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56화 (56/301)

# 56

저스틴포인트

옵서치 공격대는 희생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사히 구조했다. 몇몇 얼빵한 녀석들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박중위에게 들이댔지만 구조신호 포착 시간과 도착 시간을 가르쳐주니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지만 박중위는 자비로운 부처님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용서했다. 트레일러의 절반을 차지한 테러버드의 사체가 그의 마음을 한 없이 넓게 만들어 준 것... 물론 그들이 한발 더 나아가 따졌다면 그 부처님은 야차로 변해 그들을 두들겨 패고 그들의 트레일러에 실린 몬스터 사체를 출동비 명목으로 털어버렸겠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근처에서 레이드 중인 다른 공격대에 인계한 1소대는 다시금 저스틴포인트를 향해 차를 몰아 움직였다. 약 반나절이 지나 서서히 저스틴포인트의 권역에 들어서자 소규모 스쿼드로 움직이는 헌터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이전 그들이 근무하던 716전진기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안과 이 근방에서 수시로 출몰하는 코볼트들은 소규모 스쿼드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땅굴을 파고 서식하는 코볼트들은 워낙 번식력이 좋아  씨가 마를 날이 없었고 덕분에 저스틴포인트는 초보헌터들이 선호하는 최고의 사냥터였다.

더군다나 기지에서 북쪽으로 반나절 정도만 이동하면 3티어에서 5티어까지 값나가는 희귀한 몬스터들이 즐비하다.

굳이 사냥이 싫다면 한국과 미국이 함께 개발하고 있는 미스릴광산의 단기용병으로 들어가도 꽤 짭짤했다.

말 그대로 헌터들의 천국...그런 이유로 이곳에 입주할 수 있는 클랜들은 그 숫자가 정해져 있기에 정말 영향력 있는 클랜이 아니면 발도 붙이기 힘들다.

"아기자기하게 노네."

"코볼트 귀엽네."

하루가 멀다 하고 괴력의 오크라이더들과 레이싱을 벌이던 1소대는 150센티 가량의 작은 키에 앙증맞게 울어대는 코볼트 무리를 열심히 사냥하는 스쿼드를 보며 각자 감상을 말했다.

"여기가 레벨업의 천국이라지."

오크의 경험치가 90가량... 코볼트의 경험치는 20가량이다. 오크가 훨씬 많은 경험치를 주기는 하지만 위험도에 있어서는 오크와 코볼트는 비교불허... 코볼트야 기껏 하는 공격이 할퀴기와 깨물기, 돌진, 손에 잡히는 것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따위겠지만 오크는 평범한 인간정도는 두 쪽으로 찢어버릴 수 있다.

"제황씨는 관심 없나봐요?"

지나가 제황의 곁에 찰싹 붙어 말했다.

"네에."

"쳇...재미없어."

"네에."

제황은 손에 들린 것을  나이프로 세심히 깎다가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의도한 건지 아닌건지 그 먼지가 지나에게 날아갔고 지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쯧...역시 애기살 밖에 못쓰나..."

가운데가 뻥 뚫린 긴 깃대를 손으로 돌려본 제황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지금 제황은 테러버드의 깃털들을 부위별로 가져와 화살대를 만드는 중이었다. 화살깃은 기존의 깃털들을 다듬으면 그대로 사용 가능하기에 중요한 것은 화살의 길이다.

"둘째 날개덮깃도 긴화살은 힘드네."

깎고 있던 걸 무한고에 집어넣은 제황은 이번에는 테러버드의 꼬리깃털 하나를 꺼내들었다. 긴화살을 만들기 가장 좋은 길이의 첫째날개깃 보다 더 긴 깃털이다. 필요없는 부분을 대충 툭툭 쳐내니 지나가 죽는 소리를 한다.

"으아...그 비싼걸..."

지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땅에 한가득 떨어져 있는 털들을 내려다 보았다. 저 바닥에 떨어진 것들만 쓸어 담아 팔아도 몇 십 만원은 할 것이다.

"그 깃털 하나가 50만원 짜리라는 건 알아요?"

"네에."

테러버드의 깃털과 발톱은 모조리 제황이 가졌다. 고가의 장갑차량에 내장재나 헌터들의 전투복등에 사용되는 깃털과 소형무기를 만드는데 좋은 발톱은 테러버드를 이루는 구성물들 중 가장 비싼 품목이기는 하지만 박중위는 쿨하게 제황에게 넘겼다. 제황이 없었다면 옷갖 생지랄을 떨면서 잡았어야 할 테러버드였다.

민경의 각성에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기에 소대원 모두가 찬성했다.

사각사각...

끝부분을 툭 잘라내 휨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을 때 궁기가 물었다.

-그 화살을 만들려는 거야?

-으응

제황이 이전에 엘어스에서 몇 번 만들었던 특수화살이 있었다. 다른 깃털에 비해 좀 두툼한 꼬리깃의 빈속을 무거운 충전물로 채운 다음 깃대의 앞을 날카롭게 다듬고 발톱을 갈아 끼워 넣은 화살이었는데 순수 자연물로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어막을 상당부분 무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냥 공방에 맡겨도 되잖아. 뭘 그리 힘들게 만들어.

-맞아. 그렇지만 사냥꾼이라면 자신이 사용할 화살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지.

-쳇...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는군.

궁기의 대답에 제황이 피식 웃었다. 궁기의 말대로 화살의 제작 정도는 테러버드의 깃털을 공방에 의뢰하면 간단히 만들어줄 것이다. 물론 그 품질도 제황이 만드는 것보다 월등할 것이다. 재료가 비싸서 그렇지 만드는 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들은 제작스킬을 이용해 만드는 거니까. 그렇지만 제황의 아버지는 제황에게 간단한 활제작에서부터 수리, 화살의 제작까지 모두 가르쳤다. 그 이유는 사냥꾼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의외로 이거 재미있다고 수련도 되고...

무료한 버스 이동 속에 시간 때우기도 그만이다. 게다가 촉으로 사용하는 발톱은 워낙 강해서 칼에 마나를 실지 못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 내거나 깎기 힘들기에 섬세한 마나조율하는 훈련에도 그만이었다.

-하...그러세요. 그건 네 마음대로 하고... 곧 드라마 볼 시간이야.

-알았다. 쳇...

본체를 드러내 따로 드라마 시청을 할 수도 있었지만 궁기는 왠지 1소대원들에게 자신의 모습이나 존재를 드러내기 싫어했다.

처음에는 드라마 따위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기 싫은 제황이 설득하려 했지만 영 먹히지 않자 그냥 2시간을 같이 봐주기로 타협한 것이다.

작업하던 걸 무한고에 쓸어 담은 제황은 테블릿에서 궁기가 요즘 한창 보고 있는 ‘아빠의 남자친구’를 틀어놓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다시금 테러버드의 발톱을 다듬었다.

-아... 언제 봐도 너무 두근거려.

-좀...조용히 봐.

-흥. 알겠다.

제황이 궁기를 타박했다. 지금 제황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이지 않지만 제황의 두 눈은 지금 완벽한 사시를 이루고 있었다. 궁기안은 테블릿을 보고 있고 반대쪽 눈은 발톱을 보고 있는 것이다.

“와...제황씨... 몰랐는데 특이한 취미 있네. 남자들은 이런 거 완전 극혐하던데...”

양혜지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제황의 곁에 앉아 테블릿을 바라봤다.

지금 제황이 보고 있는 드라마는 웬만한 드라마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BL드라마였다. 한편만 봐도 멘탈이 조각조각 날 정도이기에 드라마에 환장하는 아줌마들도 호불호의 취향이 갈리는 이것을 천연덕스럽게 보고 있는 것이다.

“...”

굳이 대답도 하기 싫은 제황이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 소대 내의 여자들이 하나 둘 슬금슬금 접근하여 제황의 주변에 앉아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헌터도 여자다. 여자라면 대부분 드라마를 좋아하고 이곳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드라마 같은 것에 목말라 있는 이들... 그런 그녀들에게 제황이 테블릿에 담아온 최신 BL 드라마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특히나 제황을 바라볼 때마다 볼을 붉히는 민경은 다른 여자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드라마보다 제황을 묘한 열기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드라마시청에 빠져 있을 때 막 잠에서 깼는지 배를 북북 긁으며 나타난 박중위가 말했다.

“우리 밥 안 먹나?”

그의 말에 여자들이 자신들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라했다. 어느새 3시간 가량이 흘러버린 것...

“오늘 당번이 누구지?”

“아...오늘은...”

“저요.”

유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요리는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는데 이것은 굳이 성차별적인 역할분담이 아닌 남자들은 요리 외에 수리나 청소 등을 담당했다. 효율을 위해 자연스럽게 나뉜 것...그러나 유리의 말에 소대원들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진다.

탱커로써의 유리는 믿음직한 동료지만 요리하는 유리는 전혀 미덥지 않은 실력의 소유자다. 오죽했으면 유리가 식사를 차리는 날이면 일부러 재료들을 적게 사용했다. 어차피 남으면 다 버려야 하니까.

“오늘 제가 요리 좀 하겠습니다.”

그 때 제황이 손을 슬쩍 들었다. 그러자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는 제황을 바라본다.

“어... 자네 요리 좋아하나?”

“아뇨.”

박중위가 묻자 제황이 고개를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럼 왜...”

“먹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황의 대답에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유리의 요리솜씨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자청해서 가시밭길로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뭐든지 잘하는 제황이 나섰으니 평균 정도는 하리라 생각했다.

“한번 해봐. 필요한 건 유리한테 물어보고...”

“예.”

무장버스를 멈추고 막사를 설치한 뒤 제황은 본격적으로 요리를 준비했다.

유리가 보조로 붙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야채들을 말한 제황이 무장버스에 비치된 냉장고로 향했다.

"상태 괜찮네."

제황은 냉장고에서 테러버드 고기를 꺼내들고 그것을 세심히 살폈다. 이전에 레이드가 끝난 후 일부 잘라뒀다. 요리 따위 그다지 관심 없던 다른 이들은 그 고기의 주인이 누군지 굳이 알려 들지 않았지만 오늘에서야 그 고기가 제황의 것이라는 걸 안 유리가 제황에게 물었다.

“그게 뭐에요?”

“테러버드 속가슴살이요.”

제황은 길고 날카로운 식칼을 휴대용 칼갈이에 슥슥 갈며 대답했다. 다른 부위는 워낙 질겨서 먹기 힘들지만 가슴 안쪽에 존재하는 이 작은  부위만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쫀득하고 부드럽다. 테러버드의 고기 중에서 유일하게 그냥 먹을 수 있는 부위다.

“와...몬스터고기...”

몬스터 고기 요리가 희귀한 건 아니지만 몬스터의 고기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취급 자격증이 필요했다. 고기에 독성이 있는 것이 다수 있었기에 적절한 처리를 할 줄 모르는 이가 요리를 했다가는 단체로 병원행이다.

“자격증 있어요?”

“없습니다.”

“...”

제황의 단답형 대답에 유리의 볼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이런 곳에서 단체로 식중독이라도 걸렸다가는 답도 없다.

“테러버드의 고기는 독성 없습니다. 검색해 보셔도 되요.”

제황이 그녀가 우려하는 바를 말해 줬지만 유리는 좀 미덥잖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네.”

그런 유리의 반응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제황은 빠른 손놀림으로  지방과 힘줄들을 빠르게 제거하고는 곧이어  두툼하게 토막 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약 10킬로그램 정도를 깔끔히 토막 낸 후 일정한 두께로 재단한 뒤 하나하나 촘촘히 사선의 벌집구조를 양쪽에 새긴 후 그것을 커다란 대야에 담아 핏물을 빼기 시작했다.

현란한 제황의 손놀림에 유리가 살짝 감탄을 하며 말했다.

“요리 이름이 뭐에요?”

“테러버드양념찜이요.”

제황의 대답에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가르쳐 주세요. 저도 좀 배우게...”

그녀의 말에 제황이 유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칼집을 내기 전에 핏물을 오래 빼야 하지만 오늘은 급하니 이렇게 하는 겁니다. 생강이랑 마늘 다듬어서 좀 빻아주세요. 양은 작은 주먹으로 두 줌...”

“네에.”

유리가 본격적으로 제황의 곁에 붙어 요리보조를 시작했다. 그녀가 생강과 마늘을 다듬고 있는 사이 제황은 이전에 뜯어놨던 엘어스의 풀을 냉장고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정식으로 등록된 식재료는 아니지만 예전 베어그릭스가 꽤 맛나게 먹던 걸 보고 엘어스에서 생활 할 때 따라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 꽤 달짝지근하며 끝맛이 상큼한 이것은 몸에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흔한 잡초와 모양이 비슷해 아는 사람은 적다.

이건 유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진짜 잡초와 구분하기도 힘들뿐더러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 없다.

타타타타탁.... 달그락달그락....

그것을 아주 잘게 썰어 양념장에 넣은 후 물과 매실액기스와 간장 설탕을 넣은 뒤 유리에게 마늘과 생강을 받아 함께 넣고 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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