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2화 (62/301)

# 62

삼천교의 빌런

"4650만원입니다."

"하...미친다."

박중위는 중간기착지에서 정산한 코볼트 정산금액을 보고는 기가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냥터가 넓은 관계로 몬스터 사체를 매집하는 곳이 곳곳에 있었다. 커다란 기계가 코볼트의 시체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코볼트의 사체는 쌌다. 딱히 쓸모 있는 몬스터도 아니며 식용도 불가하여 기껏해야 사료의 원료 정도로 밖에 사용하지 못하기에 저스틴포인트에서 몬스터사냥시 지급하는 현상금을 제외하고는 얻는 게 거의 없다. 아마 그 난이도가 턱없이 낮지 않다면 아무도 잡지 않을 몬스터일 것이다. 성체 수컷은 10만원 암컷은 5만원... 새끼는 암수 가리지 않고 2만원... 그런데 정산액이 4650만원이다.

제황이 쉬엄쉬엄 잡아댄 게 저 정도다.

적지 않은 금액이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 돈이라면 코볼트만 잡아도 먹고 살만 하리라. 박중위는 은행에 들러 정산비율대로 각자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거의 대부분의 코볼트를 사냥한 제황이 자신의 몫을 주장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제황은 그에 대해 공정한 분배를 요구했다. 물론 화살값 등을 생각해 20프로를 주기는 했지만 이정도도 대단한 거다.

"선물로 화살을 사줘야 겠군."

제황은 화살 한 번 살 때도 엄청난 양을 산다. 그 많은 걸 담을 아공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할아버지가 권제니까 뭔가 흙수저들과는 다른 걸 가지고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는 박중위였다.

즐거운 기분으로 정산소를 나와 정차 중인 무장버스에 올라타니 소대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운전석 쪽에 모여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가는데 무전기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여기는 저스틴포인트 제1 관제실...8소대 응답 하라.

하루에 3번의 정기 교신이 아니면  관제실에서는 소대를 찾지 않는다. 예외상황이 발생했다는 뜻... 무전을 받아든 박중위가 답했다.

-8소대 소대장 박창준 중위다.

-현재 북쪽 12킬로 지점 21섹터 부근에 등록되지 않은 헌터 무리가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또한 헌터무리를 확인하기 위해 의뢰한  원광 공격대와 교신이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8소대의 정찰 및 공격대의 생존확인을 요청한다. 원광공격대의 최근 위치 데이터 공유한다. GQ258735... 위치 확인 되었나?

-확인...의문의 헌터무리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가?

박중위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관제실에서 보내 준 정보는 너무 단편적이어서 이대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

-현재로는 전무하다. 위 제보도 원광 공격대에서 제공한 것이다.

-알겠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관제실에서는 삼천교의 빌런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예상 중이다. 그러니 가급적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이상 교신 끝

-라져.

삼천교의 빌런이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전기를 내려놓은 박중위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빌런들..."

저스틴포인트는 권역이 워낙 넓고 여러 가지 이권을 곳곳에 널린 관계로 굳이 몬스터를 떠나서라도 여러 가지 말썽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중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빌런이었다.

빌런이라는 건 간단히 말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각성자들을 말한다.

범인을 뛰어넘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들의 위험도는 상상을 초월했는데 그런 빌런들이 사회의 통제에서 벗어난 이유도 가지가지다.

가장 많은 부류는 헌터 관련 범죄를 저질러 수배되었거나 혹은 저지르는 중인 이들이다. 빌런들 중 가장 흔한 경우로 같은 헌터를 공격하여 죽이거나 일반인을 학살하는 것인데 헌터법 중 합당한 이유 없이 같은 헌터를 공격하는 것은 중과실로 봐서 그 형량이 적지 않다. 최악의 경우 사형까지도 가능했기에 중범죄자의 경우 빌런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굳이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더라도 블랙마켓을 통해 몬스터 사체 거래가 가능하고 또 돈만 있으면 새로운 가짜신분을 만드는 것도 쉽다. 그래서 어떤 헌터들은 평소에는 준법적인 헌터의 탈을 쓰고 있다가 완전범죄가 가능하다 싶으면 빌런 무리로 돌변하는 이들도 있다.

두번째 종류는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와 계약한 빌런들이다. 마치 과거 중세 대항해시대의 사략함대마냥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적국이나 이권과 관련된 다른 조직의 각성자들을 공격하는 이들이다. 사실 이들은 빌런이라 보기 뭐한게 적들의 입장에서야 빌런이지 본국에서는 엄연한 헌터로 활동하니까. 물론 걸리면 이들도 그리 좋은 꼴은 보지 못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종교적 이념이과 무정부주의적 사상으로 물들어 사회에서 도망친 빌런들이다. 종교적 이념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대충돌 후반부에 대량으로 출현했던 종말론을 기반으로 융성한 신흥종교들과 관련된 빌런들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종교는 '삼천교' 라 하여 세 지구의 차원 충돌이 삼위일신 이라는 지고한 신에 의해 예비된 것이라는 것과 이 세 개의 지구가 완전히 합쳐지는 날 삼위일신을 믿는 이들을 위한 천국이 나타난다고 믿는 이들이다.

'삼위일신을 믿지 않는 자 구원받지 못하리라.'

부끄럽게도 이 신흥종교의 발원지는 대한민국이었다.

'우리 구주 삼위일신께서는 그의 유일한 아들 '이명복'을 보내 우리를 세 지구의 주인으로 삼게 할 것이다.'

대충돌로 일어난 비극이 그들의 초기 성장 원동력이었다. 겉으로는 사회봉사와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강압적인 포교와 종교를 통한 세뇌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신도들을 늘려 나갔다.

뭐...그 교리 대부분이 성경을 차용했다는 것과 초대 교주인 이명복이 과거 대한민국 서울 대형교회의 목사였고 대를 이어 그 아들이 삼천교의 교주를 자처한다는 것으로 그들의 정체는 사회에 쉽게 까발려졌다. 물론 그것도 이명백이 치유안수를 내린다며 장애를 가진 여중생을 강간한 것이 한 신도의 양심선언으로 폭로된 게 시발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들은 자신들 외에는 모두 이단이라 말하며 삼천교국이라는 걸 만들어 자신들이 왕국을 건설했다는 것으로 사회로부터 추방당했고 그렇게 엘어스로 건너가 그 때부터 빌런짓을 시작했다.

대충돌 전과는 틀리게 북한은 멸망했고 중국이나 일본등과는 사이가 좋아 딱히 적국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대한민국을 좀먹는 것들은 바로 이 삼천교의 사도라는 빌런들이었다.

세 가지 빌런 종류들 중 가장 악랄한...  종교에 미친 헌터들이다.

"삼천교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웠겠지?"

"네."

"예."

박중위의 말에 제황과 민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원광공격대의 마지막 위치로 열심히 달려가는 무장버스 뒤편에는 제황과 민구 둘이 박중위와 면담 중이다. 이 둘은 삼천교 빌런들과 부딪힌 경험이 없었기에 도착하기 전 한 번 더 교육하려는 것이다.

"놈들은 아주 악질적인 빌런들이다. 마치 중세의 광신도들과 같다고 보면 돼. 헌터들의 장비나 몬스터를 노리는 놈들은 이놈들에 비하면 아주 얌전한 놈들이다."

"알고 있습니다."

놈들은 붙잡은 헌터들에게 삼천교에 입교할 것을 강권하다. 듣지 않으면? 삼위일신의 신벌을 내린다. 지옥의 유황불이라는 신벌을...그것도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마지막에 처형한다. 그들의 방법이 워낙 극악하여 억지로 삼천교에 들었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민구는 경험이 있고... 제황... 너는 경험이 없지? 사람 죽이는 거 말이야."

"그렇습니다.

박중위의 물음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복부를 절개해서 죽기 직전까지 손으로 해체해본 경험은 있지만 딱히 죽인 적은 없다. 그러고보니 외삼촌은 살아 있으려나.

"음...당연한 건가. 어때 지금 우리는 같은 사람과 싸우러 가는 길이다. 할 수 있겠어?"

박중위의 물음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물음은 아카데미에서도 수 차례 들었었다. 빌런과 관련된 교육 때마다 단골처럼 물어오던 것이었으니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다. 마치 세뇌하려는 듯... 물론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제황은 헌터의 길을 선택할 때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 몬스터가 아닌 진짜 사람을 죽인다는 건 의외로 헌터에게는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다.

"아카데미에서 배웠습니다. 헌터의 길을 선택한다면 좋던 싫던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다고..."

"그렇지. 맞는 말이야."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아카데미에서 배웠겠지만 다시 말해주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그래...  과거에는 각성자들의 반발로 의무복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지만 갖 현장에 나온 초보헌터들이 장비를 노려지거나 레이드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것을 약점삼아 부당계약을 통해 부림 당하는 일이  빈번하자 일정 경험을 쌓기 전까지 국가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게 이 의무복무다."

박중위의 설명에 제황과 민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헌터라도 리즈 시절에는 약할 수 밖에 없다. 경험도 능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레이드에 뛰어드는 건 그만큼 위험했기에 초보헌터들은 생존확율을 높이기 위해 경험 많고 강한 클랜들에 가입하려 했다.

간혹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같은 초보들끼리 스쿼드를 짜 용감히 레이드에 뛰어드는 머저리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짓을 절대 추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십중 두셋을 빼고는 거의 실패하니까. 아니 초반에 운좋게 성공하더라도 경험 많은 이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어떻게든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이유로 단체에서 초보헌터들을 마치 노예마냥 불공정계약서로 부려 먹었다는 것... 여러가지 방법을 시험적으로 시행하고 끝내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헌터들의 교육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이것이 바로 15개월의 의무 복무가 만들어진 배경 중 하나.... 그리고 의무복무가 만들어진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인간에 대한 살인 행위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초보 헌터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만났을 때가 아닌 바로 빌런들을 만났을 때다."

박중위가 전에 없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의를 품은 이들과 무기를 맞댄다. 이쪽은 아직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없는데 상대는 사람을 죽인 경험도 많을 뿐 아니라 최소한 어느정도 숙련이 쌓인 헌터들이다.

그뿐일까. 운좋게 상대를 죽인 후에도 문제다. 좋던 싫던 사람을 죽인다는 건 정신에 큰 충격을 가하는 짓이다. 외상도 중요하지만 정신에 입은 상처도 방치하면 큰 문제가 된다. 한 마디로 살인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 화는 것도 15개월 의무복무를 시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정신 무장이니 다짐 따위늘 받는 허울뿐인 짓은 하지 않겠다. 하나만 알아둬라. 너희가 망설이는 순간 네 동료들이 죽을 수 있다. 또한 행여 빌런 무리에 둘러쌓였을 시는...

박중위는 자신이 아는 빌런에 대한 대응방법을 둘에게 반복적으로 말했고 제황과 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경청했다.  박중위가 포켓에서 두 알의 알약을 꺼내 내밀었다.

"약물의 힘에 의지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빌런과의 첫 대면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을 거야. 일시적이지만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줄 거다. 물론 중독성이 있어서 지속적인 사용은 권장하지 않는다. 일단 받아 둬."

박중위는 알약을 제황과 민구에게 하나씩 내밀었고 둘은 그것을 받아 각자 포켓에 챙겨 넣었다.

"다시 말하는데 망설이지 마라. 너희들이 갈등하는 순간 너희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다."

***

철컥... 위이잉... 철컹...철컹

외장갑이 무장버스의 출입문과 유리등을 완전히 봉쇄했다.

"게이트 내 빌런들의 주요 목표로는 이런 버스들도 좋은 먹잇감이다.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하기 힘들기 때문에 차에 실린 전자기기나 식량등을 탐내지."

무장버스의 위장이 끝나자 소대는 완전무장을 한 채 사주경계하며 이동을 시작했다. 관제실에서 알려준 원광공격대의 마지막 위치는 차량이 이동할 수 없는 깊은 계곡 안이었다.  약 10분여를 걷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나타났다.

"4티어계곡하피들의 서식지다. 버릴 것 없는 몸뚱이와 마나석 때문에 인기가 좋은 사냥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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