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45화 (45/301)

# 45

그는 누구인가.

그의 말에 김소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직 기밀이야. 임마. 어련히 잘 배당되지 않을까봐 그리 조바심이냐.”

“아...그러지 마시고 좀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이거...”

그가 주위를 살피더니 품에서 손톱만한 크기의 투명한 수정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김소령의 표정이 살짝 붉어졌다.

“이 근방에 4

티어급도 있었냐?”

“4티어가 아니라 오크 수색병 뒤지다가 찾아냈습니다.”

그가 꺼내놓은 것은 바로 마나석이었다. 이 정도 크기면 못해도 200만원은 할 것이다.

그러나 김소령은 질색을 했다.

아무리 대충돌 이후 모든 군 체계가 헌터들 위주로 돌아가며 개판 오 분전 판타지가 되었다지만 아직 군법은 건재했다.

“임마, 이런 거 빼돌리다가 걸리면 너나 나나 모가지야.”

“에이, 저희 어차피 수색으로 나간 거고 4티어랑 교전한 기록도 없어요. 깨끗한 겁니다.”

그의 말에 김소령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이내  책상 한쪽에 있는 군용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음... 1성 육체계열 둘이네.”

그의 말에 박중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휴... 또 짐꾼입니까?”

“그럼 어쩌냐. 위에서 이랬는데...”

“서포터 계열은 아예 씨가 말랐습니까?”

그의 물음에 몇 번 더 마우스를 움직인 김소령이 답했다.

“있어. 원딜러쪽 하나랑 인챈터 하나... 힐러 하나네. 근데 모두 다른 소대로 배정 되었어.”

그의 말에 박중위가 눈을 반짝 했다. 다른 이들은 눈에 차지 않지만 힐러라는 말에 귀가 쫑끗한 것이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는 힐러는 귀하다. 물론 소대 당 최소 한 명의 힐러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 정원 15명들 중 한 명이기에 항상 마나고갈에 시달리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1소대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다른 소대보다 훨씬 심각하다. 자기 소대의 힐러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니까.

“김소령님... 그 힐러 저희 쪽으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박중위가 마나석을 김소령 쪽으로 슥 밀었다.

“안 돼! 임마! 이건 내 힘으로도 안 되는 거야. 중대에서도 관심가지는 중요 병력인데 내가 이깟 마나석 때문에...”

“다음에 나가면 몇 개 더 주워 드릴 테니 제발이요. 제가 저 좋자고 하는 겁니까? 저희 소대 힐러 어떤지 아시잖아요. 저희가 제일 급하다고요. 저희가 빡세게 가르쳐서 원정대 시즌까지 제대로 된 힐러 하나 만들어 볼 테니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그의 말에 김소령은 끙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박중위가 그냥 어중이떠중이 녀석이었다면 당장 고성을 터뜨리며 내쫓겠지만 이놈은 학교 후배에다가 사회에서도 친한 놈이었다. 자신이 중앙으로 가게 되면 꼭 자신의 라인에 넣고 싶은 놈...

게다가 워낙 리더십 있고 싹수가 있어 인망도 넓고 인간적으로도 친하다.

“기다려봐.”

어떻게 돌릴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며 그 힐러의 프로필을 띄웠다.

“요즘 애새끼들은 무슨 겉멋이 들러서 사진이 비공개야.”

화면에 뜬 그 힐러는 얼굴이 비공개로 되어 있었다. 물론 비공개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실력이야 현장에서 판가름 날거고 굳이 얼굴이 없어도 신상파악에는 문제가 없다.

근래 빌런들의 테러가 만연해지는 상황이기에 비공개도 용인하게 되었다. 그의 프로필을 확인하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야... 그런데 얘... 2성 하이브리드다?”

“윽...”

김소령의 말에 박중위 얼굴이 일그러졌다. 2성 하이브리드 힐러... 단순한 힐러면 차라리 낫지만 2성 하이브리드라면 골치 아파진다. 이도저도 아닌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쓸데없이 콧대만 높아 소대원들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박중위는 제 코가 석자였다. 뜨거운 물이던 찬물이던 일단 마셔야 했다.

“형님!”

“야. 위아래 지켜!”

박중위가 옆에 찰싹 달라붙자 김소령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러나 박중위는 떨어지지 않은 채 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자잘한 마나석 부스러기가 몇 개 더 들어 있었다.

“형님! 저 한 번 살려주세요. 이대로는 언제 대형사고 터질지 모릅니다.”

그의 말에 박중위를 밀어내던 김소령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박중위의 상황은 잘 안다. 그는 현재 중대장에게 제대로 찍혀서 아주 개고생 중이다. 근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힐러가 배정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알았어. 내가 수를 강구해 볼 테니까.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의 말에 박중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감사합니다! 충성!”

“그래. 충성이다.”

뒤돌아 나가는 박중위를 바라보며 김소령이 혀를 찼다.

"쯧... 저 융통성 없는 새끼... 어쩌다 찍혀서..."

***

부아아앙!

국방무늬의 소형 무장 버스가 '제716전진기지' 라고 적힌 정문을 느릿한 속도로 지나친다.

"차량번호 2XXX 입문했습니다."

초소경비 중이던 군인은 버스의 번호판을 확인한 뒤 안으로 무전을 날리고는 권태로운 시선으로 다시금 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곳은 서울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군의 전진기지로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는 모든 이들이 항시 들락날락 하는 곳이기에 몬스터의 침범은 거의 없는 곳이었다.

잠시 후 전진기지 안 주기장에 버스가 멈춰 섰다.

“제군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드디어 엘어스 공략의 첨병에 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힘들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소리치고 있다. 그러나 버스의 옆문이 열리자마자 안에 타고 있던 이들은 그 목소리에 경기라도 나는지 서둘러 내리기 바쁘다.

“아오! 졸라 시끄럽네.”

“푸... 무슨 먼지가...썅...”

“꺅! 이걸 어떻게 해. 내 피부!”

빳빳한 새 군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모두 재각각의 패션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귀를 덮는 커다란 헤드폰을 썼고 또 어떤 이는 군복의 상의 부분을 열어젖힌 채 밀려들어오는 후덥지근한 열기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이 씨박..제기랄.. 니기미 내가 왜 여기에...”

기기묘묘한 칠색의 염색 머리 남자가 침을 퉤 하고 뱉으며 주변을 불량하게 쳐다보는데 그걸 바라보는 군인들은 그것을 별로 지적하고 싶지 않은지 웬 똥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그들로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었다. 어차피 저들은 앞으로 15개월간 이곳에서 자신들처럼 개같이 박박 굴러야 하는 이들이다. 저 정도는 애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남자...

그가 내려서자 이 불량스러운 집단을 바라보던 권태로운 표정들이 달라졌다. 대략 180센티 되는 키에 호리호리한 남자였는데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한 데 묶었다. 얼굴에 무슨 흉터라도 있는지 코와 입을 붉은 호랑이가 그려진 후드로 가린 남자였다.

좀 특이한 모습에 주목을 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슴에 붙은 이름표 옆으로 작게 새겨진 별의 개수가... 두 개다. 그것도 다른 이들이 검은색의 별 하나라면 그의 별은 금색이다.

“저거 2성 하이브리드 라는 뜻 아니야?”

헌터들의 계급을 조금 아는 병사가 옆 친구에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하이브리드...”

마법계열 스킬과 육체계열 스킬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헌터가 한두 명이 아닌데 왜 그걸 가지고 놀랄까? 세상에 두 가지 계열의 스킬을 지닌 이들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저 별 두 개라는 뜻은 두 가지 스킬 모두 그 까다로운 헌터라이센스 시험에서 인정받았다는 말이 된다.

“하이브리드라면 보통 경력이 높은 헌터만 가능한 게 아니야? 왜 저런 사람이 여기를...”

“모르지. 처음부터 하이브리드로 개화해서 그만큼 능력이 된다면...”

“그게 말이 돼? 보통은 한 가지 주력으로 밀다가 새로운 스킬 배워서 하이브리드로 넘어가는 거잖아.”

“그러게 나도 좀 헷갈리네.”

그들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럭에서 내린 이들은 앞선 이들의 뒤를 따라 막사로 향했다. 그 때 가장 후위에서 느릿하게 따라가던 그 2성하이브리드 헌터에게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섰다.

“힐러?”

뜬금없는 물음이지만 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건 남자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곧 그에게 말했다.

“긴급 상황이다. 넌 바로 내 뒤를 따르도록!”

그 말에 그는 앞선 이들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군인을 따랐다.

힐러라서 그런지 어디서 위급한 환자가 생길지 모르기에 이런 경우는 가끔 있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따라가보니 그리 위급한 상처가 아님에도 힐러를 요청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자는 몇 개의 막사를 교묘히 돌더니 이내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무장버스 안으로 제황을 우겨 넣더니 이내 문을 닫은 후 외쳤다.

“고고고!!! 접수 완료! 도망치자!”

“경계해! 언제 녀석들이 쫓아올지 몰라!”

“알겠습니다. 캡!”

그의 말에 무장트럭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트럭에 작게 뚫린 창문으로 밖을 경계했다.

“피지! 밟아! 빌어먹을 오늘 네 진짜 운전 실력을 보여줘!”

“맡기세요! 캡! 오늘 나를 멈출 놈은 없다!”

운전석에 앉은 이가 사납게 외치더니 곧이어 풀악셀을 밟으며 무장버스를 출발시켰다.

끼기긱! 끽끽!

무장버스가 좁디좁은 막사 사이를 거의 60킬로미터로 끼고 돌더니 서스펜션이 터지도록 핸들을 꺾어 차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30톤의 육중한 무장버스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계속해서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는 놀란 목소리로 자신을 데려온 이에게 말했다.

“뭡니까?!”

“아... 미안... 내 소개가 늦었군.”

그 말과 함께 그는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자네가 배치될 제1소대의 소대장을 맡고 있는 박창준 중위네.”

그는 내밀어진 손과 그 손의 주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그 손을 잡지 않은 채 좀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까시죠.”

“끙...”

그의 대답에 박창준이라 소개한 중위는 자신의 품에서 홀로그램으로 된 라이센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남자가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박중위의 손을 잡았다.

“2성 하이브리드 헌터 천제황이라고 합니다.”

그의 대답에 박중위는 얼굴이 환하게 변하더니 제황의 손을 두 손으로 잡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대로 잡아왔다!”

“오오!!!”

“꺅! 박중위님 최고!”

무장버스 안의 사람들이 들썩들썩 하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잠시 상황이 진정되자 제황이 박중위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듣기로는 일단 하루 동안 대기후에 배치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물음에 박중위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대답한다.

“아아.. 뭐 그게 정상이기는 한데... 중간에 좀 일이 생겨서...”

“....”

제황이 눈빛으로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자 그는 제황을 이끌고 좌석으로 향했다.

“저 친구가 운전은 잘하는데 길 따라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니 승차감이 별로일거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박중위의 말에 제황은 차창 밖을 슬쩍 쳐다봤다. 이전에 탔던 무장버스가 굼벵이라면 지금 타고 있는 무장버스는 같은 무장버스가 맞는가 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 뜬금없이 좌우로 심하게 쏠리는 걸 보면 박중위의 말을 따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알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악의가 확인되지 않았기에 따라왔는데 뭔가 이야기가 길어 보인다.

“음... 아까 말했다시피 자네는 우리 소대로 배정되어 있는 게 맞아. 그러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네.”

“그럼 왜 그렇게 납치하듯 저를 데려온 겁니까.”

“아, 그건 자네를 노리는 놈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어. 일단 서류상으로 제1 소대로 오게 만들기는 했는데 그놈의 미친 특전사 놈들이 자네를 중간에 강탈하려고 하기에 이렇게 데려 온 거야. 그렇지만 자네에게는 그리 나쁜 게 아니야. 내가 남 험담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 새끼들은 정말 쓰레기들이거든.”

그의 말이 끝나자 제황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큰 문제는 없겠죠?”

“당연하지. 모든 서류 작업은 제대로 끝났어.”

그는 장담하듯 말했다.

-이 사람 말 진짜 같아?

-거짓말 같지는 않네.

거짓말을 판별하는 능력은 없지만 궁기의 말은 상당히 잘 맞기에 제황은 그걸로 안심했다. 그의 말대로 원래 1소대에 배속되게 되어 있었다는데 무슨 할 말이 필요한가. 게다가 그가 소대장이니 어차피 문제가 생긴다면 그가 책임 질 것이다.

물론 지금 제황이 가기로 했던 부대에서는 난리가 난 걸 알 턱이 없는 제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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