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저스틴포인트
“와아...”
제황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유리가 입을 떡 벌렸다. 계량컵이나 수저 같은 건 필요치 않다. 그냥 마구 들이붓고 대충대충 썰어서 넣는 듯싶은데 만들어진 양념의 맛을 보는 순간 오래간만에 몸과 마음이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마치 오랜 경력의 쉐프가 요리를 하는 듯 착각마저 든다.
타탁..탁...
양파와 당근을 작게 썰어 양념에 넣는 손길이 거의 전문가 수준...
“다음에 해보고 싶으면 시간을 좀 가지고 초벌로 한 번 삶아요. 이 정도 양이면 전통 된장 두 스푼 정도 넣으면 냄새 제거에 더 효과적이에요. 올리브나 개피가루도 좋아요."
“네네.”
유려한 손놀림에 따라 눈을 반짝이는 유리에게 제황이 말했다.
핏물을 뺀 테러버드 속가슴살은 마치 1등급 와규의 등심처럼 탱탱하기 이를 데 없다. 사실 유리는 모르겠지만 테러버드의 속가슴살은 최고급의 식재료로써 상당한 금액에 팔려나가는 부위였다. 워낙 고가라서 미식가들이 아니면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부위다.
게다가 워낙 불에 민감한 식재료라서 다룰 수 있는 요리사가 적었지만 제황은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모두 초월 중이었다.
테러버드 가슴살에 양념을 부은 제황은 그것을 큰 밀폐용기에 담았다.
“양념이 스며드는데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 동안 배식준비나 하고 계세요.”
“네? 네.”
제황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마법에 한동안 얼이 빠져 있던 유리는 제황의 말에 마법에서 깨어나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가 나간 뒤 제황은 커다란 솥을 준비했다. 불에 가장 민감한 테러버드 속가슴살과 씨름을 할 차례다.
-기대중
-네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소대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우...우아아아!!! 이...이건...흑..흐흑...”
테러버드의 속가슴살이라는 말에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작은 고기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입에 집어넣은 현준이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다. 진짜 눈물을 터뜨렸다.
눈에서 연신 눈물을 흘림에도 입은 빠른 속도로 입안에 것을 씹고 있다. 테러버드 양념찜을 처음 먹어본 현준의 반응이다.
“얘 왜 우냐. 하하...그렇게 맛있냐. 오버하기는...”
현준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성규가 자신의 몫으로 떠진 고기를 큼지막하게 잘라 입에 한가득 집어넣고 씹었다. 그 순간...
“어어...”
터져 나오는 육즙은 이미 논외다. 몇 배로 농축한 듯한 고기의 진한 풍미에 정신이 혼란스러울 지경... 고소함과 단맛 짠맛이 예술적으로 얽혀 그의 혀를 농락한다. 그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오늘 이걸 먹는 순간 이후 먹는 모든 고기는 타이어를 씹는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턱은 그의 의지를 배반한 채 엄청난 속도로 씹고 있다.
“허어...허...”
다른 이들도 성규의 표정을 살피며 고기를 한입 두입 입안에 집어넣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고는 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10킬로그램의 고기를 조리해서 상당히 커다란 찜통에 요리를 했는데 테러버드 양념찜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전투식량이나 밥 따위는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이 테러버드 양념찜에 그런 쓰레기 맛이 섞이는 건 죄악이라고 느낄 정도다.
“와... 이게 대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박중위가 양념까지 깔끔히 핥고 지나간 찜통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지막에 남은 한줌의 국물마저 밥을 비벼 삭삭 긁어먹었다.
정말 치명적인 맛이다. 이정도 맛이라면 독이라고 해도 눈 딱감고 먹을 것이다.
처음 비주얼은 그냥 흔한 비쥬얼의 양념찜이었다. 시중에서 흔히 사먹을 수 있는 그런 양념갈비 같은 맛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에 집어넣는 순간 그 맛은 박중위의 양 뺨을 사정없이 치고는 목구멍으로 녹아 들어갔다. 마치 자신을 그딴 것에 비교하냐는 듯... 특별한 걸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특별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라고 느낄 지경....
“요리스킬?”
“예.”
“와아...”
“하... 없는 게 뭐야.”
아직 식사를 끝내지 않은 제황이 입안에 든 걸 꿀꺽 삼키고는 짧게 대답하자 소대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지금껏 겪은 제황은 매일 매일이 새로운 이였다. 아니...지금까지 보여준 능력만 해도 몇 개가 끝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요리 스킬도 있다. 지금 맛 본 것만 따져도 정말 범상치 않은 능력과 재능.... 처음에는 디바우저라고 해서 조금 부러웠는데 이제 그런 것도 사치 같다.
“아아... 배부른데 배고파. 흑..."
지나가 전투식량을 뜯을까 말까 고민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배가 부른데 배가 고프다. 이 이율배반적인 감각에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감정은 그녀 뿐만 아니라 제황을 제외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동시에 겪고 있었다.
"제황씨 우리 상담 좀 하지."
그것은 박중위도 마찬가지다. 신세계를 알아버렸다. 더 이상 쓰레기를 입에 넣을 수 없게 되었다. 모른다면 모른 채 살았겠지만 알아버린 순간 이미 그의 미각은 이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건 정말 큰일이다.
박중위가 전에 없는 심각한 표정으로 제황에게 말했다.
***
결론적으로 말하면 상담으로 포장한 박중위의 제황 전속요리당번 계획은 실패했다. 모든 당번에서 제외시켜 준다는 사탕발림으로 제황을 꼬셔보려 했지만 제황은 견고했다.
전담 요리사라니... 굳이 요리스킬의 랭크를 올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전투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것에 신경 쓸 바에야 그냥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요리라는 것은 의외로 상당한 심력소모를 요구했다. 전속요리당번이 되면 수련에 방해가 될 것이고 그것은 제황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궁기가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으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간신히 식사당번 포함으로 타협한 박중위는 트레일러에 실린 테러버드의 고기로 양념찜을 해달라고 졸랐지만 다른 몬스터 사체와 뒤섞인 고기는 못쓴다는 제황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일등 신랑감이야."
"집에서 살림만 시키고 싶다."
"얼굴만 뜯어먹고 살아도 100년은 거뜬할 것 같아."
“잘생겼어. 능력 좋아. 요리 잘해. 성격만 좀 고치면... 하아...”
그 군기반장 같은 양혜지마저 제황을 향해 하트를 뿅뿅 보내며 추파를 던졌지만 제황은 그야말로 목석과 같았다. 이러저러한 일로 시끌벅적한 1소대는 이틀 후 드디어 저스틴포인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착이구나!"
무장버스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밑으로 들어서자 소대원들은 하나같이 감탄을 내뱉으며 주변을 구경하기 여념 없다.
"아..거참 촌놈처럼...놀라기는..."
"캡은 안 그러세요?"
"나야. 뭐 ... 흠흠..."
박중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이전의 716전진기지의 주기장은 바닥에 콘크리트만 깔았을 뿐 항상 흙먼지가 흩날리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나마 좀 꾸민다고 바닥에 선도 긋고 무장버스 정비창도 하나 있었지만 여기에 비하면 거기는 그냥 노점 수준이다.
높이 20미터 두께 2미터 가량의 이중으로 된 격벽은 놀람의 시작일 뿐이다. 각 요소마다 그물처럼 펼쳐진 대공망... 테러버드가 한트럭 몰려와도 떼몰살 시킬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내부로 들어선 뒤로는 모든 게 전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건 둘째 치고 내부가 이렇게 넓음에도 무장버스가 정차하는 주기장까지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그 뿐이랴. 모든 무장버스에 개별적으로 주기장을 제공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편의시설들이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건 대단한 거다. 모든 게 헌터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설계된 티가 났다. 이제 이곳에서 생활해야 한다.
마음이 벅차기에 앞서 박중위는 문득 며칠 전 소대원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이제 우리가 저스틴포인트 소속이라는 거죠?"
"그래. 너희 셋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716에서 저스틴 포인트로 부대이동 되었다."
"야호!"
군각성자인 피지, 정국, 민구가 그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다를 게 뭐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들은 레이드 시 분배금의 대부분을 강제각성에 들어간 비용을 탕감하는데 들어간다. 고작 3억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자가 6.5프로가 붙는 건 둘째 치고 군대에서 보급으로 나온 장비가 아니면 개인수리를 해야 하기에 거기에 소모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슨 국가 정책에 이자가 6.5프로가 붙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지원자는 차고 넘쳤기에 그런 반발은 소수의견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부에 썩어가고 있는 군각성자 문제에 대해 사회는 소홀했다.
군각성자가 애초에 낮은 재능레벨의 사람들이 지원하는 것이기에 높은 티어의 몬스터를 잡을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바닥만 전전하다가 5년간의 복부기간 중 모두 갚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나마 레이드시 사망하면 그 금액들이 면제되는 게 다행일까.
그런데 그들의 목적지인 저스틴포인트는 한미합작기지이기 때문에 716전진기지처럼 중간에 보급품 가지고 장난칠 수 없다. 게다가 이 근방은 값비싼 몬스터들이 즐비해 돈 벌기도 좋은 곳이었다.
들은 것으로는 웬만한 인맥이나 클랜빨이 아니면 비비기도 힘든 곳이 저스틴포인트라고 했다.
"자...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는 기존의 716전진기지 소속 1소대에서 저스틴포인트의 8소대가 되었다. 각자 소속이 바뀐 걸 명심하고 혼동하지 않도록... 또한 당부 차 말하는데 우리는 소속만 바뀐 게 아니다. 저스틴 포인트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얼굴과 같은 곳. 이전의 716같은 곳이 아닌 정말 강한 헌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그러니 처신에 항상 주의하도록..."
“예!”
"소대장님 우리 자리가 저기 맞습니까?"
상념에 빠져 있는 박중위를 피지가 건져 올렸다. 정신을 차린 그가 전에 적어둔 것을 꺼내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그래. 우리 자리가... 12-5... 저쪽이군."
상단에 커다랗게 12-5 라고 노란 페인트로 적힌 큼지막한 도크에 무장버스를 대자 주기장 앞에는 십여 명의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소대가 모두 하차하자 작업복 차람의 남자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박중위에게 다가왔다.
“박창준 중위님 되십니까?”
“예. 제가 박창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제8소대의 무장버스정비를 책임질 로&수 엔지니어링 정비2팀의 팀장 김광호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광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헌터들은 예민한 존재다. 또한 비싼 몸값을 지닌 이들이기에 헌터들과 트러블이 생기면 잘리는 건 정비팀이었다. 새로 들어온 8소대의 소대장의 첫인상을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 온 것 같다. 바로 전 이 도크를 쓰던 공격대는 완전 개새끼였다.
“그럼 정비 시작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몬스터 사체는 어떻게 처리 되는 겁니까?”
“일단 저희가 무장버스에서 트레일러를 분리하면 저스틴포인트와 계약된 업체에서 처리금액을 계산한 뒤 소대장님께 연락드릴 겁니다. 도축 중 따로 필요하신 부위가 있으면 그쪽에 함께 말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예. 그럼 저희는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정비팀장 김광호의 말과 함께 정비팀이 무장버스에 달라붙어 이곳저곳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자아... 우리는 일단 전입신고를 하러 가지.”
“예.”
이제 새로운 곳에 첫발을 디딘다는 긴장감에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박중위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전입신고는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구 한국군의 전입신고와는 전혀 틀린 방식. 그냥 소대 전체가 가서 헌터라이센스 확인과 전입서류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후 전혀 군인 같아 보이지 않는 예쁘장한 여군에게 호텔 같은 생활관을 안내받았다.
“이야. 여기에 비하면 전에 있던 곳은 달동네 피난촌이야!”
개인실이 제공되는 건 물론이고 그 개인실도 약 11평 정도의 원룸크기다. 물론 이전에 살던 곳도 2인 1실이였기는 하지만 청결도나 세련된 인테리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혜택의 주범인 제황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박중위의 뒤를 졸래졸래 쫓아다닐 뿐이다. 사실 제황은 궁기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테라버드 양념찜을 따로 떠놓는 것을 까먹은 것이다.
“자아, 먼 길 오느라 수고 했으니 앞으로 일주일간 개인정비 시간을 주겠다. 해산!”
“야호!”
소대원들이 모두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자 박중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보풀하나 보이지 않는 새 이불이 침대 위에 잘 정돈되어 있다. 이전의 한국군 막사에서는 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해진 이불을 사용했었다.
도깨비 장난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단 한사람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