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90화 (90/301)

# 90

페이즈투-1

투투툭...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상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건 몬스터인가?

-아니 사람...이야.

남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의 배가 팔자 형식으로 개복되어 있는데 배 부분에 수십 개의 촉수가 돋아나 있다. 또 어떤 유리관에는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의 하체가 난도질 되어 있었는데 엉덩이 쪽에 절개된 플라스틱 관들이 꽂혀 있다.

싸구려  B급 고어 영화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풍경이지만 슬프게도 이건 현실이었다.

그런 유리관이 좌우에 빼곡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이라도 하듯 아니면 새로운 형식의 공동묘지처럼 말이다.

유리관 앞에는 유리관 안에 있는 이들에게 실시된 실험 내역이 적혀 있었다.

[25세 남성 1성헌터 보유스킬 전격방어, 전격구- 3티어 마나석 병렬연결 이식/실패, 썬더버그 주입실험/ 실패]

[26세 남성 2성 헌터 보유스킬 초회복, 광역회복- 다크어스윔 접합 수술/실패, 다크어스 노더스 주입/ 사망]

[22세 여성 1성헌터 보유스킬 재생, 은신, 괴력- 5티어 마나석 직접이식/실패, 뇌해부, 척추부분 추출하여  B-8 보유 중]

수십 개의 유리관들이 그런 식으로 놓여 있는데 계속 보다가는 동족 혐오에 빠질 지경이다.

제황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눌러 참으며 다음 방으로 향했다.

지이잉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다행히 인간의 시신은 없다. 대신에 백여 개의 유리관에는 인간과는 좀 다른 것들이 담겨 있었다.

-얘들은 뭐야?

-드라코족과 오크...그리고 수인족들...엘어스의 이종족들이 다 모여 있어.

뉴스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종족들의 시신이 한 가득이다. 제황은 오크를 제외하고는 사진으로만 보던 이종족들을 여기서 다 보게 되었다.

-잔인해.

-...

제황은 아무 대꾸 없이 앞서 걸었다.

가장 먼저 드라코족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아직까지 신비에 싸인 종족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작은 키에 빼어난 미형의 체격을 가졌다고 알려진 드라코족의 특징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을 지녔다는 것이었는데 뿔에서 발생하는 마나를 이용한 자연계마법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차원과 이어진 게 저들에게는 비극이겠군.

-...

궁기의 말에 제황은 대꾸할 수 없었다. 유리관 안의 드라코족은 분명 엄청난 고통 속에 죽었으리라.  절개된 하반신의 절반이 검게 타 숯덩이가 되어 있었고 고통을 증명하듯 얼굴로 보이는 부분에는 참혹한 흔적이 가득했다. 해부를 한 이는 잔인하게도 내부가 얼마나 탔는지 확인하려고 꼼꼼히 절개해 놓았다.

그 옆에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커다란 귀와 양 손에 달린 긴 발톱, 1미터가량의 꼬리를 지닌 거대한 덩치의 수컷 수인족 전사가 있었다.  근 2미터는 너끈히 넘을 덩치에 똘똘 뭉친 근육과 붉은 털이 인상적인 몸이었는데  마치 그 전사가 가진 생명력을 파헤치려는 듯 심장 부분과 하체의 성기 부분이 모두 도려내어져 있었다.

제황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묵묵히 걸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의사가운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이는 꼬장꼬장해 보이는 반백의 중년인 이었는데  피가 잔뜩 묻은 수술 장갑을 신경질적으로 벗는 중이었다. 뒤따르는 남자의 품에는 유리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마나석이 심어진 인간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몸 안에서 뛰고 있었는지 액체가 잘린 단면에서 뿜어지고 있다.

“시료 채취해서 거부 반응 일어난 조직 확인해.”

“일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더 버틸 샘플 아니었나?”

“아무래도 마지막에 투여한 세프록신의 양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살아나라고 주입한 게 오히려 죽였다고? 얼마나 투입한 거지?”

“50cc 5분 간격으로 4회 주입했습니다.”

“음, 이겨내지 못한 건가. 꽤 좋은 실험체였는데.”

“그래도 얻은 데이터는 많습니다. 포식형 스킬을 보유한 샘플을 좀 더 확보하기만 하면 곧 완성될 겁니다.”

“실험체가 더 필요해.”

“요즘 밖에 어수선한지 수급이 뚝 끊겼습니다.”

“빌어먹을, 이 답답한 곳에 있는 것도 미치겠는데...”

욕지거리를 하던 그는 문득 눈앞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우웁!”

그가 소리 내 외치기 이전에 이미 제황의 손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제황의 오른손 끝이 남자의 사지 관절에 빠르게 꽂혔다.

푹푹푹푹!

“우우웁!”

남자의 사지가 순식간에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 마냥 역으로 꺾여 버린다.

팍!

장년인의 뒤통수를 쳐 단숨에 쓰러뜨린 제황은 몸을 빙글 돌리더니 막 도망치던 남자의 측두부를 향해 긴다리를 뻗어 횡축을 날렸다.

우지직

휩쓸고 지나간 횡축에 남자의 목이 기형적으로 꺾이더니 두어 걸음 앞으로 걷다가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이 땅에 떨어져 바닥을 구른다.

횡축 한방에 목뼈가 부러지며 즉사해 버렸다. 그러나 제황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굴러가는 유리병만 바라봤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제황은 쓰러져 있는 장년인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슬쩍 돌려보니 정신을 잃은 듯 보인다.

짝! 짝! 짝짝짝짝!!

제황은 장년인의 멱살을 잡아 올린 채 연신 따귀를 날리기 시작했다. 피가 튀더니 이내 하얀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몇 대나 맞았을까 장년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끄어어...사... 살려.”

그제야 따귀를 멈춘 제황이 남자의 멱살을 그러쥐고 공중에 들어올렸다.

“커컥...너... 누...누구야.”

“묻는 말에 답해라.”

“미친! 네놈은 내가 누군지 알아? 네 놈 따.... 우우웁!!!”

우지지직...

고성을 지르려던 그의 흰자위가 순간적으로 돌아갔다. 팔뚝을 붙잡은 제황의 손이 마치 기름을 짜듯 팔뚝을 비틀어 짜버린 것이다. 일반인에 비해 거의 6배에 달하는 근력이다. 쥔 주먹에 힘을 주자 뼈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진득하게 솟아올랐다.

"읍! 읍읍!"

항거할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그는 그제야 자신의 무능력을 알았다.

이것이 각성자로부터 일반인이 보호 받아야 하는 이유이며 각성자에게 일반윤리와 도덕을 과하게 가르치는 이유였다.

열 받은 각성자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각성자 밖에 없다.

우직...우직...

쥐어짠 팔뚝을 비틀자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좀 고분고분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제황의 물음에 남자의 목이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묻는 것에 잘 대답하면 고통은 없다.”

“예. 흐흑...”

“살아있는 실험체들을 가둔 곳이 어디지?”

이곳이 무슨 짓을 하는 곳인지는 이미 충분히 봤다. 아니 더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지금 제황이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것 하나 때문이다.

“이... 이쪽 코너를 돌아 계속 나아가다가 B2 라고 써진 방 두개를 더 지나면 저장구역이...컥... 있습니다.”

남자는 고통에 면역이 없는지 제황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좋아.”

우드득

고개를 끄덕인 제황은 남자의 품을 뒤져 출입카드를 꺼낸 뒤 곧장 남자의 목을 돌려 버렸다. 그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시체 두 개를 한쪽에 감춘 제황은 다시금 호랑이사냥을 활성화 한 채 복도로 나섰다.

방안에는  CCTV 가없어 대놓고 일을 벌였지만 복도에는 사각 없는 CCTV 들이 가득했다.

-궁기...

-응?

-같은 인간과 오크들을 그렇게 학살하던 내가 이러니 가증스러워 보여?

-아니?

제황의 물음에 궁기가 뭐 그딴 걸 묻냐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넌 적에 대한 충분한 예의를 갖췄다.

-예의?

-그래. 네게 적의를 가진 녀석들을 최선을 다해 죽여 줬잖아? 그게 예의 아니야?

그녀의 말에 제황이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그녀에게 일반적인 현대인의 도덕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그게 예의라면 예의를 지키긴 했지.

B2라고 적힌 유리문 앞에 선 제황은 출입카드를 꺼내 센서에 가져다 댔다.

지이잉

“어? 뭐야?”

경비원들이 상주하는 보안실인지 수십 개의  CCTV화면을 관찰하고 있던 무장한 남자 셋이 유리문 쪽을 일제히 주시했다.

“고장이 났나?”

한 남자가 일어나 유리문으로 다가가 센서의 위아래를 훑었다. 아무리 봐도 별 이상이 없는 건 당연.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도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동료 둘의 목이 기형적으로 꺾여 있었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동료의 총이 시야에 한가득 잡혔기 때문이다.

퍼억

쇳덩이에 얻어맞은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셋을 정리한 제황은 그들을 뒤쪽에 탕비실에 쑤셔 넣었다.

경비들이 가진 키를 안쪽에 B3 이라고 적힌 문 옆 센서에 가져다 댔다.

두 개의 교차된 형식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금속문이 좌우로 열렸는데 내부는 상당히 긴 복도였다. 특이한 건 복도치고는 상당히 넓다는 것이고 양옆 벽이 금속으로 되어 있고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복도 끝에서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려지는 검은 실루엣으로 보아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정해진 때 아니면 열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 않던가. 음?”

말을 하던 상대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책상 옆의 버튼을 꾹 눌렀다.

쉬이이이

자욱한 가루가 사방에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은신해 있는 제황의 몸에 들러붙어 온다.

"어이, 도둑놈 나와라. 끌끌끌. 경보버튼은 누르지 않으마."

제황이 있는 쪽을 정확히 지목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유쾌해 보인다.

은신이 발각 당한 걸 깨달은 제황이 은신을 풀었다.

“흐흐,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군.”

제황을 발견한 그는 이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만에 초과실적 좀 올리겠어.”

우드드득

상대는 거대했다. 복도를 꽉 채우는 질량감이 느껴지는데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무형의 에너지가 이글거리며 먼지들을 밀어냈다.

“너 누구냐.”

“손님이지.”

제황은 주위를 둘러보며 상대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 손님. 아하하하! 손님...맞지. 나를 즐겁게 해줄 손님. 흐흐... 좋아. 원래 지침 상으로는 비상경보를 울리는 게 정상이지만, 내가 좀 많이 심심했으니까. 네게 기회를 주마. 나를 벗어나 도망치면 그냥 놔주지. 어때. 이 지루한 일에 활력을 준 보상이야.”

쿵쿵쿵

한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바닥이 울리는 것 같다.

“보아하니 애송이군. 후후... 이미 늦었다.”

복도 한가운데 멈춰 서자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현클랜의 헌터임을 나타내는 유니폼 위로 상당히 두꺼워 보이는 장갑을 걸쳤다. 양손에는 쇠뭉치라고 표현할만한 무식해 보이는 너클이 끼워져 있었는데 이런 복도에서 쓰기 최적화된 모양이다.

특이점으로는 얼굴에 길게 X 자의 흉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흉터는 턱을 지나 목까지 내려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흉험하게 번들거리는 눈이 자리해 있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아니?”

“꼭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가볍게 몸을 푼 제황이 자세를 조금 낮췄다.

상대가 자신을 배려해 줬으니 그도 상대를 좀 배려해 줄 참이다.

“그래! 어차피 뒈질 운명! 이름 따위 알아서 뭐할까. 하하하.”

남자의 그림자가 야수처럼 제황을 덮쳤다.

그리고 5분 후

“우으으”

피가 섞인 침이 입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신음을 토해낸 그의 전신은 거대한 해머에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욱 잔혹한 건 그의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이미 사라져 있다는 것이었는데 잘린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벽에 고정된 남자는 연신 피를 토하며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스톰레이지를 갈무리하던 제황은 남자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

“뭐?”

“살려...살려주세요.”

간신히 그 한마디를 뱉은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

그 말을 들은 제황은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었다. 처음의 그 거만함에 어울리는 실력자라면 이렇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푹...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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