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47화 (47/301)

# 47

인간대포

“알겠습니다.”

마지막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니 자의적인 판단이 필요할 시에는 소대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라는 뜻... 괜찮은 소대장을 만난 것 같다. 큰 일이 있기 전에는 15개월 간 함께 생활해야 할 이들이기에 좋은 이들을 만났다는 것에 운이 좋다고 느끼는 제황이었다.

그 후로 소대를 이루는 10명의 대원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간략히 말하면 소대장인 박중위를 포함하여 3인의 탱커와 7인의 딜러 그리고 힐러 1명이다. 그들 중 여자는 딜러 3명 힐러 1명으로 되어 있었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군과 계약한  헌터 4명과 군각성자 3인이고 나머지 셋은 제황과 같은 15개월 복무 중인 예비헌터들이다.

“우리 소대는 716전진기지 제 1소대에 걸맞은 노련한 탱커들과 파워풀한 딜러진으로 구성...”

“에이... 캡... 말은 제대로 합시다. 4성 헌터인 캡한테 얹혀가는 신세지 우리가 무슨...15명 정원도 안 되잖아요.”

박중위의 말에 자신을 정국이라는 군각성자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박중위는 정국을 곁눈질로 쏘아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비록 우리 소대가 개개인으로는 다른 소대에 밀리지만 난 우리 소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신입한테 헛소리 하지 말고 불침번 표나 가져와. 레이더는 세웠지?”

“아까 내리자마자 중계기는 다 꽂고 왔습니다.”

“좋아. 자세한 설명은 내일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쉬자고...”

“네.”

***

찌륵...찌륵...찌륵...

막사 밖에는 지구도 아니건만 풀벌레 비슷한 소리가 요란하다. 낯선 잠자리, 낯선 사람들, 낯선 공기, 낯선 마나까지... 제황을 잠들지 못했다. 침낭 속을 뒤척이고 있을 때 궁기가 물어왔다.

-궁금한 게 있어.

-뭐가?

-왜 그 노인네의 제안을 거절한 거지?

-권제 할아버지?

-그는 너를 곁에 두려고 했다. 그가 마음만 먹었으면 너 하나 빼내는 건 손바닥 뒤집듯 쉬웠을 텐데 왜 이 길을 선택한 거지?

-맞아. 권제 할아버지는 그만한 능력이 있으시지.

-그래. 그런데 왜 거절한 건가. 기껏 받은 거라고는 국가동원령에서 자유로워진 2성 라이센스 하나뿐이다. 네가 원했다면 그는 더 빠르게 강해질 길도 제시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권력자니까. 혹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게 싫어서인가?

궁기의 말에 제황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또한 그 일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는 1년 동안 제황은 권제와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워낙 거대한 인물이기에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권제는 꼬박꼬박 제황을 찾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제황에게 많은 제안을 했다.

자신의 제자가 되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종국에는 후계자가 되라는 말까지... 그렇지만 제황은 그것들을 모두 거절했다.

처음에 약속했던

4성 라이센스는 제황이 반려했다. 권제의 능력이라면 쉬운 일이었지만 굳이

4성 라이센스를 받아 이목을 끄느니 그에 따라오는 동원령 면제권만 받았다.

1년간 국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여러 가지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이곳을 자청하여 왔다.

-그분이 권력자니까.

-음?

-그 분이 만든 테두리 안에서 크게 되면 내 경험과 시야는 그분이 만든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물론 빠르게 강해질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난 내 눈으로 세상을 겪으며 나를 완성해 나가고 싶어. 그분은 너무 강해서 곁에 있으면 그 분과 닮아갈 뿐이야. 그의 강함은 내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목표가 될 수 없어.

제황의 대답에 궁기가 말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 길 또한 너를 만드는 축이 될 뿐... 긴 시간을 걷다 보면 그건...

-사실은 그냥 할아버지에게 얽매이기 싫어서 그랬어. 됐냐? 이제 자자...

제황은 궁기의 잔소리가 길어지려 하자 잔다는 말로 말을 끊었다. 함께한 시간이 오래 될수록 왠지 잔소리가 심해지는 궁기였다.

-바람 같은 무련가의 피가 어디 가지는 않는구나. 휴... 뭐 알겠다. 그렇지만 명심해. 네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아. 그러니 강해질 거다. 누구도 넘보지 못하도록...

***

다음날 새벽부터 제황은 이곳 생활에 대하여 최현일의 뒤를 따르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아카데미에서 많은 걸 배우기는 했지만 이론상의 수업과 직접 부딪히는 건 틀리다.

“중계기는 무장버스에 있는 레이더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주변 언덕 같은 곳에 설치하는 겁니다.”

“예.”

새벽녘 최현일은 제황을 데리고 중계기 철거에 나섰다. 긴 막대기 끝에 네모난 상자가 붙은 물건인데 이것은 몬스터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레이더가 막히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 설치하는 물건이었다.  주변 상황에 따라 적게는 4개 많게는 8개 정도를 주변 100미터에 꽂아 둔다.

"난 3개월 뒤면 이것도 끝이지만 제황씨는  익숙해져야 하니 잘 배워요. 좋게 말하면 중계기마다 개성이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죄다 고물이라서 비위 안 맞춰주면 중간에 꺼질 수도 있어요. 어차피 탐지범위가 넓어서 중복 되는 지역이 많기는 하지만 두 개 이상 꺼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최현일에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일은 제황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짚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특이한 것은 최현일은 선임자임에도 제황에게 존대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실력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도 있었지만 이곳은 실전으로 이루어진 곳이기에 남에게 함부로 대하다가는 언제 어디서 뒤통수에 총알이 꽂힐 지모를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칙... 아침 준비...칙...되었다.

“알았어.”

소대 전용채널로 무장버스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대답을 한 최현일이 귀에 끼고 있던 헤드셋을 벗어 손으로 탁탁 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오...이놈에 보급...”

그의 말에 제황은 쓴웃음을 삼키며 그것을 지켜봤다. 아카데미에 있을 때 들은 바로는 이상하게 군대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정상인 게 없다고 한다. 뭐 워낙 여러 사람이 사용하고 또 험하게 사용하게 되니 그런 거지만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군의 병폐인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 같다.

“어제 밤에 먹은 밤참은 간에 기별도 안갔죠? 가죠. 거지 같은 짬밥이라도 먹어야 힘을 내니까.”

“예.”

달그락 달그락...

막사에 도착하니 밥 익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한다. 야전이기에 간단하게 세면을 마친 이들이 둘러앉아 있다가 현일과 제황이 나타나자 자리를 마련했다.

밥이 한가득 떠진 식판이 제황의 손에 들려진다.

가운데는 커다란 냄비에 정체모를 것들이 둥둥 뜬 찌개 비슷한 것이 끓고 있고 각자 전투식량을 하나씩 손에 들고 있다.

"최하사 하나 천하사 하나..."

제황의 무릎에도 전투식량 한 팩이 놓여졌다.

"반찬으로 전투식량이랑 서바이벌 찌개는 앞으로 질리게 먹게 될 테니 지금부터 친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킥킥..."

피지라는 인물이 전투식량을 뜯으며 말했다.

"피지... 내 음식에 불만 있으면 말만 해."

괴상망측한 이름으로 명명당한 정체모를 찌개의 제작자로 보이는 양혜지가 거대한 쇠국자로 피지를 겨누자 그는 고개를 쑥 말고는 얌전히 전투식량으로 시선을 숙였다.

"보기에는 이래도 맛은 그럭저럭 괜찮으니까 한 번 먹어봐."

그녀는 제황의 식판을 받아 서바이벌 찌개라는 걸 한가득 떠줬다.

자세히 보니 갖가지 재료들을 대충 쓸어 담고 한 번에 끓인 티가 역력하다. 강하게 흘러나오는 MSG의 맛에 제황의 미간이 미미하게 꿈틀했다. 음식 맛에 무덤덤한 제황으로서도 적응하기 힘든 맛이다.

그러나 이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국가아카데미에서 군체험이라며 비슷한 것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이것보다 맛이 더 극악했다. 그나마 이건 MSG라도 들어간 게 다행이다.

"별로야?"

"괜찮습니다."

아무리 헌터들이 보유한 별의 개수로 상하를 나눈다지만 갓 들어온 주제에 음식에 대해 평하기는 이른 듯 싶어 그냥 고개를 저었다.

“우린 요리스킬 가진 사람 안 들어오나.”

“아서라... 그런 사람들이 이런 게이트에 들어올 것 같니... 그냥 음식점 해도 손님이 줄을 설 텐데...”

누군가 푸념 섞인 말을 했다. 전투식량을 까서 안에 든 통조림들을 보던 제황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자신이 요리스킬이 있다고 말하면 15개월 내내 밥돌이가 될 듯 한 느낌이다. 그건 사양이다. 요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즐기지도 않는다.

-아...제황이가 만든 더블혼베어 바베큐 먹고 싶다.

-일 없어.

궁기의 장난 섞인 투정에 대답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새로 온 제황씨는 2성 하이브리드 급인데 힐 말고 어떤 스킬이 있지? 딜러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모르잖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당한 장신의 거한이었는데 그는 군소속 헌터 신분인 이성규라는 사람이다. 박중위 다음으로 강한 사람이었는데 3성의 라이센스를 지닌 근거리딜러였다. 그의 말에 모두가 제황을 바라봤다. 딱히 나서서 묻지는 않았지만 꽤 궁금했던 모양....

“활입니다.”

“오...활... 힐러로는 딱 걸맞는 스킬이네. 위험하게 전위에 설 필요도 없고...”

제황의 대답에 모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성규의 목소리가 조금 깔보는 듯 싶지만 모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소대장이 소대 뒷주머니를 전부 올인했는데 제값을 한 것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속성부여? 공속? 조준관련 스킬이면 대박인데... 화기계열에도 쓸 수 있고...”

제황의 스킬에 관심이 가는지 구석에서 묵묵히 서바이벌 찌개를 입에 밀어 넣던 바람머리의 현준이라는 남자가 제황에게 다가와 물었다.

“현준아. 그런 거 묻는 거 아니다.”

“아...네. 죄송합니다.”

자신의 찌개를 뜨던 양혜지가 조용히 말하자 현준은 고개를 쑥 들이밀고는 제황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쪼르르 돌아갔다. 서로간의 스킬에 대해서 묻지 않는 건 일종의 헌터간의 불문율이다. 물론 함께 전투를 치르게 되면 알리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지만 스킬의 보유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 까지만 알고 있는 게 예의였다.

“자자... 얼른 먹고 치우자. 오늘 설거지 당번은 민경이지?”

“예.”

소대원들 중 가장 존재감이 없던 여자가 손을 빠끔히 들었다. 어딘가 자신감 없어 보이는 주눅 든 목소리의 여자였는데 상당히 예쁘장하다.

“어깨 펴라고 했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지 국자녀의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다.

“네...”

그러나 민경이라 불린 여자는 더욱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반응에 한숨을 내쉰 혜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이어진 조용한 식사시간... 제황은 민경이라는 여자를 곁눈질하며 조용히 서바이벌 찌개를 떠 입에 넣었다. 그런데 참아보려 해도...절대 적응 안 되는 맛이다.

그렇게 식사시간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소대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제황은 박중위의 부름에 무장버스 상단에 위치한 30mm기관포 포사에 올라섰다.

이 기관포는 4티어 이상의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유효사거리 3000미터에 분당 600발의 발사 속도를 지닌 물건이었다. 3티어 정도 되는 몬스터는 떼로 몰려와도 금세 걸레쪼가리로 만들 수 있지만 사용하는 탄이 워낙 큰 관계로 한번 보급에 1만발 가량 실을 수 있기에 4티어 몬스터 혹은 위급 상황시가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 소대의 임무브리핑을 하겠어. 임무가 총 두 가지로 나뉜다는 건 알고 있지?"

"예.  통상 임무와 자유임무 둘로 나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진기지에 소속된 군병력으로 이루어진 소대는 소규모의 공격대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들의 통상 임무는 순찰 및 근방의 몬스터 청소다. 헌터들이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과 군시스템을 적절히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맞아. 아무튼 우리가 가져온 자유임무는 2티어급 이상의 몬스터 둥지 파괴와 2티어급 100마리 이상 사냥이야. 통상임무를 수행하며 자유임무를 수행하는 거지."

"몬스터 종류는 어떤 겁니까?"

"음... 이곳 얘기를 못 들었나? 이 동네 2티어 몬스터는 한정되어 있어서 거의 임무는 똑같아."

제황의 물음에 박소위가 멀리 지평선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마침 저기 오는군."

박중위의 손가락질에 제황은 그것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무장버스가 이동하는 곳은 광활한 초지였기에 상당히 먼 거리까지 시계가 유지되었다. 멀리 있는 언덕너머로 검은 색의 머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