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85화 (85/301)

# 85

친구 동철

제황은 상당히 놀랐다.

대현, 인연이 있다면 있는 곳이다. 옛 연인이었던 한수지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곳이니까.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그런 악독한 짓을 벌인 게 대현그룹이라는 것이었다. 한 해 수천억을 사회에 기부하는 기업이다. 그뿐일까.

대한민국 재계 서열 1~2위를 다투는 것도 있지만 헌터장비 및 마나석을 이용한 신에너지 사업, 그리고 군수사업을 통해 몬스터 사업 부분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네가 알아선 안 될 게 뭐였냐.”

“당시 난 미스릴광산의 경비업무에 투입 중이었는데 그들이 삼천교와 비밀리에 접촉하는 걸 나와 내 동료가 경비 중에 봤거든. 미련하게도 우린 상부에 그걸 보고했고 그날로 제압당했지.”

으득...

"대현 그룹이 확실한 거냐?"

동철의 적이니 제황의 적과도 같다. 그리고 적으로 상정하기에는 상당히 네임벨류가 있는 그룹이다. 아니 네임벨류를 떠나서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라 계란으로 5티어 몬스터 잡기다. 사실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 맞아. 나를 포함해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그 증인이다. 뭐 ... 지금은 다 뒈졌지만..."

"수십 명?"

"그래. 놈들은 삼천교 놈들을 통해 각성자를 공급받고 있었다. 재료였지."

"무슨 말이야."

"놈들은 새로운 각성 시술을 연구 중이었다. 기존의 방법보다 훨씬 강력한 각성자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방법..."

강제각성자... 영어권에서 비욘더라 불리는 이들을 만들 수 있는 각성시술은 세계 각국이 전지구적인 합의에 따라 엄격히 관리하는 기술이었다.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받을 수 있는 기술이지만 그렇게 해서 탄생하는 각성자는 일괄적으로 국가를 통해 철저히 관리 된다.

지금이야 부작용이 거의 사라졌지만 그 기술이 초창기에 나왔을 때는 각성 확률은 고작 50퍼센트였고 나머지 50퍼센트 중 20퍼센트는 즉사, 나머지 30퍼센트는 식물인간이 되거나 혹은 인간도 몬스터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만큼 위험한 기술이었고 사사로이 사용되면 범세계적인 재앙이 될 기술이기에 관리해야 했다. 그런데 대현 그룹은 그것을 비밀리에 연구 중이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악의 빌런 단체인 삼천교와 함께 말이다.

"이걸 아는 사람은?"

"너한테 처음 말했다.”

“젠장...”

그 말에 제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약 동철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다. 이것을 어서 빨리 알려야 겠다는 생각 할 때 동철이 그를 붙잡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다.”

“응?”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니... 무슨 뜻인지 쉬이 짐작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굴지의 그룹이 빌런들과 손을 잡고 있다. 어쩌면 이번 사태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

동철은 한참을 망설였다.

사실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이곳 책임자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삼천교 무리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제압당해 지금은  권제의 저택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제압한 게 무려 자신의 친구 제황이었던 것이다.

그 제황이 반폐인이 되어서 궁기산에 틀어박힐 줄 알았는데 어떤 기연이 있었는지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가 어떻게 권제와 인연이 생겼는지 보다 지금 이게 더 중요했다.

지금 그가 말하려는 걸 제황이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친구가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침묵이 흘렀지만 제황은 끈질기게 동철을 기다려줬다. 그만큼 말하기 힘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끝내 동철의 입이 열렸다.

“제황아. 놀라지 말고 들어. 놈들에게 잡혀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네 부모님의 죽음에 대현이 관여되어 있다.”

"응?"

동철의 말에 제황은 한 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화가 나기보다는 황당함이 앞섰다.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현이 관계되어 있다고..."

"어째서?"

그와 부모님이 무슨 죄를 지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현그룹과 자신과의 접점은... 있다. 그렇지만 그 접점은 이내 부인되었다. 말이 안 된다. 설마 한수지 때문에? 한수지라는 이유가 그와 부모님이 사고를 당할 이유라고? 고작 한수지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이 죽었다고?

농담도 정도껏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그 농담의 출처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동철이다.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나랑 같은 방에 있던 놈 중 하나였다. 대현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던 조직에서 축출당한 놈이었는데 실험체로 끌려 나가기 전날까지 제가 지은 죄를 고해성사마냥 주절거리다가 네 이야기가 나오더라. 윗선의 명령으로 어린 양궁천재와 그 가족을 트럭으로 밀어버리게 사주했다고... 너한테 들었던 것과 너무 흡사해서 내가 사실을 확인했다."

동철의 말에 제황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정심 따위는 이미 날아갔다.

제황이 동철의 멱살을 잡았다.

"정말 확실해?"

으스스한 살기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티틱...

벽에 걸려 있던 액자유리에 가느다란 실금이 갔다. 흉하게 일그러진 눈매에서 푸른빛이 줄기줄기 흘러내린다. 흉신악살의 모습이 이럴까.

그러나 동철은 제황의 이런 모습에 놀라거나 화내지 않았다. 이럴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래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친구가 살인자가 되는 건 볼 수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사람들은 제황의 성격이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준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제황을 모르는 사람이다. 제황은 법이 자신의 편이 아니게 된다면 법마저도 적으로 돌릴 것이다.

탁...

멱살을 쳐내며 대답했다.

"설마 뒈지기 직전의 놈이 거짓말을 하겠냐."

빠드득...

제황의 입에서 살벌한 잇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다가 어금니가 깨져버렸다.

낮게 한숨을 내쉰 동철이 침대에서 일어나 제황의 앞에 섰다. 제황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큰 동철이다.

"내가 해결 할 거다."

동철이 몸에 힘을 주자 환자복 속의 우람한 근육들이 부풀어 올랐다. 마치 옷 속에 바위를 우겨 넣은 듯 단단해진 그 몸을 지탱하지 못한 환자복이 뿌드득 하고 찢어졌다. 그와 함께 동철의 몸에서 옅은 에너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험으로 얻은 힘이다. 7티어 몬스터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강제각성은 기존의 각성과 궤를 달리했다. 지금 그의 상태는 각성자라기 보다는 반 몬스터 상태였다. 그렇다고 그가 약한 건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현재 수준은 6성 헌터에 버금갔다.

"진정해라. 지금 어떤 심정이지 내가 조금은 이해한다. 그래서 말하기 망설였다. 그런데 말이다 제황아. 나서지 마라. 어차피 놈들은 내가 박살낼 거다. 놈들이 내 몸에 저지른 짓... 그리고 그 동안 고통 받은 것과 잃어버린 시간을 생각하면 나도 놈들을 용서할 수 없어."

"너야 말로 내 사냥감에 손대지 마."

동철보다 훨씬 작지만 피어오르는 살기는 마치 거대한 야수의 그림자마냥 피어올랐다.

지금 제황의 머릿속에는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이들에 대한 처리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종착역은 모두 죽음이다. 죽음도 하나의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죽음... 최악의 죽음... 가장 잔인한 죽음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의 대한 징벌은 제황의 오롯한 권리였고 그것을 타인에게 빼앗길 생각은 없다. 그게 그의 친구 동철이라도...

“수지가 연관 되었을 수도 있다. 네가 그걸 할 수 있겠냐?”

“흐...한수지?”

만약 그 일에 한수지가 직접적으로 관련 되어 있다면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람도 살생부에 들어간다.

잠시간의 대치.... 그러나 그 대치를 깬 건 그 둘이 아닌 타인이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궁기의 그 한마디에 제황의 몸에서 일어나던 살기가 움찔 하고 흔들렸다.

-들어서 알겠는데... 화내는 건 좀 나중에 해.

궁기의  말과 함께 제황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살기가 그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안으로 흡수된다.

-분노...살의... 나쁘지는 않은 감정이지만 일단 내가 보관할게. 천천히 생각해. 분노와 살의가 나쁜 건 아니지만 지금 필요한 감정은 아니야.

-후...그래. 알았어. 고마워.

제황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궁기의 말에 백번 옳다. 분노와 살의로 모든 걸 해결한다면 단순한 살인마가 될 뿐이다.

가장 적당한 시기에 궁기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서 제황은 이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동철이 아닌 타인의 이목도 눈치 챌 수 있게 되었다.

“그만 엿듣고 나오시죠.”

제황의 말이 병실 안을 울렸다. 동철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이루미가 들어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굳이 엿들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할아버지도 아셔야 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제황과 동철의 원한이지만 국가적으로 보자면 대현 그룹은 대한민국을 좀먹는 해충과 마찬가지였다.

“네. 제황님의 친구 분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권제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 사항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권제께서 도착하시면 부르실 겁니다.”

이루미가 밖으로 나가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동철에게 제황이 말했다.

“가자.”

“어디를?”

“권제 할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가볍게 몸이나 풀자. 네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박살내주마.”

제황의 말에 동철이 피식 웃었다. 제황이야말로 자신을 너무 우습게 본다고 생각했다. 회복 이후 제대로 몸을 풀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힘이라면 적이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래. 한 번 서열 정리 다시 해보자.”

제황의 앞서 걸어 나가자 동철이 기세등등하게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약 1시간 후...

“헉...헉헉...”

“서열 정리 아직도 안 끝났냐?”

땅에 엎어져 있는 동철의 머리에 발을 올린 제황이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 반칙 같은 새끼”

휘익...

그 말과 함께 동철의 손이 제황의 다리를 향해 뻗어갔다. 그러나 제황은 그 손짓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동철의 머리에 싸커킥을 날려 버렸다.

퍼어어억

“큭!”

엎어진 채 뱅글뱅글 돌던 동철이 몸을 굴려 일어서며 제황을 향해 비호처럼 날아들었다.

잔상이 일 정도의 엄청난 돌진... 그렇지만 용혈무의 움직임으로 가볍게 피해낸 제황이 피식 웃으며 허공중에 사라져 버린다.

“야! 이! 그런 사기 같은...”

동철은 사라져버린 제황의 흔적을 쫓으며 외쳤다.

“넌 적한테 정정당당하게 싸워달라고 할 거냐?”

“큭!”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돌리던 동철의 턱에 제황의 발바닥이 작렬했다. 반동으로 몸을 날린 제황의 손에서 화살 하나가 날았다.

쉬이익... 푹!

이건 대련이 아니다.

“악!”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피하려 했지만 이미 화살은 그의 등에 박혀 있다.

공중을 날던 제황이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 다시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게 뭐야!”

“은신스킬 쓰는 놈이랑 안싸워봤냐?”

“이런 괴물 같은 은신 쓰는 놈이랑 몇 번이나 부딪힌다고!”

제황의 대결을 몸과 몸이 부딪히고 땀이 흐르고 피가 튀는 것만을 상상했던 동철에게 이건 전혀 다른 대결방식이었다. 제황이 은신을 쓸 줄 생각지 못했다.

“미친 이걸 어떻게 잡아!”

은신은 기습을 할 때나 사용하는 스킬이다. 그런데 제황은 대놓고 쓰는 중... 문제는 제황이 쓰는 은신이 워낙 무시무시해서 눈앞에서 써도 추적을 못한 다는 것이다. 유니크 급에 이르는 은신 스킬을 파해할 탐지스킬을 보유하지 않은 이상 평범한 방법으로 제황을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비겁하게 굴지 말고 붙자!”

이건 마치 자신이 사냥감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크윽!”

허리에서 걸리적거리는 화살을 빼서 바닥에 내동댕이친 동철이 외쳤다.

“내가 연습용 화살 쓰는 걸 고마워해라. 병신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