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51화 (51/301)

# 51

힘의화살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건 아니지만 유탄에 맞은 움막들에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움막들은 좋은 먹이...

암컷 오크가 헐레벌떡 뛰어 나와 가죽으로 후려쳐 그것을 끄려 했지만 불길은 오히려 가죽으로 옮겨 붙어 종국에는 암컷 오크를 불태웠다. 물속에서도 태워 죽이는 백린으로 된 유탄이다.

“꾸어어억!!”

조잡한 활을 들고 집밖으로 뛰쳐나오는 오크들은 모조리 제황의 화살밥이 되었다. 마치 기계와 같은 움직임으로 가장 위협적인 적을 순차적으로 사살한다. 오크마을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오 쉬름 카락!"

그 때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마을 중앙에 있던 거대한 건물의 한 면이 터져나가며 그곳으로부터 녹색의 거대한 불꽃 덩어리가 절벽을 향해 날아왔다.

"피해!"

박중위가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절벽에 작렬했다.

퍼어엉!!! 쩌적...쿠쿠쿵...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소대원들은 이미 뒤로 물러난 후다. 불덩어리가 그리 빠르지 않았던 것이 다행...그러나  마을을 향해 쏟아 붓던 총알세례가 끊겼다.

"모두 괜찮나?!"

"괜찮습니다.“

빠르게 대피한 덕분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격은 일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오크전사들이 하나 둘 뭉치기 시작했다. 특히 건물을 뚫고 나온 오크의 주변으로 전사 오크들이 떼거지로 뭉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바라본 박중위의 미간이 좁혀졌다.

머리에 해골을 뒤집어 쓴 그 오크는 온몸에 온갖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치고 있었는데 등에는 테러버드의 깃털로 만든 듯한 두툼한 망토를 두르고 손에는 해골과 자잘한 마나석이 붙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분노한 듯 보이는 주술사의 두 눈에서는 초록색 광망이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주술사! 까다롭게 됐군."

"폭발캡슐이라도 깔까요?"

"아니 저 방어막은 그걸 로도 힘들어."

오크 주술사는 오크들만이 사용하는 주술을 사용할 뿐 아니라 머리도 뛰어났다. 단독으로라면 여타의 다른 4티어 몬스터보다 약하지만 전사들에 둘러싸인 오크주술사는 훨씬 위험했다.

오크들이 무서운 점은 그 호전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체계적으로 변하며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공격! 유탄은 확산탄으로 교체! 일단 쏟아 부어!"

투투투툭! 투투투퉁! 퉁퉁!

소대의 화력을 총동원해 공격을 쏟아 부었지만 오크전사들이 들고 온 거대방패들로 둘러싸고 그것들에 초록빛 아우라가 겹치자 총알들은 뚫지 못했다. 그나마 유탄을 발사하자 몇몇 오크들이 폭사해 죽어갔지만 그보다 모여드는 오크들이 더 많다.

"젠장..."

오크들의 방어진이 견고해지자 박중위는 이를 갈았다. 이대로 퇴각해도 액션캠을 통해 전과는 확인할 수 있지만 둥지파괴라는 임무는 실패하게 된다. 총탄의 포화 속에 숨어 있던 오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자 서서히 떨어져가는 총탄을 계산하며 후퇴의 때를 가늠하고 있을 때 제황이 불쑥 나섰다.

제황은 차가운 눈으로 오크주술사를 한 번 노려본 후 손에 두 대의 화살을 소환해냈다.

-궁기... 계산....

-알았어.

두 개를 한 번에 시위에 건 제황은 그 화살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투퉁! 퉁! 투퉁! 투퉁!

엄청난 속도로 공중을 향해 화살을 날리던 제황은 이번에는 한발의 화살을 시위에 건 채 그대로 오크 주술사를 향해 조준했다. 신중을 가하는 듯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멈칫...

앞전과 같이 빠르게 쏘지 않고 뭔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제황이 시위를 놓았다.

'힘의 화살'

파아아앙!!!

앞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제황은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힘의 화살은 쉬이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파괴력은 넷 중 가장 강력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몸에 무리가 갔다.

콰아아아...

제황이 쏘아낸 힘의 화살이 거대한 방패진을 향해 빠르게 내리꽂혔다. 그 속도는 가히 섬전과도 같다.

"우카르 테차하!"

힘의 화살을 발견한 주술사가 외치자 오크들이 방패를 더욱 견고히 했다. 화살에 담긴 힘을 읽은 것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오크들을 덮치는 것이 있었다.

쉬이익! 팍! 파팍! 쉬익! 팍!팍!

총격을 막기 위해 전면을 향해서 방패를 들고 있던 오크들의 정수리로 난데없이 화살비가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제황이 힘의 가감으로 속도를 계산해 공중으로 쏘아올린 화살들 떨어져 내린 것이다.

"꾸어억! 끄억!"

공중에서 내리꽂힌 이십 여발의 화살은 거의 동시에 방패진을 덮쳤고 화살에 맞은 오크들이 방패를 떨어뜨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제황이 쏘아낸 힘의 화살은 오크주술사를 막고 있던 한 오크의 복부에 꽂혔다.

퍼어엉!

강렬한 파공음과 함께 오크전사의 복부에 거대한 구멍이 남긴 화살은 오크 주술사의 심장마저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후로도 힘이 남았는지 오크주술사의 뒤에 있던 오크마저 관통한 후 그대로 벽에 박혀 버렸다.

콰드드득!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쉬림 카라다... 카라차!!"

피가 철철 쏟아지는 가슴을 부여잡은 오크주술사는 눈을 들어 자신을 차가운 눈빛으로 오시하는 제황을 마주 노려봤다. 손에 들린 해골 지팡이로 제황을 가리키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가슴에 난 구멍을 통해 몸의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그를 덮치는 검은 장막...

"움 더 우르크아!!"

마지막 단발마의 외침을 끝으로 오크주술사가 쓰러졌다. 그러자 오크전사들의 방패 위를 덮고 있던 녹색의 기운이 사라졌고 그 방패들은 총탄에 의해 하나하나 파괴되었다.

"지금이다! 공격!"

***

투툭...

화염에 통구이가 된 오크새끼의 신체를 바라보는 제황의 시선에는 조금 착잡한 기분이 섞여 있었다. 전투 중에는 괜찮았다. 그 때는 철저한 사냥꾼의 심장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죽고 죽이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물론 제황은 지금껏 숫한 생명을 죽였다. 엘어스에 혼자 떨어졌을 때부터 생존을 위해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죽여야 했고 손에는 몬스터의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말 그대로 학살이었다. 아무리 몬스터에 대한 증오가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박혀 있다고 해도 이런 풍경은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가 제황의 어깨를 잡아왔다.

"자네도 사람 같아 보일 때가 있군."

박중위였다. 다른 소대원들이 열심히 마을에서 노획물을 챙기고 있을 때 그는 제황에게 다가왔다.

“좀 불쌍하지?”

“...”

박중위의 말에 제황은 말없이 시체를 내려다봤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난 이해를 하지 못했어. 과거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대하는 자세가 이러했을까. 저들이 야만적이기는 하지만 좀 더 인도적인 방법으로 대할 수 없을까. 아무리 저들이 대충돌 당시 지구를 침략한 것들이라도 언제까지 미워할 수는 없잖아. 언젠가 저것들도 인간들과 함께 사회를 이룬 채 살 수 있지 않을까.”

박중위는 총에 관통당해 죽은 오크새끼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다 보고 말았지. 한 공격대가 오크들의 습격으로 전멸했고 그 때문에 오크들을 쫓던 중 오크들의 마을로 들어갔었어. 그곳에서 인간의 팔다리를 맛있게 물어뜯으며 공포에 질려 죽은 인간의 머리를 발로차고 노는 해맑은 오크새끼들을 봤다.”

그의 말에 제황이 등이 부르르 떨렸다.

”오크들은 3년 정도 되면 성체가 돼. 그리고 성체가 된 오크들은 소속된 부족의 대족장의 밑으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지. 만약 시기적절하게 토벌해 주지 못하면 이것들은 모두 자라서 일거에 우리를 덮칠 거야. 이해하나?“

”네.“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박중위가 그것을 일깨워주지 않아도 제황도 배웠다. 이 엘어스에 퍼져 있는 오크들 중에는 감히 인간의 힘으로 건드릴 수 없는 군세들이 존재했다. 약탈경제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갖추고 수천수만의 오크전사들이 뛰어들면 인간들은 디멘션게이트에서 철수해 공격해 들어오는 오크들을 방어하기 바쁘다.

게다가 놈들에게 적이라는 건 곧 먹이와 같은 맥락의 단어였다.

보급이 필요 없는 무시무시한 군세가 바로 오크다.

특히 최악의 경우는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오크들의 준동을 얕본 중국은 한 때 서남부 일대를 아예 오크들에게 빼앗기기도 했었고 그 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중국이 아무리 헌터가 많다 한들 방어할 곳은 많고 숫자 놀음이라면 오크들도 중국 못지않았다.

자만하던 중국은 그 넓은 땅덩어리를 같은 인간도 아닌 몬스터에게 빼앗겼고 중국은 자국 내에 새로 생기는 디멘션 게이트는 아예 콘크리트로 산을 만들어 막아 버리는 형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그 꼴이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오크들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만이 현재로는 정답이다.

"옴 더 우르크아!"

그때 집안에 숨어있던 한 암컷 오크가 돌망치를 손에 들고 박중위를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는 전쟁터이자..."

타탕! 탕!

가슴과 머리에 총알이 박힌 암컷 오크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아무 표정변화 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박중위는 홀스터에 권총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지옥이야."

***

”캡! 끝났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초토화된 마을에서 전리품의 수습이 끝났다. 그 내용을 보면 거의 오크들의 심장이었는데 일단 마을에 오래 머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겼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오크주술사가 머물던 건물에서 인간들의 것으로 보이는 귀중품들과 마나석 등을 얻을 수 있었고 특히 오크주술사가 걸치고 있던 테러버드의 깃털로 만든 망토와 들고 있던 지팡이에는 4티어의 마나석 다섯 개가 붙어 있어 꽤 짭짤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모두 철수한 뒤 전리품을 검토해 보자.“

”예!“

***

우르르르...

무장버스가 위아래로 덜컹거렸지만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투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모두 늘어져 있었다. 일단 자유임무가 끝났기에 현재 무장버스는 북쪽의 저스틴포인트를 목적지로 잡은 채  달려가고 있었다.

“흠흠... 천하사님”

스톰레이지를 점검하던 제황은 고개를 들어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피지라는 이를 바라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경계를 하면서도 유쾌하게 대했지만 제황이 전투를 거치며 본신의 실력을 보이자 어느 틈에 제황의 대한 그들의 호칭에는 ‘님’자가 붙었다.

버스 뒤편에 잠들어 있던 박중위가 슬쩍 눈을 떴다가 그냥 감아버렸다.

리더의 입장에서 새로 들어온 이가 너무 튀는 것은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만 그 튀는 정도가 그의 상상을 매번 뛰어넘기에 반 정도 포기해 버렸다.

아무리 박중위가 또라이에 반골기질이기는 하지만 권제의 손자라는 타이틀은 그런 체질까지 개선해 주었다. 적당히 비비고 개길만한 대상에게나 개기는 것이다. 게다가 드러난 제황의 실력은 4티어의 그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특히 마지막에 보였던 그 엄청난 힘의 화살은 감히 품은 공격력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무려 4티어 오크주술사를 오크 두 마리와 함께 통째로 꿰뚫어 버렸으니까.

물론 원거리에 특화된 활이기에 근접전에서 붙으면 자신이 이기겠지만 몬스터 사냥 하나만 두고 보면 제황은 거의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황이 그의 지시를 잘 따른다는 것일까. 이제는 생각하는 걸 포기해버린 박중위였다.

”예.“

”특수차량운전면허증 있으십니까?“

피지가 물었다.

”아뇨.“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배우고는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일단 이리로 와서 좀 보세요. 운전은 할 줄 모르더라도 지도와 네비게이션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네.“

그의 말에 차량의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차량의 운전석은 좀 특이하게 생겼는데 핸들이 마치 항공기의 조종석처럼 조수석에도 달려 있었다.

”그쪽에 앉으세요.“

피지의 말에 제황은 조수석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매자 자연스럽게 두 손에 핸들이 잡혔다.

"중장거리 이동이 많고 비록 강화방탄유리로 되어 있지만 운전자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전투시에 운전은 두 명이 맡습니다. 혹 제가 잘못되더라도 제 뒤로 정국이와 민구가 핸들을 이어받게 훈련되어 있죠."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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