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랭크업
멀찌감치 나타난 제황이 화살 한 대를 다시 시위에 걸고 동철을 겨눴다.
“타아!”
제황이 나타나는 순간 동철이 달려들었다.
“재방송이냐.”
슈르륵
“젠장!”
동철은 또다시 헛손질을 했다. 그를 놀리듯 화살 한 대가 소리 없이 날아왔다.
푹...
“큭... 빌어먹을...잡히기만 하면!”
화살은 허벅지에 꽂혔다. 그러나 동철은 그것에 아파하기 보다는 한 차원 빠른 속도로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달렸다.
“잡히면?”
“너 이 자식! 죽여 버린다!”
뒷걸음질 치는 제황을 향해 동철이 손을 뻗었다. 잡히기만 하면 회피와 은신을 통해 농락하는 짓도 끝이다. 동철은 아무리 친구라도 팔다리 하나는 분질러버릴 생각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원거리에서 꺾으면 납득하지 못할 것 같아 태세를 전환 한 것 뿐이다.
뻗어오는 동철의 팔뚝에 활에 돋아난 뿔을 기묘하게 걸더니 그대로 공중을 회전하며 날아올라 바닥에 착지하자 그 힘에 의해 동철은 팔이 반대로 꺾이며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몸 전체의 무게로 회전을 가하자 거대한 덩치의 동철도 소용없는 것이다.
“흐아압!”
그러나 동철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 제황의 활을 붙잡았다. 가장 중요한 무기를 봉쇄한 셈이다.
동철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걸렸다.
무기를 빼앗으면 제황은 공격 수단이 사라진다는 게 동철의 생각이다 그럼 몸 대 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데 그건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 제황은 원거리 딜러이고 자신은 탱커니까... 라고 착각했고 그 착각은 제황의 가벼운 한수에 물거품이 되었다.
“넌 아무래도 권제 할아버지한테 좀 맞으면서 배워야 겠다.”
뚜두득
“크악!”
제황의 발이 풍차처럼 돌며 동철의 팔을 위아래로 교차해 고정시키더니 회전력을 심어 그대로 돌려버리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활이 빠져 나왔다. 만약 동철의 팔이 좀 더 약했다면 팔 자체가 꺾여 버렸을 것이다.
“네가 얼마나 네 몸에 자신하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헌터 만나면 뼈도 못 추린다.”
“후욱...후욱...”
동철이 욱신거리는 팔뚝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데미지는 금세 회복이 되었다. 이것이 동철이 가진 초회복이라는 스킬의 사기성이다. 체력이 되는 한 거의 무한 재생에 가까운 자가 복구가 가능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제황이 수십 발을 적중시켰지만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동철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에게 제황은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다.
“졌다.”
동철이 깔끔히 포기하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톰레이지를 무한고에 넣었다.
“괜찮냐?”
“걱정해주는 새끼가 그렇게 화살을 꽂냐?”
“내가 걱정 안 해줬으면 내가 쏜 화살 절반은 네 머리에 박혀 있었을 거다.”
“하, 할 말 없게 만드네.”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친구다. 그런데 그게 또 제황의 매력이다.
이렇게 차갑게 굴지만 친구가 되면 뒤로는 꼼꼼하게 챙겨주는 성격이다.
“아주! 고맙다. 살려줘서...”
동철이 이죽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 달라는 것
“아니, 내가 고맙다. 잘 살아 있어줘서...”
제황이 동철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줬다. 서로 마주보는 얼굴 속에 훈훈한 미소가...
퍼억!
쾅!
동철이 제황의 몸통박치기에 맞고 날아가 벽에 쳐 박혔다.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킨 동철이 조금 전 제황의 목을 기습하려던 팔뚝을 돌리며 말했다.
“하 질긴 놈... 그거 한 대를 안 맞아주냐.”
“내가 너를 아는데 그걸 맞겠냐.”
동철의 더러운 싸움 방식을 아는 제황은 동철의 눈에 투기가 가시지 않은 것을 알고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풋..크크크하하하...”
제황을 바라보던 동철이 피식거리다가 이내 크게 파안대소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황의 입가에도 자그마한 미소가 그려졌다. 동철과 한바탕 드잡이 질을 하니 지금은 조금 마음이 후련해졌다. 이내 대현이 떠올라 그 웃음이 사라졌지만 최소한 동철에게 처음 그 사실을 들었을 때보다는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궁기의 말대로 지금은 냉철하고 차가운 이성이 필요했다.
“동철아.”
“음?”
“잠시 날 지켜줘.”
“그래.”
밀어뒀던 일을 할 때가 왔다. 그것은 바로 레벨업...
레벨업 하는 동안에는 무방비 상태가 되기에 동철에게 호위를 부탁했다. 제황의 말에 동철이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제황의 곁에 와서 섰다.
제황은 상태창을 열고 경험치 옆에 활성화 된 레벨업을 눌렀다.
[레벨업]
능력 포인트:0.25가 부여됩니다. 레벨 10도달 랭크업이 시작됩니다.
[랭크업]
제황의 몸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빛이 제황을 완전히 감쌌다.
사용자의 등급이 B급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능력 포인트 1가 부여됩니다.
등급상승 특전을 부여 합니다.
띠링
세이브가 사용자의 능력치와 스킬을 분석합니다.
반투명한 녹색의 랭크업 창 밑으로 수십 개의 글씨가 교차되며 하나의 글씨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녹색 창에는 세 개의 문장이 만들어졌다.
랭크업 특전 보기가 주어집니다. 총 세 가지 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1. 능력치 포인트 3
2. 스킬 업그레이드권 1
3. 스킬 숙련도 상승권 1
세 개의 보기가 나오자 제황은 주저 없이 두 번 째 스킬 업그레이드권을 선택했다. 이전에는 능력치 포인트만을 선택했었다. 엘어스에서 궁기와 둘이 살아남아야 했기에 당장 쓸모가 있는 신체적 피지컬에 집중했었다. 덕분에 제황은 같은 급의 다른 각성자보다 월등한 능력치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스킬 업그레이드권을 선택했다.
제황은 기억한다. 혼신의 힘으로 쏘아낸 화살을 한 손으로 가볍게 잡아버린 그 괴물오크를 말이다. 앞으로 그런 괴물들과 숱하게 부딪히게 될 텐데 그런 놈들에게 기본 공격력에서 밀릴 수는 없었다.
[스킬 업그레이드권]
-지정한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업그레이드는 무작위로 진행되며 부여되는 업그레이드에 따라 숙련도가 랜덤하게 하락합니다.
제황은 스킬 업그레이드권을 손가락으로 찍어 그것을 [무련궁술] 위로 가져가 눌렀다.
[유니크스킬 무련궁술을 업그레이드 하시겠습니까? 진행 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예/아니오] 창이 뜨고 제황은 주저 없이 예를 눌렀다.
세이브가 지구의 기록된 유산을 통해 [유니크 스킬-무련궁술]을 검토합니다.
[동급의 스킬 두 가지를 찾았습니다.]
-[유니크스킬-명황궁]
-[유니크스킬-천강수라진천궁]
비교 분석을 통해 스킬을 보완합니다.]
무련궁술 내에 써 있는 스킬 설명이 모두 사라지더니 다시금 적혀지기 시작한다.
무련궁술-7랭크 31프로 -> 5랭크 98프로
비상하는 화살
폭발하는 화살
춤추는 화살
힘의 화살->강기의 화살
[숙련도가 5랭크 98프로로 하락합니다.]
힘의 화살이 강기의 화살로 변화합니다.
사용자의 등급 상승을 모두 끝마쳤습니다.
“후우...”
레벨업이 끝나자 제황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하얀 기운이 푸스스하고 사라져 버렸다.
“끝났냐?”
제황을 지키고 있던 동철이 물었다. 지금 일어난 게 랭크업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특별한 이펙트라는 걸 아는 동철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잠시만... 지금 시험해 볼 게 있어.”
제황은 무한고에서 다시 스톰레이지를 꺼냈다. 그리고 화살 하나를 건 뒤 심호흡을 한 후 강기의 화살을 사용했다. 이전과 같이 스킬에 대한 설명 따위는 없기에 모든 걸 직접 알아봐야 한다.
츠츠츠츳...
첫 느낌은 단전의 용혈신공이 노도와 같이 꿈틀거리며 양손으로 집중된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화살의 끝으로 붉은 에너지가 꿈틀거리더니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긴 창이 길게 뻗어 나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 에너지체를 바라보는 제황의 눈에도 붉은 기운이 어렸다.
제황은 이 에너지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권제 할아버지가 예전에 이 파괴의 정수를 경험 삼아 보여준 기억이 있다.
업그레이드는 성공했다.
“이... 이게 뭐야?”
“강기... 영어권에서는 오러 라고 부르지.”
“오러?”
제황의 대답에 동철이 깜짝 놀랐다. 오러... 7성 헌터의 전유물이라 불리는 파괴 에너지를 통칭하는 단어다. 강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7성 헌터라는 뜻과 같다. 7성 헌터... 단순한 세이브와 레벨을 통한 강함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그래.”
제황은 동철이 놀라던 말던 지금은 이 파괴에너지를 유지하는데 노력했다. 형편없이 떨어진 숙련도 때문인지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상태창을 바라보니 20가량의 마나가 사라져 있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힘의 화살보다는 마나 소모가 적지만, 유지하는 것만으로 2초당 1의 마나가 소모되었다. 뭐 이 부분은 숙련도가 오르면 소모마나가 줄어들 테지만 지금은 위력을 시험해 봐야 할 때다.
“조심해.”
“뭘?”
“이거!”
퍼어엉!
제황은 한쪽 벽을 향해 시위를 놓는 순간 제황의 몸이 뒤로 격하게 밀려났다. 힘의 화살보다 곱절은 강한 반동이다. 그러나 잠시 후 드러난 강기의 화살이 보여준 파괴력은 이전의 힘의 화살은 완전히 초월한 파괴력을 보여줬다.
콰카카카카칵!!! 파캉!
제황과 동철이 대련을 펼친 곳은 겉으로는 고풍스러운 수련장처럼 보이지만 속은 1미터 가량의 합금으로 된 철판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웬만한 스킬이 아니면 겉만 부술 뿐 절대 흠집을 낼 수 없다. 그러나 강기의 화살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지름 약 1미터 가량의 구멍이 휭하니 뚫려 있었다.
이질적인 풍경이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동그랗게 베어 먹은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곳은 그 너머에 있었다. 벽 너머에는 다른 건물의 벽이 자리해 있었는데 그 곳마저 1미터 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안쪽으로는 둥근 단면 그대로 갈려나간 가구들이 보인다. 슬쩍 보이는 건물 안쪽의 풍경은 지름 1미터 가량의 구멍이 벽 한 개를 더 관통해 있었다.
“허...”
동철은 제황이 지금 만들어 놓은 작품에 입을 떡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확인한 수련장 벽은 두꺼운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단면은 거의 50센티 가량 되어 보이는데 그게 마치 거대한 공업용 드릴로 갈아버린 듯 깔끔한 1미터 지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거의 십여 미터를 더 전진해 깨끗하게 소멸시켜 버렸다.
“이게 뭐냐.”
“후우... 스킬”
짧게 대답한 제황이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 포인트 1.25를 모두 정신에 투자했다. 그러자 정신과 연관 된 능력치들이 상승했다.
마나+20
마나회복율+1
마나양을 높인 제황이 상태창을 확인 할 때 동철에 제황에게 말했다.
“활과 연관된 거냐?”
“응.”
“부러운 놈...”
동철은 진심으로 제황이 부러웠다. 그가 아는 제황은 활에 대해서 천재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스킬 또한 활과 관련 된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건 뭐 호랑이한테 날개를 달아준 격 아닌가.
그 때 제황이 고개를 갸웃 하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동철에게 말했다.
“동철아. 손들어.”
“어? 왜?”
그 말과 함께 수련장 문이 벌컥 열리며 수십 명의 완전무장한 남녀가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손에는 맞으면 단순히 아플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구경 화기로 무장한 채 말이다.
“손들어!”
수십 개의 총구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자신에게 겨누어지자 동철이 움찍거리며 두 손을 들고는 말했다.
“내...내가 안 그랬어요.”
***
“감히 너 따위가 우리 도준이를 노려?”
“어머니! 아니... 엄마!”
“누가 네 엄마야!”
쫘악
물컵에 든 물이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미모의 여성 얼굴에 뿌려지고 그것도 모자란지 그 위로 물따귀가 작렬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미모의 여성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도준씨 엄마 아들 아냐.”
뚜두두두둥! 뚱뚱! 띠이이이잉~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며 다음 편 예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너 이런 취미 있었냐?”
“아니...”
동철은 정자세로 앉아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막장 드라마 ‘내 아들 도깨비’의 다음편 예고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제황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특이한 놈이기는 했지만 이런 취미는 없던 걸로 기억한다.
파괴된 수련장에 대해 해명을 해 돌려보낸 둘은 병실로 돌아왔다. 어차피 권제가 돌아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동철이 뉴스나 볼까하고 티브이를 틀었는데 드라마가 나오자 제황이 그대로 리모콘을 가져가 버렸다. 덕분에 제황과 함께 막장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철이었다.
“이 짓도 못해먹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