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반물질수저의힘 (수정)
“거리가 길어지니 마나소모가 크네.”
제황이 소모마나를 가늠하며 다시금 시위를 당겼다. 비상하는 화살은 거리에 비례하여 마나소모가 크다. 대충 계산은 나왔으니 이제 처리할 때... 진천격에 붙은 무음살이 아니더라도 화살의 속도가 음속을 돌파하면서 소리에 대한 걱정은 없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씨이이앙! 씨이앙! 씨이잉!
거의 초당 한 발 꼴로 애기살을 날려댄다. 그것들은 앞전의 것과 같은 궤적을 그린 채 오크라이더들을 향해 날아갔고 날아간 화살들은 어김없이 오크라이더들에게 명중했다. 이전과 같은 폭발은 없었지만 화살은 어김없이 오크들에게 명중했다.
놈들과의 거리는 무려 3킬로미터다. 말이 3킬로미터지 일반인은 적아를 구분하기도 힘들 정도로 먼 거리... 총으로도 어림없는 거리건만 3킬로미터를 날아간 화살은 오크들의 목줄기에 정확히 명중해 들어갔다.
“어...어어...”
박중위는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쌍안경으로 적을 확인할 정신도 없다. 이런 건 그의 헌터 경험 중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비슷한 건 봤다. 사격과 관련된 스킬을 지닌 한 헌터가 약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신형 대물저격총으로 빠르게 저격하는 것을 참관한 경험은 있다.
그런데 이 신입은 그걸 활로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이런 건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파아앙!
씨이이앙!
사나운 충격파와 함께 날아간 마지막 화살이 미친 듯이 도망치는 오크라이더의 뒤통수에 작렬하는 순간 제황은 그제야 활을 내렸다. 주인을 잃은 잿빛의 거대 늑대들은 기수들이 죽은 걸 확인하고는 저항도 하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휘이이...
덜컹...덜컹...
제황의 마법과 같은 사격에 정신을 놓고 있던 박중위는 문득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위아래로 덜컹거리는 걸 느꼈다.
“아...여긴... 흔들리는... 차...위?”
발뒤꿈치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소름이 다닥다닥 타고 올라왔다. 전율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제황의 사격에 너무 놀라 아예 잊어버리고 있던 게 떠올랐다.
‘흔들리는 차 위에서 활로 3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의 늑대를 타고 달리는 오크라이더를 맞춰?’
-..피...피지...
-옛써! 캡!
-저...정차해봐.
-예...예? 오크라이더 정찰대가 붙지 않았습니까?
-그것들은 일단 정리되었어. 정차해봐. 나 지금 지릴 거 같다.
-예. 알겠습니다.
자신이 지금 뭘 본건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 박중위였다. 박중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커브스보우를 갈무리하는 괴물을 바라봤다. 최현일과 민경도 이쪽을 바라본 채 턱이 떨어질 듯 입을 벌리고 있다.
“천하사..”
“예. 소대장님.”
“우리... 잠시 상담 좀 하지.”
박중위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도 할 말이 많다.
박중위와 제황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소대원들이 오크라이더들을 수거하러 나섰다.
“난 태어나서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실화야?”
사체들을 모두 모아놓으니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한 마리당 한발... 그것도 전부 헤드샷이다. 2티어든 3티어든 생명체 형태의 몬스터라면 뇌와 같은 급소 부분을 공격당했을 시 백이면 백 즉사다.
그나마 트롤 같은 경우가 좀 버티지만 트롤도 잘못 맞으면 재생 후에도 병신이 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체 방어력이 좋은 몬스터의 머리는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
투툭...투투툭...
머리에 꽂힌 화살 하나를 뽑아들었다. 화살에 뭔가 비밀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하고 면밀히 돌려봤지만 화살은 아주 흔하디흔한 모양의 짧은 화살이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살이다. 무게가 더 나간다거나 혹은 특수한 재질 같지도 않다.
“일단 실어보자.”
“예.”
무장버스 후미에는 거대한 몬스터수거용 트레일러가 달려 있었다. 한번 출동하면 외부에 장기간 있기 때문에 몬스터의 사체를 보관할 트레일러는 필수... 오크들의 사체 또한 일부 부위가 비싸게 팔리기에 보관해야 했다. 오크들을 실고 있을 때 제황과 박중위가 나타났다. 살짝 상기된 표정의 박중위와 무덤덤해 보이는 제황...
“우리 아무래도 임무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겠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박중위는 제황에게 들은 것들을 모두와 공유했다.
그리고 박중위의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제황을 바라봤다.
“힐러 스킬을 갖춘 초장거리 저격 능력을 지닌 디바우저라...”
“혹시... 실례가 아니면 몇 미터까지 가능하세요?”
민구가 물었다. 그러자 제황은 자신의 애병인 레이지스톰에 달린 최대사정거리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 이상으로 쏘면 아무리 순수미스릴로 만든 활이라도 무리가 간다. 어차피 통아는 사정거리에서 제외한다. 장거리 저격 외에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까.
“4킬로미터요.”
“히익...”
“미...미친! 아...미안...”
이곳에 모인 이들이 모두 헌터들이기에 일반인과는 힘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틀리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100킬로그램 정도는 한손으로도 들 수 있는 이들이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이들이라도 4킬로미터의 거리를 격해 수박만한 물체에 화살을 꽂아 넣으라고 하면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이 먼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그 거리가 활에 써진 유효사거리라는 것과 통아를 사용하면 더욱 먼 거리를 저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최현일이 물었다. 이런 가공할 능력을 지닌 디바우저라면 아마 우리나라 클랜들은 둘째 치고 세계 모든 클랜에서 등에 돈다발을 짊어지고 왔을 것이다. 돈다발? 우습다. 황금으로 가득 채워서 그의 앞에 깔아줬을 것이다. 자기네 클랜 가는 길까지 황금으로 길을 만들어 주겠다고...
이정도 능력이면 정부에서도 어떻게든 특별 관리를 했을 것이다.
절대 이런 디멘션게이트 전진기지 정찰부대에 올 인물이 아니었다.
“소속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황의 조금 무뚝뚝한 대답에 모두가 아리송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뭐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랴.
“영상 뺐다. 모두 봐봐...”
양혜지가 무장버스 내에 비치된 모니터를 누르자 잠시 후 오크라이더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을 덮치는 재앙...
“화살이...무슨... 폭발하는 건가요?”
“예. 마나소모가 좀 크긴 하지만 투사체를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제황의 대답에 다시금 입이 벌어진다.
“허헐...”
이제는 놀라기도 지쳤다.
이건 단순한 저격 능력이 아니다. 녹화된 영상을 시청한 이들은 기함했다. 첫 번째 화살이 폭발하듯 오크라이더들을 덮치는 것을... 화염도 연기도 없는 걸 보면 그의 말대로 투사체의 공격력과 관련된 스킬도 지니고 있는 게 확실하다.
말 그대로...
“인간 포병대네.”
어제보다 매우 얌전해진 피지가 그 영상을 부릅뜬 눈으로 보다가 그렇게 한마디 소감을 말했다. 그렇다. 그의 말대로 이 천제황이라는 인물은 그냥 인간대포였다.
“자...모두 주목...”
그때 박중위가 모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시선이 모이자 잠시 헛기침을 한 박중위가 입을 열었다.
“이런 이유로 천하사와 상의를 해 본 결과 천하사와 나는 몇 가지 의견의 일치점을 봤다.”
“??”
“천하사의 목적은 빠르게 강해지는 것... 즉 레벨업이다.”
“딸꾹...”
민경이 딸꾹질을 했다. 그가 보인 믿을 수 없는 능력으로 인해 그가 이제 이곳에 들어온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예비헌터라는 걸 망각하게 만들었다. 아마 다른 소대 같았으면 지금 어리버리 뛰어다니며 게이트 내의 환경에 적응하기도 바빴을 완전 쪼렙... 문제는 그 쪼렙이 인간 대포... 대체 레벨업을 하면 얼마나 강해진다는 말인가.
“무시무시하군. 디바우저라는 건...”
디바우저라는 게 모두 제황같지는 않지만 평생 디바우저라는 걸 들어보기만 한 그들에게는 제황이 자신들과 같은 각성자로 보이지가 않았다. 왜 디바우저를 가지고 진정한 각성자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아아... 감탄은 나중에 하고 일단 우리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
그 후로 그는 제황과 이야기 한 것을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한 마디로 저희는 돈을 저 친구는 경험치를 얻는다는 말이군요.”
성규가 말했다. 어차피 군소속 헌터는 직업용병과 같은 신세로 군에 메여있는 것이었다. 결국은 돈이 목적이라는 것...
“간단히 설명하면 그렇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까 같은 정찰대 규모면 100마리 규모로 일제히 달려들지 않는 한 처리 가능하다고 하더군.”
“배...백 마리...”
소대의 군기반장 역할을 하는 양혜지도 이번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들의 소대와 100마리의 오크라이더가 부딪힌다면? 30mm 기관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조건 도망치는 게 맞다. 게다가 기관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역시 소음이다.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이십니까?”
최현일이 물었다.
“어쩌긴 우리는 716전진기지를 완전 이탈하여 이대로 끌고 저스틴 포인트로 들어간다.”
“예?!”
박중의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저스틴 포인트라는 것은 약 10년 전 한미 공동으로 꾸린 전진기지의 이름이었다. 한국군이 관리하는 716전진기지와는 다르게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다스리는 곳이었는데 낮은 세율과 거대한 개척민도시 그리고 현대적인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되면 716전진기지에서는....”
성규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본래 소속된 소대가 사냥한 것은 해당 전진기지에서 처리하는 게 원칙이었다. 만약 이를 어길 시는 최악의 경우 헌터라이센스가 취소될 수도 있는 중대한 행위... 그리고 이를 통해 716전진기지를 다스리는 중대장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몬스터 사체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보급관은 중대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나도 생각이 있지. 물론 우리가 716에 소속되어 있는 건 맞지만 누군가 힘을 써주신다면 우리의 소속을 저스틴포인트로 옮길 수 있어.”
애매모호하게 누군가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 박중위다. 모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수긍하는 눈치다. 박중위가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닌 것...
“아니 힘을 쓴다는 게 대체...”
“그 빌어먹을 중대장이랑 보급관이 용인 하겠습니까?”
“글쎄 나도 일단 그게 궁금하기는 해.”
그 말과 함께 박중위는 제황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
-소속 소대를 저스틴 포인트로 옮기고 싶다고?
“예. 할아버지.”
-흠... 뭐 알았다. 어려운 건 아니니까. 믿고 적당히 맡길 놈이 있지. 그건 그렇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떠냐.
“좋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알겠다. 내일까지 조치해 두지. 아 그리고 제황아.
“예. 할아버지.”
-일 있을 때만 전화하지 말고 평소에도 좀 해라.
“죄송해요. 여기 적응하느라 바빠서...”
“흠...아니다. 게이트에서 고생할 텐데 내가 흰소리를 했군. 아무튼 알겠다.”
“예. 할아버지.”
띠릭...
제황이 전화를 끊자 제황을 둘러싼 눈들이 제황에게 무언의 물음을 날리고 있다.
그 중 가장 궁금증이 도는 듯한 박중위가 나서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내일까지 옮겨 주신다네요.”
“와...”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다.
“여...역시..”
“워... 며칠이 걸릴 줄 알았는데... 하루...이게 말로만 듣던 반물질수저?”
그들은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걸 제황이 전화 한통으로 해결해 버리자 모두가 놀라 입을 벌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저 믿을 수 없는 무력을 지닌 신입은 말도 못 붙일 정도로 강력한 인맥을 자랑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 백보다 강력할 것이다.
“권제님의 손자...”
“하... 캡...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예요.”
“후후...그러게 나도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사실 박중위도 반신반의했었다. 사실 제황에게 저스틴포인트에 대해 이야기 했던 건 가장 이상적인 방향에 대해 말해 본 것뿐이었다. 이쪽 지구의 위치로 보자면 대략 개마고원 방향에 있는 그곳은 일종이 한미연합기지였다. 근방에 대량의 미스릴광산이 있다는 걸 눈치챈 미군이 무기증여를 미끼로 한 다리 걸친 것이다.
게다가 716전진기지와 틀리게 그 근방에는 돈이 되는 몬스터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뿐이랴. 가장 좋은 것은 716전진기지에서는 사냥해온 몬스터 사체에 대한 제대로 된 정산도 받지 못했었다. 중대장과 보급관이 짜고 그것들을 전횡했지만 누구하나 그것을 말리지 못했었는데 저스틴 포인트에서는 그럴 염려도 없었다.
본래는 정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건 좋게 말해서 옮기는 거지 사실 탈영과 마찬가지였다. 세상 어느 군이 소대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을 용인하겠는가. 당장 박중위가 군법에 회부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짓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누군가의 간단한 말 한마디에 그냥 성사되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기호지세라고 부르던가.”
“차라리 잘 되었어. 어차피 박중위님 거기서는 완전 미운털 박혔었잖아.”
“맞아. 잘 된 거야.”
졸지에 소속부대가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 박중위 덕분에 모두 고생하기는 했지만 소대원들은 박중위를 믿고 따랐다. 무리한 임무는 과감히 거절한다. 다른 소대처럼 자신의 평가를 우선시하며 소대원들을 무리한 임무에 투입하는 게 아닌 철저히 소대원들을 위해 움직였고 그게 쌓여 미운털이 박힌 격이다.
“아무튼 이제 이동계획을 세워보자. 든든한 유망주가 들어왔고 또 레벨업에 목말라 있으니 우린 그에 맞춰 계획을 짜봐야지. 잘 모셔라. 이제부터 우리 목숨줄이시다.”
***
-제황...
-왜?
-도움 안 받는다며...
-할아버지가 융통성을 가지라고 하셨어. 가진 것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것도 바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