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48화 (48/301)

# 48

인간대포

"오크... 군요."

"그래. 활을 다룬다더니 눈 좋은데? 보자... 오크라이더군. 잿빛늑대를 탄 오크라이더 10기면 검은피 부족인가...사냥을 나왔나보군. 아... 참고로 검은피 부족은 대략 10,000마리 안쪽의 세력을 지닌 거대 오크 무리야. 가장 흔하게 부딪히는 놈들이지."

쌍안경으로 색적을 확인한 박중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문명 수준은 딱 부족사회 정도야. 적지 않은 규모기는 하지만 이 근동에서는 저런 규모의 오크무리가 다섯 개 정도 돼.”

“네.”

적을 발견한 것 치고는 박중위의 목소리가 느긋하다.

"지금처럼 우리가 있는 곳은 관측병들이 적들을 육안으로 감시하는 곳이야. 보통은 레이더가 찾아주지만 저렇게 레이더가 교란되는 언덕지형에서는 눈으로 확인 해줘야 돼. 이해했지?"

"예."

"그건 그렇고 첫 상대치고는 별로 안 좋군. 이 빌어먹을 엘어스 유사인종 중 첫 번 째 세력을 차지하는 것들이 하필 우리 인간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의를 보이는 오크 놈들 이라니...아... 엘어스의 세 가지 종족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박중위의 말에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어스에는 크게 세 가지의 유사인종이 존재했다. 가장 숫자가 많은 것은 지금 박중위와 함께 바라보고 있는 오크들이다. 엄청난 힘과 번식능력을 지닌 이것들은 엘어스에서 가장 흔한 양아치들이다. 지조 있는 원시약탈경제의 산 표본이니까. 야만적인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에도 그 신체적 우월성으로 대륙을 지배하는 놈들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자신들을 드라코라고 부르는 머리에 뿔이 달린 유사인종으로 주로 산에 사는 놈들이었는데 한 때 이들은 이 엘어스를 지배하기도 했던 종족이다.

과거에 월등히 뛰어난 문명을 지니기도 했던 이들은 다른 종족들과의 전쟁으로 과거의 찬란했던 문명을 많이 잃은 종족... 멸망의 길을 걷는 종족이기는 하지만 저들의 대륙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그들이 세운 도시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게다가 몬스터들 중 리자드맨들을 노예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향도 있다.

마지막으로 원주민으로는 그나마 유일하게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며 비교적 평화적인 종족 수인족들이다. 여기서 비교적이라는 건 최소한 대놓고 공격은 안한다는 뜻이지 절대 우호적이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나마 지구의 일부 국가가 이들과 접촉하면서 엘 어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소대에 알린다. 2시 방향 약 7킬로미터 전방에 오크라이더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되었다. 숫자는 10기...  경계 태세로 전환...

적의를 가진 것으로 짐작되는 오크라이더들이 다가옴에도 박중위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이를 데 없다.

“영악한 놈들이야. 다른 지성이 떨어지는 몬스터와는 다르게 저것들은 우리랑 꽤 많이 싸워서 우리가 가진 화기의 사거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대략 2킬로미터 거리에서 우리를 견제하면서 쫓아올 거야. 기관포를 쏘면 놈들을 쫓을 수는 있지만 그래봐야 탄약 낭비에 재수 없으면 소리를 들은 고위 몬스터가 꼬일 수 있으니까. 아무리 소음 처리가 되었다고 해도 이 기관포는 어쩔 수가 없어.”

그 말에 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관포의 포신을 바라봤다. 엘어스에서 사용되는 모든 화기류는 의무적으로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다. 그것은 화기가 가진 어쩔 수 없는 소음이 몬스터들을 자극하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리 소음 처리가 되었다 해도 30mm포의 소리는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것이다.

철컹...위이잉...

무장버스 천장 한쪽이 열리며 제황이 서있는 곳과 비슷한 30mm 기관포 포사가 올라왔다. 그 곳에는 남녀 둘이 서 있었는데 한명은 아침에 제황에게 중계기를 설명해준 최현일이었고 한 명은 아침 식사시간에 잔뜩 주눅 들어 있던 민경이라는 여자다.

“현재 우리 소대원 중 예비헌터들 빼고는 모두 만렙인 상태야. 저들을 사냥해도 얻을 게 없다는 거지. 그래서 일단 예비헌터들이 공격을 맡지. 일단 여기 앉아.”

박중위가 제황은 30mm기관포 사수자리에 앉혔다.

“발사체는 공중폭발탄으로 바꿔 줄게. 활 계열 스킬이 있다고 하니 저쪽보다는 유리하겠지. 일반탄보다 유효사거리는 짧아 대략 1000미터 정도 보면 될 거야.놈들을 지휘하는 놈이 노련하다면 접근하지 않겠지만 저 놈들이 원채 머리가 나쁘고 성격이 급하니 한두 놈 접근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운전하는 피지 녀석이 녀석들을 유도하기도 할 테고... 그 때 단발로 쏴서 잡아. 이해했나?”

“예. 그런데 저쪽은 괜찮은 겁니까?”

박중위에게 옆 포사를 곁눈질하는 제황이다. 그곳에는 제황과 마찬가지로 최현일이 민경이라는 여자를 사수자리에 앉힌 채 이것저것 조정하고 있는데 사수 자리에 앉은 민경이라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파랗게 질려 있다.

“휴우... 쟤는 언제 정신을 차릴지...”

박중위의 한숨이 내쉬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제황의 물음에 박중위가 고개를 돌려 오크라이더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들어오기 전까지 쟤가 우리 소대의 메인힐러로 배정되어 있었어. 이전에 있던 힐러가 제대하면서 새로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스페셜 등급의 힐스킬 두 개가 있다기에 내가 여기저기 기름칠 해가며 간신히 우리 소대로 끌고 왔지.”

잠시 말을 멈춘 박대위가 안타까운 눈으로 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 공황장애야.”

“예? 공황장애요?”

공황장애라는 말에 제황이 반문했다.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헌터가 공황장애라니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바 공황장애에 빠진 헌터들은 공황장애를 치료하지 못하면 백이면 백 은퇴를 해야 했다. 분노조절장애보다 더 안 좋은 게 공황장애다.

“그래. 공황장애...자기도 몰랐었나봐. 처음에 봤을 때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첫 전투에서 드러나더군. 심하지는 않지만 힐스킬을 연달아 실패하면서 몇 명 불구가 될 뻔했지.”

“원칙상으로는 돌려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힐러이니 찾는 곳은 많을 텐데...”

힐러가 힐을 실패한다면 그건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맞아.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저 친구가 그러더군. 한 달만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공황장애를 극복해 보겠다고 사정하더라고... 어릴 때 부모가 몬스터에게 살해당했다나. 그 복수를 위한 거라는데 안타깝게도 그 때 얻은 트라우마가 공황장애로 나타난 거지. 뭐 전투상황만 아니면 크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 것도 있고 힐러 충원을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니 그 전까지만 데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마침 자네가 나타난 거지.”

그 말과 함께 박중위가 제황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니 자네의 레벨업이 정말 중요해. 자네가 빨리 커줄수록 우리 소대 전투안정성이 높아지니까.”

박중위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자인 박중위의 운영방침이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자신의 레벨업을 가장 우선시 해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이곳에 온 건 레벨업을 위한 것이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이 강해지면 저 민경이라는 아가씨에게도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손해는 아닐 것이다.

제황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오크라이더들을 주시했다. 현재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 비스듬하게 삼각대형으로 쫓는 걸 보면 지휘하는 놈이 상당히 노련해 보인다. 박중위 말대로 성질 급한 놈이 달라붙어 주면 좋겠지만 입 벌린 채 감 떨어지기를 바랄 마음은 없었다.

물론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이제 조준점에 대해 설명하지.”

“질문 있습니다.”

“음. 말해.”

“저것들은 제가 모두 잡아도 상관없습니까?”

“하하,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부탁하고 싶네. 앞으로 질리도록 만날 녀석들이거든.”

제황의 물음에 박중위가 파안대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그 대답에 제황은 고개를 끄덕인 후 사수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에 무한고에서 스리핑거 슈팅글러브와 은은한 금빛이 감도는 길이 1.4미터의 커브스보우를 꺼냈다. 손잡이를 기준으로 긴 뿔 두 개가 돋아나 있었는데 그 끝은 송곳과 같이 날카롭다.

“그럼 처리하겠습니다.”

[에드 마르카넨-레이지스톰]- 슈페리어 등급

활세기:400파운드

최대사거리:4000미터

유효사거리:1500미터

재질:미스릴

특수능력

가속(A급)

가속(B급)

가속(B급)

가속(B급)

슈팅글러브를 손에 착용한 제황은 커브스보우를 내려다봤다.

권제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명품 커브스보우다. 비록 물질적으로 받은 건 없지만 권제의 인맥을 통해 핀란드에 사는 숨어있는 활제작의 명인을 소개 받았다.

권제가 소개해준 건 에드 마르카넨이라는 노인이였는데 거의 지인을 통한 주문제작만을 하는 그는 제작을 하지 않을 때는 술에 절어 산다고 했다. 제황은 그를 통해 새로운 활의 제작을 의뢰했다.

물론 비용은 모두 제황이 댔다. 무련궁술이 활에 가하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관계로 최고의 명품을 바랐던 제황은 엘어스에서 2년간 살아남으며 모았던 마나석의 절반을 권제를 통해 팔아 120억을 마련했고 그 돈을 고스란히 활 제작에 투자했다.

제질은 미스릴, 웬만한 고가의 커브스보우도 거의 합금인 추세에 제황은 모든 부분을 미스릴로 제작 의뢰했다. 제작에 들어간 미스릴가격만 무려 80억이 들었다. 엘어스에 미스릴 광맥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광산개발초기이기에 그 가격은 무시무시했다. 거기에 나머지 40억이 고스란히 공임비로 들어갔다. 어떻게 40억이 공임비냐고 의문을 표할 수 있지만 특수스킬을 인첸트하기 위해서 활에 새기는 세공 작업의 난이도가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인첸트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문제가 발생했다. 제황이 의뢰한 활의 인첸트 작업까지 마무리 된 후 이 알콜중독 명장은 다른 작품에 인첸트할 것을 실수로 제황의 활에 인첸트 해버렸다. 제황이 주문한 활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심력 소모가 심해 착각해 버린 것...

제황이 활의 디자인을 최대한 평범하게 부탁한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손잡이의 부착된 두 개의 뿔도 탈부착형이라 그걸 빼면 거의 구분이 안가는 평범한 모양이었기에 명장이 실수해버린 것이다.

대형사고 였다. 인첸트라는 것은 활에 원하는 특수능력의 마법진을 세공한 뒤 명인이 직접 제작한 인첸트 스크롤을 통해 완성하는 것이다. 보통 단 한 번의 인첸트로 완성시키는 게 보통인데 그 이유는 중복하여 인첸트를 할 경우 세공에 안착한 특수스킬이 꼬여버려 심한 경우 아예 파괴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기존에 붙은 인첸트와 같은 가속이어서 그런지 두 번의 인첸트가 모두 성공해 버렸다. 대박이 터진 것...

제작의 숙련도가 최고조에 닿으면 옵션이 2번 중복되는 특성이 생긴다. 그런데 같은 것으로만 중복해 버리니...

덕분에 같은 가속옵션이 4개가 달려 버렸다.

“특이하게 생긴 활이네.”

그렇기에 박중위는 제황이 꺼내든 활이 얼마나 초고가의 무기인지 알지 못한 채 손잡이에 나 있는 뿔에만 주목했다. 아마 제황이 나중에 전해들은 그 활의 실제 감정가를 들으면 놀라 자빠졌으리라.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무장버스로 광역도시 버스회사를 차릴만한 감정가가 나왔으니까.

거기에 그치지 않은 제황은 비천격이라는 이름의 통아를 꺼내들었다. 사거리와 투사체의 속도 보정과 동시에 무음살이라는 액티브 스킬을 사용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비천격은 장거리 저격의 필수품이다. 통아 뒤에 새로 매단 끈을 손에 감아 고정한 제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첫 개시네.

-응. 그걸로 부탁해.

-알았어.

무한고에 저장되어 있던 애기살 한대가 비천격의 안쪽에서 나타났고 애기살이 장전된 통아를 시위에 걸어 비스듬한 사선으로 조준한 뒤 시위를 잡아당겼다.

우드드드득...

무려 400파운드라는 어마어마한 장력을 이기기 위해 아껴뒀던 미분배포인트를 모두 근력에 투자했다. 현재 그의 근력 스텟은 4.5... 실제 근력의 4.5배의 힘을 낼 수 있게 되었건만 400파운드는 조금 부담스럽다.

“그게 뭐...”

박중위가 제황에게 물으려 했지만 제황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비상하며 폭발하는 화살’

퉁.... 파아앙!!!

제황에게 말을 걸려던 박중위는 제황이 시위를 놓는 순간 얼굴을 덮쳐오는 바람과 공기의 충격파에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씨이이이잉!!

이게 진정 화살이 낼 수 있는 소리인가. 아니 날아가는 화살의 미친 궤적을 보는 순간 박중위는 입을 다물었다. 화살은 느리다. 물론 그 비교대상이 총알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화살은 느리다. 그런데 지금 날아가고 있는 것을 진짜 화살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그가 느낀 건 분명 소닉붐이었다. 투사체의 속도가 음속을 돌파했을 때 나는 충격파... 한없이 공중으로 날아가던 화살은 이내 포물선을 그리며 오크라이더들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딪히는 순간...

쿠쿠쿵...

무장버스를 향해 비스듬히 접근하던 오크라이더 무리에 참변이 벌어졌다. 화살촉 부분이 폭발물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크라이더 무리의 중앙에 안착한 화살은 그대로 폭발했고 그로 인해 오크라이더들은 폭발에 휩쓸려 쓰러졌다. 10여기 중 2기는 아예 미동조차 없고 나머지도 타고 있던 늑대 위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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