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58화 (58/301)

# 58

대결

띠르르륵...

숙소의 이것저것을 손으로 쓸어보고 있을 때 포켓 속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흐흐...잘 지내고 계신가. 날 이곳에 혼자 두고 재미가 좋군.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김소령님. 아주 그냥 좋아 죽습니다.

박중위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쳇... 놀리는 재미가 없군. 저스틴포인트인가?

716전진기지의 김소령이었다. 전진기지 내에서 유일하게 그의 편이 되어 줬던 그와의 통화는 가급적 자제했다. 제황을 자신에게 돌린 것을 들킨다면 그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 잘 도착했습니다.

-대단하다. 대단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내가 모르는 연줄이라도 있었던 거냐? 저스틴포인트라니...

-이야기가 좀 깁니다.

딱히 통화할 겨를은 없었지만 가급적 제황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으려는 박중위였다. 굳이 떠벌리고 다녀서 좋을 건 단 하나도 없으니까.

-하하 좀 서운하네. 뭐 아무튼 그것도 네 복이지.  그건 그렇고 어제 정말 엄청난 일이 일있었다.

-예? 무슨...

박중위는 김대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기무사에서 중대장이랑 보급관 잡아갔다. 와... 딱 들이닥쳐서 중대장 계급장 떼버리는 거 정말 으스스하더군. 그 돼지새끼가 눈에서 눈물 주륵주륵 흘리는데... 크크큭... 꼴 좋기도 한데 불쌍하더라. 혹시 아는 것 있냐?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  알아본 바로는 곧바로 지구로 소환 되서 군사재판에 다이렉트로 넘어간다는데... 아무튼 그 인간들 연줄이 좀 굵어서 잘 살 줄 알았는데...  그 일로 지금 전진기지가 발칵 뒤집혔다.

-형님은 괜찮으십니까?

-뭐 좀 불안해서 나도 아는 선 통해 알아봤는데 까마득한 위에서 내려온 오더라더군. 다행히 콕 찝어 지목했다니 나는 괜찮을 것 같다.

그의 말에 박중위는 제황의 뒷배를 떠올렸다. 그리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이해가 갔다. 버스 이동은 무료하기에 서로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하게 되고 그 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던 건 중대장과 보급관의 전진기지 내 비리였다.

가장 흔한 것으로는 보급 빼돌리기에서부터 게이트 내에 들어오는 클랜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 상납 받기 등이 있다.

그들로부터 그걸 들은 제황이 혹 그걸 권제 어르신에게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이야기 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간다.

결론은... 등골이 오싹하다. 까마득한 꼭대기의 인물로 향하는 다이렉트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역시 김소령에게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박중위다.

-아무튼 잘됐다. 다음에 보면 술 한 잔 하자.

-예.

***

“와아...크다.”

“아우...촌놈들...”

다음날 8소대 전원은 저스틴포인트 내에 있는 헌터훈련장을 방문했다.

“저스틴포인트의 총 규모는 300만평이고 그 중 50만평 가량이 헌터의 훈련장으로 전용될 정도로 헌터의 수련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스킬 수련은 물론이고 개인 수련장 대여도 가능하며 엘어스 내에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구현한 서바이벌 훈련장도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신청하시면 됩니다.”

“워어...”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군의 친절한 설명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무려 50만평 규모의 훈련장이라는 건 쉬이 짐작 되지 않았다.

“자아. 각자 알아서 구경해. 훠이훠이...”

박중위가 소대원들을 쫓았다. 어차피 며칠 간은 임무가 없으니 풀어주려는 것

“제황씨는 나랑 같이 다니고... 괜찮지?”

“예.”

소대를 해산시킨 박중위는 제황과 함께 이곳저곳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것이라 그런지 제황은 이전에 착용했던 턱과 코를 가리는 붉은호랑이 수놓아진 후드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야... 여기서 눈호강하네.”

훈련장이 워낙 크니 훈련하고 있는 헌터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미모의 여성헌터들이 착 달라붙은 검은 타이츠 위로 굴곡진 몸매를 훤히 드러낸 채 열심히 대련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 몰려든 남자헌터들의 눈빛과 박중위의 눈빛이 거의 대동소이 했다.

“저 아가씨들 어때?”

동양인과는 차원을 불허하는 다이나마이트 바디의 외국인 여성헌터들을 눈짓하며 박중위가 물었지만 제황은 그런 것은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시설들만 둘러볼 뿐이다.

제황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끈 건 모든 것이 갖추어진 개인수련장이었다. 한 달에 천만 원이라는 사용료가 붙기는 하지만 수련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것과 철저한 독립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워낙 인기가 좋은 탓인지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개인수련장에 대한 팸플릿을 읽고 있을 때였다.

쉬익...팍...

“야호! 연속 10점!”

한쪽에서 헌터로 보이는 남녀무리들이 헌터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리도록 환호성을 터뜨렸다. 워낙 시끄러 주변을 걷는 다른 헌터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안하무인인 듯 저들끼리 이야기 하고 있다.

“대현이군.”

그들의 어깨에 붙은 마크를 확인한 박중위가 말했다. 대현 클랜... 우리나라 헌터 클랜들 중 탑 1~2위를 다투는 대형클랜이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다수의 고위 헌터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격적인 세확장을 통해 해외 원정도 심심찮게 다니는 곳이다.

그들은 지금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을 훈련하는 사격장을 전세라도 냈는지 이곳저곳에 방만하게 앉아 활 쏘는 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대략 200여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일정한 속도로 과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다가오다가 사라지는 과녁과 공중으로 날아가는 과녁.... 마치 달려가는 몬스터를 상정한 듯한 거대한 과녁판이 세 개가 빠른 속도로 횡이동한다.

쉬익...팍...

쉬익...팍...

사로에서 쏘아진 화살은 여김 없이 과녁들을 명중시키고 있다. 꽤 빠른 속도로 과녁들이 움직이지만 놓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한 타임이 끝났는지 화살을 쏘던 이가 활을 내리고 모니터를 확인한다. 상당히 작은 몸집의 여자다. 특이한 건 머리에 검은색의 풀페이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 수지씨 실력은 언제 봐도 대단해.”

나 좀 놀았어라고 광고하듯 온몸에 요란한 문신을 한 남자가 건들거리며 다가가 여자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방해입니다. 도일씨...”

“아, 미안... 난 그냥 친해지자는 거지.”

“후우...”

도일이라는 남자의 말에 수지라는 풀페이스녀는 낮게 한숨을 쉬며 그에게서 신경을 끈 뒤 모니터를 꾹꾹 눌렀다.

“제황씨도 한 번 할래? 제황씨 주력무기잖아.”

박중위가 제황에게 물었다. 솔직히 지켜본 바로 제황 정도 되는 실력자에게 이런 연습은 거의 무의미해 보이지만 원래 탄탄한 실력이라는 건 기본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제황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응?”

박중위가 제황의 얼굴을 바라봤다. 코와 입을 후드로 가리고 있지만 드러난 제황의 눈매는 지금껏 본적 없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두 눈이다. 이전 몬스터를 사냥할 때도 차가운 눈이었지만 박중위는 지금 제황의 눈에서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저도 좀 하죠.”

“그...그래.”

제황이 카운터로 가서 연습용커브스보우 한 자루와 연습용의 3발 화살이 포함된 53발 들이 화살통 하나를 얻어왔다. 군용유틸리티벨트에 화살통을 체결한 제황이 사로로 들어섰다. 시위를 잡아당겨 장력을 확인한 제황이 연습 삼아 세 발을 쏘아보고는 곧이어 훈련 스타트 버튼을 누른 후 본격적으로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쉬익.... 탁...

쉬익....탁...

그리 빠르지 않은 기계적인 움직임이지만 제황이 쏜 화살은 목표물에 모두 정확히 박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시위를 당길 때 전혀 억지로 당기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허리에서 화살 하나를 뽑아 시위에 걸고 당기고 놓는다.

씨아앙... 팍...

마지막 화살까지 모두 맞춘 제황은 가볍게 호흡을 다듬으며 활을 내렸다.

‘3사로 점수:500만점에 498점’

첫 두발이 9점을 맞춘 것을 빼고는 모조리 만점이다.

“대단한데...”

박중위가 박수를 쳤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헌터라고 해도 무기를 다루는 기본 소양은 자체 훈련을 통해 다듬는다. 물론 조준능력이라던가 투사체에 능력을 부여하는 스킬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랜 헌터경력의 박중위가 볼 때 제황은 그냥 순수하게 활을 잘 쐈다. 단언하는데  전문가를 아득히 뛰어넘은 달인의 수준이다.

그때 도일이라는 문신남이 제황에게 다가갔다.

“와... 활 정말 잘 쏘시네.”

“...”

그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으나 제황은 도일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무시한 채 화살통을 분리하여 카운터로 걸어갔다.

“하...저 새끼가...”

대현클랜의 서도일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상대의 태도에 이를 드러냈다. 자신은 대현의 헌터다. 걸치고 있는 재킷에는 대현의 엠블럼이 새겨져 있고 그것은 곧 그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활 좀 잘 쏘는 놈이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 마치 그것이 대현클랜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다.

본래는 실력이 좋아 보여 얼굴이라도 익힐 마음으로 말을 걸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활에 자신이 좀 있는 것 같은데...태도가 글러먹었네. 예비 딱지도 못 뗀 애송이가... 아깝다 아까워...”

제황의 의무복무 기간인 것을 꼬집어 말한다. 또한 자신 같은 거대 클랜에 소속된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을 안타깝다고 비웃고 있는데 막상 그 말을 듣는 제황은 옆집 똥개 발정 난 소리 듣는다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반응하고는 박중위에게 걸어갔다.

“야!”

끝내 그의 목소리에 고성이 섞였다. 나름 고위 헌터인 박중위가 있는데도 안하무인이다. 물론 그 이유는 박중위가 자신의 부하격인 제황을 방어해주지 않는 기색을 보고 겁먹었다고 판단한 것이었지만 실상 박중위는 별로 제황을 감쌀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4성 헌터인 자신도 제황과의 싸움은 장담하지 못한다. 하물며 도일이라는 문신남은 고작 2성... 아무리 그와 제황이 군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정당방위는 똑같다. 아니 오히려 군인에게 시비를 거는 건 헌터에게 더 안좋다.

훈련장이 떠나가라 소리치자 그제야 제황이 그를 바라봤다. 상대가 상당한 장신이지만 제황의 키도 만만치 않다. 이제 곧 21살이 되는 제황은 그세 키가 커서 이제 186센티의 장신이 되었다.

“하...이제야 쳐다보네.”

갸웃...

제황은 마치 벙어리라도 되는 듯 고개만 까딱했다.

“활 잘 쏘는 것 같은데 우리랑 내기 한 판 어때?”

그의 말에 제황이 박중위를 힐끔 바라봤다. 굳이 걸어온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는 듯 보이자 박중위가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어차피 내기가 금지된 것도 아니다. 헌터들 간의 대련에도 심심찮게 내기를 걸고 노니까.

권장하지는 않지만 막지도 않았다. 내기가 걸림으로 좀 더 실전적인 대결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실력은 향상 될 테니...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황도 도일을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일행에게로 걸어가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곧 수지라고 불리던 풀페이스녀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명백히 싫은 듯한 포즈를 취했지만 도일이 몇 마디 더 하자 이내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대결은 저쪽 우리 유망주랑 하는 거야.”

그 말과 함께 그는 포켓에서 5센티 가량 되는 크기의 투명한 보석을 꺼내들었다.

“난 이걸 걸지. 뭐 내놓을 거 있나?”

그가 꺼내 놓은 건 4티어 몬스터의 마나석이었다. 시가로 약 2천 만원 가량 되는 물건이다.

헌터들의 입장에서 비싼 건 아니지만 이런 내기에 내놓기에는 과한 감이 없잖아 있다.

제황에게 가까이 선 그가 제황의 귀에만 들리도록 속삭인다.

“돈도 없냐? 벙어리새끼야.”

명백한 도발... 그러나 제황은 전혀 동요되지 않은 표정으로 오른손을 슥 뒤집었다. 그러자 제황의 손에서도 마술과 같이 하얀색의 보석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가 꺼내든 보석은 도일이 꺼내든 보석보다 좀 더 크고 빛이 영롱했다. 마치 자체적으로 빛을 만들어내는 듯 은은하게 빛나는 그 보석...

“5티어 마나석...”

제황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본 도일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5티어 마나석... 대략 3억 가량 되는 물건이다. 허술하게 가지고 다니기에는 고가의 물건이다. 제황은 그것을 위로 가볍게 던졌다 잡으며 옆에 탁자에 내려놨다.

“네 배팅이 좀 작아 보이는데 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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