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필살의제황
-내가 티아라로 마나를 쌓으면서 잃었던 술법들을 찾았거든.
-응? 술법?”
-그래. 그 중 신위발현이라는 술법인데 ...좀 벅차기는 하지만 곧 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은?
-지금은 힘들지. 이거 한 번 쓰면 내 힘은 한동안 바닥날걸? 그건 너도 원하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그럼 내가 따로 준비할 게 있어?
-응. 당연히 있지. 그러니 내가 지금 말을 꺼낸 거고... 재료는 간단해. 5티어급 마나석 100개
-나 그 정도 없는데?
무한고 안에 남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40개 안팎일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은 궁기가 더 잘 안다.
-그럼 6티어급 마나석 20개 아니면 7티어급 마나석 1개!
-없는 것만 찾는군.
-호호... 맞아. 그러니까. 열심히 강해지라구...아무튼 어때? 해보겠어?
궁기의 물음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권한다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고마워.
-고맙긴... 넌 강해져야 한다니까. 아참 3티어 마나석 내놔. 아니 그냥 마음대로 쓰면 안 돼?
-그건 두고 보자. 너 자꾸 5티어 마나석에 기웃거리잖아. 3티어는 그냥 가져다 써.
-째째하긴... 4티어는 실패했지만 5티어는 성공할지 모르잖아.
-기각
본래 무한고에 든 물건은 궁기가 마음껏 쓸 수 있었지만 저번 4티어 마나석의 일로 마나석의 입출은 제황이 관리하기로 했기에 이런 번거로움 절차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
“자아, 촬영 준비는 끝났고...”
달천은 메인카메라를 벽에 고정시킨 후 세세한 앵글을 수정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등에 맨 작은 가방에 부착된 USB를 귀에 낀 헤드셋에 연결하고 휠을 돌리자 그의 귀로 수십 개의 전파들이 잡혀들기 시작했다.
-치익... EC32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 공격대에서.... 칙칙... 헤비파워드 슈트 반출 완료... 칙.... 빠르다! 빨라! 마틴! 움직여! 치이익...질주 공격대와 대현 공격대는 게이트로 향한다. 칙... 오르스 공격대는 이미 게이트를 향해... 칙...
“음... 발 빠른 놈들은 이미 게이트로 탈출하는구나. 쯧... 동원령 거부 벌금 따위는 껌이겠지. 그건 그렇고...아... 더럽게 시끄럽네.”
워낙 많은 망에서 무전을 날리다보니 소리가 중구난방이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몇 개의 망을 차단했다.
-순찰 3소대 출격완료...치익... 북서쪽 레스터 공격대가 잠잠하다. 모두구스 대이동 감지! 규모 3! 서식지 침입자가 있다. 5분마다 리스트업한다. 모두 정신 차려!
“음, 레스터라...”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수첩을 꺼내 연필로 개발새발 써넣고는 톡톡 두들겼다.
“레스터라면 레스터코퍼레이션 관련 공격대일 텐데... 모구두스만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공격대가 연락이 안 된다면 큰일이군.”
모두구스는 소를 닮은 3티어 몬스터였는데 육질이 탁월하여 그 사체가 비싼 값에 팔리는 몬스터였다. 대략 3톤가량의 몸무게를 가졌는데 돌진공격이 무섭기는 하지만 잡는 요령만 터득하면 그만큼 쉬운 몬스터가 없었다. 레스터코퍼레이션은 몬스터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계육가공업체였는데 레스터 공격대라면 모두구스 사냥을 위해 이곳에 상주하던 공격대였다.
모두구스를 잡는 법은 간단했다. 중장갑으로 떡칠한 무장버스로 돌진 공격을 한 번 당해 준 뒤 길고 날카로운 냉병기로 급소를 노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두구스 전문 사냥 공격대의 무장버스는 오크 따위는 뚫고서 탈출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연락이 없다면 정말 큰일이다.
“역시 직접 봐야겠어.”
잔인한 장면의 수위조절을 위해 녹화 후 편집하여 유툽에 내보내는 그는 수첩에 방송에 나갈 멘트 등을 정리하며 옆을 힐끔 바라봤다.
‘꼴값 떨고 있네.’
제황을 힐끔 바라본 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자기가 뭐 대단한 이라도 되는 냥 쪼그리고 앉아 밑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다. 겉멋만 잔뜩 든 요즘 젊은 각성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그가 제황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헌터니까. 초보헌터라는 건 척 봐도 안다. 능력은 얼추 있어 보이지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나 초보라고 광고하고 있다.
아니 무려 이곳에서 오크들을 공격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초보다. 오크들도 인간들의 화약무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거리 감각은 인간보다 더 좋다. 그런데 그런 오크들을 화살로 공격한다? 웃기는 소리다. 이것저것 감안하면 5킬로미터다.
그가 제황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사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였기 때문이다. 걸리면 저스틴포인트 출입이 영구적으로 막힐 수 있었고 보통은 계약을 한 헌터의 라이센스로 각 촬영 스팟들을 이용했다.
이전에 계약했던 헌터는 지구로 돌아간 게 아니라 금액이 맞지 않는다고 계약 파기를 한 상태였다. 물론 분배 6을 주기는 하기에 그가 손해인 듯싶지만 사실 그의 진짜 수입은 스트리머 따위가 아니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여러 가지 희귀한 몬스터 정보들을 비싸게 파는 게 그의 진짜 수입원이다. 스트리머 소득도 쏠쏠하지만 이전에 함께 다니던 헌터에게 주던 금액에 비하면 새발에 피였다. 옛날이야 스트리머로 좀 날렸지만 톡톡 튀는 신세대 스트리머들이 속속 나오면서 이제는 완전히 정보사냥꾼으로 변한 그였다.
“뭐 병풍으로도 좋네.”
피식 웃은 그는 카메라를 점검했다.
운 좋게 뭐 하나라도 얻어 걸리면 그거나 예쁘게 찍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
둥...둥..둥..둥..둥...
둔중한 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얼핏 차량의 엔진 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그런 소리... 그러나 약 5분 정도가 지나자 그 소리는 차벽을 이룬 군인들의 귀에 똑똑히 들렸고 다시 10여분이 지나자 그 북소리는 사방에서 울려 퍼지며 듣는 이들의 귀를 자극했다.
북소리와 함께 낮게 울리는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미세한 흔들림이지만 그 진동의 진원지 아는 이들은 한층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오크들의 군세가 지평선 너머로 나타났다.
“어어...”
한 군인이 눈에서 쌍안경을 떼며 입을 벌렸다. 굳이 쌍안경이 필요 없다.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나타난 검은 개미떼들뿐이었으니까. 그 개미떼는 아주 느린 속도로 저스틴포인트를 향해 다가왔다. 아니 느린 속도는 아니다. 단지 워낙 멀어서 느리게 느껴졌을 뿐이다.
보이는 건 온통 검은 물결뿐이다. 저스틴포인트의 지리적 특성상 후위로 절벽을 등졌기에 전면에 집중하면 되지만 그 모든 곳을 오크들이 점거하고 있다. 뒤 늦게 저스틴포인트로 들어오는 공격대의 무장버스들이 보인다. 그들이 모두 들어오자 이중 삼중의 격벽이 사이를 가로 막았다.
-1차 2차 3차 격벽 출입구 차례로 폐쇄... 각 무장버스는 전투 대기
-8소대 알겠다.
무전을 마친 박중위가 쌍안경을 들어 창밖을 주시하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음 보는 오크종인데...”
“처음 보시는 종입니까?”
소대원들 중 가장 경험이 풍부한 박중위가 처음 봤다면 이 근방 오크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음, 군기가 삼엄해. 이탈하는 오크들도 없고... 덩치는 검은피오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이고 덩치도 좋아. 붉은 피부에 검은 갈기... 무장은 투박하기는 하지만 금속이다. 병과도 구분되어 있어. 상당한 문명을 지닌 오크집단이야. 아니... 정규병 수준인가?”
박중위의 말이 길어질수록 8소대원들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갔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군기가 삼엄하다는 것과 무장상태, 병과 구분만 봐도 오크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크는 태생적으로 군기를 맞추기 힘든 몬스터다. 아무리 지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호전성이 강하고 머리가 떨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치중이라는 개념이 희박해 거의 약탈을 통해 식량을 확보한다.
배가 고프면 동족포식도 아낌없이 자행하는 게 오크다. 물론 꼭 배가 고파서 동족포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
그런데 그런 오크들의 군기가 삼엄하다는 건 오크들을 다스리는 존재가 강하다는 증거다. 확고한 지휘체계를 갖춘 무장이 튼실한 오크는 이전에 상대했던 오크들보다 몇 배는 강력할 것이다. 저런 오크들 때문에 순찰부대는 눈에 보이는 족족 오크부락을 섬멸한다. 오크는 뭉치면 강해지니까.
“으으...정말 많네요.”
산과 들판을 뒤덮은 것도 모자라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멍청한 놈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조금 전 무전을 떠올린 성규가 혀를 찼다.
저스틴포인트가 저 정도 숫자에 무너질 곳은 아니지만, 그의 경험으로 저 정도 수준이면 차벽은 소모품이다. 그런데 위에서는 아무런 작전지시도 없다. 하물며 퇴각 시 무장버스의 자폭이라도 지시해야 하는데 침묵하고 있는 저스틴포인트 관제실이었다.
그 때 쌍안경으로 오크들을 면밀이 관찰하던 박중위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저... 쳐 죽일 새끼들...”
박중위의 쌍안경이 오크 군세의 정면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높이 3미터 가량으로 보이는 거대한 방패 수백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방패 위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大)자로 사지가 결박당한 채 누워 있었다. 무장해제를 떠나서 옷이 갈가리 찢긴 채 몸 곳곳에 피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이들이었는데 그런 이들이 무려 200여명 가량이었다.
뿌우우우...
사방에서 뿔피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시작된 뿔피리 소리를 시작으로 사방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오크들 전체가 우뚝 멈춰 섰다. 오크들이 멈춰선 위치는 참으로 절묘했다. 차벽으로부터 5킬로미터... 무장버스와 버스틴포인트의 화기들의 사거리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위치다. 물론 쏴서 맞출 수는 있지만 화력 낭비다. 아무리 비축된 물자가 많다지만 한정되어 있는 건 맞으니까.
“오늘 힘들겠군.”
지금껏 오크들이라면 무작정 호전성을 드러내던 것들만 보다가 저렇게 절도 있게 움직이는 오크들을 보니 오늘을 넘기는 게 참 고단하겠다고 생각하는 박중위였다. 그때 오크들을 갈라지며 그 사이로 새로운 갑주를 입은 오크들이 나타났다.
"중갑 오크들..."
어깨와 머리를 두터운 철갑으로 감싼 검은색의 오크들이었다.
그 수도 엄청나다 끊임없이 걸어 나오는데 얼핏 봐도 사천은 넘는 것 같다.
그것들은 마치 사열을 하듯 앞으로 나서더니 군세의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크라이더들의 뒤로 다시금 머리하나는 더 커 보이는 거대한 오크 하나가 나타났다.
“오크 히어로군.”
박중위는 그 오크의 정체를 금새 파악해 냈다. 오크히어로... 헌터로 치면 6티어급 전사와 맞먹는 괴물이다.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무장을 걸친 그 오크히어로는 손에는 흉측하게 생긴 플레일과 타워실드를 늘어뜨린 채 쿵쿵거리며 걸어 나오더니 뒤돌아서서 오크들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거리가 워낙 멀어 제대로 들리지는 않지만 그 말에 호응하는 듯 오크들은 짐승과 같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카르 우르크아! 우카르 우르크아!"
수만의 오크들이 내지르는 괴성이 진동이 되어 요새를 덮쳤다. 윙윙거리듯 울려오는 그 목소리에 군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카르 우르크아가 무슨 말입니까?"
제황이 달천에게 물었다.
"대충 해석하면 너네 우리 밥이다 라는 말이지. 아 반말해도 되지? 내가 나이는 훨씬 많은데..."
"그러세요."
굳이 헌터라는 이유로 나이 먹은 사람에게 존대 받을 생각 없는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달천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쌍안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건 그렇고 방패부대와 중갑오크라..."
BJ달천이 오크들의 박력 있는 모습을 보며 입을 뗐다. 머릿속으로는 어느 정도 숫자를 예상했지만 실상 그것을 눈으로 목격하니 어쩔 수 없이 주늑이 든다. 공중에서 바라본 오크들은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중세나 고대의 전쟁을 보는 느낌인데 그것들과 다른 건 지금 보이는 오크들이 훨씬 더 거칠어 보인다는 것이다.
쿵..쿵..쿵
중장갑을 걸친 오크들이 일제히 거대방패부대를 앞세우고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그 총 숫자는 대략 6천 가량.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확실히 진형을 갖춘 전진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저스틴포인트의 모든 화기들이 발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오크들이 최대 사거리 내에 들어와도 발포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방패 위에 묶여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몇몇이 탈출하려 발버둥을 치는 게 보인다.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그들이 외치는 절망의 신음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죽기 싫어!"
오크들도 인간만큼 잔인했다. 오크들은 웃음인지 단순한 얼굴의 일그러짐인지 흉측한 미소를 띠며 전진해왔다. 그리고 3킬로 가량 접근했을 때 드디어 저스틴포인트의 모든 군인들에게 잔인한 명령이 하달되었다. 인질들의 대한 고려는 없다.
-일제 사격!
무전을 통해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잔인하다고 외치겠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퍼퍼퍼펑! 펑펑!
퍼퍼퍼펑! 펑펑!
무장버스 위에 설치된 30mm기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고 저스틴포인트 방벽 위에 화기들도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사격을 개시했다. 단숨에 초당 수백발의 총탄이 이루는 화망이 전진하는 오크들의 방패위에 쏟아졌다.
투투퉁...퉁퉁...투투투퉁
퍼퍽...퍽퍽
방패 위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모두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단숨에 수백발의 30mm탄이 직격했으니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이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다. 몬스터와 인질협상을 하는 인간은 저스틴포인트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