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72화 (72/301)

# 72

소화불량에걸린궁기(소제목수정)

“그러게요. 저도 거쳐거쳐 알아낸 거라서요. 또 아시다시피 기자는 제보자의 신상을 보호할 의무가 있답니다.”

“크윽...”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던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자신도 정보계통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녀가 대략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눈감고도 훤했다. 억울한 것은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정말 후회하고 후회했다.

나이트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화끈한 차림의 여자가 온몸을 비비며 달라붙어 오자 그 자신을 자제하지 않은 게 그의 실수였다. 이미 거액으로 쳐 발라 무마시켰던 일... 다시 꺼내기도 부끄럽다.

“이 일로 다시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네. 당연하죠. 호호... 아무튼 오늘 하시는 이야기는 제 기자인생과 명예를 걸고 비밀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럼 일단 제가 원하는 정보는 가져오셨죠?”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바보 아닌가? 저스틴포인트의 모든 자료는 복사가 불가능해. 꺼내오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지.”

그의 말에 여자가 잠시 얼굴을 팍 찡그렸다가 다시금 문신과 같은 예의 거짓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럼 직접 듣는 수밖에 없군요.”

그녀의 말에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이번 삼천교 빌런들의 테러를 막아낸 이들의 신상정보지?”

“정확해요. 대략 8소대 어쩌고 하는 것까지는 파악했는데 그 이상으로는 완전히 막혀 있더군요.”

그녀의 대답에 그가 다시금 이를 꾹 다물었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8소대라는 게 퍼진 것도 정보 장교로서 엄청난 문책을 받았다. 헌터들로 이루어진 소대는 일종의 비밀특수부대였다. 그들의 정보는 2급 보안으로 묶여 있었는데 같은 헌터들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다.

설혹 서로 안다고 해도 서로가 어떤 임무를 가지는지는 공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신상에 별로 이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여자가 이 정보를 외부에 퍼뜨리면 삼천교 빌런들의 테러를 막아낸 영웅들은 삼천교의 테러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었다.

제대를 해도 문제다. 빌런들은 집요하고 돈으로 살인청부를 받는 헌터들을 쌓이고 쌓였다. 그러나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자신의 군경력이 달린 문제다. 만약 자신의 치부가 방송을 탄다면 군은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8소대의 소대장은...”

“... 그렇다면 가장 결정적인 건 계곡하피여왕을 건드려 300명에 달하는 빌런들을 처치했다는 거군요.”

“맞아.”

“빌런들 중 생존자나 소대원들 중 사상자는 없었나요?”

“계곡하피에 대해 잘 모르는군. 가장 최근에 파악했던 계곡하피들의 숫자는 4200마리였어. 그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생각해봐. 우린 그들의 시체도 치울 필요가 없었지. 8소대의 사상자도 없었어. 소대장인 박창준 중위의 과감한 결단과 팀웍이 이뤄낸 성과였지.”

입이 타는지 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킨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비록 거인의발자국 사냥터가 완전히 와해되기는 했지만 미국 측의 수뇌부는 테러를 훌륭히 막아낸 것에 더 점수를 주더군. 알다시피 미국은 테러라는 말에 거의 발작을 일으키는 국가니까. 미국이 문제 삼지 않는데 한국쪽 수뇌부가 딴죽 걸 일도 없지. 명목상으로 연합기지지만 실권은 미군 측이 거의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된 거군요.”

여자는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자 하는 모든 정보를 얻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삼천교 빌런들의 대규모 테러를 막아낸 이들에 대해 궁금한 이들로 넘쳐  흘렀다. 이런 때 그들에 대한 것을 단독으로 터뜨린다면 자신의 편집장 도전에의 길도 꿈은 아니다.

“그런데 당신 이 정보를 터뜨리면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나?”

남자가 말했다. 터뜨리는 기자야 특종 하나겠지만 그들에게는 평생이 걸린 문제였다. 아니 당장의 생사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가족이 변을 당할 수 있었다.

“알죠. 그렇지만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기사를 내면 아마 그들은 국민영웅이 될 수도 있죠. 아무리 빌런들이 날고뛰어도 대한민국이 보호하는데 어쩌겠어요. 삼천교 빌런들이 삼천교국이니 어쩌니 하면서 일만 왕국민 어쩌고 하지만 그 중 각성자는 2천명도 되지 않아요. 그것도 남쪽 끝자락 섬에 틀어박힌 것 아닌가요. 어쩌면 제게 고마워할지도 모르고요. 호호호...”

‘니기미...’

남자는 속으로 쌍욕을 날렸다. 역겨움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어쩌면 삼류 찌라시의 기레기짓에는 선천적으로 소시오패스 기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자신에게 고마워할거라는 미친 소리도 할 수 있는 거겠지. 삼천교국이라는 그 괴뢰국이 비록 작기는 하지만 그들은 원주민들과도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원주민과의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는 정보국에서 주시하고는 있지만 종교라는 게 원래 독과 같은 것이다. 건드리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중독된다. 이제 이 여자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알게 뭔가.

“그럼 난 일어나지. 다시는 이 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남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의 촬영버튼을 종료하고는 여자에게 흔들었다. 그러자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또다시 이런 걸로 자신을 협박하고 부른다면 같이 죽겠다는 남자의 의지였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남자는 여자의 상투적인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몸을 뺄 시간이다. 여자와 한시라도 같은 공기를 마시면 자신의 폐가 썩어버릴 것 같다. 밀실을 나선 그는 문득 카페 내부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 내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아니 손님은 없더라도 웨이트리스나 하다못해 바리스타라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음악도 없고 조명도 침침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깨닫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려 할 때 그의 등 뒤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나.”

“헉...”

화들짝 놀란 그가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봤다.

“보...보스...”

“흠... 갑자기 휴가를 내기에 어디 여자라도 사귀나 했는데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었군.”

“그... 그게...”

그는 말문이 막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던 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직속상관이었다. 저스틴포인트 정보 1팀의 팀장이다.

“뭐 그건 함께 오신 분들이 알아내시겠지. 쓸데없는 반항은 하지 않겠지? 나를 안다면...”

“예. 예.”

남자는 자신의 상관을 보는 순간부터 반항을 포기했다. 지금 그의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보스는 웃는 얼굴로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같은 일반인이지만 그의 상관은 비상한 머리와 입으로 저스틴포인트 정보 1팀의 팀장이 된 인물이다.

“놔! 이거 안 놔! 이거 명백한 성추행이야! 꺅! 사람 살려요!”

밀실 안에서 40대의 커리어우먼이 두 남자에게 양팔을 결박당한 채 질질 끌려 나왔다.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걸어 나오는 이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이 파랗게 질려갔다. 조금 전 보스를 봤을 때는 하얗게 질렸었는데  그 하얀 색이 파랗게 변해버린 것이다.

정보계통이기에 그는 다른 이들이 모르는 여러 가지 비밀스러운 조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걸어 나오고 있는 남자들이 입고 있는 특이한 개량한복의 무복이 어느 절대자의 직속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옷 벗는 것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어...어어...”

무릎에 힘이 풀린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기무사 정도가 이번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나타난 이들은 기무사를 아득히 뛰어넘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법도 통하지 않는다. 무려 대한민국 법 위에 군림하는 정점의 수족이다.

“놔! 놓으라고!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내 윗선이 이 일을 알면 당신들 절대 무사하지 못해. 응! 제발! 전화! 전화 한 통화만 하게 해줘!”

여자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그 여자를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딴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자인 척 했지만 저들을 모른다니...이건  완전 초짜 중에 초짜 아닌가. 어쩌다 자신이 이런 한심한 여자의 흉계에 말렸는지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 윗선이라는 거 정말 궁금하군요.”

그때 또 다른 여자가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들과 같은 하얀 개량한복을 입은 여자였는데 표정 한 점 없지만 드러난 얼굴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다. 여자의 양팔을 포박한 남자들이 그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뿐사뿐 다가온 그녀는 여기자의 턱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밀어 올렸다.

“그 윗선이라는 거 얼마나 위죠?”

“다...당신 누구야. 누구기에.”

여자는 이제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도 지금 상황이 뭔가 위험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기자임과 동시에 이 자리까지 치열한 눈치전쟁으로 버틴 그녀가 그걸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쿡...쿡쿡...”

그때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가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 여자가 말한 윗선이 누군지는 몰라도 차라리 최단시간으로 공항으로 달려가 몬스터로 인해 지금은 망해버린 해외 오지로 도망치는 것을 추천하고 싶었다.

저들이 관계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도 안전하지 못했다. 아니 어찌 보면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게 저들이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단임제로 뽑지만 저 단체의 우두머리는 오로지 무력 하나로 수십 년을 대한민국 헌터계를 지배해 온 절대자였다. 대체 그 8소대가  어떻게 그들과 엮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여자도 그리고 자신도 참 더럽게 됐다고 생각했다.

“너! 너! 네 짓이지! 비열한 새끼야!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웃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여자가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참 시끄럽네. 조용히 시키세요.”

개량한복의 여자가 조용히 말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 중 하나가 여인의 머리를 붙잡고 테이블에 사정없이 박아버렸다.

쾅! 쾅! 꽝! 쩍!

“아악...그...그만...”

앞니가 몽땅 가출하고 콧대가 주저앉고 터져 나온 코피가 얼굴을 흉하게 물들였다. 어버버 거리며 정신줄을 놓은 여자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여기자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두 남자에게 턱짓했다.

“끌고 가세요.”

“존명!”

절도 있게 카페를 나서는 이들의 등을 바라보며 남자의 보스가 그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속삭였다.

“자식아... 그런 일이 있었으면 차라리 나한테 말이라도 하지. 후우...”

“죄...죄송합니다. 흑...흐흑...”

안타깝다는 듯 부드럽게 착 감겨오는 다정한 보스의 목소리에 남자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는 알까. 울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는 보스의 눈은 독사의 그것 마냥 얼음장처럼 빛나고 있는 것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남자를 자신의 부하를 통해 카페 밖으로 내보내고 카페 안에는 이제 단 둘만이 남았다. 남자의 보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 나름 그가 상대에게서 받아낸 최선의 협상결과는 자신의 부하의 신병을 인도 받은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데려가면 생명은 보장할 수 있다.  남자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선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남자가 허리를 폴더처럼 접었지만 그의 앞에 선 여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걸 지켜봤다. 대답이 없지만 남자는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일분...오 분... 시간이 지나도 여자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남자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서서히 맺히기 시작했다.

"만약..."

드디어 여자의 입이 떨어졌다.

"그분의 손자께 그 어떤 위해라도 가해진다면..."

"꿀꺽..."

"그날부로 당신은 저 여자를 부러워하게 될 겁니다."

"며...명심하겠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절대 허튼 소리를 뱉는 위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허튼 소리를 내뱉더라도 그녀의 힘이 그녀가 가진 배경이 그녀의 허튼 소리를 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랍니다."

"옛!"

"내 말에 포함되는 이들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아시죠?"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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