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대결
“이익...”
3억과 2천만원.. 무려 2억 8천만원 차이가 난다. 돈질로 성질 좀 긁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당했다. 그렇다고 물러서자니 뒤에서 보고 있는 일행들의 눈치가 보인다. 화가 난 그가 자신의 아공간에서 장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3억짜리 엑셀런트 등급 아이템이다.”
그의 말에 제황은 그 장갑을 슬쩍 건드렸다.
[알렉코스사-와이번시리즈- 징 박힌 가죽장갑-엑셀런트 등급]
제질: 블랙와이번가죽
방어력: -받는 데미지 20퍼센트 감소
공격력: -맨손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특수능력
근력:+1
감각:+1
양산품이기는 하지만 꽤 고가의 방어구다.
"대장 어느 정도 값어치죠?"
제황이 박중위에게 물었다.
"시가 3억 짜리 정도는 하겠네. 그런데 중고잖아. 2억"
"모자라다는데?"
박중위의 말에 제황이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본다.
"이이익!"
도발을 하려 하는데 자꾸 역도발에 당하는 느낌...
열받기는 하지만 또 틀린 말은 아니다. 마나석이야 시세가 있다지만 아이템은 쓰게 되면 마모되는 물건이니까.
"그냥 하지."
"그...그래."
제황이 선심쓴다는 듯 말하자 도일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갈았다.
한대 치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내기가 먼저다.
판이 마련되었다. 걸린 게 상당한 금액이다보니 훈련장을 관리하는 이들 중 장교계급 한 명이 심판을 보기 위해 왔다. 웃기는 일이지만 훈련장 내에서 벌어지는 내기 또한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시합은 하되 그것을 통해 뒤끝 없는 마무리를 짓는다는 독특한 관념이다.
내기는 활대결이지만 내용은 조금 바뀌었다. 둘 다 경지에 오른 실력의 소유자였기에 표적의 속도를 최고 속도로 올렸다.
“단판만 하면 재미없으니 세 판으로 하지. 두 판을 먼저 가져가는 쪽이 이기는 걸로 말이야.”
“그러지.”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승리를 자신하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도일이 수지라는 여자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저 녀석들 또 시작이군.
-그러게... 좀 약해 보인다 싶은 초보헌터들 도발해서 코묻은 돈 털어먹는 것도 한두번이지.
주위에서 다른 헌터들이 수근거렸다. 들어보면 저들은 이곳의 터줏대감 같다. 확실히 저들이 이곳에 익숙하다면 제황이 불리하다.그러나 제황은 별로 긴장하지 않은 듯 가볍게 스트레칭을 할 뿐이다.
“시합을 시작합니다. 총 3번의 대결을 펼쳐 2번을 먼저 이기는 분이 승리입니다. 경기 내용은 각자 연습용커브스보우와 50발들이 화살통 하나씩 지급되며 각 사로에 지정된 200미터 전방의 40개의 표적지를 1분 동안 누가 더 빨리 맞춰 쓰러뜨리느냐입니다. 두 분 이해하셨습니까?”
그의 말에 제황과 여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 파이팅!”
대현 쪽 무리들이 훈련장이 떠나가라 소리친다. 반대편에 앉은 박중위는 뭐... 그냥 커피 하나 시켜놓고 가만히 구경 중... 이참에 제황이 지는 것도 한 번 보고 싶다. 지금까지 워낙 완벽한 모습을 보였기에 실패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 중...
“준비... 시작!”
쉬이익...팍!
쉬이익...팍!
시작 소리와 동시에 둘은 엄청난 속사 능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냄과 동시에 이미 시위에 걸렸고 걸리는 순간 이미 잡아당긴 시위를 놓고 있다. 거의 비슷한 속도... 아니... 미세하지만 제황 쪽이 좀 더 빠르다. 아주 약간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황이 약 0.3발 정도의 속도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방심할 수 없는 건 표적지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둘은 화살의 낭비가 거의 없는 정확한 사격을 이어갔다. 1분이 문제가 아니다. 40개의 표적지를 누가 더 빨리 쓰러뜨리느냐로 바뀌었다.
“이러다 지겠다!”
중반이 지나고 속도차이가 보이기 시작하자 대현의 도일이 소리쳤다. 내기에서 패배한다. 아니 패배는 둘째 치고 지금 내기에 올려놓은 물건은 자신이 가진 것 중 가장 비싼 물건이었다. 거기에 제황이 내놓은 5티어 몬스터의 마나석도 탐이 났다.
아무리 그가 헌터라고 해도 3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 또한 아직 초보헌터 딱지를 못 뗐기에 3억은 큰돈이다.
“그걸 써!”
그가 외치자 수지라는 여자가 잠시 움찔했다가 다시금 원래의 자세로 활을 쏘아댔다.
그가 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그러나 그 잠시의 움찔함이 큰 실수였다. 그녀의 패배... 첫 시합이 끝났다.
“1-0”
이변은 없었다. 제황의 승리... 약 2초의 차이로 수지라는 여자가 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도일이 수지라는 여자의 옆에 바싹 붙어 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했다.
“두 번째 시합 시작하겠습니다. 준비...시작!”
두 번째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둘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화살을 날려댔다. 그리고 앞전의 대결과 같이 제황이 미세한 차이로 또다시 앞서기 시작했다.
“씨발! 빨리 써!”
도일이 욕지거리를 하며 외쳤다. 훈련장 내에서 이 대결을 흥미 있게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에 불쾌감이 보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외쳤다.
"빨리 쓰라고!"
그가 외치자 수지라는 여자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곧 두 다리의 보폭을 두 배 늘린 뒤 몸을 꼿꼿이 세웠다.
동시에 그녀의 상체를 푸른빛의 오오라가 감싸고 곧이어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화살통과 활 사이를 움직이는 손이 보이지도 않는다.
“허... 스킬 쓰네.”
시합을 얌전히 구경하던 박중위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물론 사전에 스킬의 사용에 대해 따로 말한 건 아니지만 보통 이런 순수한 실력대결에서는 스킬은 사용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스킬을 쓴다. 딱 보니 속사계열의 스킬이다. 대결에 스킬이 끼면 제황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다. 그렇지만 상대는 이겨도 욕먹을 짓이다.
쉭...팍!
쉭...팍!
제황 또한 속도를 좀 올리나 싶었지만 그녀의 스킬은 순식간에 제황의 스코어를 추월했다.
“1-1”
두 번째 시합이 끝났다. 이번에는 제황의 패배... 스코어는 동점이 되었다.
자신들이 승리하자 도일의 얼굴에 안도가 감돈다. 그러더니 테이블에 슥 하고 손을 가져갔다.
“어쩌냐. 아무래도 이건 우리 꺼 같은데...”
도일이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도발하듯 테이블 위의 마나석을 슬슬 굴렸다. 놈이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기에 활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수지가 그의 말을 듣고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그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가 아는 그녀는 지금보다 더 빨리 화살을 쏠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속사계열에 특화된 헌터다.
“쫄았냐?”
도발하는 듯 말했지만 제황은 입을 다문 채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자신을 상대하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신기하네. 헌터가 되다니...
-너 저 암컷을 아는 건가?
-응. 안다면 잘 알지.
제황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키가 조금 큰 것 같다.
풀페이스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못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속사와 관련된 자세를 가르쳐 준 건 자신이니까.
-저줄 생각인가?
궁기가 물었다.
-글쎄, 저런 마나석은 몇 십 개 더 있어.
-네가 돈 무서운 걸 모르는구나. 많으면 몇 개 팔아서 내 간식창고나 채워라.
-귀찮아. 그리고 질 생각도 없어. 그건 그렇고 저 마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궁기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제황은 조금 전 봤던 걸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건 만난 거고 신기한 건 신기한 거다. 그 동안 활을 사용하는 헌터를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궁기안을 통해 보이는 그녀의 마나 움직임이 꽤 복잡하다.
하체에서 시작된 마나의 선이 나선형으로 일어나 온몸을 타고 흐르다가 축이 되는 왼팔과 화살을 움직이는 오른팔로 흐르는 마나가 이상한 방향으로 다시금 꼬이더니 어느 순간 엄청난 속도로 시위를 당길 수 있게 만든다.
-힘을 마나와 함께 하체를 시작으로 나선으로 회전시키고 있잖아. 저것과 비슷한 수법은 고대에는 태극이니 음양이니 하며 온몸의 힘을 나선형으로 끌어 모아 방사하는 ‘전사경’이지만 저건 좀 더 세련된 수법이다. 간단히 말해서 두 팔로 나눈 마나의 회전을 통해 생기는 척력의 반발력으로 순식간에 돌리는 거다. 세이브라는 그 사기 시스템은 그걸 아예 인간의 몸에 새겨주는 거지. 마치 그 능력치라는 것처럼...
궁기의 설명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론은 이해가 갔다. 전사경에 대해서도 기본은 알고 있을뿐더러 제황 또한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을 필요로 하는 무련궁술의 보유자다.
-좀 더 알려줘.
-대략 이런 방법이었다.
궁기가 궁기안의 망막으로 마나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여 보여줬다.
-어렵네.
-당연하지.
말은 쉬운 듯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속도로 반복되기 때문에 상당히 고난이도의 마나운용이었다.
-그렇지만 감은 잡았어.
제황의 대답에 궁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호호호...쟤 배가 좀 아프겠군. 스킬을 통째로 빼앗겼으니...
-글쎄
“자 마지막 시합입니다.”
1-1의 상황에서 마지막 대결이다. 양쪽 사로에 선 둘은 가볍게 손을 풀었다.
기본 능력으로는 제황이 약간 우세하지만 또다시 스킬을 사용한다면 필패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황의 눈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시작!”
말과 동시에 그녀는 2회전과 마찬가지로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하는지 처음부터 스킬을 사용하진 않는다. 그녀의 모습을 힐끔 바라 본 제황은 빠르게 오른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한 번에 세 대의 화살을 손에 쥔 제황은 그것을 시위에 걸었다.
파파파팟....
궁기안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과녁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분해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제황은 궁기안을 사용하는 걸 자제하고 있었다. 궁기안을 사용하면 엄청난 이점을 지니게 해주지만 그것에 익숙해지면 본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리고 저들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수지라는 여자는 이 훈련장에 꽤 익숙한 듯 보이지만 제황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제 두 번의 대결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마당에 궁기안 또한 사용하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쉭쉭쉭!!!
한 번에 한발씩 쏘는 건 같지만 기존보다 거의 1.3배 빨라졌다.
정확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냥 마구잡이로 날리는 것 같지만 과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화살은 날았고 과녁은 마치 그 화살에 일부러 맞으려는 듯 나타났다가 화살을 맞고 얌전히 몸을 뉘였다.
제황의 옆 사로에서 화살은 쏘던 그녀는 당황했다.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자신보다 훨씬 빠르다. 주먹을 꽉 쥔 그녀의 몸에서 다시금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 그녀도 호승심이 있었다.
“우와아앗!”
둘의 엄청난 선전에 훈련장의 있는 사람들이 환호를 올렸다.
순식간에 화살통은 동이 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후반으로 넘어가는 것... 그녀의 스킬이 제황을 조금씩 따라잡기 시작했다. 역시 스킬의 벽은 넘기 힘든 것... 그때 제황의 어깨에서부터 조금씩 오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것보다 훨씬 미미하지만 그것은 분명 비슷한 현상... 그리고 그 오오라가 일어난 순간 제황의 손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팟!!!
화살을 뽑아드는 속도와 조준하는 속도 시위를 당기는 속도 날리는 속도 그 모든 것이 마치 잔상을 일으키는 듯싶다. 초신속의 속사수라고 불러도 될 듯한 움직임...
“경기 끝!”
“우와아앗!!!! 저거 뭐야!”
제황의 마지막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순간 심판을 맡은 장교의 입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사람들은 제황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마지막에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속사에 모두 놀란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놀란 건 제황의 옆 사로에 아직 시위에 화살을 건 채 쏘지 못하고 있는 수지였다.
“어...어떻게...”
제황이 마지막 화살을 날릴 때 그녀는 시위를 당길 수 없었다. 제황의 몸에서 일어난 이펙트는 그녀에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자신이 스킬을 쓸 때 나타나는 것이었으니까.
제황은 가벼운 날숨과 함께 활을 내려놨다. 속사를 쓸 동안 모았던 숨을 내뱉은 제황은 이내 걸음을 옮겨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잘 쓰지.”
탁...
테이블 위에 놓인 세 개의 물건 중 두 개의 마나석은 무한고로 보낸 제황은 즉석해서 끼고 있던 군보급용 장갑을 벗고 주먹에 징이 박힌 그 장갑을 착용했다.
“너..."
주위에 사람이 많지만 그는 무리들을 이용해 제황을 압박할 마음을 먹었다. 얼굴이 조금 팔리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의도는 초장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워... 우리 다크호스... 돈 벌었네."
거대한 덩치의 성규가 제황의 뒤에 나타나고 곧이어 8소대원들이 모두 제황의 곁으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