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삼천교의 빌런
선두에 선 박중위가 어깨를 나란이 한 채 걷고 있는 제황에게 말했다. 소대의 막내이기는 하지만 소대원들 중 가장 넓은 탐색범위를 가졌기에 함께 선두에 섰다. 신입에게 선두를 내준다는 건 어쩌면 기존의 소대원들에게 무척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능력이 그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여기는 생과 사가 오가는 전장이었다. 그런 자존심을 챙기기 보다는 목숨을 보전하는 게 낫다.
박중위의 설명을 들으며 제황은 버스에서 내리기전 지도를 통해 외워 둔 지형과 지금 보이는 실제 지형을 대입하여 지리를 머릿속에 담았다.
전투에 있어서 지형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좀 심하게 과장하면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사전에 지형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정도다. 그렇기에 제황은 그것들을 꼼꼼히 확인하며 길을 걸었다.
"이곳이군."
절벽을 조금 돌아가니 간신히 사람이 내려갈만한 경사가 나타났다.
그와 함께 칼로 자른 듯한 거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숲이 드러났다.
“거인의발자국 이라고 부른다지. 제길... 발바닥 한번 더럽게 넓군.”
쌍안경으로 곳곳을 확인한 박중위가 욕을 뱉었다. 그의 말대로 은은한 안개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관제실로 부터 받은 정보를 통해 계곡을 내려가는 길을 찾아낸 박중위가 선두로 나서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염병..."
선두에 서서 내려가던 박중위가 절벽 곳곳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는 뒤따라 내려오는 이들에게 작게 손짓했다.
박중위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돌린 그들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만들어진 둥지에 앉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크고 작은 계곡하피들을 발견하고는 모두 호흡을 멈췄다. 길이 교묘하게 가려져 있는 게 천만 다행...지금 상태로 습격을 당하는 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절벽을 내려온 소대는 계곡하피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빌어먹을... 내 잘못이다.”
박중위가 모두에게 사과했다. 소대를 이끄는 입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선선히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박중위는 자신이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타입이다.
“캡 잘못이 아닙니다. 여기 지도가 아주 구려요.”
피지가 네비게이션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몬스터 분포에는 분명 이쪽 절벽 쪽에 대해서 따로 몬스터 표시가 없었는데 난데없이 계곡하피 서식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아냐. 그걸 너무 과신한 내 잘못이지.”
손을 휘휘 저은 그가 피지와 함께 네비게이션을 다시 분석하고 있을 때 제황은 제황 나름대로 궁기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제황은 버스에서 내렸을 때 몰래 궁기를 내보내 미리 정찰을 시킨 상태였다.
-인간은 세월이 지나도 잔인함은 여전해.
-응.
제황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비행형 몬스터인 계곡하피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완벽한 정찰을 하지는 못했지만 목표인 원광 공격대의 흔적과 곳곳에 매복한 빌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정말 아무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정말 잔인무도한 놈들이다.
제황의 말에 궁기마저도 공감했다. 궁기의 시선을 통해 본 그것은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참상이었다.
-아무튼 조심해라. 놈들의 숫자가 적지 않아.
-그래. 고생했어.
궁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제황은 잠시 후 박중위의 인솔에 따라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궁기를 통해 대략적인 지형과 적들의 모든 위치를 아는 제황은 박중위와 함께 선두를 탐색하며 은연 중 그들을 이끌어 가장 안전한 지형을 코스로하여 이동했다.
그리고 드디어 원광공격대의 흔적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도착한 그들은 쌍안경을 들었다.
“개...새끼들...”
박중위가 신음을 흘렸다. 고개를 떨어뜨린 박중위가 쌍안경을 돌려가며 소대원들 전원이 그 광경을 바라보게 했다. 모두에게서는 박중위와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고 비위가 약한 민경은 자리에서 헛구역질마저 했다. 해선 안 될 짓이지만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못했다. 지금 그들도 구토를 참고 있었으니까.
“저게 삼위일신의 신벌이군요.”
성규가 나름 담담하게 입을 뗐다.
약 20여명의 남녀가 불타버린 거대한 나무에 말 그대로 널려 있었다. 대체 죽기 전에 어떤 고문이 있었는지 팔다리는 잘린 채였고 껍데기를 벗긴 후 불태웠는지 그건 도저히 사람이었다고 믿을 수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이다.
“입교를 권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팔다리를 하나하나 썰어버린 후 껍데기를 벗긴다. 그 후 나무에 박아 넣은 다음 마지막에 한꺼번에 불을 붙여 버리지.”
“개새끼들...인간도 아냐.”
양혜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사람 취급 하지 말라고 보여준 거다. 피지... 무전기 가져와. 일단 보고하자."
박중위가 말했다.
피지가 매고 온 무전기를 내리고 박중위가 저스틴포인트로 무전을 보이는 사이 제황은 다른 이들 모르게 숲속으로 스리슬쩍 녹아들었다. 그리곤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곧바로 호랑이사냥을 사용한 그는 약 100미터 전방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스르륵 하고 나타났다.
그곳에는 온몸에 온갖 것들로 위장을 덕지덕지 붙인 한 남자가 몸을 납작 하게 엎드린 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권사님 말씀대로 군인 놈들이 도착했습니다. 예..예. 지휘하는 놈이 뛰어나 보입니다. 위치는 ... 알겠습니다. 대기하겠습니다. 삼천의 영광이...”
무전을 끝낸 남자는 고개를 살짝 들어 소대를 확인했다. 정말 절묘하게 위장하여 바로 곁에 있어도 못 알아챌 정도로 잘 숨어 있다.
“이놈들아...여기가 우리 안방인 건 모르는 모양이구나. 흐흐”
남자는 소대가 간신히 보이는 기가 막힌 위치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제황이 가장 좋은 경로로 소대를 이끌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이들은 이곳의 지리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이들이었다. 가장 좋은 자리를 잡은 게 오히려 더 위험을 자초한 꼴이다. 이래서 지형이라는 게 중요한 거다.
“오늘은 육보시를 실컷 하는구나. 흐흐흐...삼천의 영광이 함께하기를...”
그는 8소대의 여소대원들을 바라보며 음충맞은 음소를 흘렸다. 약 두 시간 전 있었던 살육과 광란의 파티에서 한껏 흔들었던 하초가 다가올 즐거움에 다시금 일어서는 느낌이다.
본디 최대한 많은 삼위일신의 성도들을 모집해야 하기에 여러 가지 심화설득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잡힌 여자들에 대한 음욕에 미쳐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모조리 삼위일신의 신벌을 내리고 여자들은 집단강간한 채 개척성지로 끌고 갔다.
몇몇이 집단강간에 실성한 듯 보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여자들을 통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삼위일신의 영광스러운 전사가 될 것이기에 여자가 미치던 어쨌건 전혀 거리낌 없었다.
“흐흐... 개척목사님의 정보가 맞는다면 잘해야 세 개 소대 증원에 두어 개의 민간 공격대가 합류하겠지. 오는 순간 이곳이 저스틴포인트 놈들의 묏자리다.”
오늘 이곳으로 삼위일신의 행사를 집행하는 개척목사는 본단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가 거느린 신전 전사단은 40여명의 3성 헌터로 이루어진 이들이었는데 이들과 개척성지에서 차출된 신도들을 합하면 무려 150명의 성도들이 참여했다. 게다가 개척목사가 본단에서 데려왔다는 천군천사는 4성 육체계열 헌터도 가볍게 비틀어 죽일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바스락...
들떠오는 마음을 애써 참고 감시에 집중하려고 할 때 바로 귀 옆에서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의 위장복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노출된 울대 부분이 뭔가에게 심한 가격 당했고 엄청난 고통에 숨이 막혀 입을 벌린 찰나 그의 입으로 커다란 돌멩이가 잔인하게 쑤시고 들어왔다.
“우우웁!”
이를 뭉개고 들어오는 거친 돌멩이가 기도를 막아버렸지만 그는 그것을 빼낼 수 없었다. 휘두른 오른팔을 누군가 붙잡더니 사정없이 돌린 후 부러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잡아당겨 뽑아버린다. 비명이 터져 나오지만 그것을 뜻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상대는 그에게 한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왼팔을 똑같은 방식으로 부러뜨리고 뽑아내더니, 양 다리도 관절 째 비틀어 바스러뜨린다.
“흐아...흐아...흐아...끄르륵”
무려 사지를 모조리 부러뜨리고 뽑았지만 그것을 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이다. 10초 만에 걸레가 된 남자는 온몸의 뼈가 바스라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입에 게거품을 문 채 흰자위를 뒤집었다.
제황은 기절한 남자의 숨을 확인한 뒤 그대로 다리 한쪽을 붙잡은 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제황씨 어디 갔...엇...”
나무 사이로 나타난 제황에게 말을 걸려던 유리는 제황이 질질 끌고 온 것을 발견하고는 입을 막았다. 손에 뭔가 거대한 야생동물을 잡아온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지가 역으로 꺾인 인간이다.
“뭐...뭐야. 그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황의 말에 쉬고 있던 소대원들이 모두 일어나 경계태세를 취했다. 제황의 곁으로 다가온 박중위가 말했다.
“발견 위치는?”
“여기서 100미터 가량 밖에 있는 바위 밑입니다. 누군가와 무전 중이더군요.”
“엿 들은 건 없나?”
박중위의 물음에 제황은 감시병을 제압하기 전 들었던 것을 박중위에게 모두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박중위의 얼굴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 갔다. 제황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전에 세웠던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우리가 올 것과 우리가 부를 지원의 규모도 모두 안다는 건가.”
“비약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스틴포인트 고위직에 삼천교와 내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양혜지가 말했다.
“아냐. 충분히 가능성 있어.”
박중위는 조금 전 저스틴포인트 관제실과 이야기 한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접수한 관제실은 8소대가 계속 머물며 정찰해 줄 것을 요청했고 공교롭게도 조금 전 제황이 말한 그대로의 병력을 12시간 안에 급파한다고 연락이 왔다.
"관제실에 이 사실도 알려선 안 되겠습니다. 캡..."
“후...글세.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무고한 군인들의 희생이 있을 수도 있어. 아...제황... 놈을 어떻게 찾았지?”
박중위의 물음에 제황은 눈을 톡톡 건드리며 대답했다.
“활을 잘 다루려면 눈이 좋아야 합니다.”
“후...”
제황의 대답에 박중위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발군의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제황은 신입이었다. 만약 제황이 이 빌런을 잡지 못했다면 꼼짝 없이 빌런들에게 당했을 것이다. 능력의 차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다. 제황이 소대의 목숨을 살린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는 그런 것을 칭찬하는 자리가 아니다.
“좋아. 이런 부탁하기는 미안하지만 계속 소대 근처를 돌면서 다른 감시자가 없는지 확인해라.”
제황이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중위가 말하지 않더라도 먼저 나설 참이었다.
“성규야.”
“예. 대장...”
“일단 이동할 테니 놈을 들어.”
“알겠습니다.”
박중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규가 빌런의 가볍게 집어 들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 이대로 계곡을 이탈하는 것도 위험해. 그러니 우리는 최대한 기도비닉 유지한 채 엄폐장소를 찾는다.”
“알겠습니다.”
박중위의 지시에 따라 8소대는 빠르게 현위치를 이탈했다. 더 있어봤자 좋은 꼴 보기 힘든 곳이다.
8소대는 모든 흔적을 없애며 빠르게 진행했다.
그들이 목표한 곳은 바로 계곡하피들이 서식하고 있는 절벽의 밑... 소대가 위험하기는 하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이곳만큼 숨기 좋은 곳이 없다.
제황이 감시자에게 들은 빌런들의 무리는 유추하건데 8소대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 만약 그들이 소대를 쫓아온다면 계곡하피들의 눈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돈덩어리 취급을 받기는 해도 3티어 몬스터... 게다가 계곡하피들은 단체공격을 펼치기 때문에 한번 휩쓸리면 공격대 하나는 순식간에 걸레가 된다.
절벽 밑에 쌓인 하피의 둥지에서 떨어져 내린 갖가지 오물의 썩은내가 코를 찔렀지만 소대는 아무런 불평 없이 이동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절벽 틈에 난 균열을 발견한 박중위가 손짓하자 모두가 균열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상 무...”
“이상 무...”
균열은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끝을 알 수는 없지만 몬스터는 없어 보인다. 균열 내부의 안전을 확인한 소대원들이 밭은 숨을 몰아쉬며 심호흡을 하자 균열 입구에 서서 밖의 상황을 주시하는 박중위다.
“아무래도 무리였나.”
박중위는 신입에게 가장 위험한 탐색을 맡긴 것을 자책했다. 아무리 그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신입은 신입이었다. 소대원들 중 가장 먼저 감시자를 찾아냈기에 탐색을 맡기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제발...무사히..돌아...”
“저 찾으셨습니까?”
“으엇!”
밖을 바라보며 제황의 무사귀환을 빌던 박중위는 균열의 바로 옆에서 갑작스레 쑥 하고 나타난 제황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기척 좀 내고 와라."
감시자를 찾아 소대 주변을 정찰한 이에게 기척 좀 내라고 한 게 자신이 생각해도 뻘줌한지 우물쭈물하던 박중위가 제황의 양 손에 들린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뭐지?"
“총 네 놈 찾았고 그 중 둘을 제압했습니다. 우리 쪽의 위치가 발각될 것을 고려해 두 놈은 그대로 뒀습니다.”
“헐...”
제황의 말에 소대원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제황을 바라봤다.
자신들은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 심기를 모두 소모했는데 제황은 그 와중에 둘을 더 붙잡아왔다. 게다가 호흡도 차분하고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마치 소풍 온 사람으로 착각했으리라. 양손에 두툼한 간식거리를 든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