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6화 (66/301)

# 66

들개사냥

타탁...

나뭇가지를 박찬 제황은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호랑이사냥’

슈슉...

어둠속에 녹아들 듯 사라진 제황은 다시금 나뭇가지를 밟고 날아올랐다.

궁기안을 통해 적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비명소리가 들리자 당황했는지 은신해 있던 곳에서 하나 둘 나온 상태... 공중을 날며 제황은 빠르게 시위를 당겼다.

뒤쪽에 있던 이의 양 손과 어깨를 나무에 박아버린 후 다시금 세 대의 화살을 날려 양 다리와 복부에 화살을 박아 넣었다. 동료로 보이는 이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리고 잠시 후 그의 몸에도 여섯 대의 화살을 박아 넣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목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새벽공기 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제황은 그들의 비명을 뒤로 한 채 다시금 날아올랐다.

-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

-좋아.

궁기의 말에 대꾸한 제황이 바닥으로 내려서서 날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탐지가 들어온다.

궁기가 경고했다. 배타적인 마나에 대한 궁기의 경고다. 땅에 내려서며 ‘호랑이사냥’을 풀었으니 어지간한 병신들이 아니라면 제황의 존재를 알아채는 게 당연하다. 물론 그러라고 푼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포위망을 짜기 시작했어. 위험하다.

궁기의 말에 제황은 피식 웃었다. 적에게 들켰다? 뭐 어쩌라고... 이곳은 한밤중의 숲속이다. 이런 홈 그라운드에서 밤나들이 나온 호랑이가 겨우 들개떼에게 겁을 먹겠는가. 지금 이곳은 자신만의 공간이며 사냥터다.

-고마운 일이지.

스톰레이지에 화살을 건 제황은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화살 한 대를 날렸다.

“적이다!”

“4에서 7조 은신을 멈추고 포위망을 구성한다! 탐지스킬 가진 이들을 우선 보호하며 움직여!”

“움직인다! 2시 400미터! 350미터!”

“좋아! 나도 포착했다. 350미터! 200미터! 곧 나타난다.”

제황의 위치를 파악한 그들은 제황의 위치를 빠르게 주변으로 전파했다. 두 개 조가 당했다는 걸 알기에 공을 세우려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활을 쓰는 놈이다!”

그 외침에 빌런들은 일제히 아공간에서 둥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소리 없이 적을 저격하는 데는 화살만한 게 없지만, 상대가 그 사실을 아는 순간 화살은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화살은 총기류가 발사하는 투사체와는 다르게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활이 아무리 강한 장력을 지닌 것이라도 총알의 속도를 능가할 수는 없는 법... 날아오는 즉시 쳐낼 수 있으리라 그들은 자신했다.

후우웅... 퍼어억!

“크아악!”

그러나 그 자신감은 잠시 후 날아온 화살 한 대에 산산이 부서졌다.

날아온 화살이 방패에 부딪히는 순간 그 방패의 주인은 마치 덤프트럭에 부딪힌 것 마냥 뒤로 날아가 방패와 함께 나무에 박혔다.

“저...저게...”

도저히 화살이 일으킬 수 없는 기사를 옆에서 본 빌런들의 입이 벌어졌다. 나무에 박힌 동료를 보니 화살은 분명 맞았다. 문제는 그 화살이 너무 빠르다. 포착은 물론이고 감지조차 못했다.  그야말로 번개가 친 기분이다.

뭔가 날아온다고 느낀 순간 이미 동료는 뒤로 날아가 나무에 박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제황이 든 스톰레이지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그 장력은 무려 400파운드... 거기에 이 괴물 활은 술에 만취한 명장의 손에서 탄생한 가속 옵션이 떡칠 된 괴물이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살의 속도는 이미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쉬익...퍼어억...

“으아악!”

쉭...쉭... 퍼퍽!

“아악! 으아악!”

적이 가하는 믿지 못할 공격에 잠시 멈칫한 게 실수였다. 뒤따라 날아온 화살 두 발이 다시금 두 동료를 나무에 박아버리자 그 때서야 모였던 이들은 파리채를 피하는 파리 떼 마냥 사방으로 숨기 시작했다.

슈슈슉...퍼퍼퍽... 슉슉..퍽퍽...

“아악! 아아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오자 몸을 숨긴 그들은 그 비명소리의 주인공이 자신들이 아닌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곧 그 화살이 어디에 박혔는지 확인한 그들은 일제히 모골이 송연해 지는 것을 느꼈다.

“아악! 살려줘!”

그 화살들은 이미 나무에 박혀 있는 그들의 동료들에게 날아간 것이었다. 숨통을 끊지는 않는다. 그러나 치명적인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는 길고 두꺼운 화살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화살이 박힐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동료들로 인해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화살은 잔인했다. 마치 조금 더 오래도록 비명을 지르라는 듯 죽지 않을 곳에만 화살이 박혀들고 있었다.

“철수야!”

나무에 화살로 고정되어 버린 이와 친구인 듯한 남자가 친구의 팔을 붙잡고 박혀 있는 화살을 잡았다. 뽑아내고 치료하려는 것... 그러나 그의 무지는 곧 대참사를 일으켰다.

투툭..투투툭...

“으...으아아악!”

화살이 뽑혀 나옴과 동시에 박혀 있던 화살은 근육과 인대를 한꺼번에 그러모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기절할 것 같은데 화살촉 양 옆에 난 기형의 톱날 세 개는 끝내 팔을 이루는 큰뼈까지 작살내며 뽑혀 나왔다.

“끄어어어어...커컥...”

차라리 화살이 박힌 상태에서 팔만 빼냈으면 지금보다는 조금 나았을 것이다. 무식하게 화살을 잡아당긴 게 문제다. 피분수가 뿜어지는 팔을 늘어뜨린 남자는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몸을 나무에 고정하고 있는 다섯 개의 다른 화살들로 인해 그는 땅에 몸을 눕히지도 못한 채 그 죄많은 인생을 마감했다.

슈슈슉...퍼퍼퍽...

“으아악!”

친구가 숨을 거두는 것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손에 들린 화살촉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그의 등과 팔을 두들겨오는 고통에 머릿속이 멍해짐을 느꼈다. 잠시 후 그는 죽은 친구의 시체와 함께 겹쳐 거목에 박혀 버렸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손속... 악마가 강림했다.

“미친! 6성급! 6성급! 원거리 딜러 출현!!!”

포위조의 한 축을 담당하던 조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적을 포위해야 한다는 생각은 산산이 날아간 상태다.

그가 추측컨대 지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이는 6성급의 원거리 딜러였다. 그가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지금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이 일으키는 살육은 지금껏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으아악!”

간신히 나무를 등지고 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찰나 적은 이미 그들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측면으로부터 그 저주스러운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화살은 총기와 다르게 소리가 없다. 어둠을 뚫고 날아오는 엄청난 속도의 화살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커어억!”

그가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세 명의 빌런들이 나무에 박혀버렸다. 그들도 죽지 않았다. 단지 온몸을 나무에 화살로 고정당한 채 구슬픈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다. 딜러든 탱커든 서포터든 힐러든 공평하다.

그나마 방어력의 극한에 달한 탱커들이 화살 한두 대를 버티기는 했지만 공중에서 기기묘묘하게 꺾여 날아온 화살은 그들의 어깨와 발 등에 틀어 박혀들었다.

-긴급상황! 보고합니다! 6성!!! 6성 출현! 포위진 붕괴합니다!

-사...살려줘!

-흐아아... 아아... 내... 손...내손...

강목사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굳이 무전기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그가 있는 곳까지 메아리쳐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6성의 원거리 딜러라...하하... 미치겠군. 이곳에 올만한 6성 헌터가 누가 있지?”

그는 그의 기억 속 목록에서 활에 특화된 6성 헌터들을 떠올려봤다.

감시조에게 적에 대해 묻는 것은 이미 포기했다. 저들은 공포에 잠식당해 공황에 빠져 비명을 질러댈 뿐이니까.

"액션캠을 열겠습니다."

그의 충복이 공손히 테블릿을 바쳤다. 감시조와 포위조의 몇몇은 어깨에 액션캠을 부착하고 있었다. 몇 번의 조작으로 화면이 나타났다.

"이건...정말이지."

강목사는 화면에 나타난 참상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캠의 주인 또한 화살밥이 되어 있었다. 한쪽으로 늘어진 액션캠에는 화살로 고슴도치가 된 감시조와 포위조가 나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 확실히 6성 헌터인가."

"아직 많은 인원이 남았습니다. 그들이라면..."

“아니요. 적이 6성 헌터라면 아예 죽으라고 밀어 넣는 꼴입니다. 후후...”

교에 있는 6성이라는 명성을 지닌 이들의 무력을 익히 알고 있는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6성 헌터의 존재가 그의 머리를 묵직하게 눌러왔다.

“이 또한 삼위일신께서 내게 내리는 시련이시겠지. 더 단단해 지라는...”

두 손을 모으고 자신에게 시련을 내려주신 삼위일신에게 기도를 올린 그는 무전기를 잡았다. 이미 천군천사의 위력시연 같은 시나리오는 그의 머리에서 떠났다. 교단에서도 6성 헌터의 출현이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참사도 이해해주리라.

“천군천사를 준비시키세요.”

“옛!”

그의 명이 떨어지자 그의 곁에 대기하고 있던 두 권사들이 고개를 숙인 뒤 뒤로 달려갔다.

"6성 헌터라...하하... 그렇지만 우리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마치 그가 눈앞에 있는 듯 이를 갈며 말한 강목사가 몸을 뒤로 돌렸다.

그의 뒤로는 수백 명의 노련한 전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다.

"희생은 언제나 불가피했습니다."

그는 그의 눈앞에 보이는 300여명에 달하는 삼위일신의 전사들을 바라봤다. 개척성지에서 지원된 성도들이 조금 전 합류하여 이제 도합 300명의 군세가 모인 것이다. 지금 그에게 맡겨진 사명은 무고한 신도들을 살해하고 있는 6성 헌터에게 삼위일신의 징벌을 내리는 것뿐이다.

“삼위일신의 군세여...삼천교국의 첨병이여... 저  무도한 마귀들을 척살하자.”

“삼위일신의 영광을...!”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

“끄어어...살려줘.”

“으어어...”

바스락...바스락...

제황은 우거진 수풀을 밟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무 사이를 걸었다. 도망치지도 기척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냥 숲 사이를 걸어갈 뿐이다. 그러나 그런 제황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사람이라 부를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제황의 앞을 막아설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무에는 사람의 보이는 형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들의 입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비명과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흐흐흐흑...”

“사...살려줘.”

“제발...”

“허헉...보..보지마!”

나무에 박혀 신음을 지르던 이들은 제황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피했다. 마치 제황과 눈과 마주치면 삼천교의 영세천국을 약속받은 자신들의 영혼이 지옥불 악마의 손에 잡혀 갈 것처럼 말이다.

“흐흑...흑...나...나 좀... 사...살려줘.”

눈물과 콧물, 오줌을 질질 흘리며 나무에 거꾸로 박힌 이가 제황에게 애원했다. 몸부림치다가 상처가 찢어졌는지 허벅지로부터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지금 과출혈로 인한 극한의 추위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 먹히다가 그대로 쇼크사로 빠지는 것이다.

제황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봤다. 제황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들어있지 않았다. 마치 무기질의 물건을 보는 완벽한 무감정이 깃들어 있다.

“네게 빌던 이들 중 단 하나라도 살려준 이가 있다면 너도 살려주마.”

“흐흑...”

제황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또한 많은 이들이 그를 보며 눈물로 호소했다. 살려달라고... 집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신은 살아야 한다고... 그렇지만 자신의 기억 중 그런 이들에게 자비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행여 남들보다 뒤쳐질까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의심받을까... 더 악랄하고 잔인하게 강간하고 살을 가르고 벗겨내며 생살을 불태우고 즐거워했다.

사실 그도 억울한 면은 있었다. 그 또한 처음에는 삼천교의 빌런들에게 입교를 강요당한 피해자 중 하나였으니까. 단지 죄 아닌 죄라면 그의 동료들이 삼위일신의 신벌을 받는 것을 보며 겁에 질려 삼천교에 입교한 것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도 그 죄악에 동참한 것 뿐... 그리고 어느새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흐흐흑...나도...나도... 저들에게 잡힌 것뿐이야. 돌아가고 싶어. 우리... 엄마...보고 싶...”

고통에 찬 신음과 참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제황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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