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8화 (68/301)

# 68

들개사냥

“찾아!!”

강목사가 외쳤다. 그러자 탐지스킬을 보유한 빌런 하나가 한쪽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300미터! 나무 위입니다.”

“배덕자의 징표!”

호위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강목사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참 시위를 당기던 제황의 머리 위로 붉은색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주변을 환하게 비추도록 강렬한 그 불꽃은 강목사가 가진 디버프형 추적 스킬이다.

"찾았다!"

배덕자의 징표가 찍힌 이는 절대 도망치지 못한다. 그 어떤 은신스킬을 사용하던 간에 배덕자의 징표는 감춰지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배덕자의 징표에 찍힌 이는 능력마저도 구속받는다.

“좋아! 삼위일신의 불신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총 공격! 천군천사 나서라!”

“우와아아!”

공포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이들은 강목사의 외침에 함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제황이 아무리 폭발화살로 폭격을 했지만 화살의 숫자는 한정적이었고 군세는 길게 흩어져 있었다. 무려 300명의 헌터다. 죽은 이는 소수이며 상처 정도는 힐러들의 힘으로 순식간에 치유했다. 분노한 그들은 모두 제황이 올라가 있는 나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퍼퍽! 퍼퍼퍽!

그 와중에 발군은 천군천사라는 검은철갑이었다. 거의 2.5미터 가량 되는 그 쇳덩이는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분쇄하며 돌진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바위든 나무든 상관하지 않았다. 같은 편인 삼천교의 신도들도 그의 돌진에 휘말려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너 찍혔다.

-그렇군.

배덕자의 징표에 찍힌 제황은 궁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올려다봤다. 불꽃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한 마나가 그의 몸을 옥죄었다. 마치 거미줄 같은 것에 묶인 기분이다. 그러나 제황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당황할 필요가 없달까. 찍혀? 그래서 뭐?

‘호랑이사냥’

슈슈슉...

몸을 날림과 동시에 호랑이사냥을 사용하자 붉은 불꽃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호랑이 사냥은 단순한 은신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은신기능만 있다면 유니크 스킬이라는 판정 따위는 받을 수 없으리라.

호랑이사냥을 사용하는 순간 그 몸에 걸려 있는 모든 디버프 스킬은 배제된다. 배덕자의 징표가 아무리 상급의 추적스킬이라도 스킬의 격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 아마 제황을 잡으려면 같은 유니크급의 추적스킬만이 가능할 것이다.

“어엇!”

배덕자의 징표가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불꽃을 향해 달리던 이들이 자리에 멈춰섰다. 징표가 찍힌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저 빌어먹을 저격수를 죽이고 그의 피와 살로 파티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별로 큰 힘도 들이지 않은 채 강목사의 추적스킬을 파해한 것이다.

말 그대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 그렇지만 도망친 닭은 아주 매운 쌈닭이었다. 특히나 그의 몸에는 위험한 것으로 넘쳐났다.

-폭발화살도 떨어졌어.

-어... 금방 떨어지네.

-그거 가격표 본적 있는데... 1발당 80만원이니까  1분 동안 2400만원 썼다.

근래 들어 금전감각이 생기기 시작한 궁기가 은근슬쩍 가격을 말하자 본래부터 금전감각이 부족한 제황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차피 공짜잖아. 폭발캡슐이나 줘.

-대머리가 될 거야.

몸을 날리는 제황의 손에 검은색의 큼직한 원형구가 잡혔다. 끝부분에 동그란 돌기 세 개가 나 있는 딱 야구공 크기의 그것은 폭발화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 적들과의 거리를 한껏 벌린 제황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호랑이사냥을 오래 지속하기에는 마나가 부족하다. 도주할 것을 계산하면 이제 거의 한계에 달한 상태... 그렇기에 조금 치사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궁기 위치 좀 잡아줘.

-알았어.

잠시 후 궁기의 눈을 통해 적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이것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두 개의 눈으로 전혀 다른 곳을 비추는 것이다. 상이 오래 겹치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 화살을 날리는 건 더욱 힘들다.

제황은 이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아카데미 학기 중 궁기옥을 한 번 사용했다. 그곳에서 무려 1년간  궁기와 연계한 이 사각 공격법을 몸에 완전히 체득할 수 있었다.

“후웁!”

상당한 거리지만 제황은 초인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 든 폭발캡슐이 무겁기는 하지만 적들이 있는 위치까지 던질 힘은 되었다. 투석 스킬은 없지만 그것도 별로 상관없다. 모자란 정확도는 폭발력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휘익...

세 개의 돌기를 일제히 꾹 누른  제황이 폭발캡슐을 힘껏 던졌다. 폭발을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 두 번째 폭발캡슐을 손에 들고 다시금 던진다. 마구 던진다. 신나게 던진다.

콰콰쾅!! 쾅쾅! 꽈꽈꽝!!!

제황은 빠르게 달리며 폭발캡슐을 던지기 시작했다.

콰콰쾅!

"아아악!"

폭발화살 세례가 끝났는가 싶더니 이제는 폭탄세례다. 폭발에 휘말린 이들이 불길에 휩싸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폭발캡슐은 일반군인들이 사용하는 수류탄 따위와는 질적으로 틀리다.

폭발에 의한 데미지에 강한 몬스터에 알맞게 개조된 폭발캡슐은 터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부에 담긴 백린은 폭발과 함께 상대에게 들러붙는다. 사람에게 사용할 경우 피부는 물론 심장이나 간 등 주요 장기와 뼈까지 태울 정도로 '살을 태우는 최악의 무기'로 알려져 있는 게 백린이었다.

그걸 캡슐화 시켜 폭발성을 증가시킨 게 지금 제황이 던지고 있는 물건이다.

"살려줘!"

"아악! 뜨거워! 뜨겁다고!!"

"커어어... 사..살려..."

인세에 불지옥이 펼쳐졌다. 방어막과 스킬로 버티던 이들도 하나 둘 마나가 떨어져 화마에 삼켜졌다. 폭발캡슐에 직격당한 이들은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백린에 당한 이들은 지금 산채로 불태워지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으니까.

-폭발캡슐도 다 떨어졌어.

-아.

손이 허전하다. 스무 개 정도 챙긴 것 같은데 어느새 바닥난 것이다.

제황은 도주하며 뒤를 바라봤고 그곳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제황은 서서히 마나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용혈기를 돌려 마나를 충전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마나는 차오른다.

-좋지 않아.

제황이 말했다.

-꽤 많다.

-그래. 보고 있어.

가진바 화력을 쏟아 부었지만 적들의 숫자는 아직도 많았다. 지금 저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저들 중에는 버퍼도 있고 힐러도 있다. 약 60명가량이 죽거나 행동불능에 달하는 부상을 입었기에 생각 이상의 성과지만 저곳에는 제황이 생각지 못했던 변수도 하나 존재했다.

-위험해!

궁기의 경고가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콰콰쾅!!!

"크헉!"

제황이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제황이 끼고 돌던 거대한 바위가 그대로 박살나 버리며 제황의 온몸을 두들긴 것이다. 공중을 날던 제황이 몸을 뒤집어 나무를 박차며 위로 올랐다.

우지직! 우직! 콰쾅!

불꽃에 휩싸인 검은철갑의 괴인이 제황이 딛은 나무들을 박살내며 돌진해왔다.

슈슉... 티팅...

공중에서 상체를 돌려 두 발의 화살을 날렸지만 화살은 괴인의 철갑에 덧없이 튕겨 나갔다.

-강하군. 테러버드의 화살!

드드드득.... 파팡!

제황이 가진 가장 강력한 화살이 공중을 날았다.

텅!

앞전의 것과 조금 더 강한 충격을 받은 듯싶지만 철갑에는 작은 흠집 하나 생겼을 뿐이다. 철갑의 방어력을 확인한 제황은 미련 없이 몸을 날렸다. 두어 번 더 나무를 박차 검은철갑으로부터 벗어난 제황이 땅에 내려섰다.

'호랑이사냥'

어둠속에 몸을 녹인 제황이 다시금 달렸다. 제황의 종적을 놓친 검은철갑은 주위의 모든 것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크허엉!"

검은철갑의 괴성과 함께 몸에 붙어 있던 백린의 불꽃들이 펑 하며 꺼져 버렸다. 방어막을 폭발적으로 뿜어 공중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소리가 호랑이 같네.

-농담이 나와?!

제황의 말에 궁기가 화를 냈다. 지금 제황의 허리에는 큼직한 돌 파편이 박혀 있었다. 군용보급품인 방어구가 그 폭발을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큽.."

짧은 신음과 함께 파편을 끄집어낸 제황이 허리에 긴급재생을 사용했다. 날카로운 파편은 거의 5센티 가량을 파고들어 있었는데 피가 묻은 파편을 손에 굴리며 궁기에게 말했다.

-호랑이를 사냥해야 하는데 들개들이 많아.

-그래. 바글바글하네.

-일단 들개들을 모두 처리해야 겠지.

그 말과 함께 제황은 조용히 신형을 움직였다. 저 괴력의 검은철갑이 어느 정도의 오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제황은 몸을 완전히 은폐한 채 귀에 꽂힌 헤드셋에 손을 가져다댔다.

-대장님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죄송합니다.

제황은 박중위에게 사과했다. 부여된 작전 시간을 어겼기 때문... 그러나 박중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시작?

-예. 시작입니다.

-좋아. 꼭꼭 잘 숨어있어라.

-숨는 건 자신 있습니다.

-후후...그래.

제황과의 무전을 마친 박중위가 주위를 둘러봤다. 한결 같이 위장포를 뒤집어 쓴 채 박중위와 피지 그리고 양혜지에 손에 들린 세 개의 격발장치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그럼 이제 우리 몫을 좀 해볼까?"

"예!"

"자아...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누르는 거다."

"예에엡!"

소대원들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희대의 불장난을 준비하는 개구쟁이 같았다. 하긴 불장난이 맞긴 하다. 거인의발자국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할 짓 1순위를 지금 그들이 시행하려는 거니까.

"셋...둘..하나... 눌러!"

쿡!

콰과과광!!!

둥근 분지 지형의 거인의 발자국의 절벽 한 귀퉁이에서 거대한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절벽 자체가 쪼개지고 갈라지더니 이윽고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한다.

"캬아악!"

"캭!"

때 아닌 폭발에 그 부근의 계곡하피들이 일제히 둥지에서 날아올랐다. 둥지가 박살나자 흥분한 계곡하피들은 무너지는 절벽의 상공을 돌며 밑을 내려다봤다. 무너지는 절벽을 바라보던 계곡하피들이 순간 공중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다시금 빠르게 사방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인의 발자국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

준비해 둔 위장포로 몸을 덮으며 박중위가 말했다.

"첫째 계곡하피들의 서식처로 섣불리 들어가지 말 것... 계곡하피는 서식처를 침범하지만 않으면 계곡하피는 꽤 안전한 몬스터지.  사냥도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고 날개만 봉쇄하면 그야말로 개꿀이니까. 둘째 계곡하피의 알은 가급적 건드리지 말 것... 알을 빼앗긴 암컷은 알에 묻은 자신의 냄새에 따라 알도둑을 지옥 끝까지 추적한다. 장난삼아 계곡하피의 알을 훔쳤다가 하늘에서 내리꽂힌 암컷의 발톱에 머리만 뜯겨나간 이야기는 유명하지.  마지막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절대 계곡하피의 여왕은 건드리면 안 된다. 절대..절대..절대..."

그 말을 한 양혜지가 위장포 속에 몸을 완전히 숨겼다.

"그래. 계곡하피의 여왕을 건드리는 순간... 거인의 발자국에 서식하는 모든 계곡하피들이 일제히 미쳐 날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찢어발기기 시작하지. 찢어발길 게 없으면 저들끼리 상처를 내며 분을 삭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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