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5화 (65/301)

# 65

들개사냥

“뭐지.”

“저...저...”

강목사의 앞에 도착한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생사에 기로에 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지금 이 자리에서 입을 잘못 놀리면 그대로 강목사의 살아있는 장난감이 될 수 있었다.

“거인의발바닥에 투입된 감시조 3명이 당했습니다.”

그의 말에 강목사의 눈매가 와락 일그러졌다. 오늘의 행사에는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는 오늘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실패는 있을 수 없다. 교단 내에서 그 투자된 비용으로 인해 참 말이 많았던 천군천사의 첫 위력시연인 동시에 자신의 미래가 걸린 시험대이기도 했다.

“범인은?”

“탐색을 위해 거인의 발바닥에 들어온 저스틴포인트의 8소대 소행으로 추정 중입니다.”

“추정 중이라는 건 상대를 확인조차 못했다는 건가? 박.권.사?”

강목사의 목소리에 박권사라 불린 남자가 납작 하고 엎드렸다.

“그...그게... 그렇습니다.”

끄드득...

강목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눈앞의 사내의 목에서 울컥울컥 뿜어지는 피를 보고 싶었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꾹 눌러 참았다.

“감시조를 2인1조로 늘리고 두 배로 깔아두세요. 놈들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하도록 하고... 개척성지에 연락을 넣어 임시주둔지로 경비인원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놈들을 사냥할 준비에 돌입합니다.”

“알겠습니다.”

“숨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니 놈들의 위치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옙!"

지시를 내린 강목사는 시선을 들어 삼천교의 자랑스러운 개척신도들이 쉬고 있는 임시주둔지를 둘러봤다. 무려 150명의 신의사도가 그의 휘하에 있으니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놈들에게 삼위일신의 영광을 영접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지당하십니다."

항상 그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충복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후후...음?"

그 때 그의 귓가로 여성들의 구슬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그 원광 공격대라는 것들을 신벌의 불꽃으로 정화해 준 뒤 신의 사도들을 위해 잡아온 여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리라.

"마침 좋은 제물들도 있으니 출정 전  피의 예배를 집도하는 것도 좋겠군요."

강목사의 말에 충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물을 준비하겠습니다."

***

달이 떴다. 엘어스의 달은 지구의 달과 색도 모양도 좀 다르다. 전체적인 모습은 비슷하지만 좀 더 크게 보이고 흔히 달토끼라고 하는 부분도 보이지 않는다. 색도 파란 기운이 짙어 차갑게 느껴졌다.

-왜 자꾸 동요하는 거지?

궁기가 물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제황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특히나 지금 제황의 몸에서는 지금도 살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평소의 제황이라면 하지 않을 짓이다. 그는 절제하고 안으로 다듬지 이렇게 칠칠맞게 흘리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한동안 아무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키던 제황은  이윽고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곳에서 그들의 한과 분노가 느껴졌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게 도통 가라앉지 않아.

-원광 공격대를 말하는 거구나.

-그래.

요괴인 궁기와 함께해서 일까. 아니면 그들의 원한이 사무치다 못해 하늘을 울린 것일까. 제황은 그들이 당한 모든 것을 눈앞에서 생생이 겪은 기분이었다. 그들은 사지가 잘려 껍데기가 벗겨졌고 그 상태로 나무에 박혀 불에 타 죽을 때까지 살아있었고 그들이 사랑하던 여인들은 그들이 불타는 앞에서 악마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츠츳...

궁기는 오랜만에 어른의 모습이 되어 제황의 곁에 내려앉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모인 듯한 절세미녀의 하얀 아미가 살짝 좁혀져 있다.

“제황...”

조심스럽게 제황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던 그녀는 이내 두어 번 손을 꿈틀하고는 거두어들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 제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 처연하다.

"드디어 무련천가의 피가... 나타나는구나."

제황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그 조상들과 비밀로 맹약했던 무련가의 숙명이 그 피를 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련가... 아니 신벌의대행자 무련천가의 적자...

본디 고대에 북방의 성산을 수호하던 세 개의 가문이 있었다. 태고로부터 천지인의 삼신가라 불리던 그들은... 천하 모든 술법의 주인 천주백가와 한 자루 검으로 하늘을 쪼개던 창궁신가... 마지막으로 신벌의 대행자 무련천가로 불리며 누천년에 걸쳐 성산을 수호하고 성산의 뜻을 집행했다.

때로는 반목하고 때로는 시기하고 투쟁하며  살아왔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성산을 수호한다는 공통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산의 불꽃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하늘에 검은 흑룡이 날아오르던 날 그 흑룡을 막기 위해 힘을 모은 세 가문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흑룡을 처치하는 순간 모종의 이유로 세 가문 중 창궁신가가 돌연 성산을 향해 반기의 검을 들었고 그런 창궁신가에 대항하여 천주백가와 무련천가가 나섰다. 오랜 싸움 끝에 창궁신가는 삼신가에서 지워졌지만 무련천가는 곧 이 일이 천주백가의 음모였다는 걸 깨닫는다.

흑룡이 남긴 검은 여의주의 깃든 탐욕이 천주백가를 타락시켰던 것...

그리고 성산의 힘마저 손에 넣으려던 천주백가는 마지막 순간 무련천가에 의해 패퇴하고 궁기 자신은 아주 오래전 천주백가와 맺은 맹약을 통해 그들의 도주를 돕게 된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천주백가를 도우며 몇 대에 걸쳐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 비록 흑룡의 여의주를 이용한 천주백가의 사이한 술법과 맹약을 통한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세상 모든 호랑이의 령을 움직여 수만의 죄 없는 생명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천주백가를 쫓아온 신벌의 대행자 무련천가는 어느 이름 없는 산에 궁기를 봉인하는 것으로 그 맥을 크게 상하게 된다.

"그 피를...감당할 수 있겠니."

그러나 궁기는 제황에게 그 혈통에 얽힌 비사를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제황의 조상들과 맺은 약속이다. 성산을 수호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가문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던 그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놓아주려 했던 제황의 운명이다.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겠지."

신벌의 대행자 무련천가의 피에는 대살성의 피가 잠들어 있었다.

신벌을 대행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감정도 가져서는 안 된다.

세상 만물에 공평한 잣대를 가져야 하기에 때로는 선인이 때로는 극악한 악인의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을 피로 잠기게 만드는 대살성이기도 하고 모든 이의 앞길을 비추는 광명성이기도 하다.

제황 또한 그의 혈통 속에 숨어 있던 무련천가의 힘이 다시 일어나며 살성의 기운을 보이고 있었다. 그 피를 촉발시킨 것은 원광공격대의 원혼이었다. 그들의 원한이 하늘에 닿아 제황을 통해 원혼들이 원한을 균형의 저울을 통해 맞추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돌아갈 수 없어."

"그들이 내게 울부짖었어."

"알아."

제황이 말한 원혼들은 궁기 또한 알고 있었다. 제황과 영혼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 그들이 악령은 아니지만 그들과 관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그녀는 조심스러웠다. 자칫 그 복수에 실려 제황의 영혼이 어둠으로 물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공평한 죽음을 내릴 생각이야."

"공평한 죽음이라... 그건 누가 판단하지?"

궁기의 물음에 제황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조금 무책임한 말이지만 내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할까? 그건 그들 각자에 맡길 뿐이야. 그리고 어차피 내가 걸어갈 길에 피의 숙명이 있는 건 알고 있어."

제황은 눈을 감고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지금 막 뿌리내린 어두운 기운을 관조했다.

그들이 내뿜는 지독한 한이 느껴졌지만 제황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그들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의 뜻을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시간이 다 되었네."

"그렇군."

손목을 확인한 제황이 몸을 일으켰다. 박중위와 약속한 작전개시 시간이 된 것...

-너와 난 생사합일의 술법으로 엮인 몸... 따르겠다.

-언제나 고마워. 궁기...

순간 궁기가 소리 없이 날아올랐다. 잠시 후 궁기의 눈을 통해 새벽 어둠속에서 잠들어있는 숲이 발밑에 들어온다.

스으으

제황의 손에 세 대의 화살이 나타났다. 지금 그의 손에 나타난 화살은 이전의 것과 조금 모양이 다르다. 상당히 긴 촉 양 옆으로 각각 세 개씩의 돌기가 날카롭게 돋아나 있었는데 이 화살의 특징은 꽂히는 순간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물론 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적출의 순간 출혈과다로 인한 쇼크사를 상정한 채 뽑아야 한다.바로  중대형 몬스터를 사냥할 때 사용하는 화살이다. 워낙 무겁고 튼튼해 사정거리가 심하게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 살상력 하나 만큼은 최고라고 평가받는 화살이다.

“사냥의 시간이다.”

***

“씨발...내가 왜 여기에...”

“조용히 해.”

“꺼져. XXX 한 개새끼야.”

“너 이 개새끼.. 끝나고 보자. 주둥아리 찢어버린다.”

“너야 말로 기대해라. 새끼야.”

낙엽 속에서 두 남자의 걸쭉한 욕이 흘러나왔다. 이들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뛰어난 능력으로 곧 권사의 직분에 오를 것으로 물망에 있는 둘이지만 둘의 과거를 살펴보면 빌런이 되기 전에도 둘은 악연으로 엮여 있었다.

강목사의 명령이 없었다면 아무도 이 둘을 한 곳에 배치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스럽게 조용하군.”

“닥치라고...”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둘은 사주경계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곳에 나온 원흉인 목사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것... 실수라도 하면 다음날 목사의 취미생활에 몸을 바치는 영광을 얻게 될 거고 그건 절대 사양이었다.

타탁...

잠복의 의미를 잊고 자꾸 입을 나불거리는 동료를 지금 당장 죽여버릴까 고민하던 남자는 그의 탐지스킬에 미미하게 걸리는 적의 느낌에 신경을 바짝 세웠다.

“야야... 심상치 않다.”

그가 자신과 함께 낙엽 속에 잠복해 있던 이에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욕설  뿐이다.

"병신새끼가 어디서 약을...헉...이런 미친!"

욕을 내뱉던 이가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순간이지만 그가 지닌 탐지스킬이  맹렬히 경고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었고 당장 위치를 옮기지 않으면... 죽는다.

슈슈슈...슈슈슉....

퍼퍼퍽..퍽퍽...퍽

“뭐...개... 컥... 으아아아악!”

본능적으로 몸을 날리던 남자는 온 몸을 난자하는 듯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함께 은신해 있던 이의 비명에 남자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 동료의 상세를 확인한다며 어물쩡거리다가는 자신 또한 그와 같은 신세가 될 거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파악한 것... 그러나 적의 공격은 그의 반사신경보다 훨씬 빨랐다.

슈슈슉... 파파팍...

“으...으아아악!”

날아오르던 그는 팔과 어깨를 쑤시고 들어오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컥...”

팔과 어깨를 후려친 그것은 엄청난 힘을 내제하고 있었고 그를 바로 옆에 있는 나무로 날려버렸다.

“으...으어...”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몸에 박힌 것을 확인했다.

"미..미친..."

그것은 화살이었다. 카본 제질의 검은 화살대에 검은 깃이 달린 일반화살보다 좀 더 두껍고 긴 화살... 그 화살은 그의 몸을 관통한 것도 모자라 육신을 나무에 박아버린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이정도는... 크흐흡...으아악!”

그는 손에 힘을 줘 화살을 빼내려 했지만 이내 꿈쩍도 하지 않는 팔과 상처가 뜯겨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이...이게... ”

슈슈슉.. 파파팍...

“으아아악!”

눈물 콧물을 짜내며 고통을 참던 그는 잠시 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시금 날아온 세 대의 화살이 그의 반대편 팔과 두 다리에 나무에 박혀 버렸기 때문...

“으아아...아아...”

사지가 나무에 박혀버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을 지르는 것 밖에 없었다. 나무에 박힌 화살로부터 붉은 선혈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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