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페이즈원-3
제황은 눈앞에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는 장비들을 하나하나 몸에 걸쳤다.
마치 속옷을 착용하듯 얇고 가벼운 방어구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신집사가 챙겨준 것들이었다.
어깨 부분에 견갑을 착용하고 후드를 쓴 후 뒤에 달린 벨크로로 고정했다. 붙이는 형식의 얇은 가슴받이를 장착하고 등판 부분과 벨크로를 착용하자 시야 한 편으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세트 아이템 ‘그림자지옥’이 완성되었습니다.
[세트효과]
[은신 효과가 20프로 증가합니다.]
[은신계열 스킬의 마나소모가 30프로 하락합니다.]
“부가 능력치는 민첩 4, 감각2 인가.”
아이템으로 얻은 모든 효과를 확인한 제황은 후드를 뒤로 고정한 뒤 흑색의 가죽 바이크 코트를 걸쳤다. 안에 받쳐 입은 장비들로 인해 상체가 조금 비대하지만 어차피 겨울이라 티가 나지 않는다.
장비들을 최종점검한 제황이 고개를 끄덕인 후 한쪽에 난 철문을 열었다. 좁은 통로 같은 곳 양쪽으로는 수대의 모니터가 점멸하고 있었고 네 명의 인영이 그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제황을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이들은 나집사가 제황에게 붙여준 제5 지급 밀령대의 밀령대원들이었다.
뒤에서 보고 있자니 각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이제부터 제황이 침투할 곳의 정보를 이리저리 끌어 모으고 있었다.
“비록 저희 무적성보다는 못하지만 저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지휘를 맡은 제5밀령대주는 제황에게 걱정스럽다는 듯 이야기 했다.
그가 생각하기로 저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력을 통한 진압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저곳의 모든 정보가 파기되어 있을 것이다.
“하루치 출입차량 확인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구역이 CCTV 보안으로 방비되어 있어 확인이 힘듭니다.”
“패트롤은 5분 간격이며 현재까지 60명의 경비 병력이 확인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는 그다지 많은 병력이 없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작전 시간까지 20분이다. 정보를 취합하도록...”
“네.”
잠시 후 제황의 앞으로 작은 서류철 하나가 놓였고 제황은 그것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출입하는 차량과 차량에 탑승한 이들의 명단이다.
밀령대주가 자료를 훑고 있는 제황에게 말했다.
“내부는 최고의 무인침입탐지시스템이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하여 전구역을 감시합니다. 아무리 최상급의 은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첨단기술은 잡아냅니다.”
은신이라는 스킬을 지닌 이들은 보통 암살자 계열로 분류된다.
몬스터 사냥에는 크게 소용이 있는 포메이션이기에 특수요원이나 혹은 정보계통에 종사하고 또 일부는 음지에서 살인청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암살자는 목표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을 가해 적의 목숨을 취한다. 그런데 이런 암살자의 은신 스킬은 적외선열화상 카메라라는 기술에 쥐약이었다. 약한 이들에게는 사신과 마찬가지지만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약한 면을 보였다.
그러나 제황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침투에 성공하면 어떻게 합니까.”
침투를 기정사실하여 묻는다. 잠시 헛기침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목표지점에 있는 아무 컴퓨터나 찾으면 됩니다. 저희가 드린 장치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됩니다. 단 이때도 페이크 데이터와 보안시스템에 의해 실패할 수 있습니다. 위에 붉은 LED가 파란 색으로 변한 뒤 챙겨서 나오시면 됩니다. 시간은 짧게는 1분 길게는 5분 정도 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밀령대주가 입을 열었다.
“실패하셨을 시는 최선을 다해 탈출하시면 됩니다. 물론 정말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쓸데없는 인도주의로 갈등하는 순간 끝입니다.”
“사상자가 많아도 상관 없습니까?”
“상관 없습니다. 저들이 만약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벌이고 있다면 안에서 어떤 짓을 벌이든 간에 대놓고 일을 수습할 수는 없을 겁니다. 헌터와 관련된 범죄에는 무조건 헌터사무국이 관여되기 때문에 속을 보여주기 싫다면 숨길 겁니다.”
“그렇군요.”
밀령대주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제황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띄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리다. 최상층의 명령으로 지원대에 투입되기는 했지만 제황이 미덥잖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보계통이기에 그가 무적성에서 보인 신위는 전해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정보계통이기에 일단 의심하는 버릇 때문이었는데 가증 큰 이유는 일단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권제께서도 오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신 건 50대 이후시다. 그런데 이제 고작 20대 초반...”
제황은 밀령대주가 무슨 생각을 하건 눈을 감고 침투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내부에 침투하면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 미리 수립한 대응방법을 빠르게 대입하여 돌발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밀령대주가 안에서 어떤 개판을 쳐도 상관없다고 해준 것이다. 그럼 이야기가 무척 쉬워진다.
지금 밀령대주는 자신의 발언이 제황의 침투계획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알았다면 발 벗고 나서서 막았을 것이다. 정말로 말이다.
밀령대주는 그런 제황을 바라보며 마저 설명을 이었다.
“빠져나오실 수 없을 경우에는 저희가 드린 장치 위에 붉은 버튼을 5초간 누르십시오. 그럼 저희가 구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치를 무한고에 집어넣은 제황이 자리에서 일어나 밀령대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녀오죠.”
“예.”
제황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찬바람이 볼을 스친다.
-배고파. 마나석 내놔.
-이거 끝나고 사줄게.
-하아, 내가 저기서 파는 티라미슈로 봐준다.
-저기... 티라미슈 사준다고 한 적 없거든?
-안 들려. 안 들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궁기를 무시한 채 제황은 길을 걸었다. 멀리 높다란 담장이 보인다.
절벽이 연상되는 담장 위로는 수직으로 뻗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마치 주변의 모든 건물들을 내리누르듯 위용을 보이며 솟아있었는데 곳곳에 솟은 대공방어용 포대가 흉물스럽게 보인다.
가장 최상층에는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이 빛나는 유리구조물이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니 출입금지 표지판이 나타났다.
대현클랜의 클랜하우스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 이름값에 걸맞게 사방 100미터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제황은 근처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몸을 기댔다.
-어떻게 들어갈 거야?
-남에 차 타고...
-어떻게?
-기다려봐.
제황은 지나는 차들을 계속 관찰했다. 그러다가 중형세단 한 대가 다가오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화살촉을 던졌다.
챙!
화살촉은 정확히 세단의 헤드라이트에 명중했다. 차에 충격이 가자 차가 멈추고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러자 제황은 손에 작은 보석 티아라를 꺼내 머리에 썼다.
-어머! 쓰기로 마음먹은 거야?
-닥쳐.
자신도 이러기는 싫었지만 가장 편한 방법이기에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다.
헤드라이트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 제황이 남자를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지배”
제황의 말에 남자가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제황이 지금 쓴 스킬은 궁기가 돌려준 티아라에 있는 두 개의 스킬 중하나인 [지배]였는데 시험해 본 결과 대략 2성급까지는 어느 정도 먹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더 상위의 헌터에게는 시험해 보지 않았다. 굳이 필요도 없고...
“차에 다시 탄다.”
“예.”
남자는 순순히 제황의 말에 따라 차에 올랐다.
차 뒷자석에 오른 제황이 남자에게 말했다.
“차에는 아무 이상 없다. 차에는 너 혼자 타고 있다. 그대로 네 할 일을 하도록...”
“알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대답한 남자가 그대로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호랑이사냥]
뒷자석에 앉은 제황은 호랑이사냥을 켰다.
이차의 주인은 밀령대주가 준 리스트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다지 대단한 직위에 있는 이는 아니지만 입구를 지나기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정지!”
차량을 멈추도록 한 후 차 여기저기를 꼼꼼히 훑어본다. 그러나 아무도 뒷좌석에 타고 있는 제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 특식 있습니까?”
“예. 어제부터 모드구스갈비 재워놨습니다. 하하.”
“이야. 기대되네요. 아. 오늘 조심하세요. 위에서 경비강화 지시가 내려왔는데 점심 때 불시점검 한 번 할 것 같네요.”
“흠, 거참... 이거 또 식자재 창고 들어 엎겠네요. 고맙습니다. 비싼 건 옮겨놔야 겠군요. 점검팀 놈들은 당최 식자재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렇죠. 뭐.”
서로 친한지 이것저것 정보도 나눈다. 남자는 바로 대현클랜 구내식당에서 20년간 근무한 주방장이었다. 제황은 남자의 차를 타고 안으로 편하게 들어갔다. 주차장에서 함께 내려 남자의 뒤를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2개의 검색대 앞에 선 헌터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제황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타탁...
“음, 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아니?”
“이상하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제황은 검색대를 가볍게 뛰어 넘은 상태다.
“흠...”
남자는 검색대 전체를 비추는 적외선열화상카메라를 훑어봤다.
“없는데...”
남자는 자신의 탐지스킬에 잠시 스친 그 감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무려 레어급의 탐지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이곳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잡은 총 17회의 검거 횟수가 그의 유능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나랑 동급 은신스킬이라면 흐릿하게라도 나올 텐 데... 에이 아니겠지.”
그는 이내 고개를 저은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설마 자신의 탐지스킬을 무시할 수 있는 이가 있겠냐는 설마와 함께 말이다. 문제는 지금은 그 설마가 맞았다. 그의 탐지스킬을 씹어드신 은신은 무려 유니크스킬이다.
-확실히 안 걸리나보네.
-걸리는 게 이상한거다.
제황은 열화상카메라 앞에서 손을 휘적휘적 해봤지만 아무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 무한성 내에 있는 적외선열화상 카메라로 실험을 해보기는 했는데 이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모든 은신은 적외선열화상 카메라에 걸린다고 나와 있거든.
-흐흥, 너희 무련가에 전해 내려오는 궁극의 비기가 그 궁술과 은신이다. 괜히 신벌의 대행자가...
-신벌의 대행자?
-아냐! 못들은 척 해. 더 묻지 마.
-흠, 알았어.
말을 얼버무리는 궁기를 내버려두고 제황은 계속 걸었다. CCTV나 적외선열화상 카메라를 겁낼 필요가 없다는 걸 확인했기에 제황은 행여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만 주의하며 걸었다.
-여기군.
제황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천장을 뜯고 위로 올라간 뒤 엘리베이터 케이블을 타고 가장 최하층까지 내려왔다. 최하층 옆에 나 있는 통풍로를 뜯고 안으로 들어간 제황은 좁은 통로를 기어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던 제황이 우뚝 멈췄다.
-흠, 이게 레이저 감지기인가?
제황은 궁기안에 빛의 묘한 굴절이 느껴졌다. 그 모양으로 대충 유추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무한고에서 검은색의 스프레이를 꺼내 앞으로 뿌렸다.
치익
제황의 눈앞에 수십 가닥의 붉은 선이 나타났다.
-이게 뭐야?
-닿으면 감지기가 울려.
-호오...문명의 이기인가. 정말 물샐 틈 없군.
-그렇지.
척 봐도 쥐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갈 것 같다.
굳이 이곳을 힘들여 지나갈 필요를 못느끼기에 제황은 호랑이사냥을 켠 채 환풍구를 통해 통로로 내려섰다. 통로에는 아무도 없었다. 직진을 하니 긴 복도 좌우로 여섯 개의 문이 나타났다.
위이잉
그때 한쪽의 자동문이 열리며 의사가운 차림의 남자들이 밖으로 나왔고 제황은 문이 닫히기 전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쉬운데?
-그러게.
밀령대주가 말하기는 온갖 감시 장비들이 범벅이 된 곳으로 표현했는데 들어오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대로 최대한 신중을 기한다는 생각에 켜져 있는 컴퓨터 한 대를 골라 장비를 연결했다.
틱띠르르륵
손바닥만한 장비를 꽂으니 상단에 붉은 LED 등이 켜졌다. 책상 밑에 숨어 LED 가 파란 색으로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까 나갔던 의사가운의 남자들이 다시 들어왔다.
“아, 질기네. EDM-5 샘플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이틀 버텼으니까. 끽해야 하루?”
“킁, 그거 김장호 그 새끼 프로젝트라서 엿 먹었으면 싶었는데 이번에도 성과급은 그 새끼 거 같네.”
“적당히 해. 임마. 난 그 새끼 빨리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젠장 그자식이 소모하는 게 한달에 세 마리야. 우린 한 마리 간신히 얻는데...”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니냐.”
한쪽에 숨어 그 말을 듣던 제황은 고개를 갸웃 했다. 평범한 사무공간처럼 보였는데 저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뭔가 다른 공간이 더 있는 것 같다.
의사가운의 남자들이 노닥거리는 중 장치에 푸른 LED 가 들어왔다. 장치는 잘 작동한 듯싶다. 제황은 그것을 재빨리 무한고에 넣고 잠시 후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안나가?
-응. 좀 더 확인해봐야 겠어.
그들은 몇 개의 코너를 지나 걷더니 잠시 후 ‘B1’ 이라고 써진 유리문 앞에 서서 가슴에 폐용한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들어간 제황은 눈앞에 나타난 것에 걸음을 멈췄다. 남자들은 아무 감흥 없다는 듯 앞으로 걷고 있지만 제황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게 뭐야. 큭
궁기의 목소리에 분노가 어렸다. 제황 또한 궁기와 마찬가지 심정이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유리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사지가 완전히 파헤쳐진 이전에 인간으로 불렸을 것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너무나 많다. 개중에는 인간이 아닌 듯 보이는 것들도 몇 보였지만 그것들도 형태는 일단 인간이었다. 대체 이 곳에서 무슨 짓을 벌인 것인가.
“비...빌어먹을...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발끝으로부터 자르르한 열기가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채웠다.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좀 진정... 하아. 또 시작이군.
궁기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