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79화 (79/301)

# 79

용혈기의진화

피..피핑...핑

그러나 단숨에 모든 것을 쪼개버릴 것 같던 그 공격들은 방패에 닿는 순간 모조리 막혀 버렸다. 물론 방패들이 엄청나게 단단한 건 아니었다. 총탄이 방패에 작렬할 때마다 녹색의 둥근 물결들이 일어나 그것들을 방어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제히 방패들을 땅에 박고 중갑오크들이 뒤를 받치자 탄의 저지력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것이다. 물론 수십 개의 방패가 박살나고 쪼개져 그 뒤에서 전진하던 오크들은 총알밥이 되었지만 그건 일부였다.

"저..저걸 버텨."

달천이 입을 떡 벌리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30mm탄의 크기는 엄청나게 크다. 30mm 탄에 직격당하면 중장갑의 전차도 버티지 못하는데 오크들은 그것을 쇠와 몬스터의 껍데기를 덧댄 방패로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제황에게도 충격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화살공격도 저것보다 강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공격 수천 발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오크주술의 방어계열이기는 한데... 너무 강해. 이건 분명..."

읊조리던 달천은 이내 쌍안경으로 중갑오크의 뒤쪽에 위치해 있는 오크주술사들에 주목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다가 이내 시선을 고정했다. 머리에 뿔 달린 해골을 쓰고 등에는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토템을 짊어진 오크들이 지팡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오크제사장  역시... 그렇군."

"오크제사장이 뭡니까?"

"오크제사장은 오크 주술사의 상위 존재로 오크주술사 중 드물게 나타나는 고등한 존재야. 내가 알기로 저것들의 주술범위는 엄청나게 넓고 또 다른 제사장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고 하지.“

오크들의 준비성이 너무 철저하다. 마치 누군가가 코칭이라도 해 준 것처럼... 그렇지만 저스틴포인트의 군인들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콰쾅! 쾅! 쾅!

30mm탄의 직사공격이 무력화 된다는 걸 안 저스틴포인트 내에 있던 곡사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지금껏 참고 있었는지 무지막지한 수십 개의 화염이 터져 나오고 그와 함께 중갑오크들의 푸른빛 방어막에 작렬했다.

“꾸어억!”

오크들도 이번 공격은 감당하기 어려운지 판판히 물러섰다. 30mm탄은 단순한 운동에너지였다면 곡사무기는 대형종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탄으로 되어 있다. 일부 방패들이 박살나며 중갑오크들이 떼몰살을 당했다. 곡사화기들은 철저하게 전진해오는 이들만을 노렸다. 곡사화기의 사정거리 상 오크 군세 전부를 커버 가능하지만 그런 우는 범하지 않았다. 아니 그 일을 할 건 따로 정해져 있다.

위이이...

곡사화기의 공격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저스틴포인트 곳곳에서 수백 대의 드론이 일제히 떠올랐다. 여섯 개의 로터로 몸체를 지탱하는 지름 2미터의 검은 드론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오크군세를 향해 유유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어억!”

“꾸억!”

들판을 까마득히 덮은 오크군세들에 비하면 너무 소수지만 그들은 치명적인 공격수단을 지니고 있다. 오크들도 그것을 아는지 드론들을 격추하기 위해 공중을 향해 수백발의 화살이 날았지만 그 화살들은 드론들에 닿지 않았다. 오크들이 가진 조잡한 활의 사정거리를 아는지 고도를 유지하는 드론이다.

오히려 그 화살들은 같은 편인 오크들을 향해 떨어졌다. 드론을 추락시키려 쏘아낸 화살들이 같은 편을 공격하는 것이다. 드론들은 공중을 날아 오크들의 주력을 향해 다가가며 일제히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하부에 달린 네모난 상자가 열리고 검은 색의 동그란 캡슐들이 마구잡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퍼퍽! 퍼퍼퍽!

그것들은 폭발물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떨어지던 그것들이 공중에서 일제히 터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얀 연기로 변해 오크 군세를 뒤덮기 시작했다.

“우어억! 어억!”

“그르르륵!”

하얀 연기에 노출된 오크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을 떨어뜨리더니 이내 자신들의 목을 부여잡았다. 하얀 거품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그 거품은 이내 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생화학무기다.

“꾸어어억!”

연기는 광범위했고 하얀 연기로 뒤덮인 곳에 있던 오크들은 떼몰살을 당했다. 물론 연기에 당해도 쓰러지지 않는 오크들도 있었다. 일반 오크전사가 아닌 마나를 몸에 체득한 상위의 존재 오르크하이 들이다.

“팽! 빌어먹을 독...끄르륵... 인간들은 역시 가장 효율적인 싸움을 하는 끄륵... 놈들이다.”

콧속을 파고드는 하얀 분말 때문에 세차게 코를 푼 오크가 고개를 휘휘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상당히 많은 오크들이 하얀 분말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다. 평전사들은 분말에 노출되는 순간 이미 오크들의 신인 카녹의 품에 안기고 있지만 그건 평전사들 뿐... 그 윗 단계인 우르크하이들은 고작해야 고통스러워하는 게 전부다.

그 때 그의 앞으로 거대한 덩치의 오크 하나가 달려와 넙쭉 엎드렸다.

“끄륵... 로드시여. 평전사들이 끄륵 동요하고 있습니다.”

“왜지?”

“이건 영광스러운 죽음이 아닙니다. 꾸룩...카녹께서 노하실 거라 수군거립니다.”

그의 말에 로드라 불린 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이건 영광스러운 죽음이 아니다. 적의 칼에 배가 쑤셔지고 내장이 쏟아지고 목이 깨끗이 잘려 나가줘야 카녹도 기꺼이 그 전사의 혼을 가져가시리라. 독에 당해 뒈진 전사의 혼이라니... 전사의 홀에 장작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취익... 어리석은 녀석들, 좋다. 포식을 허용해라. 아울러 우르크하이들을 준비시키고 검은이빨 투사단을 집결시켜라. 그 더러운 이교도 인간 놈들을 마냥 믿을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끄륵...”

부하가 돌아서자 그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온갖 몬스터들의 해골로 장식된 거대한 왕좌가 있었는데 가장 꼭대기에는 지금껏 그가 취한 다른 오크로드의 목 수십 개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왕좌 주변에 있던 육중한 갑주의 오크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그를 맞았다.

왕좌로 걸어간 오크는 자리에 털썩 앉고는 입을 열었다.

"대제사장! [카녹의은총] 시작하라."

"예. 지고한 로드시여."

그의 오른쪽에 서 있던 뼈와 깃털로 장식된 요란한 복색의 오크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더니 등에 지고 있던 토템을 땅에 꽂고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테르다 카녹 녹타... 테르다 카녹 녹타..."

그가 지팡이를 치켜들고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왕좌 주변에 포진해 있던 비슷한 복장의 오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하늘로 치켜들었고 그들의 몸에서 서서히 녹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둥둥둥둥둥둥!

주변에 있던 북을 치던 오크들이 서서히 북을 두들기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테르다 카녹 녹타! 우케르! 카녹! 카녹! 카녹! 카녹!"

녹색의 기운이 서서히 오크들을 덮고 동족의 시체를 뜯어먹던 오크들의 눈이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북소리에 따라  오크들은 손에 든 무기들로 땅을 두들기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 푸른 기운은 오크들 사이사이에 서 있는 오크주술사들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저 미친 것들... 또 지들끼리 잡아먹네.”

달천은 살아남은 오크들이 죽은 오크들을 뜯어먹기 시작하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저 장면은 정말 구역질이 난다. 죽은 것들만 먹는 게 아니다. 땅에 쓰러져 아직 숨이 붙은 오크들도 주위 오크들의 식량이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저 장면을 마냥 야만적이라 치부할 수 없는 게 저런 식으로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종국에는 더 강한 오크가 된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오크가 보이면 무조건 씨를 말려버린다. 동족포식을 통해 강해지는 걸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 말이다.

“저런 장면 때문에 생중계가 불가하지. 젠장...어...저게 뭐야?”

그때 그의 쌍안경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잡혔다.

마치 거대한 호수에 푸른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생겨난 푸른빛이 주변을 잠식하며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단지 그뿐이라면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오크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이 연신 카녹을 외치며 북소리가 커질 때마다 오크들의 근육들이 울룩불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2미터에 달하던 오크들이 지금은 머리 하나 더 커진 느낌이다.

"저..저건!"

나름 저스틴포인트 10년 경력의 그는 그것을 알아봤다. 오크들이 사용하는 주술 중 하나다. 일종의 버프로써 오크의 신체능력과 포악성을 강화시킨다. 문제는 저렇게 대규모로 시전 되는 광역 주술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쿠아아아악!”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던 오크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어섰다.

“쉬름카락 카녹! 쉬름카락 카녹!”

전장의 광기에 빠진 오크들이 일제히 저스틴포인트를 노려본다.

“테라 쉬름카락!”

“케라! 움 더 우르크아!”

두두두두두

검은 오크의 물결이 저스틴포인트를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

저스틴포인트도 그것을 가만히 보지는 않았다. 격벽 각부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살벌한 크기의 화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오크의 물결과 저스틴포인트의 화력이 격돌했다. 순식간에 오크의 시체로 산이 쌓였다. 저스틴포인트의 대응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퓨퓨퓨퓽...

저스틴포인트 내부로부터 유려한 동체의 하얀 미사일 십여 발이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그 미사일은 공중에서 수십 개의 자탄으로 분리되더니 이내 오크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우어어억!”

“카녹! 타루가 카녹!”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이탄이다. 광범위한 지역을 지옥의 불꽃으로 뒤덮는 같은 인간에게는 차마 그 잔인성으로 인해 사용이 금지된 그 악마의 무기가 몬스터들을 상대로 아낌없이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카녹! 카녹!”

수백의 오크들이 단숨에 숯덩어리로 변해갔지만 그뿐이었다. 거대한 공백이 생겼지만 그 자리는 이내 다른 오크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물결은 오히려 더욱 사나워져 있었다. 동족의 시체를 밟고 달리는 오크들의 눈은 이제 녹색의 광망이 흐른다.

단숨에 오크들의 물결과 차벽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3킬로미터의 거리가 어느새 2킬로미터로 줄었다. 가까워질수록 화력도 집중되기는 하지만 오크의 물결이 더욱 거셌다.

“이대로라면 1차 방어선이 무너지겠군.”

차벽을 향해 돌진하는 오크들의 물결을 보며 카메라를 조작하던 달천은 문득 한 편에 앉아 있는 제황을 힐끔 바라보고선 깜짝 놀랐다.

“얘는 또 왜 이래!”

***

-보여?

-응.

-저게 뭐지?

-잘봐둬. 저게 바로 마나의 공명이야.

-공명?

저스틴포인트에서 쏟아지는 무지막지한 화력과 오크들이 격돌하고 있지만 제황은 지금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 전 오크들 사이로 퍼진 광역 주술의 여파다. 물론 제황이 주술에 걸린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이에서 전장에 펼쳐진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문제였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제황은 남들보다 마나의 움직임을 훨씬 효율적으로 볼 수 있었다. 녹색의 마나들이 마치 꽃이 피어나듯 사방으로 퍼지다가 다시금 동심원을 그리며 은은히 퍼져 나간다. 그 동심원은 다른 동심원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은 서로 호응하며 더욱 큰 동심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이 종국에 거대한 원을 만들어내며 만개한다.  비록 그 사이에 있는 것은 흉악한 오크지만 그 마나의 물결만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문제는 그 흐름을 보는 게 단순히 제황에게 새로운 지식에 대한 문화적 충격만을 준 것이 아니었다.

[고차원의 마나 흐름을 목격함으로써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마나의 이해가 용혈기의 부족한 조각을 완성합니다.]

[마나의 공명에 대한 깨달음으로 용혈기가 10랭크에 도달하였습니다.]

[용혈기가 용혈신공으로 진화합니다.]

[용혈신공-1랭크 0프로]

-마나량 +500

-마나회복율 +20

-정신:+2

파아앗!

제황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간다.

공명을 목격하고 무의식적으로 용혈기를 일으키는 순간 단전의 마나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나들에 공명의 의지가 함께하는 순간 용혈신공에 대한 수천 수억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황이 다음 단계를 밟을 준비를 끝마치자 세이브는 제황에게 용혈기의 진정한 모습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조각조각 났던 그것은 마치 제 주인을 만난 양 제황을 향해 모여들어갔고 새롭게 주입된 용혈신공이 드디어 그 첫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휘이이...

제황을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그 바람이 멈추자 제황의 눈이 번쩍 떠졌다.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깨달음이지만 그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 제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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