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4화 (94/301)

# 94

페이즈쓰리-3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는 패닉에 빠졌다. 브레이커 두 기가 저 혼자서 날아갔을 리는 만무하니 누군가가 훔쳐갔으리라. 그리고 이곳에 그것을 훔쳐갈 만한 이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돌파 당했다!”

그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렀을 때 요란한 싸이렌소리에 섞여 연구블록 쪽 통로로부터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기긱...쿵...쿵

육중한 무게를 지닌 이족 보행의 어떤 것이 날카로운 것을 땅에 끌고 오는 소리다.

암전되어 붉은 등만 미약하게 깜빡이는 복도의 어둠속으로 거대한 생명체가 언 듯 언 듯 보인다. 그는 허리춤에서 야간투시경을 꺼내 머리에 걸쳤다.

"미..미친...흡.."

그리고 동시에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숨기려 입을 막았다. 그는 저것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런 통로에서 정면으로 마주치는 꿈에 나올까 무서운 상황 따위는 아니었다. 거대한 유리관 안에 들어있는 것을 지나가며 구경했었다. 그 때 지나치는 귀로 연구원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었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저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들인지...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봤다.

얼른 도망치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것들은 청각을 제외한 시각과 후각을 제거 당했다고 들었다. 제거당한 이유도 시각과 후각까지 갖추게 되면 정말 제어가 불가능하기에 다운그레이드된 것이다.

‘소리만 내지 않으면 살 수 있어.’

그는 재빨리 부하들의 앞으로 달려가 수신호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가 수신호를 시작할 때 안력강화스킬이 있는 한 대원이 그것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 저건...뭐...”

그는 채 두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입을 열기 전에 그의 목이 공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슉...피이이익...

애처롭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깔끔히 잘린 목의 단면으로부터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으악! 저게 뭐야!”

대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목 또한 동료와 같은 꼴이 되었다. 공포가 들불처럼 퍼지고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기는 괴물의 몸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위치를 가르쳐 준 꼴이 되었다.

"냉병기! 냉병기를 컥!"

지휘자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터졌지만 그 또한 몸이 양분되어 날아갔다.

"맞서!"

"도망쳐!"

도망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가 엉켜 한 편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드르르륵..드르륵!

츠컥...츠컥..츠컥...

***

-이 딱정벌레처럼 생긴 건 왜 챙겼어?

-재미있어 보여서...

-어린애니? 이런 걸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났잖아.

-드라마중독자에게 그런 충고 듣기는 싫다.

궁기의 농담 따먹기를 하며 제황은 복도를 달렸다. 뒤쪽에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지옥에서나 들릴법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지더니 이내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졌다. 궁기안을 통해 보니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어떤 것들이 느껴졌지만 제황은 깔끔히 무시했다. 이곳에 있는 놈들은 모두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륜적인 연구에 대해 알고 있던 놈들이다.

실행자는 아니더라도 방관자다. 그런 이들을 위해 굳이 돌아가서 그 강력한 것들을 처리할 생각은 1그램도 생기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을 죽이며 전진해 들어왔는데 그들을 살리기 위해 돌아간다? 넌센스다.

-위! 위위!

“웃차!”

격벽이 일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제황은 몸을 바닥에 눕히듯이 하여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세 개 정도의 격벽을 지났을 때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러나 제황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환기구를 뚫고 올라가 다시금 그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격벽을 내린 주제에 환기구는 그대로다.

물론 조금씩 숨쉬기가 불편해지고는 있지만 이 정도는 아직 버틸 만 했다.

가로세로 1미터 가량 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제황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달리는 것 같지만 제황은 뚜렷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려울 것도 없다. 한 번 왔던 길이니까.

-거의 다 왔어.

이 비밀지하연구소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정상적인 출구가 단 하나라는 것이었다.

- 내려가서 오른쪽 생명 반응 둘! 하나는 좀 강해!

-알았어.

궁기의 말에 제황은 환기구를 박살내며 뛰어내린 뒤 곧장 호랑이사냥을 발동시켰다.

“으아악!”

갑자기 머리 위의 환기구가 터져나가자 앞서 달리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환기구의 파편이 덮쳐오자 뒤따르던 남자가 앞서 달리던 남자에게로 쏟아지는 파편을 막아냈다.

“뭐..뭐야.”

“폐쇄 프로토콜의 여파로 환기시스템이 망가진 것 같습니다!”

“젠장! 쓸모없는 것들! 끝까지!”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년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대답하는 젊은 사내의 손에 들린 서류가방을 주목했다. 서류가방은 사내의 손과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잘 챙겨! 내 목숨 줄이야!”

“알겠습니다.”

장년인의 말에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것이 뭔지는 잘 안다. 폐쇄망에도 저장해선 안 될 기밀과 귀물이 담긴 서류가방이다. 이것이 있어야 자신의 상관이 다시금 재기할 수 있고 그의 부하인 그도 살 수 있었다.

“소장님!  어서 서두르셔야 합니다!”

“알았어.”

신경질적으로 말한 소장이 몸을 돌렸다. 조금만 더 가면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가쁜 숨을 달래며 다시금 두 다리에 힘을 줄 때였다.

"응?"

누군가가 엘리베이터 앞에 가만히 서 있다.

마치 이 위급한 상황에 아무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서 있던 남자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인가?”

남성 특유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로는 기껏해야 20대 초반...

“너...넌 소속이 어디야. 위에서 마중 나온 건가?”

소장이 외쳤다. 가장 최악의 경우를 제거하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입에서는 그 가장 최악의 경우가 흘러나왔다.

“나?  침입자야.”

“흐아아앗!”

그 말이 나옴과 동시에 소장의 뒤에 서 있던 이가 번개 같은 속도로 남자를 향해 짓쳐 들었다. 서류가방을 든 반대편 주먹에는 하얀 스파크 덩어리가 한가득 뭉쳐 있다.

"기가썬더피스트!"

5성하이브리드 헌터인 그는 연구소장이 연구소에 비밀리에 심어놓은 심복이었다. 평소에는 평범한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낌새가 이상한 이들을  솎아내는 역할을 해왔었다.

마법과 육체계열 스킬을 골고루 지닌 그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장 그 힘을 드러내기만 하면 단숨에 6성 헌터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강자였다.

그렇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만약 그가 이 상황을 모두 통찰할 수 있는 이였다면 이렇게 쉽게 덤비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침입자가 왜 굳이 지금 모습을 드러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면 얌전히 뒤에 짱박혀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투툭...

"어어억?"

침입자를 향해 달려들던 그는 갑자기 앞을 디딘 발바닥이 쑥하고 미끄러지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몸이 일순간 중심을 잃었고 그의 비장의 무기인 기가썬더피스트가 인첸트 된 그의 손은 반사적으로 바닥을 짚었다. 스킬이 허무하게 해제되어 버렸다.

반대편 손에 수갑과 연결된 가방이 문제였다. 한차례 바닥을 구른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그란 흑갈색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자신은 그것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이...이게..아아악!"

순간 격렬한 통증이 두 눈을 덮쳤다. 뭔가 길고 뭉툭한 게 자신의 두 눈을 쑤시고 들어온다 싶더니 숨조차 쉬어지지 않을 고통을 안겨주며 빠져 나갔다.

"위스키봉봉 주인이 안부 전해 달란다."

퍼어억!

"커억!"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뒤통수에 거센 일격을 당한 그가 쭈우욱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으...으어..."

두 눈을 잃어버린 그는 두 손을 허우적거린다.

푹...푹...

두 발의 화살이 날아와 그의 심장에 꽂혔다.

5성 하이브리드 헌터 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으...으으.."

소장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자신의 심복이 어떻게 당했는지 모두 목격한 그는 이미 저항의지 자체가 사라져 있었다.

상대는 손에 들린 피에 젖은 하얀구슬 두개를 이소장의 앞에 툭 던진 뒤 손에 묻은 피를 바지춤에 슥슥 닦았다.

"으아아악!"

죽음에도 종류는 여러 가지다. 호상도 있고 객사도 있고 피살도 있고 자살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사신은 그에게 편한 죽음을 내려주는 것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했다.

"사...살려줘!"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지?"

"그...그건!"

상대의 말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을 살려야 하는 이유를 대라니 문제의 출제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지 않은가. 출제자의 의도도 파악하지 못한 서술형 문제가 그의 앞에 놓였다.

오답의 댓가는 그의 목숨이다.

"나...난! 대현가의 사람이야! 날 죽이면 너나 널 보낸 단체도 편히..."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상대가 허리춤에 두 손을 올렸기 때문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임이 느껴진다.

"그래? 그럼 내가 어디서 파견되었는지 이야기 해 줄까? 난 말이야."

"아아악! 안 들려! 안 들려!"

그는 본능적으로 두 귀를 틀어막았다. 저걸 듣게 되면 자신의 선택지가 대폭 줄어들 게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캐치한 것이다.

"난! 난! 대현이 가진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

"예를 들면?"

"그...그... 우리는..."

삼천교와 대현의 관계에 대해 말하려던 그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걸 말하는 순간 자신은 이제부터 대현과 적이 된다. 만약 자신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 저 사신을 보낸 단체로 잡혀간다고 해도 그 때부터 대현과 그 단체와의 협상에 자신의 목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자 제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랑 삼천교가 붙어먹은 거? 아니면 이번 저스틴포인트가 오크들에게 점령당한 것에 연관된 거??"

"그...그걸 어떻게..."

"우물 안 개구리 주제에 생각이 많군. 그보다 너... 아직 네가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대지 못했다."

뚜벅..뚜벅

제황이 이소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이소장이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그....그 일에는 일본도 관련되어 있어!"

"일본?"

제황의 발이 우뚝 멈췄다.

"그래! 일본의 천황클랜이 중국 쪽의 골칫거리인 오크들을 함께 처리한다는 핑계로 끼어든 뒤  오크들을 자극해서 저스틴포인트로 향하도록 공작을 진행했어! 지금 저스틴포인트를 점령한 오크들은 일본이 만든 것과 같아!"

"삼천교는?"

"삼천교 자체를 키운 게 일본의 천황 클랜과 대현이야! 나...난 그걸 증언해 줄 수 있어!“

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흠...그런데 말이야.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증인이라는 게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이 해야 약발이 먹힐 것 아냐."

제황의 말에 소장이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나! 난! 이 비밀연구소의 건립 때부터 연구소장을 맡아왔어! 그리고 내 형님은 대현그룹의 부회장이야!"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는 생각에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어필했다.

그러자 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살려주지."

"하아."

제황의 말에 소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음의 목전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것이다. 제황은 뒤로 걸어가 벽에 처박힌 채 죽어있는 사내의 손에서 가방을 빼냈다. 툭툭 털어 무한고에 집어넣은 뒤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장에게 말했다.

"뭐해? 엘리베이터 안타?"

"어... 그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대로 대현클랜으로..."

오늘 새벽까지는 그의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든든한 보호자였지만 이제 모든 것을 토설 하게되는 이상 저 사신과 함께 저 위로 올라가는 건 불안했다.

"큭...별게 다 날 걱정하는군. 너 그냥 두고 간다?"

"아... 알았어."

폐쇄프로토콜이 발동되었다는 걸 떠올린 소장이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눌러."

"으음..."

사내의 말에 그가 자신의 품에 넣어뒀던 신분카드를 단말기에 댄 후 비밀번호를 눌렀다. 폐쇄 프로토콜은 말 그대로 이 연구소 자체를 아예 삭제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프로토콜이 실행되면 오직 단 한 명, 연구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신의 신분카드만이 이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유일한 수단이 된다.

띵~

소장이 1층의 버튼을 누른 후 한숨을 내쉬었을 때다.

"난 너를 죽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잘 가..."

"?"

퍽!

"으악!"

제황의 발길질에 이소장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히며 황망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는 이소장의 눈에 녹화버튼이 켜져 있는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아아악! 으아! 으아아악!"

자신이 이용당하고 버려졌다는 게 억울한 것일까? 곧 있으면 삭제프로토콜에 의해 자신 또한 죽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일까. 그는 이제 불빛조차 사라진 통로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그리고 통로 저 너머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것을 땅에 긁으며 다가오는 뭔가를 발견한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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