는지 수화기로 목소리가 분분했다.

-우리는 마음껏 뛰어놀 테니 방해 말라.

-60프로! 이형우 그 놈과 연관된 곳만 공격할 것, 민간인들의 피해는 없을 것!

주가를 흔드는 짓은 하지 않을 것!

-이 아새끼래! 한 마디로 티나지 않게 공격하라는 거 아니네. 좋아. 그건 받아들이지. 대신 그 이형우의 목은 양보 못한다!

그 말에 권제가 씨익 웃었다.

-바라던 바다. 놈에 대해서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무적성은 침묵하겠다. 대신

-대신?

-놈을 쉽게 죽이지는 마라.

-흐흐, 그거야 우리 전문이디. 알갓어.

권제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권홍식이 수화기 너머로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살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공약을 통해 북한실향민을 지원하겠다며 표를 빨아간 주제에 예산이 부족하다며 손바닥 뒤집듯 공약을 파기한 그에 대해 노홍식도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다.

뚝...

권제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제황에게 말했다.

“제황아.”

“예. 할아버지.”

“이 할애비가 버스 태워 줄 테니 폭렙 한 번 하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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