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9화 (69/301)

# 69

사냥꾼

"캬아아악!!!"

"캬악!"

“끼아아악!”

마치 여왕이 공격당한 것을 서로서로 공유하듯 무너진 절벽을 기준으로 수백 마리의 계곡하피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 계곡하피들은 순간 대지를 비추고 있던 푸른달 마저도 가려버렸다.

“놈들은 이곳에 들어온 것 자체가 실수였어. 뭐 어쩌면 절대 이런 짓은 안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을 수도 있지. 이 짓은 페널티가 무척 심하거든. 저스틴포인트에서 애써 조성한 계곡하피 사냥터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 흐흐... 그렇지만 알게 뭐야.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캬아아악!"

하늘로 날아오른 계곡하피 사이로 다른 하피보다 거의 4배 정도 큰 화려한 깃털의 하피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여왕의 둥지가 무너져 내린 여파로 잔상처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이 하피가 바로 이 거인의발자국에 서식하는 계곡하피들을 지배하는 하피여왕이었다. 여왕은 분노한 눈초리로 땅을 기어 다니는 버러지들을 노려봤다.

거인의 발자국을 대낮과 같이 환하게 비춘 그곳에는 이 일의 범인으로 보이는 것들이 득실득실했다.

"저...저게 뭐야."

"미...미친..."

"누가..여왕을..."

악마를 쫓던 삼천교의 빌런들은 하늘을 가득 매운 하피들을 올려다보며 손에 든 무기들을 하나 둘 떨어뜨렸다. 화광이 충천하는 지상을 바라보는 하피들의 눈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삼위일신이건 삼천교건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함...함정이다."

"갸르르르..."

계곡하피의 여왕은 분노에 떨며 지상을 바라봤다.

비록 지능이 떨어지는 몬스터지만 완전히 지능이 없는 건 아니다. 저들이 자신들을 사냥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른 것이기에 여왕은 동족이 사냥 당해도 그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순응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 저들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공격했다.

하피들에게 있어 절대 넘봐서는 안 되는 금기를 어긴 인간들에게는 피의 보복만이 있을 뿐이다.

"캬아아악!"

계곡하피여왕이 천지를 울리는 비명을 지르는 순간 거인의발자국 상공에 떠 있던 수천마리의 계곡하피들이 일제히 땅으로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으아악!"

"살려줘!"

"커어억!"

아비규환에 빠졌다. 계곡하피들은 불길 속에 번쩍이는 병장기를 든 빌런들을 이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물론 그건 박중위의 또라이 기질이 가미된 냄새나는 음모로 인한 것이었지만 계곡하피들에게 그런 건 별로 상관없었다. 자신들의 여왕이 공격당했다. 그 분노를 풀 곳이 필요했고 마침 거인의 발자국에는 적당한 용의자들이 한가득 넘쳤다.

"저리가! 저리가!"

마구 검을 휘두르던 남자의 몸에 다섯 마리의 계곡하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그는 하피들의 날카로운 발톱에 곧 조각조각 찢겨 나갔다. 저항을 포기하고 뒤돌아 도망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공중을 나는 계곡하피들에 비하면 굼뱅이보다 느렸다.

"으아악!"

공중으로 들려진 한 그림자가 잠시 후 땅으로 떨어졌고 떨어지는 와중에 대여섯 마리의 계곡하피가 그림자를 스치자 곧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피들은 빌런들을 잡아먹지 않았다. 단지 철저히 찢어죽일 뿐이다. 마치 그들을 징치하는 듯 그들의 공격은 무자비했다.

죽임을 당한 이들이 있던 공중에서 몇 개의 물건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공간의 소유자가 죽으면 마나가 끊긴 아공간은 저렇게 폭발하는데 그 때 아공간 안에 있던 물건들이 모조리 튀어나오는 것이다.

"저게 다 얼마야."

계곡하피여왕의 둥지 밑에 폭약을 매설하기 위해 3시간동안 왕복 2킬로미터를 하피의 오물을 뒤집어 써가며 포복으로 기었던 박중위는 자신이 일으킨 대참사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공간을 지닌 이들이 죽을 때마다 반짝이는 물건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참에 군대 때려 치고 건물주나 할까..."

"캡...제발..."

피지가 위장포 안에서 벌벌 떨며 박중위에게 애원했다. 조금 전의 불장난 치기전의 개구쟁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작전을 설명하며 박중위가 계곡하피들이 난리날꺼다 라고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이런 엄청난 일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피지는 자신의 소대장이 조금...아니 상당히 또라이 기질이 농후하다는 걸 깜빡했다. 그래서 716전진기지에서도 찍혔던 것 아닌가...

만약 재수 없게 그들이 저 계곡하피들의 눈에 띄는 순간 그날로 시체 한조각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거라는데 그의 전 재산을 걸 용의도 있었다.

"알았어. 임마...쫄기는.."

피식 웃음 박중위가 위장포를 꼭 여맸다. 사실 그도 저 밑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죽임을 당하는 이들과 같은 꼴이 되기는 싫었다.

***

바위 뒤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제황은 계곡하피들이 벌이는 살육전을 보고는 조용히 낙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뭐해?

-좀 무섭다. 좀 더 깊이 숨으려고...

낙엽 속을 파헤쳐 좀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하피들이 빌런들을 하나하나 찢어죽일 때마다 사방으로 붉은 피안개가 푸스스하고 뿌려졌다. 피안개가 달빛 속에 무지개를 그리는 걸 봤는가? 제황은 지금 곳곳에서 피어나는 쌍무지개를 보는 중이었다.

워낙 많은 계곡하피들이 무작위로 살기를 뿌리며 날아다니기에 궁기안으로 보이는 수십 개의 어지러운 붉은 선들로 인해 판단을 내리기도 힘들다. 이럴 때는 숨는 게 상책이다.

-너 좀 야비해.

-응. 미안... 나도 알아.

제황은 지금 완전히 낙엽 속에 몸을 묻었다. 밖을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궁기가 자신은 저들과 아무 관련 없다는 듯 가만히 몸을 움츠리고 궁기안으로 생중계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이정도 스케일의 작전을 꾸미다니 ... 그 박중위라는 놈 보통내기가 아냐.

-그냥 싸이코겠지.

대체 이 대참사가 끝난 후 저스틴포인트에는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에 대해 제황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을 해명하는 건 박중위지만 그래도 소속된 소대의 장이었다. 거인의발자국은 상당히 인기 있는 사냥터였다. 찾는 이들도 많고 거인의발자국에서 나오는 하피의 부산물들은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런데 박중위가 계획한 이번 일로 인해 한 동안 거인의발자국은 출입통제가 걸릴 것이다. 몬스터의 서식치가 안정화 되고 계곡하피여왕이 새 둥지를 꾸밀 때까지 말이다. 이건 정말 박중위가 아니라면 아무도 실행하지 않을 그런 미친 계획이다.

-효과는 좋네.

-응.

이제 거의 소강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삼천교의 모든 빌런들은 계곡하피들에 의해 전멸해 버렸다. 지금 대지에 서있는 건 그 검은철갑의 괴인뿐이었다.

"크허헝!"

"캬아악!"

"캭!"

계곡하피 수십 마리가 괴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하피들의 발톱은 철갑을 뚫지 못했다. 괴인은 하피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가며 하나하나 붙잡아 날개를 찢고 목을 분질렀다.

"캬아아..."

으지직... 뿌드득...

괴인의 주변으로는 이미 하피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는데 어림짐작하여 그 혼자 이미 백여 마리의 하피를 잡아 죽였다.

그 때 공중에 떠 있던 계곡하피여왕이 크게 울부짖자 하늘에 떠 있던 하피들이 일제히 검은철갑을 향해 내리꽂혔다. 계곡하피들도 영 바보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발톱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그것들은 좀 더 극단적인 방법으로 검은철갑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끼아악! 끼악!"

"크허헝!"

검은철갑의 몸에 달라붙은 하피들이 괴인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괴인의 손짓에 몇 마리가 죽어 나자빠졌지만 죽임을 당하는 하피보다 더 많은 숫자가 달라붙자 괴인은 어느덧 까마득한 하늘 위에 있었다.

"캬악!"

여왕의 울부짖음에 하피들이 검은철갑을 놨고 검은 철갑은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철갑은 그대로 땅에 박혀 버렸다.

"캬아악!"

그러나 하피여왕은 잔인했다. 다시금 울부짖자 하피들은 땅에 처박힌 검은철갑을 끄집어냈고 다시금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땅으로 내동댕이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거의 300미터 가량 되는 공중에서 땅으로 여섯 번 가량 내리꽂히니 검은철갑의 괴인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철갑 안에 든 게 사람이던 기계장치던 저 정도 충격을 받으면 이미 내부는 곤죽이 되고 말았으리라. 괴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철갑들도 너덜너덜해져서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캬아악..."

하피여왕은 검은철갑의 근처로 내려왔다. 둥지를 파괴한 버러지들의 마지막을 보려는 듯괴인의 주변을 천천히 날던 하피여왕은 괴인이 완전히 죽었다 판단했는지 그대로 몸을 뽑아 공중으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리고 그건 심각한 판단착오였다.

파아앙... 턱...

어느새 검은대포알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른 검은 철갑이 하피여왕의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검은 철갑은 죽은 척하고 하피여왕이 가까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캬아아악!"

"크허헝!"

깜짝 놀란 하피여왕이 발을 휘둘러 괴인을 떨구려 했지만 괴인은 괴성을 지르며 하피여왕의 날개를  부둥켜안았다. 주위를 날고 있던 하피들이 깜짝 놀라 여왕의 곁으로 날아왔지만 검은철갑의 괴인과 하피여왕은 그대로 함께 땅으로 내리 꽂혔다.

파파파팍!

하피여왕의 몸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길고 날카로운 깃털 수십 개가 검은철갑에 박혀 들었다. 내부의 마나를 폭발시켜 깃털을 사방으로 날리는 하피여왕 나름의 필살기지만 검은철갑은 그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하피여왕을 꽉 움켜쥐었다.

꽈지직...

"캬아악!"

머리부터 땅에 내리꽂힌 하피여왕의 한쪽 날개가 부러져 나갔다. 충격이 심한지 마구 발버둥 치며 검은철갑의 손을 벗어나려 하지만 하피여왕의 깃털을 쥐어뜯으며 기어올라 끝내 여왕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그 목에 왼팔을 역으로 걸고 두 다리로 상체를 붙잡은 채 길로틴 초크를 걸고 허리를 펴자 하피여왕의 목이 상체로부터 우드득하고 뜯겨져 버렸다.

허무하다면 허무한 여왕의 최후지만 4티어 중급으로 평가받는 계곡하피여왕의 목이 저렇게 쉽게 뜯겨 나갔다는 건 괴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알 수 있다.

"크르르..."

괴인은 척추 째로 뜯겨져 나온 하피여왕의 머리를 마치 승자처럼 공중에 번쩍 들었다.

"끼아아아악!!"

"캬아악!"

뜯겨져 나온 여왕의 머리를 보는 순간 공포에 질린 하피들이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또한 하피들의 습성 중 하나였는데 여왕이 죽어 무리가 와해된 하피들은 그대로 서식지를 떠나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쎄네.

-그러게.. 쎄다.

궁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강하다. 만약 저 검은철갑과 계속 정면으로 붙었다면 그 승부는 십중팔구 제황의 패배였을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저 철갑은 절대 뚫지 못한다. 그리고 뚫는다 해도 그 공격에 괴인이 죽는다는 보장도 없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생명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맷집은 활을 쓰는 제황에게 천적과 마찬가지였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볼까?

그러나 제황의 머릿속에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제황은 전사나 투사가 아니었다. 제황이 하는 것은 전투가 아니다. 단지 사냥일 뿐... 사냥꾼은 절대 적과 자신의 실력을 두고 시험하지 않는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사냥에 들어간다. 결과는 사냥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둘 뿐이다. 실패하면 다시 사냥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좀 더 날카로운 함정을 파고...

스슥...스스슥...

제황은 낙엽 속에서 몸을 움직여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궁기... 무한고 안에 있는 폭발물 모두 꺼낼 거야.

-알았어. 마침 화약냄새가 고약했는데 잘됐네.

투툭...투투툭...

무장버스 안에 있던 온갖 폭발물들은 모조리 무한고에 쓸어 담은 제황이었다. 지금 그에게 남아있는 건 부착형폭탄인 CX4 10개와 와 대몬스터용지뢰 5개다. 제황은 부착형 폭탄을 깔고 그 위에 지뢰 5개를 올려놨다. 지뢰의 안전장치를 제거한 제황은 호랑이사냥을 활성화 한 채 조심스럽게 그곳에서 빠져 나왔다.

조금 거리를 벌린 제황은 근처에 있던 돌맹이 하나를 집어 지뢰가 매설된 곳을 향해 던졌다.

타탁..탁...

날아간 돌멩이는 바위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졌고 그 소리는 미동 없이 서 있던 검은철갑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크르르...”

철컥...철컥...

대형야생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며 검은철갑이 다가왔다. 바위를 돌아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손 든 검은철갑이 고개를 휘휘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검은 철갑이 몸을 돌렸고 그 순간 철갑의 발밑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콰콰콰쾅!!!

3티어와 4티어 육상형 몬스터를 사냥할 때 사용되는 대몬스터용지뢰 다섯 개와 함께 CX5 부착형폭탄 10개가 동시에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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