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3화 (93/301)

# 93

페이즈쓰리-2

-피해상황 확인!

-김장호 박사와 추정우연구원 사망! 경비원  2명 사망 1명 중태, 최현태 헌터 사망! 임미나 헌터는 실종입니다.

-이 새끼야. 그 따위 걸 묻는 게 아니잖아!

어제까지만 해도 연구소의 기둥이라며 어깨를 두들겼던 김장호 박사지만 지금 그에게 김장호나 다른 것들의 생존 여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탈출한 실험체들은 현재 추적 중에 있습니다! 대기 중이던 제2특수경비대가 투입되었으니 곧 모두 잡아들일 겁니다.

이미 제황의 화살에 녹아버린지 오래지만 이곳에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워낙 순식간이었으니까.

-하나도 놓쳐서는 안 돼!

-예! 비번인 5대를 제외한 제1, 3 특수경비대가 도착 할 테니 이들도 투입하겠습니다.

-긴급이니까 빨리 움직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안설비팀 새끼들 내일 부로 전부 모가지야.

-아... 옛!

쾅!

"제기랄!"

대현클랜 최하층에 위치한 비밀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이동찬은 지끈거려오는 머리에 욕지거리를 하며 신경질 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의례적으로 하는 아침 조회를 마친 그는 오늘 새롭게 테스트 될 실험에 대해 자체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기 위해 그의 개인 연구실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워낙 다루는 실험들이 비밀을 요하는 것들뿐이라 오히려 아는 사람이 적어 외부에 눈치 윗선이 별로 없기에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일상이 박살났다.

침입자가 발생했다.

침입자면 침입자답게 한밤중에 침입할 것이지 정말 애매한 새벽 시간에 침입했다.

뭐 여기까지면 그냥 전화 한 번으로 끝냈을 것이다. 비밀리에 운용하기는 하지만 정보팀을 운용하는 곳은 대부분 알고 있는 베일에 싸인 곳이기에 한 달에 한 번은 월례행사처럼 침입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대현 클랜은 지금까지 훌륭하게 침입자를 격퇴해왔다.

그런데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이번 침입자는 틀리다.

대체 어느 단체에서 보낸 침입자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작정하고 괴물을 침투시킨 것이다.

침입자는 연구소를 제집처럼 활보하며 돌아다녔고 가장 비밀스럽게 숨겨야 할 실험체들을 모조리 끌고 탈출해 버렸다. 그뿐일까? 폐쇄망 내에 외부에서 서버로 접속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적은 강하고 은밀하며 대담하고 노련하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침입자의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미 한 마리 침입하지 못한다던 감시 시스템은 적 앞에서 말 그대로 눈먼 봉사였다. 적은 그냥 신나게 뛰어 놀았다.

만약 침입자를 잡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자신은 기밀유지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가 회장가의 혈족이라고 해도 그룹을 위협하는 대상이 된다면 그룹은 가차 없이 자신을 처리할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침입자를 실험체의 탈출을 저지했다거나 적을 퇴치했다는 보고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다. 그리고 10분여가 지났을 때 그가 이를 질끈 깨물었다.

“안 돼. 안 돼.”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된 전화기다.

잠시의 통화연결음이 있은 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오... 동찬아. 오랜만이구나.

나이 진득한 노인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예. 무고하셨죠?

-그래. 나야 뭐 늘 똑같지.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매일 연구 때문에 시간 없다고 하더니...

-후우...다름이 아니라...

이소장은 노인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감추는 것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노인이 이 비밀연구소를 만드는데 손을 든 이이자 외부로부터 실험체를 공급하는 이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다치면 노인도 무사하지 못한다.

-이런, 정말 곤란하게 되었군.

-예.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아냐. 그건 그렇고 이 일은 지금 누구까지 알지?

-아마 지금쯤이면 성재 귀까지 들어갔을 겁니다. 일단은 클랜마스터니까요.

-흠. 성재 그녀석이라면 네가 위험하겠구나.

-예. 아무래도 녀석은 저쪽에 간판이니까요. 그래도 성재 정도는 제가 커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회장님입니다.

-그렇지. 형님이 문제지. 그래도 성제 놈도 만만치 않아.

-알죠. 그놈 속에 구렁이 수백 마리가 든 건... 일단 지금은 저 혼자입니다. 그보다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읍소했다.

그룹의 신전략사업인 몬스터 생명공학의 핵심을 담당하는 그로써 그룹의 기술선봉을 책임진다는 프라이드를 가진 그였지만 이제 그는 형님의 밑으로 들어가 이번 위기를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설마 동생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겠냐.

-형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예.

-일단 넌 지금부터 연구소에 있는 모든 것을 소각하는 것에 집중해라.

-예예? 소각이죠?

이소장은 깜짝 놀랐다. 이곳은 자신의 피땀이 어린 곳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의 근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형님의 지시는 단호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언젠간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지 말에 거침이 없었다.

아니... 아마 관련된 세부 플랜도 모두 짜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님을 탓할 수는 없다. 탓하려면 연구소의 보안시설을 너무나 과신했던 자신을 탓해야지.

-쯧... 녀석아. 거긴 이미 끝났어. 얼른 꼬리 자를 생각이나 해. 요즘 여론이 안 좋다. 만약 그곳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외부에 노출되면 목숨 한 두 개로 끝날 일이 아니야. 알지? 연구소는 우리 그룹이 가진 대계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걸.

무적성에서 우리를 주시한다는 정보부의 보고가 있었어.

-아...알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 누구냐. 부소장은?

-부소장은 저와 격일로 휴일을 가져가기 때문에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너 그놈 믿을 만하냐?

-부소장이요? 글쎄요. 워낙 똑똑한 놈이라... 아직 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일단 뒤집어씌우고 처리하는 걸로 가닥을 잡아 봐야 겠군.

뒤집어씌우고 처리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금방 알아듣는 이소장이었다. 자신은 해보지 못했지만 그룹가에 있으면서 그런 식으로 죄를 짊어지고 사라지는 머슴들을 숱하게 목도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다. 아무튼 넌 얼른 움직여라.

-예.

형님과의 통화를 끝낸 이동찬연구소장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형님의 말대로 끝내려니 머리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 때 연구소 경보 사이렌 중 위험3단계를 알리는 비상사이렌이 울리며 그의 판단을 독촉했다.

웨이에에에엥... 적이 침입했습니다. 웨이이이엥

“어...어떻게...”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소장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주파수를 맞췄다.

그러자 고통에 찬 비명성과 폭발음, 고함소리가 무전기로부터 터져 나왔다.

-제 2,3,4 경비대 교전에 들어간다! 막아!

-경비대! 빠져! 빠져! 경비대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다. 아머드 투입하고 제 1특수경비대가 뒤를 받친다.

-아아악! 피해!

-제 1 특수경비대 전멸!! 제 3특수 경비대 교전 중! 중과부적이다! 후퇴! 후퇴!

-제 2구역 돌파! 제 3구역 돌파! 너무 빠르다! 적들의 규모라도 파악해!

-파악 불가입니다! 최소 6성 헌터가 포함되었습니다!

-밀어먹을! 어떻게든 막아! 격벽 내리고 가스 투입해!

-안됩니다. 아앗! 사라졌! 커억!

-브레이커 투입하고 모든 구멍을 틀어막아!

-브레이커 도착까지 3분입니다!

연구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놀라거나 화낼 틈도 없다. 단 2분 동안 들려오는 숨 가쁜 목소리에 굳어있던 그가 서둘러 내선번호 하나를 눌렀다.

-연구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지금 중앙연구실 상황 어때?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통제해야 되는 겁니까?

-지금 주위에 누가 있나?

-아뇨. 저만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듣기만 해. 예전에 제작했던 수인족실험체들 있지 그 예상수치를 초과했지만 변이현상과 통제실험에 실패한 것들 말이야.

-예. 있습니다.

-입 다물고 들어. 지금부터 그걸 풀어라. 푸는 즉시 내 방으로 달려와! 5분 후에 연구소 폐쇄 프로토콜을 실행한다.

-폐...폐쇄 프로토콜이요? 그건!

-넌 생각하지 말고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그는 품에서 강심제를 꺼내 한 움큼 털어 넣은 뒤  고풍스러운 원목 책상 밑에 숨겨진 버튼을 순서대로 눌렀다.

지이익

책상이 열리며 유리판에 덮인 붉은 버튼이 올라왔다.

절대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 질끈 깨물고는 서랍에서 기다란 열쇠를 꺼낸 후 그것을 붉은 버튼 옆에 있는 열쇠구멍에 끼워 맞췄다.

“후...이렇게... 끝내는 건가.”

연구소장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쩌엉! 쩌엉! 쩌엉!

퍼퍼퍼펑!

“후우우...”

자욱한 폭연 속에 몸을 숨긴 제황은 흐트러진 후드를 치켜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죽어! 악마!”

“으아아아!”

수십 개의 총구가 연신 불을 뿜고 있다.

“격벽 너머로 들여보내서는 안 돼! 넘어서면 우리까지 몰살이야!”

“죽어라!!!”

마치 총알을 쏟아 부어 통로를 막아버리려는 듯 사람들은 총구가 벌겋게 과열되도록 총을 갈겨댔다. 이미 주위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탄창이 떨어져 있었다.

-열심히도 쏘네.

-그러게.

물론 제황은 저들이 총알을 쏟아 붓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필사의 의지로 만든 포위망의 뒤에 은신한 채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호랑이사냥을 탐지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권제 정도 되어야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배고프네.

-나 먹을 것 밖에 없는데... 좀 줄까?

-초콜렛? 조금 만 줘.

나름 침투임무이기에 제황은 어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임무 중 대소변이 급해져서 화장실을 찾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특히나 그런 것들은 침입자의 흔적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려 내내 쫄쫄 굶었다.

그런 이유로 아침에도 속이 허했는데 연달아 힘을 썼더니 배가 고파오는 것이다.

슉...

제황의 손에 금박지가 까진 페레로로쉐 한 알이 둥실 떠올랐다.

명동의 유명 제과점에서 개당 10,000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초콜렛이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마쳤을 때 자신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던 여직원을 떠올랐다 사라졌다.

-난 네 간식 값을 생각하면 전혀 고맙지 않아.

-흐흥! 안들려. 안들려. 먹기 싫으면 말아.

-그건 아니고...

제황은 페레로로쉐를 입에 던져 넣고 우물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브레이커가 거의 도착했다. 도착하는 즉시 모두 튀는 거다!”

“알겠습니다.”

-브레이커가 뭐야?

-나도 몰라. 하나 더 줘봐.

-히잉... 이제 두자릿 수인가. 자...먹어.

우물우물...

제황이 두 번째 초콜렛을 입안에 던져 넣을 때 통로 뒤쪽에서 한 남자가 작은 소형 지게차를 끌고 달려왔다. 지게차 뒤에 부착된 판 위에는 지름 50센티 가량 되는 유선형의 비행체 3기가 놓여 있다.

“브레이커 도착!”

“좋아. 빨리 하나 기동해.”

지휘자로 보이는 이가 외치자 지게차를 끌고 온 남자가 브레이커라 불린 그 물건의 위에 달린 검은색 패드를 집어들었다.

“브레이커 기동! 준비!”

“카운트다운 돌입 10,9,8,7...”

“후퇴 준비! 진구! 천희 나머지 브레이커를 챙겨서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카운트다운이 모두 끝나고 브레이커라 불린 유선형 물체의 밑으로부터 푸른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떠올라 전면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브레이커 공격 시스템 가동! 자폭까지 10초!”

“도망가! 가가가!”

지휘자의 외침에 따라 모든 이들이 일제히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브레이커라는 저 물건이 가진 파괴력을 알고 있었다. 웬만하면 절대 사용되지 않아야 할 물건이다. 지하에 위치한 연구소가 매몰될 위험이 있기에 폭발력이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저것은 폭발력만 없다 뿐이지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살상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치이이이...

브레이커라는 물건으로부터 하얀 액체가 분사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욱한 안개가 되어 통로를 가득 채웠다.

“브레이커 폭발까지 3초! 3초 2초 1초!”

위이이이...

브레이커의 사면이 열리며 붉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위로 빛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폭발!

파팍! 파파파파팍!

브레이커로부터 시작된 빛이 사방을 가득 채우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모든 곳을 향해 퍼져 나갔다.

파파파팍!

눈이 멀어버릴 듯한 빛이 복도를 말 그대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빛무리에 닿은 모든 게 녹아 사라진다. 빛무리는 모든 것에 공평했다. 그것이 바닥이던 금속이던 상관없이 모든 걸 녹여버리는 것이다.

“으아아악!”

그 빛무리를 피하지 못한 두 명의 대원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빛에 휩싸였다.

치지지직...

그리고 빛무리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휘이이...

빛은 찰나였다. 그러나 빛이 사라진 후 나타난 곳은 말 그대로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욱...후욱...”

브레이커는 대현그룹이 아직 세간에 발표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공격 무기였다. 브레이커에서 살포되는 특수액체는  지름 30미터를 덮도록 설계되었는데 그것은 환풍구든 틈새든 상관없이 스며든다. 특수처리한 마나석 가루가 원료인 이 액체는 순간적으로 섭씨 10만도의 열을 발생시키고 이것을 바탕으로 큰 폭발 없이 지름 30미터를 모조리 녹여버리는 것이다.

“후우... 모두 경계태세! 열이 식으면 다시 진입한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에게 경계태세를 지시한 그는 이마에 송글송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브레이커가 실린 지게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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