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2화 (92/301)

# 92

페이즈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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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로 대현클랜 주변에 포진해 있는 밀령대원들을 하나하나 점검한 제5 밀령대주는 불편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걱정이군.”

“좀 더 깊이 탐색을 들어가 볼까요?”

“아냐. 이제 고작 1시간 지났을 뿐인데 오히려 위험만 가중시킬 뿐이지.”

밀령대주는 습관적으로 전용채널이 연결된 폰을 만지작거렸다. 침투한 곳이 모든 통신이 불가능한곳이기는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즉시 연락하기로 되어 있었다.

“역시 내가 따라갈 걸 그랬나.”

잠입, 폭파, 정보수집 및 요인암살에 특화된 밀령대를 뽑는 기본 조건은 은신류 스킬의 소유 유무가 기본이었다. 물론 최소 스페셜 등급의 관련 스킬을 지니지 않으면 아예 선발조건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렇게 들어온 이들은 선배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진득하게 2년을 배운다. 그 후 조금씩 경험을 쌓으며 10회 이상의 임무성공을 하면 조장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잠입은 능력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 갖춰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뒤늦게 후회했다. 하루 날 잡고 진득하게 기본이라도 가르쳐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침투는 이뤄진 상태다. 지금은 상대를 믿어야 할 때... 그 때 그의 폰이 울렸다.

“성공했군!”

“와!”

밀령대주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폰이 울렸다는 것은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번호를 확인 후 통화버튼을 누른 그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는 여자였다.

-오늘 메인 디너가 어떻게 됩니까?

-황...해바다...구름물결

문제는 상대가 사전에 약속한 암구어를 정확히 댔다는 것이다.

-제황입니다. 앞으로 10분 후 대현클랜 남쪽 몬스터부산물입하장에 대현클랜에 실험체로 잡혀 있던 11명이 사복을 입은 채 저와 함께 대기해 있을 겁니다. 차량을 수배해 주십시오. 도착하는 즉시 승차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고요. 아울러 지금 말을 하는 여자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폰에 설치된 자동파괴프로그램을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책을 읽는 듯 무덤덤했다. 마지막 ‘지금 당장’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밀령대주는 부하를 시켜 폰에 설치된 자동파괴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폰의 겉은 멀쩡하지만 내부의 모든 것을 숯덩이로 만드는 파괴 프로그램이었다.

“실험체 구출이라니... 큭, 임무가 다이나믹하게 변했군.”

부여된 임무 외에 위험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제황을 탓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 정도의 자율행동권 정도는 가진 제황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제황이 보낸 메시지의 진위여부는 둘째 치고 지금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 한다.

“몬스터부산물입하장이라...제길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지. 기혁아! 애들 모아라. 그리고 5분 안에 부산물수거트럭  한 대 수배해! 톤수는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무슨 재주로 그 폐쇄층에서 무려 11명을 구출하겠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일단 제황을 믿기로 했다. 그 때  그의 시야로 도로를 가로지르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절뚝거리며 달리는데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지나가는 차량으로 일부러 뛰어드는 모양새다.

“저런!”

끼이이익...쾅!

아니나다를까. 커다란 SUV 한 대가 급정거를 하며 여자를 치고선 멈춰섰다.

뒤이어 SUV를 피하려 트럭 한 대가 급하게 핸들을 틀었고 그 트럭으로 인해 수대의 차량이 서로 연쇄충돌을 하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을 벌였다.

“의도한 건가? 어떻게...”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대현클랜의 경비들도 뛰어온다.

혼란이 발생했고 기회라면 기회다.  제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은 밀령대주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3분 안에 수거 트럭 수배해!”

“예.”

***

"손 잡으세요."

"네."

제황은 팔에 힘을 주어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남자를 끌어올렸다.

"제가 먼저 출발해 선두를 뚫으며 소요를 일으키겠습니다. 최대한 요란하게 움직일 테니 기회를 봐서 부산물 집하장으로 뛰세요. 여러분들을 탈출시킬 차량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길을 숙지 하셨죠?"

"예. 확실히 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흑"

사람들이 제황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조금 머쓱한 기분이 된 제황은 일행의 뒤편에서 떨고 있는 수인족 소녀를 바라봤다. 제황의 옷을 얻어 입어서 반바지는 칠부처럼 보이고 티셔츠는 거의 원피스 수준이다. 나름 꽤 볼만한 광경이지만 제황은 별로 감흥이 일지 않았다. 단지 오들오들 떠는 게 불쌍할 뿐이다.

"저쪽도 잘 좀 챙겨 주세요."

"네. 맡겨주십시오."

탱커로 보이는 남자가 굳은 결의를 보이며 가슴을 탕탕 두들겼다.

갇혀 있을 때는 아무 희망도 없는 죽어버린 눈빛이었는데 지금 그의 눈은 삶의 대한 희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무한고 안에 언제 챙겼는지도 모를 보급형 장검 한 자루를 꺼내 들려주니 사람들을 보호하며 열심히 뒤따른다.

그를 보며 제황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삶을 향한 에너지가 제황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구출자들의 탈출을 가지고 고심할 때 의외로 해결책을 내놓은 건 잡혀 있던 남자들 중 하나였다. 다른 이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잡혀왔기에 이곳의 구조를 몰랐지만 그는 보유한 스킬특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B3방 한쪽에 숨겨진 외부와 연결된 비밀스러운 초소형 엘리베이터를 통해 운반되어 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제황은 무한고에서 여벌의 옷들을 꺼내 사람들에게 입혔다. 다른 사람들의 쥐꼬리만한 아공간과는 틀리게 제황의 아공간은 말 그대로 마나가 되는 만큼 무한에 가까웠다.

엘어스에서의 고립된 기억으로 항상 충분한 생필품을 구비하는 제황이기에 11명에게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통로는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붙잡을 모서리 하나 없는 반들반들한 곳이었지만 제황이 화살을 촘촘히 박아 넣고 임시 지지대를 만들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가장 지상과 지하를 잇는 초소형엘리베이터 안에 혹시나 있을 CCTV가 문제였지만 그것도 실험체로 있던 이들 중 '전자기장' 이라는 스킬을 지닌 이가 카메라를 교란시킴으로써 싱겁게 해결했다.

"지상까지 금방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이잉! 위이잉!

지상층에서 사람들을 인솔하던 제황은 채 세 걸음도 걷기 전 갑자기 울리는 요란한 사이렌음을 들었다.

철컹..철컹..철컹

통로와 통로 사이로 육중한 격벽이 내려와 모든 곳을 막아버렸다. 복도를 비추던 불빛은 마치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협하듯이 위협적인 붉은 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걸렸나보군."

사실 꽤 오래 버텼다 싶었다. 지나온 곳곳에 흔적을 만들고 사람을 때려잡았는데 한 시간이나 들키지 않은 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어...어떻게 해요!"

사람들은 불안한지 제황을 중심으로 모여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불빛 한 점 없는 골방에 구속되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곳은 사방의 벽들이 자신들을 조여 오는 듯한 공포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금방 해결할테니 잠시 뒤로 비켜주세요."

제황은 다른 이들을 뒤로 물러서도록 했다. 제황은 차라리 이 상황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엘리베이터 전에 걸렸다면 이들을 추스리느라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예상으로는 이미 지상이 멀지 않았다.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후줄근한 격벽일 뿐이고 ....

"우습군."

뚫어버리는 것은 제황의 특기였다.

"모두 좀 더 뒤로!"

"예!"

제황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뒤쪽 격벽에 달라붙었다.

사람들을 확인한 제황은 눈앞의 격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시위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시위를 당긴 제황의 몸으로부터 오오라가 이글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뭉클거리며 일어난 마나가 스톰레이지를 감싸기 시작하더니 이내 화살 끝에 맺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츠츳...츠츠츳...

화살 끝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기다란 빛의 창에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공포에 잠겨 있던 수인족 소녀도 이때만큼은 눈을 크게 뜨고는 그 아름답게 산란하는 빛의 창과 제황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저것이 뭔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저것은 절대 가까이 해선 안 되는 위험한 거라고...

강기가 충분히 모이자 이윽고 제황의 입이 열렸다.

"춤추는!... 강기의 화살!"

드드득...

퍼어엉!

맹렬한 소음을 동반한 후폭풍에 제황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전방을 향해 발사된 강기의 화살이 격벽에 맹렬히 충돌했다.

콰콰쾅! 쾅! 쾅쾅! 쾅쾅쾅!!

연속적인 폭발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사방을 휩쓴다.

"콜록콜록..."

사람들은 밀려드는 흙먼지에 연신 기침을 했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그 파괴적인 에너지체가 일으킨 이적에 사람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흐...흐어"

그들을 굳건히 가로막고 있던 격벽에는 1미터의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뿐일까? 반대편에 보이는 격벽도... 그 뒤에 어렴풋이 보이는 격벽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움직이죠."

"예? 예!"

제황이 말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끈하게 갈려나간 격벽의 엄청난 두께와 그걸 뚫어버린 제황을 번갈아 쳐다보며 마른침들을 삼켰다.

“조심해서 써야겠네.”

아직은 미숙한 강기의 화살과 춤추는 화살을 조합한 제황이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그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춤추는 강기의 화살!"

콰콰콰쾅!

두번의 화살 공격으로 무려 8개의 격벽을 박살내버린 일행은 이윽고 몬스터부산물하역장이 눈앞에 들어왔다. 도착하니 20톤가량의 수거트럭이 멈춰서있고 트럭에서 내려선 밀령대원들이 주위 대현클랜원들과 하역직원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촉박하게 주문했지만 밀령대는 시간 맞춰 트럭을 대기시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빠져나온 나온 구멍으로부터 살의를 품은 이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하나 둘 차량에 올라 타고 있을 때 제황이 밀령대원 하나에게 가져온 장치를 넘겼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서 타시죠."

"아닙니다. 뒤따라오는 것들이 심상치 않으니 제가 뒤를 막겠습니다. 어서 출발하세요"

"그건 안... 알겠습니다! 몸조심을!"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제황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몸을 돌리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트럭을 향해 달려갔다. 제황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위엄이 자연스럽게 그의 명령을 듣게 만들었다.

"출발!"

몸을 돌린 제황은 스톰레이지의 시위를 갈았다.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두 번의 사용만으로 시위에 심각한 스트레스가 가해진 걸 느낀 것이다.

-다섯! 빠르게 접근 중이야!

궁기안으로 출발한 하얀 선이 휑하니 뚫린 격벽 안쪽으로 복잡하게 꺾여 들어간다.

"어차피 이대로 가기 섭섭했어!"

시위를 교체한 제황이 가볍게 어깨를 풀며 자세를 잡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 지하에 있는 이들은 전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격벽이 파괴되었어!”

“잡아!”

구멍 안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상하며 춤추는 폭발화살!"

파캉!

무련궁술의 숙련도는 떨어졌지만 그것은 강기의 화살 때문일 뿐 다른 수법들은 모두 이전보다 훨씬 사용이 편해졌다.  쏘아낸 화살이 구멍 속으로 사라지자 비상하며 춤추는 폭발 화살은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하며 마침 격벽의 구멍을 넘어서던 추격대를 덮쳤다.

콰쾅!

"으아악!"

"아악!"

“공격이다!”

폭발음과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지만 제황은 그것을 감상할 새도 없다는 듯 연이어 위력적인 화살을 쏘아 넣었다. 모든 공격은 위협이 없다고 판단되어 질 때까지 이어진다.

-끝

-좋아.

약 50여 발을 쉴 틈 없이 쑤셔 박은 안쪽에서는 더 이상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황은 호랑이사냥으로 몸을 숨기며 수거트럭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위이잉! 위이잉!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다! 막아! 입구를 폐쇄해!"

지상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하고 경비병력의 지휘자로 보이는 이가 트럭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소리친다. 그러자 수문식으로 생긴 거대한 문이 스르르 내려오기 시작하고 그 앞으로 무장을 한 대현클랜원들이 무기를 장전한 채 모이기 시작했다.

"도와야 겠군."

탈출이 여의치 않을 거라 생각한 제황이 스톰레이지의 시위를 당겼지만 잠시 후 벌어진 일에 실소를 지으며 팔에 힘을 풀었다.

콰쾅! 쾅쾅쾅!! 콰콰콰콰쾅!

콩 볶는 듯한 연속적인 폭발음 속에 서서히 내려오던 문이 우뚝 멈춰버렸다. 출입차량을 가로막기 위해 좌우에서 뻗어 나오던 스파이크들도 박살이 났다.

그뿐일까?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었는지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수 개의 인영이 무장한 대현클랜원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린다.

-실력들이 상당한데?

-그래. 애초에 내가 걱정해 주는 게 우습지.

지금은 보호할 사람들이 있기에 저렇게 얌전히 철수하지만 만약 저들이 반대로 공격하는 위치에 있다면 이 근방은 저들에 의해 초토화 될 것이다.

-어떻게 할 거야?

-마저 쓸어버려야지. 특히 연구실 블록을...

제황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저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중간에 외부로 나오기는 했지만 이대로 철수하자니 성에 차지 않는다. 지금 가슴 속을 차갑게 불태우고 있는 분노를 끄기 위해서는 적의 피가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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