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82화 (82/301)

# 82

오크군단 공략

달천을 진정시킨 제황은 자리에 앉아 용혈신공으로 마나를 회복시킨 후 다시금 스톰레이지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쉬지?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지.

-후훗, 좋은 자세야.

-궁기안을 꺼줘. 본래 실력으로 상대하고 싶어.

-알았어. 후훗... 많이 잡아.

일하러 나가는 가장을 보채는 듯한 궁기의 대답에 피식 웃은 제황이 손에 화살을 소환했다.

“가볍게...”

잠시후 제황은 마나와 궁기안에 도움을 받지 않은 채  활을 쏘기 시작했다.

비록 각성자로서의 육체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어떠한 스킬 보정도 없다. 가끔씩 이렇게 순수한 실력을 가다듬지 않으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최고의 실력을 발휘 할 수 없다.

-잘 맞네?

-바람이 별로 없어서 계산이 쉬워.

날아간 화살들은 단 한발도 놓치지 않고 오크들에게 적중했고

가파르게 차오르는 경험치를 보며 더욱 빠르게 시위를 당기는 제황이었다.

쉬이이익... 펑!

그때 제황의 머리를 노린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 뒤쪽 벽에 깊숙이 꽂혔다. 내제된 힘이 워낙 강해 살대가 부르르 떨린다. 거의 1미터 40센티 가량 되어 보이는 얼핏 보면 창으로 착각할 길이의 화살이다.

그러나 고개를 까딱 움직이는 것만으로 화살을 피해낸 제황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화살을 바라보며 궁기에게 말했다.

-저런 중량화살을 여기까지 날리다니 대단한데?

-좀 더 역동적으로 피하면 안 될까? 고개만 까딱하는 건 쏜 상대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야.

-그다지...

제황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위협적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이정도 공격에 놀라면 그를 훈련시킨 아버지가 통곡하실 것이다.

-주인이 누구야?

-궁기안으로 찍어줄게. 비슷한 놈들이 잔뜩 있어.

그 말과 함께 화살을 날린 용의자를 향해 긴 선이 그어졌다. 대략 1킬로미터 가량 되는 거리에 거대한 강궁을 든 오크 수백이 가지런히 도열해 있다. 뿔이 달린 풀페이스 투구에 두툼한 가죽더미로 중무장을 한 채 일반 오크궁수의 허접한 활이 아닌 순수 금속으로 된 철궁을 든 그것들은 저스틴 포인트를 향해 연신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몇몇이 제황 쪽을 향해 다시금 시위를 당기고 있다.

-선물을 받으면 보답을 줘야지.

-아이고 착해라.

-강한 놈들이니까 아끼지 않고 간다. 화신체에 한계에 달하면 말해줘.

-알았어.

파앙!

“비상하는 화살!”

하얀 선의 끝으로 비상하는 화살의 예상투사 지점을 일치시킨 후 시위를 놓자 스톰레이지를 통해 가속된 화살이 제황을 향해 다시금 시위를 당기던 오크의 투구 앞 바이저 사이에 뚫린 눈구멍으로 쏘옥 들어가 박혀버렸다.

퍼어억!

“꾸억!”

비명을 지르며 화살을 붙잡고 몸부림치던 오크가 이내 땅에 쓰러져 절명했다. 헬멧에 가득찬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눈구멍을 통해 뇌를 헤집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2300

-흠...

제황은 들어온 경험치에 깜짝 놀랐다. 단지 명중보정의 [비상하는] 만을 담아 날린 화살인데 거의 4티어 몬스터의 경험치로 돌아온 것이다.

-공격력에 특화돼서 방어력이 형편없는 놈들이군.

-호호호... 산삼 밭이구나.

-아아, 감사합니다. 하고 먹어야지.

눈을 빛낸 제황은 행여 저스틴포인트의 공격으로 인해 하나의 경험치 덩어리라도 놓칠까 빠르게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화신체를 쓴 이상 빠르던 늦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앞전에는 어느 정도 힘을 조절했다면 지금부터는 진정한 전력이다.

“우어억!”

“꾸억! 쉬름카락!”

“꾸어억!”

“방패부대! 궁수를 보호하라! 어서!”

검은이빨투사단의 단장인 오크히어로 투칸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궁수부대가 적이 쏜 화살 공격에 무참하게 쓰러지기 시작하자 발작적으로 외쳤다.

처척! 척!

그의 명령에 방패를 든 오크부대가 합류해 검은이빨투사단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취익.. 더 이상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가 이끄는 검은이빨투사단은 로드께서 직접 챙기는 궁수부대였다. 활에 재능을 보이는 오크들을 모아 육성한 이 부대는 차후 인간들의 화약병기에 대항할 원거리 궁수부대를 육성할 씨앗이었다. 전장에서 허투루 소모할 제원들이 아닌 것...

쉬익.. 퍽..

“커억!”

“이럴 수가!”

그러나 공중에서 내리꽂히듯 날아온 화살에 다시금 궁수 하나가 쓰러지자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견고한 방패진도 소용없다. 그다지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문제는 소름끼치는 정확도였다. 그 화살은 가장 치명적이며 가장 취약한 곳만을 골라 타격했다. 날아온 화살은 얄밉게도 방패부대를 무시하고 안에 보호받고 있는 궁수들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크르륵! 집중사격 준비!”

처처척!

더 이상 방어만으로 희생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투칸은 모든 검은이빨투사단에게 명을 내렸다.

그의 명령에 자유사격을 뿌리던 오크들이 일제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향해 활을 겨냥했다. 그가 선도공격을 시작하면 일제히 집중사격을 시작할 것이다.

“크르르... 인간 궁수놈...”

그는 멀리 인간들의 성내 건물 옥상위에 서있는 한 인간을 주목했다. 높다란 망루 같은 곳에 고고히 서서 자신들을 향해 연신 시위를 당기고 있다.

“더러운 인간 놈! 죽여주마.”

그는 로드에게 하사받은 자신의 활에 화살을 걸었다. 인간들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고 20년이 흘렀다. 본디 오크들에게 활은 천시 받았다. 육체로 부딪히며 무기와 무기가 맞붙어 생과 사를 결정하는 것을 명예로 알고 있는 오크에게 안전한 곳에서 생명을 노리는 짓은 비겁하다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원거리 화약병기로 인해 속절없이 밀리자 오크들 사이에서도 활에 대한 재평가 되기 시작했다. 무기가 뭐건 잘 죽이면 그만이라는 인간의 전투방식을 따라가지 않으면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활에 대한 천시로 인해 제대로 된 궁사들을 육성할 수 없었고 본격적으로 육성이 시작된 것은 인간들에게 고향땅을 잃고 유랑하던 오크들을 규합하여 거대부족들을 점령한 오크로드가 나타난 후였다.

그리고 그 오크로드의 뜻에 따라 활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고 체계적으로 궁수부대를 육성했다. 효과는 발군이었다. 기병과 보병이 대부분인 오크의 군 체계에 활이 가세하면서 다채로운 전술 변화가 가능해 진 것이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활을 가져다가 그 원리를 이해하고 더욱 강한 병기를 생산해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검은이빨투사단은 각고의 노력의 끝내 탄생한 그 결정체다.

“취익! 집중사격 준비!”

드드드득!

조준을 마친 그가 막 시위를 놓으려는 찰나였다.

“피하십시오!”

충성스러운 그의 부관이 앞을 가로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아 하는 순간 코앞까지 날아온 화살 한 대에 투칸은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크르...너무 빨라!’

보통 정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느리게 보인다. 물론 보통의 오크가 쏜 화살에 한해서지만 그렇기에 화살을 쳐내거나 방어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신과 같은 오크히어로들은 수십 발이 날아와도 모두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장담하는데 지금 날아오는 화살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씨아아아아앙! 펑!

용감하게 투칸을 가로막은 부관의 복부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크아악!”

투칸은 외마디 괴성을 내질렀다. 화살 한 대가 보인 엄청난 공격력에 놀라서? 그를 보호한 부관의 희생 때문에? 아니다. 부관의 복부를 뚫고서도 자신을 집어 삼키기 위해 그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는 섬뜩한 금속의 느낌 때문이다.

투투투툭..퍼퍼퍽!

몸을 감싼 몬스터 가죽이 갈가리 찢기며 사방을 날고 후끈한 느낌과 함께 붉은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까지 것...”

화살 공격을 버텨낸 투칸은 오연한 표정으로 적을 노려보며 목을 타고 올라오는 피를 삼켰다. 여기서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을 따르는 검은이빨투사대의 사기에 영향을 미친다.

“일제사...쿨럭...”

그러나 사격을 외치던 투칸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호흡을 할 수가 없다. 밑을 내려다본 투칸은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응당 가슴이 있어야 할 부분이 둥글게 뚫려 있었다. 그 안으로는 피가 분수처럼 흘러내리고 있고 조각조각난 내장조각과 각종 장기들이 흘러내려 있었다.

“커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투칸의 무릎에 꿇려졌다.

“단장!”

“크륵! 단장님!”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 아련히 부하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점멸해가는 그의 시야 속으로 다시금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6,754

-오... 역시 저 덩치 큰 놈들이 경험치를 잘 주네.

-그러게

제황은 연신 시위를 당기며 궁기의 말에 맞장구쳤다.

화살을 날리던 오크들 중 상당히 강해 보이는 녀석이 있기에 [비상하며 폭발하는 힘의화살]로 잡았더니 상당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더 반가운 것은 놈이 대장이었는지 다른 놈들이 동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를 노리고 수십 대의 화살이 날아왔지만 용혈무의 회피를 뚫고 들어오는 건 없었다.

-물들어 왔을 때 노젓자고!

-좋아!

***

‘괴...괴물...’

달천은 제황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수십 대의 화살이 날아왔지만 제황은 그것을 가벼운 몸짓만으로 모두 피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일절 동요가 없다. 가볍게 피하고 쏘기만 반복하는 중이다.

퍼퍼퍼퍼퍼펑!

대체 화살을 쏘는 건지 대포를 쏘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단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피부에 느껴진다. 그가 넋을 놓고 있을 때 달천을 힐끔 바라본 제황이 외쳤다.

“위험!”

“에?”

퍽...

“히익...”

달천은 자신의 머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제황의 커브스보우를 보고는 그대로 실금을 해버렸다.

어느새 유령처럼 나타난 제황이 그의 머리를 꿰뚫으려던 화살을 활대로 쳐버린 것이다.

“조심하세요.”

“네! 네네!”

제황 덕분에 목숨을 건진 달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전장을 바라봤다.

“대...대단해.”

달천은 손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는 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제황의 화살이 떨어지는 곳은 말 그대로 지옥도였다. 오크들의 군세들 중 상당히 안전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곳은 제황의 폭격을 가장한 집중사격으로 인해 오크들의 시체로 큰 구멍이 생겨 있었다.

“저스틴포인트가 이기겠군.”

오크들의 파도는 여전히 거세지만 저스틴포인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저스틴포인트의 승리다.

“응?”

그때 지평선 끝으로 한떼의 먼지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크는 아니다. 그보다 좀 더 거대한 것들이다.

“쟤들이 왜 저기서 와!”

달려오는 것들은 무장버스 무리였다. 오크들을 밟으며 거의 이십 여대의 무장버스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다. 오크들에 대한 무전을 늦게 받은 건지 아니면 중간에 길을 잃은 건지 이제야 나타난 공격대 무장버스다. 그러나 달천이 놀라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왜 이리로 오지?”

멀쩡히 게이트로 나가는 탈출구가 있는데 미친 게 아니라면 왜 오크들로 둘러싸인 저스틴포인트로 오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달천은 당황했다. 만약 게이트가 함락 당했다면 분명 무전이 들려왔어야 했다. 아니 무전이 살아있는 이상 이곳으로 온다고 연락이라도 왔어야 정상이다.

“설마 게이트가 벌써 함락당한 건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아무리 저스틴포인트와 게이트가 가깝다고 해도 게이트 또한 저스틴포인트만큼이나 방비가 잘 되어 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저스틴포인트보다 더 강력하다. 그곳은 구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온갖 방어체계가 가득하니까. 그러나 예상보다는 드러난 현실이 더 중요하다.

“병신들, 그냥 숨지.”

달천은 혀를 찼다. 아무리 오크가 많다고 해도 이 지역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다.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적당히 잘 숨어있으면 되는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공격대가 그런 식으로 숨었고 지금 달려오는 것들은 달천의 말대로 ‘병신’ 이라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달천의 착각이었다.

아니 달천 뿐 아니라 무장버스를 바라보는 저스틴포인트의 모든 이들이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