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81화 (81/301)

# 81

오크군단 공략

“미... 미친!”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예정하지 않았던 목소리가 방송에 섞였다. 그의 액션캠은 그대로 돌고 있지만 그는 그것도 깨닫지 못했다. 어중이떠중이로 데려온 초보헌터 놈이 초보가 아니다. 초보? 미친 거 아냐.

티팅...

시위가 끊어졌다. 제황은 재빨리 끊어진 시위를 풀어버리고 새로운 시위를 꺼내 스톰레이지에 걸었다. 시위를 교체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 내외. 다시 연결한 시위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다시금 무한고에서 화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덩어리야.

-좋아.

수십 개의 선들 중 하나가 유난히 두껍다. 궁기가 특별히 선별해 준 것이다. 선의 끝에 있는 건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채 달리는 거대한 체구의 오크였다. 오크히어로라고 했던가? 제황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비천격과 테러버드 애기살을 꺼내 시위에 걸고 그대로 갈겼다.

“춤추는 힘의 화살!”

퍼어엉 쭈아앗!

화살을 발사함과 동시에 음속을 돌파하는 후폭풍이 제황과 달천을 덮쳤다. 오크히어로 한 마리가 평전사들을 독려하며 거대한 방패를 앞세운 채 달린다.

그 오크히어로가 들고 있는 방패는 다른 방패들과는 좀 더 두껍고 더 거대하다. 타 오크에 비해 월등한 힘을 지닌 오크히어로도 무기를 포기한 채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육중한 크기... 그렇기에 그 방패는 인간들의 곡사화기와 기관포 수십 발도 견뎌냈다.

“우카르 우르크아!”

오크히어로는 근 1톤에 달하는 방패를 들고 달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방패로 채 가리지 못한 양 다리는 피탄으로 피범벅이 되었지만 카녹의 축복은 회복력마저 극대화시키기에 피륙은 상하더라도 달리는 데는 하등 이상이 없다.

카녹의 위대함을 외치며 달리는 그 때 예민한 육감이 위협적인 움직임을 감지했다.

“끄르륵... 타후르!”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히는 한 발의 벼락이 있다. 무시할 수 없는 힘을 품은 채 소리조차 없이 날아 내리지만 카녹께서 내리신 강건한 육체와 정신은 그것을 간파해냈다.

“시느악 하카르 타라!”

오크히어로는 입꼬리를 삐죽 올린 채 들고 있던 방패를 눕혀 몸을 가렸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막으면 끝날 것 호들갑은 필요 없다. 지금 그가 든 방패는 고위몬스터의 가죽과 뼈를 조합해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벼락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 벼락은 세 번의 급격한 공중기동을 선보임이고는 단숨에 방패 밑에 숨은 오크히어로에 미간을 파고들었다.

펑!

화살이 미간에 닿는 순간 강력한 회전을 일으키며 뼈를 갈아버렸고 오크히어로의 머리는 산산이 폭발해 버렸다.

+140

+8900...

-많이 주네. 잘하면 랭크업 하겠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건만 대량의 경험치가 들어오자 제황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헌터들의 능력을 보통 2성3성 같은 별로 나누지만 초기에는 상태창에 나타난 레벨을 그대로 말했었다.

그것은 방어시스템 세이브가 인증하는 가장 절대적인 강함의 척도였으까. 그러나 그 정보가 적에게 들어갔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된 헌터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레벨을 숨겼다.

현재 제황의 레벨은 C급 9레벨이다. 1레벨만 더 올리면 10레벨이 되고 그러면 랭크업이 시작되는데 헌터에게 랭크업이라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랭크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부여받는 특전이 그것이다.

-그래? 그럼 묵직한 것들만 선별해 줄까?

제황의 말에 궁기안의 탐지 범위가 넓어지며 수십 개의 굵은 선이 생겨났다. 제황이 욕심을 보이자 궁기가 알아서 선별해 준 것이다.

-지금은 유효사거리 내에 있는 것만 뽑아줘.

-쳇, 생각해 줬는데.... 뭐, 알았어.

다른 오크들에 비해 거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경험치가 들어왔지만 유효사거리가 아니면 잡기 힘든 개체다. 그러나 평범한 오크도 워낙 많아 오늘 랭크업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투툭...

두 번째 시위가 끊어졌다.

제황은 서둘러 시위를 갈며 손의 상태를 확인했다.

“긴급재생”

피범벅이 된 손이 서서히 아물어간다. 예전 대결하며 받은 3억짜리 장갑은 이미 넝마가 되었다. 아이템창을 바라보니 완전히 파손되어서 아이템 옵션도 뜨지 않았다.

이런 건 수리도 하지 못한다. 아니 수리비가 제품가격보다 더 비싸다.

“쳇...”

글러브를 빼서 땅에 내던진 제황은 전에 끼던 슈팅글러브를 꺼내 손에 낀 뒤 손을 두어 번 쥐어보고는 다시금 화살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경험치 덩어리는 아직 널리고 널렸다.

-전 소대 퇴각! 전 소대는 퇴각하며 자폭 시행! 자폭 타이머는 1분 설정!

“빌어먹을 언제 나오나 했다! 모두 무장버스를 버린다!”

“알겠습니다.”

박중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가 신속하게 차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박중위는 목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들고 조종석으로 달려갔다. 조수석을 뒤집자 자그마한 액정이 달린 숫자다이얼과 열쇠구멍이 나타났다. 열쇠를 돌린 후 자폭키워드를 입력한 박중위는 열쇠를 다시 한 번 돌린 뒤 액정의 시간을 1분으로 맞춘 후 열쇠를 빼냈다.

위이이이...

무장버스의 바닥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진동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폭이 원활하게 실행된 것이다.

“좋아.”

최후저지선에 설치한 크레모어는 어차피 감지형이고 크레모어가 폭발하는 순간 주변에 매설한 폭발물은 유폭을 일으킬 것이다.

“가자!”

“네!”

박중위는 무장버스를 벗어나며 위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수십 줄기의 검은 선이 뿜어져 나오며 오크들을 격살하고 있다.

“고맙다.”

화살의 주인을 알고 있는 박중위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피식 웃었다. 만약 제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편하게 탈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중위님! 어서!”

“알았다 임마!”

쾅쾅쾅쾅!!!

박중위들이 차벽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100미터 전에 설치된 폭발물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오크들을 공중에 날려 버렸다. 땅이 지진을 만난 듯 흔들리며 오크들의 물결을 한 차례 밀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금 검은 물결들이 일어나 금세 차벽을 덮쳤다. 지겹도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기관포를 점령한 오크들은 무기물인 기관포에 화풀이 하듯 연신 도끼질을 해댔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난 오크의 물결이 이내 차벽을 넘어 요새 성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붙는 순간 성벽이 부서지던 시체를 쌓아 성벽을 넘든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인간들이 준비한 잔인하고 교활한 함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콰콰콰쾅! 콰지지직!

그 때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 폭발은 앞전의 것보다 훨씬 크고 더 치명적이었다. 1차 방어선의 역할을 하던 무장버스들이 일시에 폭발하기 시작하자 수백인지 수천인지 알 수 없는 오크들의 파편이 공중을 장식했다.

“카녹스 부라드!”

폭발 후 살아남은 오크들도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평전사의 상위 계급인 우르크하이들도 이번 폭발에서는 무사하지 못했다. 팔다리가 날아간 것은 예사고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폭사했다.

무장버스에 달린 자폭 장치는 무장버스에 달린 마나석 전지를 엔진을 이용하여 단숨에 오버히트 시켜 버리는 것이다. 마나석 전지가 폭발하며 무장버스 자체가 갈기갈기 찢어지며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무기가 된다.

오크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저스틴포인트 내에서 수십 발의 미사일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방을 막고 있던 차벽도 사라졌기에 저스틴포인트의 화력은 전혀 거리낌 없이 오크들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것은 장난이라는 듯 무자비하게 쏟아 부었다.

“후우...”

두 번째 폭발부터 화살 공격을 멈춘 제황은 호흡을 진정시키며 오크들을 바라봤다. [화신체]를 통해 가진 바 마나를 모조리 소모하는 시험을 한다는 심정으로 날렸기에 남은 마나는 고작 10 남짓이다. 화신체의 힘으로 그 마나는 다시금 빠르게 차오르고 있지만 마나의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몸이 힘들었다.

모든 능력이 +1가 되었기에 시위를 당기는 것은 전보다 쉬워졌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대놓고 화살만 미친 듯이 쏴본 적은 제황도 처음이었다.

-궁기 화살 잔량 확인해줘.

-일반화살 8,291발...  테러버드 화살 23발 테러버드 애기살 41발... 길이가 어중간한 미분류 화살 3,200발, 활시위 48개

-대략 3000발정도 사용한 건가?

-그래. 조금 쉬지? 이대로 쓰면 화신체는 앞으로 잘해야 한 시간이야. 아껴써.

-그래. 그래야겠다. 미분류 화살들 중 애기살로 쓸 만한 게 있을까?

-한번 볼게.

-그래. 부탁해.

8소대가 퇴각한 것을 확인했기에 제황은 마나가 차오르는 걸 확인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궁기가 무한고에서 화살을 확인하는 동안 용혈신공을 일으켜 마나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회복하려는 것이다.

그 때 달천이 조심스럽게 제황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 전까지는 초보헌터라며 속으로 대놓고 깠지만 무시무시한 신위를 보이니 알아서 간이 쪼그라들었다.

“저기...”

“네?”

“죄송합니다.”

달천이 무릎을 꿇었다. 상대가 자신을 기만했건 자신의 눈이 병신이었건 결과가 중요하다. 강자다. 강자 중에서도 초강자이며 최소 4성... 최대로 잡으면 6성의 헌터다. 6성이라고 잡은 건 제황이 보인 무위는 그가 지금껏 경험한 것들과 궤를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지의 경지이기 때문에 6성으로 생각했다.

‘난 정말 은퇴해야겠구나.’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될 텐데 늙어서 그런지 생각을 못했다.

2성 하이브리드 라이센스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건 아마 가짜일 것이다. 이유는 국가동원령 때문이다. 2성 헌터 치고 동원령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으니까.

초보헌터였다면 딴 짓할 것 없이 그곳으로 집결하는 게 맞다. 벌금이 어마어마하기에 가진 게 별로 없는 초보헌터는 동원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헌터는 자신을 털레털레 쫓아왔다. 자신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런데 자신은 은연 중 이 헌터를 무시했다. 무의식적이지만 ‘병신’ 이라고까지 이야기 했다.

물론 제황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달천은 고위급 헌터가 얼마나 또라이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그 똘끼는 상위헌터일수록 심해지고 6성 정도 되면 거의 법 위에 사는 인간이 된다. 국가의 전략무기와 마찬가지 존재가 5티어 이상 헌터니까.  그런데 상대는 추정치만 최하 4성이다.

‘네가 아까 병신이라고 했냐?’ 하고서 오크들을 향해 던져 버려도 할 말 없는 것이다.

“저...”

제황이 무릎 꿇은 달천을 일으키려 손을 뻗었지만 달천은 마치 그 손이 사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의 주마등 속에 헌터의 비위를 거슬러 악소리도 못하고 죽어간 동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카메라가 마음에 안드네. 왜 이렇게 찐따처럼 찍었느냐. 왜 거기서 기웃거리다가 스킬을 쳐맞느냐. 너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 등등...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습니다.”

“변명 같지만 고위 헌터라는 걸 몰라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아...”

제황은 달천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자신의 무력을 보고 겁을 먹은 것 같은데 쓸데없이 사람 겁주는 건 제황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제황이 어깨를 두들길 때마다 사시나무 떨 듯 달천이 움츠러들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쓰고 있던 후드를 끌어내렸다.

아무래도 얼굴을 드러내고 안심시키는 게 좀 더 효과적일 것 같다. 지금까지 경험 상 이상하게 그의 얼굴은 이런 상황에서 효과가 좋다.

“정말 괜찮습니다.”

“아아...”

제황의 말에 고개를 든 달천은 후드를 벗고 드러난 제황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헉 하고는 숨을 멈췄다. 달천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걸 쓴웃음으로 넘긴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났다.

이런 것 때문에 후드를 벗을 수가 없다. 사고 전에는 본래의 얼굴만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랐는데 회복은 물론이고 환골탈태로 인해 더욱 업그레이드가 되어 버렸으니 귀찮은 일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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