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들개사냥
-뉘우치는 것 같은데?
궁기가 말했다.
-응. 그런 것 같네.
궁기의 말에 긍정했지만 제황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잖아. 살아남는다면 건드리지 않겠어.
제황은 단호했고 그것이 제황의 법칙이었다. 저지른 죄만큼 알아서 받아라. 공평한 법칙... 살아남으면 그 뿐이다.
-흠... 그건 과거에 법가라는 놈들이 지껄이던...
-잠시만...
“죽어!”
제황의 머리 위로 마나소드가 길게 솟아난 한 자루 단검이 내리 꽂혔다. 동료들이 화살꽂이가 되어갈 때도 은신을 풀지 않고 있던 그는 제황의 뒤통수가 보이는 순간 그대로 뛰어 내리며 필살의 스킬을 사용했다. 은신과 암습에 특화된 그는 이 순간만을 노리고 있었다.
쫘악! 휘이이익! 퍼퍽!
살을 가르는 소리와 거친 타격음이 동시에 울려 펴졌다.
“어...어떻게...”
그는 잘려나간 팔과 다리 한쪽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땅에 쓰러졌다. 상대가 들고 있던 커브스보우가 기묘한 궤적으로 공중에 휘둘러지는 순간 내리꽂던 단검과 함께 팔과 다리가 댕강 잘린 뒤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떨어졌다.
“커컥...”
상대가 들고 있는 기형적인 활을 망막에 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쩝...”
인간의 살을 갈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조금 찝찝한 느낌... 준비한 중대형몬스터용 화살이 다 떨어지지 않았으면 이런 손맛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법가가 뭐?
-아니... 법가를 부르짖던 놈들이 보면 참 좋아하겠다고...
-흰소리는...화살 얼마나 남았어?
-일반화살은 2420발...애기살 311발....중대형몬스터화살 2발... 폭발화살 30발...테라버드 화살은 34발, 테라버드 애기살 20발....
테라버드 화살은 제황이 테러버드의 깃털을 다듬어 만든 화살이다. 굳이 다른 이름을 붙이기 귀찮아 그냥 재료가 된 몬스터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부터 폭발화살로 줘.
-그래.
스톰레이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툭툭 털어낸 제황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비명과 신음이 흐르는 숲 사이를 걸어... 저들이 저지른 죄악의 저울을 온전히 맞추기 위해...
***
“감시조... 43명 전원...침묵입니다.”
“감시조의 최종 위치와의 거리는 어떻게 되죠?”
“지금 속도라면 10분 안에 당도합니다.”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수호하는 충복의 대답에 강목사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행사에 처음 동원된 성도들 중 무려 20여 프로가 단 한명에게 당했다. 비록 상대가 6성으로 추정되는 헌터지만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다.
“상대가 6성 헌터니 우리의 군세를 보고도 겁먹지 않겠지요?"
“예. 제 추측으로는 놈이 신도들의 숨통을 끊지 않은 이유는 부상당한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 본대가 흩어지는 것을 노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의견에 강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상대는 포위조와 감시조를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본대가 부상자를 구조를 하려는 순간을 시작으로 각계격파를 노릴 것이다.
“인간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상대의 심리 허점을 노리는 고전적 수법의 6성 원거리 딜러라... 범인의 폭이 줄어드는군요.”
그는 머릿속에 있는 고위헌터 목록에서 십여 명을 추려냈다.
“정부에 소속되어 움직이는 이라면 더 줄어들 겁니다.”
“그렇죠.”
잠시 후 그의 머릿속에는 다섯 명 정도의 인물이 떠올랐다.
"후우..."
하나하나 만만치 않다. 지금 자신이 거느린 군세와 그들과 대입해 봤을 때 현재의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몰살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면 2성 헌터가 3성 헌터를 이길 수 있다. 3성 헌터도 운이 따르고 여러 가지 북합적인 상황에 따라 4성 헌터를 이길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5성이 되고 6성이 되면 그 벽은 아득해진다.
그들이 지닌 스킬들도 무시무시하지만 그 스킬들을 극한으로 수련하여 내외의 모든 힘을 합일시켜 몸 밖으로 꺼내 실체화 시킬 수 있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군천사가 있습니다.”
교단의 모든 힘을 끌어 모아 완성시킨 병기가 바로 천군천사였다. 아직 프로토타입이기에 그 성능이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교단에 있는 6성급 각성자들도 천군천사를 상대로는 고전했다.
천군천사의 제물이 된 인간의 스킬이 극대화되어 지치지 않는 체력과 오우거마저도 꺾어버릴 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거기에 최고 등급의 자가재생 스킬을 지니고 있어 죽어도 되살아난다.
그 위에 교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방어구를 덮어 방어력 또한 극한으로 올렸다.
불사의 전사 그 자체가 바로 천군천사다.
“아무리 놈이 날고뛰는 6성 원거리딜러라도 천군천사는 원거리 딜러와 극악의 상성을 자랑하는 탱커 중에 탱커... 놈이 우리를 덮치는 순간... 놈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
“으스스 하네요.”
“그...그러게...”
양혜지는 거인의발바닥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울음소리에 어깨를 감싸며 부르르 떨었다. 그 소리는 청광을 내뿜는 달빛과 함께 어둠으로 물든 숲을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작전 준비를 끝낸 그들은 예정된 시간이 되자 가진 바 무력을 풀어놓기 시작한 제황의 살육전을 생생한 소리로 느끼며 대체 저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증마저 들지 않는다는 것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작전시간에 박중위가 제황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최대한 요란하게 적진을 교란하고 빠져 나올 것... 그래서 준비해 온 폭발화살과 투척형 폭발캡슐등 폭발물 대부분을 모두 제황에게 넘겼다. 폭발화살은 저스틴포인트에서 팔고 있는 특수 화살 중 하나였는데 그 앞에는 초순발충격신관(Superquick Fuze)이 달려 있었다.
저스틴포인트에서 팔고 있는 모든 무기가 몬스터용으로 비치되어 있기에 인마살상 보다는 중대형몬스터의 갑피를 뚫기 위한 관통형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게 될 줄은 박중위도 몰랐다. 원래는 그 한발의 가격이 80만원이나 하니 화살 종류 모으기가 취미 같은 제황을 위해 박중위가 큰맘 먹고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황은 단 한 번도 그 화살을 사용하지 않았다. 폭발 따위는 없었다. 단지 폭발에 버금가는 비명소리가 제황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피어오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십 명이 울부짖는 그 소리가 마치 장송곡 마냥 숲을 음울하게 울리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민구가 박중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감시자를 통해 파악한 적의 규모가 150을 훌쩍 넘어가는 실정이다. 게다가 그 정보는 이미 예전 정보다. 적이 충원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제황이 뛰어난 디바우저라도 마나는 한정적이고 다굴에는 장사 없다. 그런데 지금 제황은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박중위는 무전기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 지금 당장 무전으로 제황에게 철수를 명령한다면 제황은 따를 것이다. 전과를 확대하는 게 좋은 것은 알지만 모든 작전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지만 박중위는 제황을 믿었다. 제황은 박중위의 작전을 100프로 이해한 상태다. 그런 그이기에 작전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애초에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다. 자신의 소대로는 제황의 발뒤꿈치도 따라가기 힘들기에 제황에게 큰 그림만 그려준 채 소대가 쫓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기다린다.”
박중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중위가 제황을 믿는다면 그들도 제황을 믿어야 한다. 굳은 표정으로 거인의발바닥을 내려다보는 모두의 얼굴에 제황에 대한 걱정이 담겼다.
***
“잔인하군...”
“삼위일신이시여.”
"악마다...이건 악마야."
나무에 처참히 박혀 있는 동료들을 발견한 그들은 침음을 삼켰다. 괴기스럽기 이를 데 없다. 나무에서 흘러내린 피는 작은 내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어 보이는 그들은 끊임없이 신음만을 흘리고 있다. 몇몇은 과다출혈로 숨이 끊겼는데 발버둥친 그들의 상처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중대형몬스터용 화살이다. 나무를 잘라!”
“알겠습니다.”
중대형몬스터용 화살은 박히는 순간 살을 움켜쥔 채 박혀버린다. 그대로 뽑아내는 건 미친 짓... 그나마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무 째로 잘라낸 뒤 뒤로부터 특수금속으로된 촉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파팍! 파팍! 팍!
그렇지만 워낙 거목에 박아 넣었기에 나무를 자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몇몇이 도끼로 박힌 부분만 잘라내려 했지만 그 또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 전에 숨이 끊어질 것이다.
“무...무서워.”
한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의 말을 내뱉고는 이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없으랴. 모두가 이유가 있어서 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커컥...”
그의 앞가슴으로 얇은 세검 한 자루가 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삼위일신의 전사에게 두려움은 없습니다!”
세검을 갈무리한 강목사가 외쳤다.
“부상자는 화살 째로 뽑아내서 옮기세요! 어서!”
“아...알겠습니다!”
화살째로 뽑아내라는 말은 부상자의 생사 따위는 무시하라는 말과 같았다. 시간이 지나 근육은 살대를 중심으로 움츠러들어 꽉 붙잡은 상태고 피가 접착제마냥 들러붙은 상태다. 그런 화살을 흔들어 빼라는 건 과다출혈로 죽이라는 말과 진배없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강목사의 말을 거스를 이는 없었다.
“으아아악!”
“아악!”
"아으윽..."
사람 두 셋이 달라붙어 화살을 무식하게 뽑아내기 시작하자 고통으로 실신해 있던 부상자들이 깨어나 다시금 구슬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응고되었던 부분이 다시금 터지며 생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쇼크로 정신을 잃는 이가 속출했다.
모두가 이를 악물고 하나 둘 부상자들을 챙기고 있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제황이 일으킨 두 번째 재앙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전의 것이 근거리 화살 공격이었다면 이번에는 중거리 화살 공격이다. 게다가 이번 화살은 이전의 것과 달리 매우 묵직한 촉을 달고 있었다. 바로 초순발충격신관(Superquick Fuze) 이 달린 폭발화살이었는데 제황이 비록 스킬로 폭발화살을 구현할 수 있지만 지금 쓰는 화살은 무거워도 마나가 소모되지 않기에 아주 안성맞춤의 것이었다.
씨이이잉... 콰콰쾅!
씨앙! 콰쾅! 쾅! 콰쾅!
“폭발화살이다!”
“아아악! 내 다리!”
씨이잉! 콰콰쾅!
“찾아! 무거운 폭발화살을 쓰는 놈이니 100미터 안쪽에 있을 꺼다! 아아악!”
씨이잉! 콰쾅!
화살은 무서운 속도로 쏟아졌다. 대체 몇 명이 쏘고 있는지 감도 안 잡힐 지경이다. 게다가 더 두려운 것은 그 사이사이 섞여 있는 평범한 화살들이 여지없이 빌런들의 목 줄기나 머리에 꽂힌다는 것이다.
“주...죽기 싫어!”
공포에 질린 한 남자가 거목 뒤로 몸을 처박았다.
“빌어먹을 한국 놈들...후욱..후욱..”
그는 중국인이었다. 삼천교를 이루는 성도들 중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도 많았다. 엘어스에서의 삼천교의 전도능력은 국가나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나름 오랫동안 정을 쌓은 한국인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죽던 말 던 상관없다. 그는 지금 이곳이 안전하다 생각했다. 이곳에서 버티면 저 저주스러운 화살의 비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그가 지금 하늘 위를 봤다면 아니 하늘위에 떠 있는 한 마리의 붉은매를 볼 능력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붉은매를 통해 화살의 주인이 어떤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알았다면 절대 이곳에 숨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쉬이이... 슈슉...
“어?”
그는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쳐 날아가던 화살이 갑자기 그 방향을 선회해 자신의 미간을 향해 달려드는 걸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화살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그의 두개골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커컥...”
다시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