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61화 (61/301)

# 61

소풍? 임무?

“친해지기가 쉽지 않네요.”

성규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사실 그가 제황과 엉킨 것은 제황과 소대원들 간의 거리를 좀 좁히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제황과 함께한지 이제 거의 한 달이 넘어가는데 아직 박중위를 제외하고는 제황에게 ‘씨’ 자를 아무도 빼지 못했다.

제황에게서 흘러넘치는 특유의 차가움과 더불어 권제의 손자라는 반물질수저 타이틀... 그리고 같은 각성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무시무시하며 공포스러운 전투력 등이 문제다.

제황이 먼저 나서서 살갑게 다가와주면 좋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성격은 아니다.

박중위 다음가는 실세인 그가 나서서 제황을 좀 눌러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털려버렸다. 그것도 상남자의 표본이라고 할 그가 구슬픈 비명을 질러가며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전투력 편차가 너무 심해. 도저히 적당한 포메이션이 나오지 않아.”

“후우...”

제황과 관련된 박중위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와 소대와의 전투력 괴리가 너무 심했다.

“이건 좋지 않아.”

“예.”

그들 본연의 임무가 순찰이기는 하지만 포메이션 숙련을 통한 고위 몬스터의 레이드를 통한 훈련도 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이 각자의 발전에도 좋은 것... 문제는 제황과의 데미지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틀째 되는 날 3티어 몬스터인 붉은부리코카트리스 한 무리를 만났었다. 몸이나 좀 풀자는 마음에 모두 내려 기본포메이션을 짰고 그대로 격돌했다. 제황의 위치는 원거리딜러의 기본 위치인 후방... 문제는 제황의 첫 공격이 작렬시키는 순간 한마리가 그대로 이승과 하직인사를 했고 나머지 무리들이 일제히 제황을 쳐다봤다는 것이다.

제황이 가장 위험한 인간이라는 걸 파악한 것... 그 때부터 코카트리스들은 다른 이들의 공격은 모조리 무시한 채 제황을 향해서만 달려들었다. 어찌어찌 그것들을 모두 제압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다른 몬스터들과 싸울 때도 제황의 공격은 오히려 포메이션의 붕괴를 일으켰다.

물론 그걸 제황 혼자만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황과 어울릴 능력의 탱커가 보조해 준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상황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소대에는 그 정도의 탱킹능력을 지닌 탱커가 없었다. 그렇기에 소대장인 박중위의 머리가 깨지는 거다.

“최소한 한계는 알아야 할 텐데...”

박중위는 이전에 테러버드와 격돌했을 때를 떠올렸다. 테러버드의 날개 한쪽을 걸레로 만들어 버리는 그 스킬... 테러버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테러버드의 날개가 약할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테러버드의 특수능력이 비행이기에 모든 마나가 날개로 몰려 오히려 테러버드의 날개는 다른 부위보다 강했다.

그것을 한 방에 부셔버렸을 때부터 박중위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대체 저 괴물과 어떻게 합을 맞춰야 온전한 사냥이 가능할까 하고...

박중위와 성규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제황이 나타났다.

“초번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코볼트 같은 것 나타나면 알아서 사냥하고...”

다른 이들과 틀리게 제황이 초번으로 올라가면 가끔 몬스터를 사냥하기도 한다. 너무 사냥에 열중하는 것도 안 좋지만 주변 감시도 빈틈없이 하고 또 그렇게 잡은 코볼트 들이 꽤 짭짤하기도 하기에 권장하는 형편이다.

“예.”

고개를 끄덕인 제황은 천장에 붙은 사다리를 올랐다.

“교대요.”

“아앗!... 제...제황씨. 수...수고하세요.”

기관포 사로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딴생각에 잠겨있던 민경이 제황의 목소리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는 도망치듯 내려가 버렸다.

-이 여난을 어찌할꼬...

궁기가 비이냥 거렸지만 제황은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민경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궁기에게 설명을 들은 후에야 이해한 제황이었다.

-안기는 왜 안아.

-그만...

당시에는 진정시킬 필요가 있기에 나름 머리를 짜낸 게 그 방법이었다. 후폭풍이 이런 식으로 발생할 줄 알았다면 그런 방법은 피했으리라.

“후...”

가볍게 심호흡한 제황은 무한고에서 스톰레이지과 화살을 꺼내 들었다.

화살을 시위에 건 제황은 상태창을 열어 얼마 전 대결에서 얻은 스킬을 읽었다.

[알 수 없는 스킬] 커먼스킬

-???

-부상의 위험 존재

시합에서 수지가 쓰던 스킬이다. 마지막에 스킬을 얻었다는 알림과 함께 시험 삼아 사용한 결과 단번에 여섯 개의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상태창의 정보들이 의래 그렇듯 설명은 참 불친절하다. 하긴 만약 게임처럼 스킬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면 예전에 궁기옥에 들어가 그 개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이전에 네가 분석한 마나 움직임을 다시 보여주겠어?

-그래.

잠시 후 궁기안의 망막에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회전하듯 끌어올려진 마나가 온몸을 타고 올라가 양팔로 나뉜 뒤 두 손에서 역으로 발출된다. 역으로 회전하는 두 마나가 부딪히며 반발력이 일어나고 그것을 활과 시위에 주입하면 빠른 속도로 시위를 당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화살을 발사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거지.

제황은 화살을 손에 든 채 허공에 대고 찌르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슈슈슈슈슉,,,

단숨에 여섯 번의 찌르기가 만들어졌다.

제약 사항은 간단하다. 두 손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스킬을 사용한 후의 부작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퍼퍽...

가벼운 소음과 함께 팔뚝 부분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빠른 재생 숙련 올리기는 좋겠군.

-그래.

갈 곳 잃은 마나가 팔뚝 부분에서 터진 것이다. 분명 마나의 인도는 맞았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빠른치유를 통해 팔에 난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을 때 궁기가 말했다.

-그 암컷한테 가서 한 번 물어보지?

-무슨 말이야?

-그 스킬의 원주인이니 쓰는 방법을 알 거 아냐. 널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그다지...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 만나면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이전에는 만나면 꼭 물어야 할 게 있다고 그러더니 이제 흥미가 떨어진 건가?... 꽤 미인이던데?

궁기의 말에 제황이 피식 웃었다. 아름다움만 따지면 궁기가 훨씬 미인이다. 그녀가 아름다움이라는 걸 논하다니...

물론 그녀의 말대로 본디 계획은 다시 만나면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딴 최악의 이별문자 하나 던지고 가버렸는지 말이다. 그런데... 다시 만난 그녀에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냉정하게 계산하고 이별을 결론지은 것 같은데 거기에 찬물을 뿌리고 싶지도 않고 딱히 다른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전보다 아름다워 진 것 같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전의 애틋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4년간의 시간이 품고 있던 감정을 함께 가져가 버린 느낌이다. 게다가 자신을 보는 눈빛을 보건데 다시 만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그게 미인인가?

-호... 역시 바람둥이 소양이 깊구나.

놀리듯 말하는 궁기다.

-하도 너랑 오래 있다 보니 미인의 기준이 너무 높아진 것 같다.

-무...무슨! 흠흠... 그건 당연하지만...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다. 제황은 궁기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그녀 모르게 쿡쿡 웃었다. 속이 빤히 보이지만 모른 채하기로 했다.

-그것보다 그녀와 내가 지닌 마나의 성질이 전혀 틀려.

-역시 그런가.

궁기의 물음에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황이 분석한 결과 이건 운용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보유한 마나엔진 즉 용혈기의 문제였다. 당시에 느꼈던 수지의 마나엔진은 온유함과 차가운 성질의 마나였다. 그렇지만 용혈기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나를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성질이 있었다.

-굳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제황은 상태창을 닫았다. 활과 관련된 새로운 스킬이기에 탐이 나기는 하지만 딱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무한고와 궁기안 그리고 자신의 속사스킬 만으로도 비슷한 속도는 낼 수 있기 때문... 게다가 그 속사스킬은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움직일 수가 없어.’

힘의 근간이 하체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속사를 쓰려면 멈춰야 했다. 그러니 제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무련궁술은 전천후 궁술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발을 멈춰야 한다는 건 그 기본이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이다.

주위를 둘러본 제황이 궁기에게 말했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파악해 줄래?

-왜?

-사냥으로 기분 전환 좀 하려고...

-흠...좋아. 나도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좀 나가보지.

제황의 부탁에 잠시 후 제황의 앞으로 붉은 빛이 뭉쳐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황의 상반신만한 붉은매 한 마리가 공중에 나타났다.

삐이이익...

가볍게 한 번 운 궁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꼭 그렇게 울어야 돼?

-매잖아. 일단... 컨셉은 중요한 거야.

-네에.

시덥 잖은 대화를 나누며 궁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몇 마리나 뽑아줘?

-전부...

제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궁기안으로 붉은 원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풀숲과 나무 바위 사이로 붉은 원 수십 개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코볼트 한 마리가 풀숲 사이고 귀여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무장버스를 바라보는 그 얼굴에 보이는 건 오로지 공포 뿐이다.

하긴 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매일같이 학살을 당하다시피 하는데 대항할 구석이 보이겠는가. 이곳에서 인간은 엄연히 침략자다. 잔인하고 교활하며 무자비한 침략자... 그리고 제황 또한 몬스터에 대해 딱히 동정심 같은 걸 가지는 인간도 아니었다.

퉁...퉁...투투투퉁...퉁퉁퉁...퉁퉁퉁...

제황은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무한고에서 화살을 꺼내 주는 궁기는 제황의 손에 화살이 빌 틈 없이 소환해 줬고 제황은 조금씩 속도를 높이며 종국에는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속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퍼퍽...퍼퍼퍼퍽...퍽퍽퍽...

“끼엑!”

“까악!”

곳곳에서 줄기차게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쳐도 은신해도 소용없다. 궁기와 시야를 공유하는 제황의 눈에 사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궁기의 눈을 피하면 제황의 눈에 포착되고 반대로 제황의 눈을 피하면 궁기의 시선을 피하지 못한다. 흩뿌려지듯 날아가는 화살 세례에 무장버스 반경 200미터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난데없는 화살지옥에 떨어졌다.

“끼아아악!”

막 굴을 빠져 나오려는 코볼트에게 소리를 지르던 코볼트의 머리를 화살 한 대가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코볼트가 구슬피 울며 동료의 시체를 끌고 굴 안으로 숨어들어간다.

궁기안 내의 모든 붉은 원이 사라지자 화살비의 주제자인 제황이 헤드셋에 대고 말했다.

“대장님 몬스터 좀 수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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